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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경과 번역의 역사/라틴어 불가타, 70인역, 초기 성경 전승

성경 번역과 민족 언어 성경의 탄생: 하느님 말씀이 모든 민족의 언어로

by 기쁜소식 알리기 2025.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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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교회와 라틴어 성경, 권위와 통일성의 시대

중세 천 년 동안 서방 가톨릭 교회에서 성경은 곧 라틴어 불가타를 의미했습니다. 성 히에로니무스가 4세기 말에 완성한 이 번역은 교회의 전례, 신학, 교육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라틴어는 로마 제국의 공용어였지만, 제국 멸망 후에도 학문과 종교의 언어로 살아남았습니다. 중세의 모든 교육받은 사람들은 라틴어를 배웠고, 성직자들은 라틴어로 미사를 집전하고 성경을 낭독했습니다. 이러한 언어적 통일성은 유럽 전역의 가톨릭 교회를 하나로 묶는 강력한 힘이었습니다. 프랑스의 신부도, 독일의 수도자도, 영국의 주교도 같은 라틴어 성경을 읽고 같은 언어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평신도들이 성경을 직접 읽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라틴어를 이해하지 못했고, 문자 해독률도 매우 낮았습니다. 따라서 성경의 내용은 주로 설교와 전례, 그리고 교회 벽화와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전달되었습니다. 교회는 민족 언어 번역을 제한했는데, 이는 부정확한 번역으로 인한 이단의 발생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중세에 나타난 일부 이단 운동들은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성경 번역과 민족 언어 성경의 탄생: 하느님 말씀이 모든 민족의 언어로

최초의 시도들, 중세 유럽의 부분적 민족 언어 번역

라틴어가 지배적이었지만, 중세에도 민족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려는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7세기 영국의 성 베다는 죽기 직전까지 요한복음을 고대 영어로 번역하고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9세기 슬라브 민족에게 선교한 성 키릴로스와 메토디오 형제는 슬라브어 문자를 창제하고 전례서와 성경 일부를 번역했습니다. 이들의 작업은 교황의 승인을 받았으며, 오늘날까지 슬라브 전례의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14세기 영국에서는 옥스퍼드 대학의 신학자 존 위클리프가 최초로 완전한 영어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위클리프는 교회 권위를 비판하고 성경만이 유일한 권위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그의 번역은 교회로부터 금지되었습니다. 위클리프 사후 그의 추종자들인 롤러드파는 박해를 받았고, 그의 책들은 불태워졌습니다. 15세기 보헤미아의 얀 후스 역시 체코어 성경 보급을 지지했으나,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어 화형당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교회가 민족 언어 성경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성경 번역이 교회의 권위에 대한 도전과 결합될 때 우려했음을 보여줍니다.

종교개혁과 마르틴 루터, 독일어 성경의 혁명적 등장

1517년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면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습니다. 루터는 오직 성경만이 신앙의 최고 권위라는 원칙을 세웠고, 모든 신자가 성경을 직접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1521년 보름스 제국의회 후 루터는 작센의 선제후 프리드리히의 보호 아래 바르트부르크 성에 은신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단 11주 만에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습니다. 1522년 9월 루터의 독일어 신약성경이 출판되자 폭발적인 반응이 일었습니다. 3개월 만에 초판 3천 부가 완매되었고, 계속해서 재판이 나왔습니다. 루터는 이어서 구약성경 번역에 착수했고, 1534년 완전한 루터 성경이 출판되었습니다. 루터의 번역은 단순히 단어를 옮긴 것이 아니라, 평범한 독일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생생한 언어로 성경을 표현했습니다. 그는 "거리의 어머니에게, 시장의 아이들에게, 일반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그들의 입에서 독일어가 어떻게 나오는지 관찰했다"고 말했습니다. 루터 성경은 독일어의 표준화에도 크게 기여했으며, 독일 문화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덕분에 루터 성경은 빠르게 보급되었고, 종교개혁의 확산에 핵심적 도구가 되었습니다.

