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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경과 번역의 역사/라틴어 불가타, 70인역, 초기 성경 전승

불가타 성경과 현대 가톨릭 전례에서의 역할과 변화

by 기쁜소식 알리기 2025.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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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히에로니모와 불가타 번역의 시작

4세기 후반 로마 제국이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이후 서방 교회는 통일된 라틴어 성경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럽 각지에서 사용되던 고라틴어 성경들은 번역의 질이 일정하지 않았고 지역마다 다른 표현을 사용하여 신학적 혼란을 초래했습니다. 382년 교황 다마소 1세는 달마티아 출신의 성서학자 히에로니모에게 라틴어 성경의 표준화 작업을 의뢰했으며, 히에로니모는 먼저 복음서의 개정 작업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는 로마에서 시작한 작업을 팔레스티나의 베들레헴으로 옮겨 계속했고, 히브리어 원문과 70인역을 모두 참고하면서 구약성경 전체를 새롭게 번역하는 대작업에 착수했습니다. 390년부터 405년까지 약 15년에 걸친 헌신적 노력 끝에 히에로니모는 구약과 신약을 아우르는 완전한 라틴어 성경을 완성했으며, 이것이 훗날 불가타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불가타라는 명칭은 평민의 언어 또는 통용되는 판이라는 뜻의 라틴어 불가투스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이 번역이 일반 대중을 위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불가타 성경과 현대 가톨릭 전례에서의 역할과 변화

중세 유럽 문화와 불가타의 지배적 위상

5세기부터 15세기까지 천 년 이상 불가타는 서방 그리스도교 세계의 유일한 성경으로 자리 잡았으며, 중세 유럽의 정신세계를 형성하는 근본 토대가 되었습니다. 수도원의 필사실에서는 수도사들이 평생을 바쳐 불가타를 필사했고,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화려한 장식 사본들은 중세 예술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8세기 카롤링거 르네상스 시기 알퀸은 샤를마뉴 대제의 명으로 불가타 본문을 표준화하는 작업을 수행했으며, 이를 통해 제국 전역에서 통일된 성경 본문이 사용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세 신학의 거장들인 안셀모, 토마스 아퀴나스, 보나벤투라는 모두 불가타를 기초로 신학 대전을 저술했으며, 스콜라 철학의 정교한 논리 체계는 불가타의 라틴어 표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대학과 신학교에서 행해지는 모든 성경 강의와 토론은 불가타 본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교회의 공식 문서와 교리 선언들도 불가타의 표현을 인용했습니다. 전례에서 낭독되는 성경 구절, 성무일도의 시편, 미사 전례문에 인용되는 성경 구절들이 모두 불가타의 문체와 어휘를 따랐으며, 이는 서방 가톨릭 전례의 독특한 영성적 분위기를 형성했습니다.

종교개혁의 도전과 트리엔트 공의회의 대응

16세기 종교개혁은 불가타의 권위에 근본적인 도전을 제기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1522년 신약성경을, 1534년 구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면서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문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고, 불가타의 번역이 일부 구절에서 원문과 차이가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개신교 개혁자들은 라틴어 성경이 평신도들의 성경 접근을 제한한다고 주장하면서 각국 언어로의 번역을 적극 추진했으며, 이는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 권위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톨릭 교회는 1545년부터 1563년까지 트리엔트 공의회를 개최하여 교회의 교리와 실천을 재정립했습니다. 1546년 4월 8일 공의회는 불가타를 교회의 공식 라틴어 성경으로 선포하는 역사적 결정을 내렸으며, 불가타가 신앙과 도덕에 관한 문제에서 권위 있는 본문임을 천명했습니다. 동시에 공의회는 제2경전의 정경성을 명확히 확인했으며, 이는 개신교가 이 책들을 외경으로 분류한 것에 대한 가톨릭의 공식 입장이었습니다. 공의회는 또한 불가타 본문의 개정과 표준화를 지시했고, 이에 따라 교황 식스토 5세와 클레멘스 8세 시대에 걸쳐 공식 개정판이 출판되었습니다.

