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번역 전통의 세 가지 흐름과 그 기원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성경 번역은 단순한 언어적 작업을 넘어서 신학적 정체성과 교회 전통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였습니다. 기원전 3세기에 시작된 70인역은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그리스어로 옮긴 최초의 주요 번역으로, 헬레니즘 시대 디아스포라 유대인 공동체의 신앙생활을 위해 탄생했습니다. 이 번역은 신약 시대 초대 교회에 그대로 계승되어 사도들과 복음서 저자들이 구약을 인용할 때 주로 사용한 텍스트가 되었으며, 동방 정교회는 오늘날까지 70인역을 구약성경의 표준 본문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4세기 말 성 히에로니모가 완성한 불가타는 70인역과 히브리어 원문을 모두 참고하여 만든 라틴어 번역으로, 천 년 이상 서방 가톨릭 교회의 유일한 성경으로 군림했으며 중세 유럽의 신학과 문화를 형성하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 시기 마르틴 루터를 비롯한 개신교 개혁자들은 70인역과 불가타의 전통에서 벗어나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과 그리스어 원문으로 직접 돌아갈 것을 주장했고, 이는 새로운 성경 번역 원칙과 정경 이해를 낳았습니다. 이 세 가지 번역 전통은 각기 다른 역사적 배경과 신학적 전제를 가지고 있으며, 오늘날까지 가톨릭과 정교회 그리고 개신교의 성경 이해에 근본적인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정경 목록의 차이와 제2경전 논쟁
가톨릭과 개신교 성경의 가장 명백한 차이는 구약성경의 권수에 있습니다. 가톨릭 성경은 46권의 구약을 포함하는 반면, 개신교 성경은 39권만을 구약 정경으로 인정합니다. 이 7권의 차이는 토빗기, 유딧기, 마카베오기 상하권,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와 다니엘서 및 에스테르기의 추가 부분들로 구성되며, 가톨릭에서는 이를 제2경전이라 부르고 개신교에서는 외경이라 칭합니다. 이러한 차이의 역사적 뿌리는 1세기 유대교 내부의 정경 논쟁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팔레스티나의 랍비 유대교는 기원후 90년경 얌니아 회의에서 히브리어로 쓰인 책들만을 정경으로 인정하는 경향을 보였으나, 디아스포라 유대 공동체는 그리스어로 쓰이거나 번역된 책들도 포함하는 더 넓은 정경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는 70인역을 사용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 추가 서적들을 성경의 일부로 받아들였고, 4세기와 5세기 북아프리카 공의회들은 이 책들의 영감성을 확인했습니다. 히에로니모는 처음에는 히브리어 원본이 없는 책들의 정경성에 의문을 제기했으나, 결국 교회의 전통을 따라 이 책들도 불가타에 포함시켰고 교회는 계속해서 이들을 전례와 신학에서 사용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솔라 스크립투라 원칙에 따라 성경의 권위를 재검토하면서, 유대교의 히브리어 정경 목록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고, 제2경전을 정경에서 제외하거나 외경으로 분류했습니다.
번역 원본과 본문 비평의 차이
70인역, 불가타, 개신교 번역의 또 다른 중요한 차이는 번역의 기초가 되는 원본 텍스트에 있습니다. 70인역은 기원전 3세기부터 1세기에 걸쳐 번역된 것으로, 당시 존재하던 히브리어 본문을 그리스어로 옮긴 것입니다. 20세기 중반 사해 문서의 발견은 70인역이 번역한 히브리어 본문이 후대의 마소라 본문과 상당한 차이가 있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예레미야서의 경우 70인역은 마소라 본문보다 약 8분의 1이 짧으며, 장과 절의 순서도 다른데, 사해에서 발견된 히브리어 예레미야 사본이 70인역과 유사한 형태를 보여 70인역의 히브리어 저본이 실제로 존재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히에로니모는 불가타를 번역하면서 당시 팔레스티나에서 사용되던 히브리어 본문을 참고했는데, 이는 후대 마소라 학자들이 7세기부터 10세기에 걸쳐 정리한 마소라 본문의 전신이었습니다. 그러나 히에로니모는 동시에 70인역과 기존의 고라틴어 번역들도 참고했기 때문에, 불가타는 여러 전승을 종합한 절충적 성격을 띠게 되었습니다. 16세기 개신교 개혁자들은 원전으로 돌아가자는 아드 폰테스 원칙 아래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과 그리스어 신약 본문을 직접 번역의 기초로 삼았고, 이는 현대 대부분의 성경 번역이 따르는 원칙이 되었습니다. 현대 성서학은 마소라 본문, 70인역, 사해 문서, 사마리아 오경 등 모든 고대 증언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절충적 본문 비평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신학적 해석과 번역 철학의 차이