영어 성경의 여정, 틴들에서 흠정역까지

영국에서도 성경의 민족 언어 번역은 종교개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윌리엄 틴들은 1520년대 초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원전에서 직접 영어 성경을 번역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영국 가톨릭 교회는 공식 승인 없는 성경 번역을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틴들은 영국을 떠나 독일로 가서 번역 작업을 했고, 1526년 영어 신약성경을 출판했습니다. 틴들 성경은 밀수로 영국에 유입되었고, 교회 당국은 이를 압수하여 불태웠습니다. 틴들은 구약성경 번역을 계속했지만, 1536년 이단 혐의로 체포되어 화형당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기도는 "주님, 영국 왕의 눈을 열어주소서"였다고 전해집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불과 3년 후인 1539년, 헨리 8세는 틴들의 번역을 기반으로 한 대성경을 승인했습니다. 1604년 제임스 1세는 새로운 공식 영어 성경 번역을 명령했고, 54명의 학자들이 7년간 작업하여 1611년 흠정역 성경이 완성되었습니다. 흠정역은 4세기 동안 영어권 개신교의 표준 성경이 되었으며, 영어 문학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셰익스피어, 밀턴, 워즈워스를 비롯한 수많은 작가들이 흠정역의 언어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가톨릭의 대응, 두에-랭스 성경과 전통의 수호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 교회도 민족 언어 성경의 필요성을 인정했지만, 신중한 접근을 취했습니다. 1568년 영국의 가톨릭 신학자들이 프랑스 두에로 피신하여 신학교를 세웠습니다. 이곳에서 가톨릭 영어 성경 번역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1582년 신약성경이 랭스에서 출판되었고, 1609-1610년 구약성경이 두에에서 출판되었습니다. 이것이 두에-랭스 성경입니다. 개신교 성경과의 중요한 차이는 두에-랭스 성경이 히브리어나 그리스어 원전이 아니라 라틴어 불가타에서 번역되었다는 점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불가타를 공식 성경으로 선포했기 때문에, 번역도 불가타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두에-랭스 성경에는 구약의 제2경전이 포함되었는데, 개신교는 이를 외경으로 분류하여 제외하거나 별도로 수록했습니다. 두에-랭스 성경의 서문과 주석은 가톨릭 교리를 명확히 하고 개신교의 해석을 반박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했습니다. 이 성경은 영어권 가톨릭 신자들의 표준 성경이 되었고, 19세기 후반까지 사용되었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입장은 성경 번역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교도권과 전승을 무시한 채 성경만을 유일한 권위로 주장하는 것을 경계한 것이었습니다.

선교와 번역, 세계 각지로 퍼져나간 하느님 말씀

16세기 이후 유럽의 선교사들은 세계 각지로 나아가며 복음을 전했고, 성경 번역은 선교의 핵심 과제가 되었습니다. 예수회, 프란치스코회, 도미니코회 선교사들은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의 언어를 배우고 문법서와 사전을 편찬했습니다. 가톨릭 선교사들은 먼저 교리서와 기도서, 전례서를 번역했고, 점차 성경의 일부를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에서는 마테오 리치를 비롯한 예수회 선교사들이 한문으로 천주교 서적을 저술했고, 일부 성경 구절을 번역했습니다. 일본에서도 초기 선교 시기에 일본어 교리서와 함께 복음서 일부가 번역되었습니다. 필리핀에서는 스페인 선교사들이 타갈로그어와 다른 지역 언어로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원주민 언어로 된 성경 번역이 이루어졌는데, 특히 과라니어, 케추아어, 나와틀어 번역이 중요했습니다. 19세기에는 아프리카 선교가 본격화되면서 수많은 아프리카 언어로 성경이 번역되기 시작했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번역 작업은 개신교에 비해 느린 편이었지만, 이는 신중한 검토와 교회 승인 절차를 거치기 때문이었습니다. 교황청 성서위원회는 번역의 정확성과 교리적 건전성을 확인했습니다.