근대 성서학의 발전과 불가타의 재검토

19세기와 20세기 들어 고대 언어 연구와 고고학의 발전은 성경 원문에 대한 이해를 크게 심화시켰습니다. 고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사본들의 발견과 연구를 통해 학자들은 불가타의 번역이 일부 구절에서 원문의 의미를 완전히 담아내지 못했거나 당시의 신학적 해석을 반영한 경우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예를 들어 루카 복음 1장 28절에서 천사가 마리아에게 건넨 인사를 불가타는 아베 그라티아 플레나로 번역했는데, 이는 은총으로 가득 차다는 의미로 마리아의 무염시태 교리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구절이 되었지만, 그리스어 원문 케카리토메네는 좀 더 중립적으로 은총을 받은 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발견들은 가톨릭 교회 내에서도 원문 언어에 기초한 성경 연구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만들었습니다. 1907년 교황 비오 10세는 교황청 성서위원회를 설립하여 과학적 성경 연구를 장려했고, 1943년 교황 비오 12세는 회칙 디비노 아플란테 스피리투를 통해 가톨릭 성서학자들이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문을 직접 연구할 것을 적극 권장했습니다. 이는 500년 가까이 유지되어온 불가타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원문 중심의 성경 연구로 전환하는 역사적 전환점이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전례 혁명

1962년부터 1965년까지 개최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톨릭 교회의 모든 측면에서 근본적인 쇄신을 가져왔으며, 전례와 성경 사용에 있어서도 획기적인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공의회 헌장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은 신자들의 능동적이고 의식적인 전례 참여를 강조하면서, 각 나라의 언어로 미사를 집전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이는 천 년 이상 라틴어로만 집전되던 서방 교회 전례의 근본적 변화였으며, 불가타의 독점적 지위에도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공의회는 또한 계시 헌장을 통해 성경이 교회 생활의 중심이 되어야 함을 선언했고, 신자들이 자국어로 성경을 읽고 묵상할 것을 적극 권장했습니다. 이에 따라 전 세계 가톨릭 교회는 각국 언어로 새로운 성경 번역을 추진했으며, 이 번역들은 불가타가 아닌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문을 직접 번역하는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도 1971년 공동번역 성서 작업에 참여했고, 2005년에는 새번역 성경을 출판하여 현대 한국어로 원문의 의미를 전달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전례력도 대폭 개편되어 주일 미사의 독서가 3년 주기로 구성되었고, 평일 미사도 2년 주기로 성경을 더 풍부하게 낭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대 가톨릭 전례에서 불가타의 위상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불가타는 더 이상 전례에서 직접 사용되는 성경이 아니지만, 여전히 가톨릭 교회의 신학과 전례 전통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공식 문서인 교리서, 회칙, 교황 문헌들은 여전히 라틴어로 먼저 작성되며, 성경을 인용할 때 불가타의 표현을 기본으로 사용합니다. 로마 미사 경본의 라틴어 원본도 불가타의 전통을 따르고 있으며, 각국 언어로 번역할 때 참고하는 표준이 됩니다. 197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불가타의 새로운 개정판인 신불가타를 공포했는데, 이는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의 불가타를 현대 성서학의 성과를 반영하여 수정한 것입니다. 신불가타는 원문 연구의 결과를 반영하면서도 전통적인 불가타의 표현과 신학적 뉘앙스를 최대한 보존하려고 노력했으며, 교회 전례서의 라틴어 원본에서 계속 사용되고 있습니다. 바티칸에서 거행되는 교황 미사와 중요한 전례에서는 여전히 라틴어가 사용되며, 이때 낭독되는 성경 구절은 신불가타를 따릅니다. 또한 그레고리오 성가를 비롯한 전통 전례 음악들은 불가타의 라틴어 가사로 작곡되어 있어, 이들을 온전히 이해하고 감상하기 위해서는 불가타에 대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신학 교육과 영성 생활에서의 지속적 영향

