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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경과 번역의 역사/라틴어 불가타, 70인역, 초기 성경 전승

성경 전승 속에서 본 언어와 권력: 하느님 말씀을 둘러싼 2천 년의 역학

by 기쁜소식 알리기 2025.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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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선택, 신성한 지식의 경계를 정하다

성경의 역사는 언어의 역사입니다. 구약성경은 주로 히브리어로 기록되었고, 일부는 아람어로 쓰였습니다. 이 언어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언어였으며, 동시에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백성과 소통하시는 신성한 언어였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6세기 바빌론 유배 이후, 많은 유대인들이 히브리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영향으로 아람어와 그리스어가 확산되면서, 성경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점차 제한되었습니다. 회당에서 성경이 낭독될 때, 히브리어 본문 다음에 아람어 타르굼이라는 번역과 해설이 뒤따랐습니다. 이는 평신도들이 성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동시에, 랍비들이 해석을 통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가 아니라, 누가 신성한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권력의 도구였습니다. 히브리어를 읽을 수 있는 학자와 제사장들은 성경 해석의 권위를 독점했고, 이는 종교적 권력과 직결되었습니다. 성경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곧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다는 것이었고, 따라서 공동체를 이끌 수 있는 정당성을 의미했습니다.

성경 전승 속에서 본 언어와 권력: 하느님 말씀을 둘러싼 2천 년의 역학

70인역의 탄생, 헬라 세계로 열린 성경의 문

기원전 3세기 알렉산드리아에서 70인역 성경이 번역되면서 역사적 전환점이 찾아왔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이 헬라어로 옮겨지면서, 성경은 더 이상 유대인만의 책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헬라어는 당시 지중해 세계의 공용어였기 때문에, 70인역은 광범위한 독자층에게 성경을 개방했습니다. 이는 의도치 않게 유대교의 경계를 넘어 기독교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 언어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사도들과 초대 교회는 70인역을 사용했고, 이를 통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방성은 동시에 긴장을 낳았습니다. 1세기 말 이후 유대교 랍비들은 70인역이 기독교인들에게 이용되는 것을 경계했고, 새로운 그리스어 번역본들을 만들어 70인역을 대체하려 했습니다. 아퀼라, 심마쿠스, 테오도티온의 번역이 그것입니다. 언어의 선택과 번역은 단순히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누가 정통 해석의 권위를 가지느냐는 신학적 정치적 문제였습니다. 기독교는 70인역을 통해 구약성경을 그리스도의 예표로 읽었고, 유대교는 이를 왜곡이라고 보았습니다. 같은 텍스트가 다른 언어로 읽힐 때, 전혀 다른 의미를 생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라틴어 불가타, 서방 교회 천 년의 언어적 통일

4세기 말 히에로니무스가 완성한 라틴어 불가타 성경은 서방 가톨릭 교회의 언어적 통일성을 천 년 이상 보장했습니다. 라틴어는 로마 제국의 언어였고, 제국 멸망 후에도 교회와 학문의 언어로 살아남았습니다. 중세 유럽 전역에서 모든 미사는 라틴어로 거행되었고, 모든 신학은 라틴어로 저술되었습니다. 이는 강력한 통일성을 제공했습니다. 스페인의 사제와 폴란드의 수도자가 만나도 라틴어로 대화하고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교황청의 문서는 라틴어로 작성되어 전 세계 가톨릭 교회에 전달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통일성은 대가를 수반했습니다. 평신도들은 미사 중에 낭독되는 성경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라틴어를 배우지 못했고, 많은 경우 자국어조차 읽지 못했습니다. 성경은 성직자와 학자의 전유물이 되었고, 평신도들은 성직자의 중재를 통해서만 하느님의 말씀에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교회 계급제도를 강화했습니다. 성직자는 라틴어를 아는 자로서, 신비에 접근할 수 있는 특권적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성사를 집전하고 성경을 해석하는 권한은 라틴어 지식과 분리될 수 없었습니다.

