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누구였을까요?

성 샤를 르왕가(Charles Lwanga, 약 1860–1886)는 19세기 아프리카 동부 부간다 왕국(현재 우간다)의 궁정 시종 책임자로, 가톨릭 신앙을 지키다 화형으로 순교한 인물입니다. 그와 함께 순교한 동료들을 통틀어 '우간다 순교자들(Uganda Martyrs)'이라고 부르며, 가톨릭 신자 22명과 성공회 신자 23명이 1885년에서 1887년 사이에 부간다 왕국의 므왕가 2세 왕에 의해 처형되었습니다.

이 중 가톨릭 22명은 1920년 교황 베네딕토 15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64년 10월 18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샤를 르왕가는 이들 가운데 가장 나이 많은 지도자였으며, 순교자 전체를 상징하는 인물로 공경받습니다. 축일은 6월 3일로, 아프리카 대륙 전역의 가톨릭 공동체에서 특별히 기념합니다.

 

19세기 아프리카 – 제국주의의 파고 속 부간다 왕국

샤를 르왕가가 살았던 19세기 후반은 아프리카 역사에서 가장 격렬한 변동의 시기였습니다. 유럽 열강들이 아프리카 대륙을 사이좋게(?) 나눠 갖기로 한 이른바 '아프리카 분할(Scramble for Africa)'이 본격화되던 때였습니다. 1884~1885년 베를린 회의에서 유럽 14개국이 아프리카 영토를 탁상 위에서 선 긋듯 분할했고, 이 회의에는 아프리카인 대표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부간다 왕국은 오늘날 우간다 남부 빅토리아 호수 북안에 위치한 반투계 왕국으로, 당시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강력하고 조직적인 왕국 중 하나였습니다. 1862년 영국 탐험가 존 해닝 스피크가 빅토리아 호수를 '발견'하면서 부간다는 유럽인들의 관심권에 들어왔고, 이후 영국 성공회 선교사(CMS)와 프랑스 가톨릭 선교사(화이트 파더스, White Fathers)가 앞다투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부간다에는 이슬람 상인들도 깊숙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가톨릭, 성공회, 이슬람이라는 세 외래 종교와 전통 신앙이 뒤섞인 복잡한 종교 지형이 형성되었고, 이것이 결국 권력 투쟁과 얽히면서 순교라는 비극으로 이어졌습니다.

 

부간다 왕국의 궁정 – 신앙이 싹튼 곳

샤를 르왕가는 부간다 왕국의 수도 음메나고(Munyonyo) 궁정에서 카바카(Kabaka, 왕)를 섬기는 시종 집단에 속해 있었습니다. 당시 부간다 왕실에는 귀족 가문의 청년들이 왕을 가까이 섬기며 궁정 예절과 통치술을 배우는 관행이 있었는데, 이 시종 집단 안에 가톨릭 선교사들의 교리 교육이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1879년 화이트 파더스(Pères Blancs, 아프리카 선교회) 선교사들이 부간다에 도착하면서 복음 선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의 가르침은 놀라운 속도로 궁정 청년들 사이에 퍼졌습니다. 르왕가를 비롯한 많은 시종들이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거나 예비신자로 등록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새로운 종교를 따른 것이 아니라, 복음의 가르침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새로운 가치관으로 삶을 살아가려 했습니다.

 

므왕가 2세 – 공포의 왕과 신앙의 충돌

1884년, 부간다의 왕 무테사 1세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들 므왕가 2세(Mwanga II)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므왕가는 복잡한 인물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유럽 열강의 침략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권력에 도전하는 어떤 세력도 용납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에게 궁정 시종들의 가톨릭 신앙은 점점 위협으로 느껴졌습니다. 가톨릭 신자가 된 시종들이 왕의 도덕적으로 문제 있는 명령을 거부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왕의 명예욕과 신하들의 신앙 사이의 긴장은 1885년 11월, 성공회 선교사 제임스 한닝턴 주교가 므왕가의 명령으로 살해되면서 폭발 직전의 상태로 치달았습니다.