번역은 중립적인 작업이 아니라 번역자의 신학적 이해와 해석이 반영되는 과정입니다. 70인역 번역자들은 히브리어 원문을 그리스어로 옮기면서 헬레니즘 철학의 개념들을 사용했고, 때로는 유대교 신학의 발전을 반영하여 의역하거나 해석을 추가했습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1장 2절에서 히브리어 루아흐 엘로힘은 하느님의 영 또는 하느님의 바람으로 번역될 수 있는데, 70인역은 프네우마 테우로 번역하여 성령에 대한 신학적 이해를 암시했습니다. 이사야 7장 14절의 알마를 파르테노스로 번역한 것도 단순한 젊은 여인에서 동정녀로의 신학적 해석을 담고 있습니다. 히에로니모는 더 직역적인 번역을 지향했지만, 교회의 신학적 전통도 고려해야 했기 때문에 균형 잡힌 접근을 시도했습니다. 그는 시편의 경우 70인역의 전통적 표현을 많이 유지했는데, 이는 전례에서 이미 익숙한 표현을 바꾸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개신교 번역자들은 가능한 한 원문에 충실하고 해석을 최소화하는 직역 원칙을 강조했으나, 실제로는 개신교 신학의 핵심 교리를 뒷받침하는 번역 선택을 하기도 했습니다. 로마서 3장 28절에서 루터가 믿음으로만이라는 알라인을 추가한 것이 대표적 예입니다. 현대 가톨릭 번역은 제2차 바티칔 공의회 이후 원문 충실성을 강조하면서도 교회의 해석 전통을 존중하는 방향을 취하고 있습니다.
전례 사용과 해석 권위의 차이
성경 번역의 차이는 전례적 사용과 해석 권위에 대한 근본적으로 다른 이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성경이 교회 안에서 교회에 의해 형성되었고, 따라서 교회의 전승과 교도권이 성경 해석의 확실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성경과 전승이 동등한 권위를 가지며, 교부들의 합치된 견해를 따라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70인역과 불가타는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교회의 살아있는 전승을 담은 신학적 증언으로 존중받습니다. 불가타가 일부 구절에서 히브리어 원문과 다르더라도, 그것이 교회의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의를 충분히 전달한다면 권위 있는 본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2경전의 경우 이 책들이 초대 교회부터 계속 사용되어 왔고 연옥 교리 같은 중요한 가르침의 성경적 근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정경성이 인정됩니다. 개신교는 솔라 스크립투라 원칙에 따라 성경만이 신앙과 실천의 유일한 권위라고 주장하며, 교회 전통이나 교도권보다 성경 본문 자체가 우선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번역도 원문에 최대한 충실해야 하며, 교회 전통에 의해 형성된 해석보다는 원문 언어와 역사적 맥락에 기초한 문법적 역사적 해석을 중시합니다. 각 신자가 성령의 인도 아래 성경을 읽고 해석할 수 있다는 만인 사제설도 개신교의 성경 번역과 사용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현대 에큐메니컬 성경 번역의 시도와 과제
20세기 후반부터 가톨릭과 개신교 학자들 사이에 성경 본문과 번역에 관한 학문적 협력이 증가하면서, 공동 번역 프로젝트들이 시도되었습니다. 1968년 출판된 예루살렘 성경은 가톨릭 주도의 번역이었지만 개신교 학자들의 자문을 받았고, 1971년 한국에서 나온 공동번역 성서는 가톨릭과 개신교가 처음으로 함께 만든 한국어 성경이었습니다. 이러한 공동 번역은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현대 언어로 이해하기 쉽게 번역한다는 원칙에서는 일치를 이루었으나, 제2경전의 포함 여부와 일부 신학적으로 민감한 구절의 번역에서는 여전히 차이를 보였습니다. 공동번역 성서는 결국 가톨릭 측에서는 제2경전을 포함하고 개신교 측에서는 제외하는 두 가지 판본으로 출판되었습니다. 현대 가톨릭 교회는 네오 불가타를 공포하면서도 각국 언어 번역에서는 원문 기반 번역을 장려하고 있으며, 개신교도 다양한 번역본들을 통해 직역과 의역의 스펙트럼에서 각기 다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성경 본문 비평학의 발전으로 가톨릭과 개신교 학자들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문 연구에서 상당한 공통 기반을 공유하게 되었지만, 정경의 범위와 교회 전통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신학적 차이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상호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대화를 계속하는 것이 현대 에큐메니컬 운동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성경 번역 비교표