중세 교회의 딜레마, 보호인가 통제인가

중세 가톨릭 교회가 민족 언어 성경 번역을 제한한 것은 단순한 권력욕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교회는 진정으로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12세기와 13세기 남프랑스와 이탈리아 북부에서 발생한 카타리파와 왈도파 같은 이단 운동들은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교회의 가르침을 거부했습니다. 왈도파는 민족 언어로 된 성경 일부를 소유하고 평신도 설교를 주장했는데, 교회는 이를 질서 파괴로 보았습니다. 1199년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메츠의 평신도들이 프랑스어 성경을 읽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모든 민족 언어 번역을 금지한 것이 아니라, 교회의 승인 없는 사적인 번역과 해석을 금지한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중세에도 교회가 승인한 민족 언어 성경 일부는 존재했습니다. 문제는 번역 자체가 아니라, 누가 번역하고 누가 해석하느냐였습니다. 교회는 성경이 교회의 전승과 교도권의 맥락 안에서 읽혀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성경만으로는 신앙의 모든 진리를 파악할 수 없으며, 사도들로부터 이어온 교회의 살아있는 전통이 필요하다는 것이 가톨릭의 입장이었습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가톨릭 신학의 핵심 원리입니다.

인쇄술 혁명, 성경 독점의 종말을 알리다

1450년경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 인쇄술 발명은 정보와 지식의 역사에서 혁명이었습니다. 그가 최초로 인쇄한 책이 라틴어 불가타 성경이었다는 것은 상징적입니다. 이제 성경은 더 이상 수도원 필사실에서 몇 년에 걸쳐 한 권씩 만들어지는 희귀한 책이 아니었습니다. 몇 주 만에 수백 권을 찍어낼 수 있었고, 가격도 크게 낮아졌습니다. 인쇄술은 지식의 민주화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고, 문해력이 확산되었습니다. 그러나 초기 인쇄본들은 여전히 라틴어였고, 주로 성직자와 학자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진정한 변화는 1522년 루터의 독일어 신약성경이 인쇄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민족 언어 성경이 대량 인쇄되면서, 평신도들도 직접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교회의 독점적 해석 권위에 도전이었습니다. 독자는 이제 사제의 중재 없이 직접 하느님의 말씀과 대면할 수 있었습니다. 인쇄술과 민족 언어 성경의 결합은 종교개혁의 확산에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종교개혁을 최초의 미디어 혁명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종교개혁, 성경 접근의 민주화와 그 대가

마르틴 루터는 오직 성경만이 신앙의 유일한 권위라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그는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며, 누구나 성경을 읽고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혁명적 평등 사상이었습니다. 더 이상 성직자의 특권이 필요 없었습니다. 농부도, 장인도, 주부도 독일어 성경을 읽고 하느님과 직접 관계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루터는 "대장장이도, 재봉사도, 농부도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언어적 해방이자 영적 해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는 혼란도 가져왔습니다. 교회의 통일된 해석 권위가 사라지자, 각자가 성경을 자기 방식대로 해석했습니다. 개신교는 빠르게 루터파, 칼뱅파, 재세례파, 영국 국교회 등으로 분열했고, 각 교파는 자신들의 성경 해석이 옳다고 주장했습니다. 같은 성경을 읽으면서도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심지어 1524-1525년 독일 농민전쟁에서 반란 농민들은 성경을 근거로 사회적 평등을 주장했고, 루터는 같은 성경을 근거로 그들의 반란을 비난했습니다. 성경의 민주화는 해석의 다원화를 의미했고, 이는 필연적으로 권위의 위기를 초래했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 가톨릭의 응답과 균형의 모색

1545년부터 1563년까지 열린 트리엔트 공의회는 종교개혁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공식 응답이었습니다. 공의회는 불가타 성경의 권위를 재확인했지만, 이는 민족 언어 번역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공의회는 불가타가 "공적 낭독, 논쟁, 설교, 해설에 있어 신뢰할 수 있는 본문"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이는 천 년 동안 축적된 가톨릭 신학 전통을 지키기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동시에 공의회는 민족 언어 번역이 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적절한 주석이 함께 제공되어야 한다고 규정했습니다. 이는 통제가 아니라 책임 있는 해석을 보장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실제로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여러 민족 언어 가톨릭 성경들이 출판되었습니다. 두에-랭스 영어 성경이 대표적입니다. 가톨릭 교회의 입장은 명확했습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서, 교회의 전승과 함께 읽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교회의 책이며, 교회를 떠나 개인적으로만 읽을 때 왜곡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권력 독점이라기보다는, 신앙의 공동체적 본질에 대한 강조였습니다. 신앙은 개인의 사적 경험이 아니라, 2천 년 교회 공동체의 집단적 경험이라는 것이 가톨릭의 이해입니다.

