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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인과 교부

공중부양의 성인, 성 요셉 데 쿠페르티노 — 수많은 시련을 이겨낸 기적의 삶

by 기쁜소식 알리기 2026.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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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 9월 18일|시성: 1767년, 교황 클레멘스 13세|가톨릭 성인17세기 이탈리아

한 가난한 아이의 탄생, 그리고 숨겨진 부르심

1603년 6월 17일, 이탈리아 남부 풀리아 지방의 작은 마을 쿠페르티노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빚을 갚지 못해 집까지 잃은 상태였고, 어머니는 창고 한 켠에서 아이를 낳아야 했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요셉 데사(Giuseppe Maria Desa), 훗날 온 세상이 알게 될 '공중부양의 성인'이었습니다.

어린 요셉은 체질적으로도 허약했고, 지능도 또래보다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학교에서도 공부를 따라가지 못해 놀림을 받았고, 사람들은 그를 '멍청이(bocca aperta, 입이 벌어진 자)'라고 불렀습니다. 정신이 딴 데 팔려 멍하니 있는 습관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오늘날 많은 신학자와 연구자들은 이 증상이 일종의 종교적 엑스터시, 즉 하느님께 완전히 몰입되는 관상 상태의 초기 신호였다고 봅니다.

공중부양의 성인, 성 요셉 데 쿠페르티노 — 수많은 시련을 이겨낸 기적의 삶

거절과 실패,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은 길

요셉이 성인이 되어 처음 문을 두드린 곳은 프란치스코 수도회 계열의 작은 형제회 수도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가혹했습니다. 일을 너무 자주 망치고 집중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불과 8개월 만에 수도원에서 쫓겨났습니다. 다음에 찾아간 카푸친 수도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부엌에서 그릇을 깨트리고, 심부름에서 실수를 연발한다는 이유였지요.

두 번의 연속된 거절은 보통 사람이라면 좌절감에 주저앉을 만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로 찾아간 곳은 쿠페르티노 근처의 그로텔라 성모 성지를 관리하던 작은 형제회 소속 수도원이었는데, 여기서 그는 마구간을 돌보는 마부 역할로 허드렛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다시 시작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선택하시어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1코린 1,27) — 요셉의 삶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성경 말씀입니다.

기적의 시작 — 하늘을 날다

1628년, 요셉은 마침내 사제 서품을 받습니다. 서품 직전까지도 그는 라틴어 시험을 거의 통과하지 못할 뻔했지만, 놀랍게도 시험관이 그에게 유독 그가 외운 단 하나의 구절을 물어봤고, 결국 서품이 이루어졌습니다. 동료들은 이를 두고 하느님의 섭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사제가 된 이후, 요셉에게는 전례 없는 신비로운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미사를 드리거나 기도 중에, 혹은 성모 마리아나 예수님의 이름을 듣기만 해도 그는 자신도 모르게 공중으로 떠올랐습니다. 이른바 '공중부양(levitation)'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이런 현상은 무려 70차례 이상, 17년에 걸쳐 수많은 목격자 앞에서 일어났습니다.

가장 유명한 일화 가운데 하나는 1645년경 스페인의 나폴리 부왕 후안 알폰소 엔리케스 데 카브레라가 요셉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부왕의 부인이 요셉을 "거룩한 분"이라고 부르자마자 요셉은 그 자리에서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고, 그 광경을 목격한 귀족들과 수행원들이 경악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교황 우르바노 8세(Urban VIII)조차 요셉을 직접 만난 자리에서 그의 공중부양을 목격했다고 전해집니다.

17세기 유럽의 시대적 맥락 — 신앙과 이성의 충돌

요셉이 살았던 17세기는 가톨릭 교회에게도, 유럽 사회 전체에도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1517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유럽은 구교(가톨릭)와 신교(프로테스탄트) 사이의 극심한 갈등 속에 있었습니다. 1618년부터 1648년까지 이어진 30년 전쟁은 종교적 명분을 띤 대규모 전쟁으로, 유럽 인구의 상당수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동시에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가 지동설을 주장하다 종교재판에 회부된 것도 바로 이 시기입니다(1633년). 이성과 과학이 신앙의 권위에 도전하던 시대, 그러면서도 민중들은 여전히 기적과 성인의 중재에 깊이 의지하던 시대였습니다. 요셉의 공중부양은 그런 시대적 혼란 속에서 가톨릭 신앙의 초월성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사건으로 유럽 전역에 퍼져 나갔습니다.

이탈리아 남부 쿠페르티노가 속한 나폴리 왕국은 당시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봉건적 지배와 빈곤이 뒤엉킨 사회 구조 속에서 요셉과 같이 가난하고 학력도 낮은 사람이 기적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당대 민중에게 엄청난 희망과 위안의 메시지였습니다.

종교재판소의 심문 — 시련은 멈추지 않았다

놀랍게도 요셉의 기적은 당장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그의 공중부양이 소문으로 퍼지자 종교재판소(Inquisizione)는 그를 소환해 심문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가톨릭 교회는 가짜 기적, 악마의 속임수, 혹은 광신적인 이단 행위에 매우 민감했기 때문입니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 이후 교회는 기적의 진위를 철저히 검증하는 체계를 강화하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수년간 종교재판소의 감시 아래 놓였고, 거처를 자주 옮겨야 했습니다. 나폴리, 아시시, 페루자, 오시모 등 여러 수도원을 전전하며 미사 거행조차 제한받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신도들과의 접촉도 금지되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억울하고 부당한 대우였지만, 요셉은 단 한 번도 교회의 권위에 불복하거나 불평을 입 밖에 낸 적이 없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부분이 요셉의 성덕(聖德)이 빛나는 지점입니다. 기적을 행하면서도 겸손했고, 교회의 판단에 완전히 순종했습니다. 이는 가톨릭 영성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 순명(順命, obedience)의 모범으로 평가됩니다.