한국 천주교와 한글 성경의 여정

한국에 천주교가 전래된 것은 18세기 후반이었습니다. 1784년 이승훈이 베이징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오면서 한국 천주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초기 신자들은 한문으로 된 천주교 서적을 읽고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로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순교한 후, 한국 교회는 50여 년간 성직자 없이 평신도들만으로 신앙을 지켰습니다. 1836년 모방 신부를 시작으로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입국하면서, 한글 성경 번역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1882년 리델 주교는 사복음서를 한글로 번역하여 일본에서 목판본으로 출판했습니다. 이것이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한글 성경입니다. 리델 역본은 불가타 성경을 기반으로 번역되었으며, 당시 한글 표기법과 어휘로 작성되었습니다. 1900년 정규하 아우구스티노 신부는 신약성경 전체를 번역했고, 1910년 구약 일부를 추가로 번역했습니다. 이후 여러 주교와 신부들이 부분적 번역을 계속했지만, 한국 천주교회의 완전한 성경은 오랫동안 나오지 못했습니다. 한편 개신교는 1882년 입국한 선교사들이 적극적으로 성경 번역을 추진했고, 1900년 신약전서, 1911년 구약과 신약을 합한 완전한 성경을 출판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현대 가톨릭 성경 번역의 새 지평

1962년부터 1965년까지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톨릭 교회 역사의 전환점이었습니다. 공의회는 전례와 성경에 대한 접근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전례헌장은 라틴어 전례와 함께 민족 언어 전례를 허용했고, 신자들이 성경을 더 많이 읽도록 장려했습니다. 계시헌장은 성경이 교회의 영혼이며, 모든 신자가 성경을 읽고 묵상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의 주교회의는 원어 성경에서 직접 번역한 현대어 성경을 출판하기 시작했습니다. 영어권에서는 1970년 신미국성경, 1966년 예루살렘 성경 등이 나왔습니다. 프랑스에서는 1956년 이미 예루살렘 성경 프랑스어판이 나왔고, 독일에서는 통일 번역본이 제작되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번역들은 불가타가 아닌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전을 기반으로 했으며, 최신 성서학 연구 성과를 반영했습니다. 동시에 가톨릭 전통의 해석을 유지하고 제2경전을 포함했습니다. 한국에서는 1971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가 신약성경을 출판했고, 1977년 구약을 포함한 완전한 성경을 출판했습니다. 이것이 공동번역 성경입니다. 공동번역은 가톨릭과 개신교가 최초로 협력하여 만든 성경이라는 점에서 에큐메니칼 의미가 컸습니다.

한국 천주교 성경의 발전, 공동번역에서 새번역까지

1977년 출판된 공동번역 성경은 한국 교회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졌지만, 번역 방식과 표현에 대한 논란도 있었습니다. 공동번역은 직역보다는 의역과 동등성 번역 원칙을 따랐기 때문에, 원문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에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1990년대 초부터 새로운 번역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주교회의 산하 성서위원회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전에서 직접 번역하되, 현대 한국어로 정확하고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2005년 신약성경과 시편이 먼저 출판되었고, 2019년 마침내 구약과 신약을 포함한 완전한 성경이 출판되었습니다. 이것이 한국천주교회 최초의 완전한 한글 성경인 성경이었습니다. 새 번역은 원문의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면서도 한국 문화와 언어 감각에 맞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주석과 해설은 가톨릭 교회의 교도권과 전승에 따라 작성되었으며, 교부들과 교회 박사들의 해석을 존중했습니다. 제2경전은 구약성경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포함되어, 가톨릭 정경 개념을 명확히 했습니다. 새 번역 성경은 한국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생활과 전례에서 표준 성경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번역의 신학, 언어를 넘어 전해지는 하느님 말씀

성경 번역은 단순한 언어학적 작업이 아니라 깊은 신학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에서 성령께서는 각 민족의 언어로 하느님의 위업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복음이 모든 민족의 언어와 문화 속으로 육화되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교회는 처음부터 번역의 교회였습니다. 예수님은 아람어로 말씀하셨지만, 신약성경은 그리스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초대 교회는 70인역이라는 그리스어 번역 성경을 사용했고, 곧 라틴어, 시리아어, 콥트어 등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가톨릭 교회가 민족 언어 번역에 신중했던 것은 번역을 반대해서가 아니라, 하느님 말씀의 온전한 의미가 왜곡 없이 전달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개인이 임의로 해석할 수 있는 책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 읽어야 하는 책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 교회는 민족 언어 성경을 적극 장려하면서도, 교회의 교도권과 전승에 따른 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은 각자의 언어로 성경을 읽지만, 같은 신앙과 같은 교회 안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보편 교회인 가톨릭의 아름다움입니다.