계몽주의와 근대, 성경 비평학의 도전

17세기와 18세기 계몽주의는 모든 권위에 도전했고, 성경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성의 시대에 성경은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신성한 텍스트가 아니라, 비판적 검토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스피노자는 성경을 역사적 문서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리샤르 시몽은 모세오경이 모세가 쓴 것이 아니라 여러 자료를 편집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19세기 독일에서 발전한 역사비평학은 성경의 저자, 연대, 편집 과정을 과학적으로 연구했습니다. 이는 전통적 권위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었습니다. 성경이 인간의 역사적 산물이라면, 그 권위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가톨릭 교회는 처음에 성경 비평학을 경계했습니다. 1893년 교황 레오 13세는 회칙 영원하신 성령 하느님에서 성경의 무오성을 강조했지만, 동시에 진지한 학문 연구도 장려했습니다. 20세기 초 모더니즘 논쟁에서 일부 급진적 성경학자들이 단죄되었지만, 가톨릭 성서학 자체가 금지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1943년 교황 비오 12세는 회칙 성령의 영감으로에서 원어 성경 연구와 문학 형식 비평을 장려했습니다. 이는 가톨릭 교회가 학문적 진지함과 신앙의 진리를 조화시키려는 노력이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평신도에게 돌아간 성경

1962-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톨릭 교회 역사의 분수령이었습니다. 공의회는 성경을 교회의 중심으로 되돌리고, 모든 신자가 성경을 읽도록 적극 장려했습니다. 계시헌장은 "교회는 성경을 지극히 공경하며, 성경은 그리스도의 몸과 마찬가지로 주님의 말씀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전례헌장은 미사에서 성경 낭독을 확대하고 민족 언어 전례를 허용했습니다. 이제 평신도들은 자신의 언어로 복음을 듣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공의회는 또한 가톨릭과 개신교의 성경 연구 협력을 장려했습니다.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공의회 이후 세계 각국에서 원어 성경에 기반한 현대 번역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가톨릭은 더 이상 불가타만을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공의회는 동시에 성경 해석에서 교회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계시헌장은 "성경 해석의 과제는 궁극적으로 교회의 판단에 맡겨져 있다"고 명시했습니다. 이는 성경의 자유로운 접근과 교회의 권위 사이의 균형을 추구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성경을 읽을 수 있지만, 그 해석은 교회의 전승과 교도권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바티칸 공의회의 메시지였습니다.

현대 세계, 디지털 시대의 성경과 새로운 권력 구조

21세기 디지털 혁명은 성경 접근성에 또 다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제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수십 개 언어의 수십 개 번역 성경을 즉시 읽을 수 있습니다. 성경 앱들은 수억 번 다운로드되었고, 온라인 성경 연구 도구들은 과거 학자들만 접근할 수 있었던 원어 사전과 주석을 일반인에게 제공합니다. 이는 전례 없는 민주화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형태의 권력도 등장했습니다. 검색 알고리즘은 어떤 성경 구절이 더 자주 읽히는지를 결정합니다. 유튜브의 성경 해설 영상들은 전통적 교회의 중재 없이 수백만 명에게 도달합니다. 누가 이러한 플랫폼을 통제하는가가 새로운 권력의 문제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디지털 시대에도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성경 읽기를 강조합니다. 2008년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하느님 말씀을 주제로 모였고,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권고 주님의 말씀에서 성경을 전례와 기도, 공동체 안에서 읽을 것을 권고했습니다. 개인이 혼자 스마트폰으로 성경을 읽는 것도 좋지만, 공동체와 함께 읽고 나눌 때 더 풍요로운 이해에 도달한다는 것입니다. 언어와 권력의 문제는 디지털 시대에도 계속되지만, 그 형태가 변화했을 뿐입니다.

가톨릭 관점의 균형, 자유와 권위 사이에서

성경 전승의 역사를 돌아볼 때, 가톨릭 교회는 언제나 긴장 속에서 균형을 추구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성경을 보호하고 올바른 해석을 보장하려는 책임감이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신자가 하느님의 말씀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습니다. 때로는 지나치게 통제적이었고, 때로는 변화에 더디게 반응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의 일관된 신념은 명확합니다. 성경은 교회의 책이며, 교회 안에서 읽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늘에서 떨어진 책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가 성령의 인도 아래 식별하고 정경으로 인정한 책입니다. 따라서 그 해석도 같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왜곡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입니다. 2천 년 교회 역사는 성경을 둘러싼 수많은 이단과 분열을 목격했습니다. 같은 성경을 읽으면서도 전혀 다른, 때로는 위험한 결론에 도달하는 경우들을 보았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교도권은 이러한 혼란 속에서 나침반 역할을 합니다. 이는 권력을 위한 권력이 아니라, 진리를 섬기기 위한 봉사입니다. 교황과 주교들은 성경의 주인이 아니라 종이며, 그들의 역할은 사도들로부터 이어온 신앙을 충실히 전달하는 것입니다.