마지막 여정 — 오시모에서의 선종

오랜 감시와 이동 끝에 요셉은 이탈리아 중부 마르케 지방의 오시모(Osimo)에 있는 작은 형제회 수도원에 정착하게 됩니다. 이곳에서도 그의 엑스터시와 공중부양은 계속되었지만, 그는 점차 건강이 나빠졌습니다. 1663년 8월, 요셉은 심한 발열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죽음이 가까워지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제 나귀(육신)가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곧 짐을 내려놓을 것입니다."

1663년 9월 18일, 요셉 데사는 오시모의 수도원에서 60세를 일기로 하느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임종 자리에 있던 형제들은 그의 얼굴에서 깊은 평화를 보았다고 기록했습니다. 사망 직후부터 오시모에는 그를 찾는 순례자들의 행렬이 이어졌고, 치유 기적의 보고가 잇따랐습니다.

시복·시성 — 교회의 공식 인정

요셉의 시복(Beatification)은 사망 후 60년도 더 지난 1753년, 교황 베네딕토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베네딕토 14세는 가톨릭 역사상 기적 심사 절차를 가장 체계적으로 정비한 교황으로 유명하며, 그런 그가 요셉의 기적들을 인정했다는 사실은 큰 의미를 가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1767년, 교황 클레멘스 13세(Clemens XIII)에 의해 요셉 데사는 성인으로 공식 선포되었습니다. 축일은 그가 선종한 날인 9월 18일로 정해졌습니다. 오늘날 요셉은 조종사, 우주비행사,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 그리고 학업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의 주보 성인으로 공경받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

성 요셉 데 쿠페르티노의 삶은 세상의 기준으로는 철저한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가난한 집안, 느린 학습 능력, 두 번의 수도원 입회 거절, 종교재판소의 감시. 그러나 그는 끝내 하느님의 손에 붙들려 역사에 남는 성인이 되었습니다.

세계사적으로 본다면, 그의 시대는 종교개혁의 후폭풍과 30년 전쟁의 참화, 그리고 과학혁명의 도전이 동시에 밀려오던 격변기였습니다. 그 한복판에서 아무것도 아닌 듯 보이는 한 수도자의 삶이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고 있다는 사실, 그것 자체가 어쩌면 가장 큰 기적일지도 모릅니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지금 내가 겪는 시련과 실패가, 하느님의 더 큰 계획을 위한 준비가 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성 요셉 데 쿠페르티노 생애 및 시대 연표

연도요셉의 삶세계사·교회사 맥락
1603년 6월 17일, 이탈리아 쿠페르티노 출생. 창고에서 탄생. 나폴리 왕국, 스페인 합스부르크 지배 하. 가톨릭 반종교개혁 진행 중.
1613~20년 어린 시절 학업 부진, '입 벌어진 자'라는 별명 얻음. 갈릴레오, 망원경으로 천문 관측 발표(1610). 유럽 각국 종교 갈등 고조.
1620년 작은 형제회 수도원 입회 시도 → 8개월 만에 퇴출. 30년 전쟁(1618~1648) 진행 중. 유럽 전역 혼란.
1621년 카푸친 수도회 입회 시도 → 거절됨. 그로텔라 수도원 마부로 재입회. 교황 그레고리오 15세, 시성성(Congregatio pro Causis Sanctorum) 설립(1622).
1625년 부제품(副祭品) 서품 받음. 30년 전쟁 격화. 덴마크 개입 국면.
1628년 사제 서품. 공중부양 기적 본격 시작. 잉글랜드, 권리청원(Petition of Right) 제출. 유럽 절대왕정 강화.
1630년대 70여 차례 공중부양 목격 사례 축적. 순례자 방문 급증. 갈릴레오, 종교재판 회부(1633). 데카르트 합리주의 철학 등장.
1645년경 나폴리 부왕 가족 앞에서 공중부양. 교황 우르바노 8세도 목격. 30년 전쟁 종전 협상 시작. 베스트팔렌 조약(1648) 임박.
1653년 종교재판소 심문 시작. 나폴리·아시시·페루자 등 전전. 영국 크롬웰 호국경 체제 수립. 유럽 정치 지형 재편.
1657년 오시모 수도원으로 이송. 감시 속 수도 생활 지속. 루이 14세 친정 체제 시작(1661 예정). 절대왕정 절정기 진입.
1663년 9월 18일, 오시모에서 선종. 향년 60세. 영국 왕정복고(1660) 이후 유럽 질서 재편. 뉴턴, 중력 연구 시작.
1753년 교황 베네딕토 14세에 의해 시복(福者) 선포. 7년 전쟁(1756~1763) 직전. 계몽주의 사상 유럽 전파 중.
1767년 교황 클레멘스 13세에 의해 시성(성인) 선포. 축일 9월 18일 확정. 예수회 억압령 발동 시기. 계몽주의와 교회의 갈등 고조.
현재 조종사·우주비행사·학업 부진 학생들의 주보 성인으로 공경. 전 세계 가톨릭 신자 약 13억 명. 성인 공경 전통 지속.

참고문헌 및 참고 사이트

· Parisciani, G. (1963). San Giuseppe da Copertino. Padova: Edizioni Messaggero.

· Pastrovicchi, A. (1918). St. Joseph of Copertino. St. Louis: B. Herder Book Co. (Public Domain)

· 바티칸 공식 성인 전기: vatican.va — St. Joseph of Cupertino

· 가톨릭 백과사전(New Advent): newadvent.org — Joseph of Cupertino

· 한국 가톨릭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매일미사』 성인 소개란 참조.

· 한국 천주교 성인 자료: 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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