반응형 전체 글574 순교자 성 클라우디우스(Claudius) — “이름이 남았다는 것” 자체가 시련을 이긴 교회의 역사입니다 성 클라우디우스라고 하면, 의외로 “딱 이 한 사람”을 단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같은 이름을 가진 성인과 순교자가 여러 전승과 지역 전례 안에 등장하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사용자가 “1) 순교자 성 클라우디우스”를 원하셨으니, 이 글은 특정 한 도시의 상세 연대기만을 과감히 단정하기보다는, 초대 교회와 로마 제국 시대의 박해라는 큰 역사 흐름 속에서 “클라우디우스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순교자”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그리고 그 상징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신앙의 언어를 건네는지를 중심으로 풀어보겠습니다. 순교(殉敎)는 가톨릭에서 단순히 비극적인 죽음을 뜻하지 않습니다.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 증언’이라는 의미가 먼저이고, 그 증언은 개인의 용기만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기억으로 남아 교회를 살립니다. .. 2026. 9. 16. 성 요안나(여제자, 예수님을 따르던 여성) — “이름 없이 스쳐간 조연”이 아니라, 복음의 현장을 지킨 증인 성 요안나(요안나, Joanna)는 세계사 책에서 크게 다뤄지진 않지만, 복음서 안에서는 꽤 선명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님의 공생활을 현실적으로 지탱한 여성 제자”였고, 부활 소식을 처음 목격하고 전한 증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언급되지요. 우리가 성 요안나를 기억하는 이유는 단순히 ‘여성이었다’가 아니라, 당시 사회 구조와 위험 속에서도 하느님 나라의 길에 끝까지 동행했다는 사실 자체가 초대 교회가 수많은 시련을 이겨낸 방식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서에서 요안나는 특히 루카 복음에 등장합니다. 루카는 예수님을 따르던 여성들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기록하면서, 요안나를 “헤로데의 관리 쿠자의 아내”로 소개합니다(루카 8장 3절). 이 한 줄은 가볍지 않습니다. 헤로데 안티파스의 .. 2026. 9. 15. 성 안드로니쿠스(Andronicus) — 시련 속에서도 복음을 지킨 “주님 안의 동역자” “성 안드로니쿠스”라고 하면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성경 한 구절 안에 그의 신앙의 무게가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 16장 7절에서 안드로니쿠스와 유니아를 두고 “나와 한 동족이며 함께 갇혔던 사람들”이라고 부르며, 또한 “사도들 가운데 이름난 사람들”이라고까지 표현하지요. 짧은 소개지만, 여기에는 초대 교회가 겪었던 박해와 옥살이, 그리고 그 모든 시련을 뚫고 이어진 복음의 확장이 압축되어 있습니다.안드로니쿠스는 흔히 “칠십 인(또는 칠십이 인)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전승되기도 합니다. 즉, 예수님 시대부터 복음 선포의 현장에 가까이 있었던 초기 증인으로 이해되는 것이지요. 다만 이 부분은 교회 전승과 전례 전통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방향이긴 해도, 역사적으로 한 문서로 .. 2026. 9. 14. 원주 용소막성당 이야기: 조용한 골짜기에서 이어진 “버텨낸 신앙”의 시간 원주에 가면 유명한 명소들이 많지만, 마음을 조금 더 깊게 흔드는 곳을 찾는다면 용소막성당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곳은 화려한 관광지라기보다, “정말로 사람들이 신앙을 붙들고 살아왔던 자리”라는 느낌이 또렷해요. 오래된 나무와 낮은 담, 그리고 소박하면서도 단단한 성당 건물이 어우러져서, 발걸음을 자연스럽게 느리게 만듭니다. 가톨릭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이 공간에서는 이상하게 조용해지고, 그 조용함 속에서 오래된 이야기들이 들려오는 듯합니다.1) 용소막성당의 기본 흐름: 강원 지역 “세 번째 성당”으로 이어진 역사원주시 공식 관광 안내에서는 용소막성당이 풍수원 성당과 원주 성당에 이어 강원특별자치도 내에서 세 번째로 건립된 성당이라고 소개합니다. 또 국가유산 안내에 따르면, 용소막은 1898년에는 원주.. 2026. 9. 13. 풍수원성당, 오래된 신앙의 공간: 숨은 골짜기에서 이어진 “버텨낸 신앙”의 기록 강원도 횡성에 있는 풍수원성당은 화려한 도심 성당과는 결이 조금 달라요. 길을 따라 들어갈수록 오히려 조용해지고, 성당이 눈앞에 나타나는 순간에는 “아, 이런 곳에 이런 역사가 있었구나” 하고 마음이 멈칫합니다. 풍수원성당은 단지 오래된 건축물이 아니라, 말 그대로 오래 버텨온 신앙의 생활 공간이에요. 그래서 이곳을 걷다 보면 ‘관광’이라는 단어보다 ‘순례’라는 단어가 더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1) 풍수원성당의 핵심 사실: 1888년 본당 설립, 1909년 낙성식공개된 성지 안내 자료에 따르면, 풍수원 본당은 1888년 6월 20일 설립되었고, 지금 남아 있는 성당 건물은 1909년에 낙성식을 가진 것으로 소개됩니다. 연도가 주는 느낌이 꽤 크죠. 1900년대 초반은 한국사로는 근대의 격랑이 본격화되는 .. 2026. 9. 12. 계산성당, 대구 최초의 서양식 건축: “도시의 시간” 위에 세워진 신앙의 표지 대구 도심을 걷다가 계산성당(주교좌계산대성당)을 마주하면, 사람들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느려집니다. 이유는 단순해요. 건물이 주는 존재감이 확실하거든요. 붉은 벽돌의 묵직한 색감, 서양 성당 특유의 아치와 탑이 만들어내는 수직감, 그리고 “이 건물이 여기 오래 있었구나” 하고 느껴지는 시간의 결이 한꺼번에 다가옵니다. 게다가 계산성당은 단지 유명한 성당이 아니라, 자료에서 대구 지역 최초의 서양식 건물로 소개될 만큼 근대 도시의 시작과 맞물려 있는 상징적인 공간입니다.1) “대구 최초의 서양식 건축”이라는 말의 무게계산성당은 1902년 완공으로 소개되며, 착공 약 1년여 만에 대구 지역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 세워졌다고 전해집니다. 또 다른 지역 자료에서도 1902년 완공과 함께 “대구 최초의 양식(洋式) .. 2026. 9. 11. 이전 1 2 3 4 ··· 9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