현대 가톨릭 신학교와 대학에서 불가타는 교회사와 전통 신학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 자료로 여전히 연구되고 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을 비롯한 중세와 근세의 위대한 신학 저작들을 읽기 위해서는 그들이 사용한 불가타 본문을 이해해야 하며, 교회 교부들의 주석과 설교도 불가타를 기초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교부학 연구에서 불가타는 필수적입니다. 전통 라틴 전례에 애착을 가진 신자들과 공동체에서는 여전히 불가타를 사용하며, 2007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자의교서 숨모룸 폰티피쿰 이후 트리엔트 미사의 사용이 확대되면서 불가타에 대한 관심도 다시 높아졌습니다. 수도원의 성무일도에서도 라틴어 시편이 계속 사용되고 있으며, 특히 베네딕토회와 시토회 같은 전통 수도회들은 불가타 전통을 보존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개인 신심생활에서도 많은 신자들이 불가타의 간결하고 장엄한 라틴어 표현에서 영적 위안을 찾으며, 주님의 기도를 비롯한 전통 기도문들의 라틴어 원문을 암송하는 전통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불가타는 현대 가톨릭 교회에서 일상적 전례 언어의 지위는 상실했지만, 교회의 신학적 전통과 영성적 유산을 연결하는 살아있는 다리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불가타 관련 주요 역사적 사건 연표

시기 주요 사건 역사적 의미
313년 밀라노 칙령 로마 제국의 그리스도교 공인
382년 교황 다마소 1세의 성경 개정 지시 히에로니모에게 라틴어 성경 표준화 의뢰
382-384년 복음서 개정 작업 신약성경 라틴어 번역 개선
386년 히에로니모 베들레헴 정착 구약 번역을 위한 본격 준비
390-405년 구약성경 히브리어 원문 번역 불가타 구약 완성
5-7세기 불가타의 점진적 확산 서방 교회 전역으로 보급
800년경 알퀸의 불가타 표준화 카롤링거 제국의 통일 성경 본문
1230-1280년 파리 대학의 표준 불가타 중세 신학의 기초 확립
1455년 구텐베르크 42행 성경 인쇄 최초의 인쇄 불가타
1517년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종교개혁 시작
1522년 루터의 독일어 신약성경 각국 언어 성경 번역 확산
1545-1563년 트리엔트 공의회 불가타의 권위 공식 선포
1590년 식스토-클레멘틴 불가타 출판 트리엔트 공의회 결정 이행
1907년 교황청 성서위원회 설립 가톨릭 성서학 연구 촉진
1943년 회칙 디비노 아플란테 스피리투 원문 언어 연구 공식 장려
1962-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개혁과 자국어 미사 허용
1969년 새 로마 미사 경본 공포 현대 전례의 시작
1979년 신불가타 공포 현대 성서학 반영한 개정판
2007년 자의교서 숨모룸 폰티피쿰 전통 라틴 미사 확대 허용

참고 문헌 및 사이트

  • Bogaert, Pierre-Maurice. "The Latin Bible." Cambridge History of the Bibl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2.
  • Kelly, J.N.D. "Jerome: His Life, Writings, and Controversies." Hendrickson Publishers, 1998.
  • 트리엔트 공의회. "성경과 전승에 관한 교령" (1546)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1963), "계시 헌장"(1965)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신불가타 공포 자의교서"(1979)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성서위원회: cbck.or.kr
  • 바티칸 공식 웹사이트: vatican.va
  • 신불가타 온라인 텍스트: vatican.va/archive/bible/nova_vulgata
  • 교황청 성서위원회: pcb.va
  • 가톨릭 백과사전: newadvent.org/cat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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