역사적 사건 연표

연도 사건 언어와 권력의 의미
기원전 6세기 바빌론 유배, 아람어 확산 히브리어 독점 약화, 타르굼 필요성
기원전 3세기 70인역 성경 번역 헬라어 세계로 성경 개방
1세기 신약성경 그리스어로 저술 복음의 보편성, 언어 장벽 극복
2-4세기 라틴어, 시리아어, 콥트어 번역 초대 교회의 언어적 다양성
405년 히에로니무스, 불가타 성경 완성 서방 교회 천 년 언어 통일
5-15세기 라틴어 전례와 신학 독점 성직자 중심 성경 접근 구조
1199년 교황 인노첸시오 3세, 사적 민족어 성경 제한 이단 방지와 해석 통제
1382년 존 위클리프, 영어 성경 번역 교회 권위 도전, 평신도 접근 시도
1450년 구텐베르크 인쇄술 발명 지식 민주화의 기술적 토대
1517년 마르틴 루터, 종교개혁 시작 오직 성경 원칙, 해석 권위 분산
1522년 루터 독일어 신약성경 출판 민족 언어 성경의 대중화
1524-1525년 독일 농민전쟁 성경 해석의 사회정치적 활용
1545-1563년 트리엔트 공의회 불가타 권위 재확인, 통제된 번역 허용
1582년 두에-랭스 성경 출판 가톨릭의 민족어 번역 대응
1611년 흠정역 성경 출판 영어권 개신교 언어 권력 확립
17-18세기 계몽주의와 성경 비평학 이성에 의한 종교 권위 도전
1893년 교황 레오 13세, 회칙 영원하신 성령 하느님 성경 무오성과 학문 연구의 균형
1943년 교황 비오 12세, 회칙 성령의 영감으로 원어 연구와 문학 비평 장려
1962-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민족어 전례, 평신도 성경 접근 확대
1965년 계시헌장 발표 성경과 전승의 균형 강조
1970년대 세계 각국 현대어 가톨릭 성경 출판 원어 기반 번역, 전통 해석 유지
2008년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하느님 말씀 주제 디지털 시대 성경 읽기 방향
2010년 교황 베네딕토 16세, 권고 주님의 말씀 공동체적 성경 읽기 강조
21세기 디지털 성경 앱 확산 전례 없는 접근성, 새로운 권력 구조

참고 문헌 및 자료

1.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 계시헌장, 전례헌장

2. 가톨릭 교리서 (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 성경과 전승 관련 항목

3. 교황 레오 13세, 회칙 영원하신 성령 하느님 (Providentissimus Deus, 1893)

4. 교황 비오 12세, 회칙 성령의 영감으로 (Divino Afflante Spiritu, 1943)

5. 교황 베네딕토 16세, 권고 주님의 말씀 (Verbum Domini, 2010)

6. 교황청 성서위원회, 성경의 해석 (The Interpretation of the Bible in the Church, 1993)

7. 트리엔트 공의회 문헌 - 성경과 전승에 관한 교령

8. 가톨릭 대사전 - 한국교회사연구소, 성경 번역 및 해석 항목

9. Elizabeth L. Eisenstein, "The Printing Press as an Agent of Change" (혁명으로서의 인쇄술)

10. Cambridge History of the Bible - 중세와 근대 편

11. Jaroslav Pelikan, "The Emergence of the Catholic Tradition" (가톨릭 전통의 형성)

12. Alister McGrath, "Christianity's Dangerous Idea" (기독교의 위험한 사상 - 종교개혁과 성경)

13. Henri de Lubac, "Medieval Exegesis" (중세 성경 해석학)

14. 한스 큉, "가톨릭 교회란 무엇인가" - 성경과 전승에 관한 논의

15. Raymond E. Brown, "The Critical Meaning of the Bible" (성경의 비평적 의미)

16. Benedict XVI, "Jesus of Nazareth" 서문 - 역사비평학과 신앙의 관계

17. 바티칸 공식 웹사이트 (www.vatican.va) - 성경 관련 교황 문헌

18. David Daniell, "The Bible in English" (영어 성경의 역사와 권력)

19. New Catholic Encyclopedia - Scripture in the Church 항목

20. 이형우, "가톨릭 성경 해석의 역사" - 한국 가톨릭 성서학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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