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605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 이야기, 낯선 땅에서 신자들의 목자가 된 두 선교사 안녕하세요. 오늘은 앵베르 주교님과 함께 조선 교회를 위해 일하다 순교한 두 분의 신부님, 모방 신부님과 샤스탕 신부님 이야기를 해 볼게요. 두 분 모두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였고, 한국 이름은 각각 나백다록(베드로)과 정아각백(야고보)입니다. 사제 없이 오랜 세월을 견딘 조선 신자들에게 두 분은 정말 오래 기다린 선물 같은 분들이었어요. 1. 사제를 기다리던 조선 교회와 선교사들의 도착 주문모 신부님이 1801년 신유박해로 순교한 뒤, 조선 교회는 사제 없이 30년 넘게 신앙을 이어 가야 했습니다. 신자들은 베이징 교구와 로마 교황청에 거듭 편지를 보내 사제를 보내 달라고 청했어요. 그 간청이 받아들여져 1831년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께서 조선을 독립된 교구로 세우시고, 선교를 파리외방전교.. 2026. 10. 17. 앵베르 주교와 한국 교회, 양 떼를 두고 떠나지 않은 목자 안녕하세요. 오늘은 한국 천주교회의 두 번째 교구장이었던 로랑 마리 조셉 앵베르 주교님 이야기를 풀어 볼게요. 한국 이름은 범세형이고, 세례명은 라우렌시오입니다. 이름이 낯설게 느껴지실 수도 있는데, 1839년 기해박해라는 큰 시련 속에서 신자들 곁을 끝까지 지킨 분이라서 한국 교회사에서 빼놓을 수 없어요. 세계사의 흐름과 함께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1. 조선교구의 설정과 파리외방전교회 앞서 주문모 신부님이 순교한 뒤 조선 교회는 약 30년 넘게 사제 없이 버텨야 했습니다. 신자들은 베이징 교구에 거듭 편지를 보내 사제를 보내 달라고 간청했어요. 그 간절함이 로마에 닿아 1831년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께서 조선을 독립된 교구로 세우셨고, 선교는 프랑스의 파리외방전교회가 맡게 됩니다. 파리외방전교회는 .. 2026. 10. 16. 주문모 신부와 조선 선교, 박해 속에서도 꺼지지 않은 신앙의 불씨 안녕하세요. 오늘은 가톨릭 역사에서 꼭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인물, 주문모 야고보 신부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한국 천주교회의 시작은 조금 특별합니다. 선교사가 먼저 들어와서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조선의 선비들이 책으로 신앙을 먼저 만났기 때문이에요. 그러다 보니 사제 없이 신자 공동체가 먼저 생겨났고, 그 공동체가 간절히 기다린 첫 사제가 바로 주문모 신부님입니다.1. 사제 없이 시작된 조선 천주교회18세기 후반 조선은 성리학 중심의 사회였고, 청나라를 통해 서양 학문인 서학이 조금씩 들어오던 시기였어요. 이벽, 정약전, 정약종 같은 실학 계열 학자들이 한문 서학서를 읽으며 천주교 교리에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 1784년에는 이승훈이 베이징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와 조선 땅에서 첫 영세를 줍니다.. 2026. 10. 15. 정약용과 천주교의 만남: ‘서학’의 바람 속에서 신앙과 학문이 교차한 조선 후기 정약용(丁若鏞, 다산)을 떠올리면 보통 “실학자”, “개혁가”, “유배지에서 방대한 저술을 남긴 인물”이 먼저 생각나죠. 그런데 조선 후기의 정약용을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려면, 그가 살았던 시대에 불어오던 천주교(서학)의 바람도 함께 봐야 합니다. 정약용이 천주교와 “어떤 방식으로든 접촉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가십이 아니라 조선 사회가 새 지식과 새 신앙을 만났을 때 어떤 긴장을 겪었는지 보여주는 세계사적 장면이기도 해요.1) ‘서학’을 만난 시대: 지식이 국경을 넘던 18세기 말18세기 후반은 세계사적으로 “지식의 이동”이 빨라지던 시기였습니다. 유럽에서는 계몽주의가 확산되고, 과학과 철학, 사회 제도에 대한 논쟁이 활발해졌죠. 동아시아에서는 서양 학문과 천주교 교리가 중국을 통해 번역서·교리서 형태.. 2026. 10. 14.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의 순교: 신유박해 속에서도 꺾이지 않은 ‘신앙의 문장’ 조선 후기 천주교 역사를 읽다 보면, 어떤 이름은 “그 사람의 삶 자체가 교리서 같다”는 느낌으로 다가와요. 그중 한 사람이 바로 정약종(丁若鍾) 아우구스티노입니다. 정약종은 초기 한국 교회가 선교사보다 먼저 ‘책과 배움’으로 시작되던 시기에, 신앙을 단지 마음속에만 두지 않고 공동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과 글로 세워가려 했던 지도자로 기억됩니다. 그리고 결국 1801년 신유박해의 거센 폭풍 속에서 순교로 생을 마쳤죠. 1) 정약종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신앙을 ‘가르칠 수 있는 언어’로 만든 사람”초기 조선 천주교는 매우 독특한 출발을 했습니다. 성직자가 상주하며 성당 중심으로 체계가 잡힌 형태가 아니라, 서학 서적과 신앙적 탐구를 통해 교리를 이해하고 서로에게 전하면서 공동체가 커졌거든요. 이런 환.. 2026. 10. 13. 권철신과 초기 천주교 지도자들: ‘책으로 시작된 교회’가 시련을 견딘 세계사적 장면 한국 천주교 초기 역사를 이야기할 때, “선교사가 먼저 들어와서 시작된 교회가 아니다”라는 문장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이 말이 조금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는데요, 실제로 그 중심에는 권철신(權哲身) 같은 초기 지도자들과, 그와 연결된 여러 인물들의 공부, 토론, 결단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권철신을 축으로 삼아 초기 천주교 지도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신앙을 받아들이고, 어떤 시련을 견뎌냈는지 부드럽게 정리해볼게요.1) 권철신은 누구였을까? ‘서학 공부의 구심점’이 된 인물권철신은 조선 후기 지식인 사회에서 서학(西學)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던 흐름과 맞닿아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어요. 여기서 서학은 단순히 “서양 것”을 의미한다기보다, 당시 중국을 통해 들어오던 서양의 학문, 과학 지식, 그리고 천주교 관련.. 2026. 10. 12. 이전 1 2 3 4 ··· 10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