| 구분 | 70인역 | 불가타 | 개신교 번역 |
|---|---|---|---|
| 번역 시기 | 기원전 280-150년경 | 382-405년 | 1522년 이후 |
| 번역 언어 | 그리스어 | 라틴어 | 각국 언어 |
| 번역 기초 | 히브리어 원문 | 히브리어 원문과 70인역 | 마소라 본문과 그리스어 원문 |
| 구약 권수 | 46권 포함 | 46권 포함 | 39권만 정경 인정 |
| 제2경전 지위 | 정경으로 포함 | 정경으로 포함 | 외경으로 분류 |
| 번역 철학 | 의역과 신학적 해석 반영 | 직역과 전통의 절충 | 원문 충실성 강조 |
| 주요 사용 교회 | 동방 정교회 | 가톨릭 교회 | 개신교 교회 |
| 전례 언어 | 그리스어 전례 | 라틴어 전례 | 자국어 전례 |
| 해석 권위 | 교회 전승과 함께 | 교도권과 함께 | 성경 자체의 권위 |
| 대표 번역본 | 라흘프스 판 | 식스토-클레멘틴판, 신불가타 | 킹제임스, 개역개정, NIV 등 |
성경 번역 역사 주요 사건 연표
| 시기 | 주요 사건 | 역사적 의미 |
|---|---|---|
| 기원전 280-250년경 | 70인역 모세오경 번역 | 최초의 성경 번역 시작 |
| 기원전 150년경 | 70인역 구약 전체 완성 | 제2경전 포함된 그리스어 성경 |
| 기원후 50-100년 | 신약성경 저술 | 70인역 기반 구약 인용 |
| 90년경 | 얌니아 회의 | 랍비 유대교 정경 논의 |
| 2세기 | 고라틴어 성경 번역들 | 서방 교회의 라틴어 번역 시작 |
| 382-405년 | 히에로니모의 불가타 번역 | 표준 라틴어 성경 완성 |
| 393년 | 히포 공의회 | 제2경전 포함 정경 목록 확정 |
| 397년 | 카르타고 공의회 | 성경 정경 공식 승인 |
| 7-10세기 | 마소라 본문 정립 | 히브리어 성경 표준화 |
| 1455년 | 구텐베르크 성경 인쇄 | 불가타 대량 보급 |
| 1516년 | 에라스무스 그리스어 신약 | 인쇄된 그리스어 신약 원문 |
| 1522년 | 루터 독일어 신약 | 종교개혁 성경 번역 시작 |
| 1534년 | 루터 독일어 성경 완역 | 제2경전 외경으로 분류 |
| 1546년 | 트리엔트 공의회 | 불가타와 제2경전 권위 선포 |
| 1611년 | 킹제임스 성경 | 영어권 개신교 표준 성경 |
| 1943년 | 회칙 디비노 아플란테 스피리투 | 가톨릭 원문 언어 연구 장려 |
| 1947-1956년 | 사해 문서 발견 | 고대 히브리어 본문 발견 |
| 1962-1965년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 자국어 성경 번역 장려 |
| 1971년 | 한국 공동번역 성서 | 에큐메니컬 번역 시도 |
| 1979년 | 신불가타 공포 | 현대 성서학 반영 개정판 |
참고 문헌 및 사이트
- Metzger, Bruce M. "The Canon of the New Testament: Its Origin, Development, and Significance." Clarendon Press, 1987.
- McDonald, Lee Martin. "The Biblical Canon: Its Origin, Transmission, and Authority." Hendrickson Publishers, 2007.
- Barton, John. "Holy Writings, Sacred Text: The Canon in Early Christianit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7.
- 트리엔트 공의회. "성경과 전승에 관한 교령" (1546)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계시 헌장" (1965)
- 교황청 성서위원회. "교회 안의 성경 해석" (1993)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성서위원회: cbck.or.kr
- 대한성서공회: bskorea.or.kr
- 바티칸 공식 웹사이트: vatican.va
- 가톨릭 백과사전: newadvent.org/cathen
-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sbl-sit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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