역사적 사건 연표

연도 사건 의미
7세기 성 베다, 요한복음 고대 영어 번역 시도 초기 민족 언어 번역 시도
9세기 성 키릴로스와 메토디오, 슬라브어 성경 번역 슬라브 전례의 기초
1382-1384년 존 위클리프, 최초 완전 영어 성경 번역 교회의 금지로 탄압받음
1415년 얀 후스,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화형 체코어 성경 보급 시도의 좌절
1517년 마르틴 루터, 95개조 반박문 발표 종교개혁 시작
1522년 루터 독일어 신약성경 출판 민족 언어 성경의 혁명적 확산
1526년 윌리엄 틴들, 영어 신약성경 출판 영국 교회의 반대와 탄압
1534년 루터 완전 독일어 성경 출판 독일어 표준화에 기여
1536년 윌리엄 틴들, 이단 혐의로 화형 영어 성경 번역의 순교자
1545-1563년 트리엔트 공의회 불가타 성경 공식 권위 재확인
1582년 두에-랭스 신약성경 출판 가톨릭 영어 성경의 시작
1609-1610년 두에-랭스 구약성경 출판 가톨릭 완전 영어 성경 완성
1611년 흠정역 성경 출판 영어권 개신교 표준 성경 확립
17-18세기 선교사들의 세계 각지 성경 번역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언어 번역
1784년 이승훈 세례, 한국 천주교회 시작 한국 천주교의 자생적 탄생
1882년 리델 주교, 한글 사복음서 번역 출판 한국 천주교 최초 한글 성경
1900년 정규하 신부, 신약성경 번역 한국인 성직자의 성경 번역
1911년 개신교 완전 한글 성경 출판 한국어 성경 보급 확대
1943년 교황 비오 12세, 회칙 성령의 영감으로 원어 성경 연구 장려
1962-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민족 언어 전례와 성경 번역 장려
1970년 신미국성경 출판 영어권 가톨릭 현대 번역
1971년 한국 천주교 신약성경 출판 바티칸 공의회 후 한국 성경
1977년 공동번역 성경 출판 가톨릭-개신교 협력 번역
2005년 한국 천주교 새번역 신약과 시편 출판 원문 충실 현대 번역
2019년 한국 천주교 새번역 완전 성경 출판 한국 천주교 최초 완전 한글 성경

참고 문헌 및 자료

1. 가톨릭 교리서 (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 바티칸 공식 출판

2.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 전례헌장, 계시헌장

3. 성경의 해석 (The Interpretation of the Bible in the Church) - 교황청 성서위원회, 1993

4. 한국천주교회사 (History of the Catholic Church in Korea) - 한국교회사연구소

5. 가톨릭 대사전 - 한국교회사연구소, 성경 번역 항목

6. 성경 새번역 서론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5, 2019

7. The Cambridge History of the Bible - 성경 번역사 관련 장

8. David Daniell, "The Bible in English" (영어 성경의 역사)

9. Alister McGrath, "In the Beginning: The Story of the King James Bible" (흠정역 성경 이야기)

10. The Douay-Rheims Bible - 가톨릭 영어 성경 역사

11. Martin Luther, "On Translating: An Open Letter" (번역에 대하여)

12. 리델 주교 한글 성경 연구 - 한국교회사 학술지

13. 바티칸 공식 웹사이트 (www.vatican.va) - 성경 관련 공식 문서

1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www.cbck.or.kr) - 성경 출판 정보

15. The Jerusalem Bible - 현대 가톨릭 성경 번역의 모델

16. New Catholic Encyclopedia - Bible Translation 항목

17. 공동번역 성경 서문 - 1977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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