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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경과 번역의 역사/라틴어 불가타, 70인역, 초기 성경 전승22

70인역과 불가타 그리고 개신교 성경 번역의 역사적 차이 성경 번역 전통의 세 가지 흐름과 그 기원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성경 번역은 단순한 언어적 작업을 넘어서 신학적 정체성과 교회 전통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였습니다. 기원전 3세기에 시작된 70인역은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그리스어로 옮긴 최초의 주요 번역으로, 헬레니즘 시대 디아스포라 유대인 공동체의 신앙생활을 위해 탄생했습니다. 이 번역은 신약 시대 초대 교회에 그대로 계승되어 사도들과 복음서 저자들이 구약을 인용할 때 주로 사용한 텍스트가 되었으며, 동방 정교회는 오늘날까지 70인역을 구약성경의 표준 본문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4세기 말 성 히에로니모가 완성한 불가타는 70인역과 히브리어 원문을 모두 참고하여 만든 라틴어 번역으로, 천 년 이상 서방 가톨릭 교회의 유일한 성경으로 군림했으며 중세 유럽의 신학.. 2025. 11. 19.
불가타 성경과 현대 가톨릭 전례에서의 역할과 변화 성 히에로니모와 불가타 번역의 시작4세기 후반 로마 제국이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이후 서방 교회는 통일된 라틴어 성경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럽 각지에서 사용되던 고라틴어 성경들은 번역의 질이 일정하지 않았고 지역마다 다른 표현을 사용하여 신학적 혼란을 초래했습니다. 382년 교황 다마소 1세는 달마티아 출신의 성서학자 히에로니모에게 라틴어 성경의 표준화 작업을 의뢰했으며, 히에로니모는 먼저 복음서의 개정 작업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는 로마에서 시작한 작업을 팔레스티나의 베들레헴으로 옮겨 계속했고, 히브리어 원문과 70인역을 모두 참고하면서 구약성경 전체를 새롭게 번역하는 대작업에 착수했습니다. 390년부터 405년까지 약 15년에 걸친 헌신적 노력 끝에 히에로니모는 구약과 신약을 아우르는 .. 2025. 11. 18.
현대 성경학에서 70인역의 학문적 가치와 역사적 중요성 70인역의 탄생과 헬레니즘 시대의 문화적 배경70인역은 기원전 3세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탄생한 구약성경의 그리스어 번역본으로, 히브리어 원문을 그리스어로 옮긴 최초의 주요 번역 작업이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이후 헬레니즘 문화가 지중해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디아스포라 유대인 공동체는 히브리어를 읽지 못하는 세대가 늘어나게 되었고 이들을 위한 그리스어 성경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포스 왕의 요청으로 72명의 유대 학자들이 각 이스라엘 지파에서 선발되어 번역 작업에 참여했으며, 이들이 70명 정도였다는 데서 70인역이라는 명칭이 유래했습니다. 이 번역은 단순한 언어 변환을 넘어서 유대교 신앙과 헬레니즘 철학이 만나는 문화적 교량 역할을 수행했으.. 2025. 11. 17.
성경 전승 속에서 본 언어와 권력: 하느님 말씀을 둘러싼 2천 년의 역학 언어의 선택, 신성한 지식의 경계를 정하다성경의 역사는 언어의 역사입니다. 구약성경은 주로 히브리어로 기록되었고, 일부는 아람어로 쓰였습니다. 이 언어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언어였으며, 동시에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백성과 소통하시는 신성한 언어였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6세기 바빌론 유배 이후, 많은 유대인들이 히브리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영향으로 아람어와 그리스어가 확산되면서, 성경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점차 제한되었습니다. 회당에서 성경이 낭독될 때, 히브리어 본문 다음에 아람어 타르굼이라는 번역과 해설이 뒤따랐습니다. 이는 평신도들이 성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동시에, 랍비들이 해석을 통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가.. 2025. 11. 16.
성경 번역과 민족 언어 성경의 탄생: 하느님 말씀이 모든 민족의 언어로 중세 교회와 라틴어 성경, 권위와 통일성의 시대중세 천 년 동안 서방 가톨릭 교회에서 성경은 곧 라틴어 불가타를 의미했습니다. 성 히에로니무스가 4세기 말에 완성한 이 번역은 교회의 전례, 신학, 교육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라틴어는 로마 제국의 공용어였지만, 제국 멸망 후에도 학문과 종교의 언어로 살아남았습니다. 중세의 모든 교육받은 사람들은 라틴어를 배웠고, 성직자들은 라틴어로 미사를 집전하고 성경을 낭독했습니다. 이러한 언어적 통일성은 유럽 전역의 가톨릭 교회를 하나로 묶는 강력한 힘이었습니다. 프랑스의 신부도, 독일의 수도자도, 영국의 주교도 같은 라틴어 성경을 읽고 같은 언어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평신도들이 성경을 직접 읽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라틴어를 .. 2025. 11. 15.
라틴 불가타와 수도원 필사본 문화: 중세 유럽 문명을 보존한 거룩한 노동 성 히에로니무스의 유산, 서방 교회의 표준 성경이 되다서기 382년 교황 다마소 1세는 당시 최고의 성서학자였던 히에로니무스에게 중대한 임무를 맡겼습니다. 라틴어권 교회에서 사용되던 성경 번역본들이 너무 많고 부정확했기 때문입니다. 히에로니무스는 로마를 떠나 베들레헴으로 가서 히브리어 원전과 그리스어 칠십인역을 면밀히 연구하며, 약 23년간의 헌신적인 작업 끝에 완전한 라틴어 성경을 완성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불가타 성경입니다. 처음에는 새로운 번역에 대한 저항도 있었지만, 그 정확성과 우아한 라틴어 문체 덕분에 점차 서방 교회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6세기경 교황 대 그레고리오는 불가타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후 천 년 이상 불가타는 서방 가톨릭 교회의 유일한 권위 있는 성경이 되었습니다... 2025.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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