1886년 5월, 므왕가는 마침내 칙령을 내렸습니다. 궁정 내 그리스도인 시종들에게 신앙을 버릴 것을 요구한 것입니다. 거부하는 자는 죽음이었습니다. 이 순간, 르왕가와 동료들의 선택이 역사가 되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 처형 명령을 받은 순교자들이 한목소리로 한 대답 (전승 기록 의역)
 

순교의 날들 – 1886년 6월 3일

1886년 5월 26일, 므왕가는 그리스도인 시종들을 모두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체포된 이들은 수도에서 약 60킬로미터 떨어진 무야가(Munyaga) 혹은 나무곤고(Namugongo)로 긴 행진을 해야 했습니다. 이 행진 도중에도 일부는 처형되거나 고문받았고, 그럼에도 신앙을 포기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1886년 6월 3일, 나무곤고에서 샤를 르왕가를 비롯한 가톨릭 신자들이 갈대와 나무 더미 위에서 산 채로 불태워지는 방식으로 순교했습니다. 처형 방식 자체가 가능한 한 오래, 가능한 한 고통스럽게 죽이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습니다. 르왕가는 천천히 타들어 가는 불 속에서도 기도를 멈추지 않았고, 자신을 처형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했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나이는 약 25세였습니다.

이날 함께 순교한 이들 중에는 열세 살의 어린 킬루스아가(Kizito)도 있었습니다. 아직 세례도 받지 못한 예비신자였지만, 세례를 받고 싶다며 끝까지 르왕가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 소년이었습니다. 르왕가는 처형 직전 킬루스아가에게 대세(臨終洗禮)를 주었다고 전해집니다.

 

22인의 가톨릭 순교자들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성인품에 오른 우간다 가톨릭 순교자 22인은 다양한 나이와 신분의 청년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이름과 특징을 아래에 간략히 정리합니다.

우간다 가톨릭 순교자 22인 (1964년 시성)

  • 샤를 르왕가 (Charles Lwanga) – 시종 책임자, 약 25세. 순교자들의 지도자.
  • 킬루스아가 (Kizito) – 시종, 13세. 최연소 순교자. 예비신자로 순교.
  • 음바가 투리보 (Mbaga Tuzinde) – 집행관의 양아들, 17세. 양아버지의 설득도 거부.
  • 아돌푸스 무가가 (Adolphus Mukasa Ludigo) – 시종, 약 18세.
  • 아나톨리우스 키리가왈지 (Anatoli Kiriggwajjo) – 시종.
  • 안드레아스 카고와 (Andreas Kaggwa) – 왕실 악사 책임자, 약 30세.
  • 브루노 세루운키마 (Bruno Sserunkuuma) – 시종.
  • 다니엘 가부자 (Daniel Gabuza) – 시종.
  • 도미니쿠스 루가 (Dominic Sebuggwawo) – 시종, 16세. 왕에게 직접 교리 가르쳤다가 고문.
  • 야고보 부자발리아와 (James Buzabaliawo) – 시종.
  • 조나스 무시아가 (Gyavira) – 시종, 17세.
  • 곤살베스 곤자가 (Gonzaga Gonza) – 시종.
  • 그레고리우스 스세바가와 (Gregor Ssebaggala) – 시종.
  • 요나스 클레멘스 카리무 (Jonas Klemens Kalimuzo) – 시종.
  • 루치아노 가바나 (Lukka Banabakintu) – 농부, 외부인으로 체포.
  • 마티아스 무물루 (Matiya Mulumba) – 지방 판사, 약 50대. 고령의 순교자.
  • 무아가가 (Mugagga) – 시종.
  • 노에 마와갈리 (Noa Mawagali) – 도예가, 외부인 순교자.
  • 폰티아누스 응온도웨 (Pontian Ngondwe) – 군인.
  • 루카 바나바킨투 (Luka Banabakintu) – 농부.
  • 아킬레우스 킬레바 (Achilles Kiwanuka) – 시종.
  • 앙브로시우스 키부카 (Ambrose Kibuka) – 시종.
 

아프리카 교회의 씨앗 – 순교의 역설

순교자들의 처형은 므왕가 왕이 의도했던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들이 신앙을 지키며 죽어간 소식은 부간다 왕국 전역, 나아가 아프리카 전역으로 퍼졌고, 오히려 가톨릭 신앙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높아졌습니다. "저 사람들이 저렇게까지 믿는 신앙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을 복음으로 이끈 것입니다.

"순교자의 피는 그리스도인의 씨앗이다(Sanguis martyrum semen Christianorum)"라는 테르툴리아누스의 오래된 말이 19세기 아프리카에서 다시 한 번 증명된 셈이었습니다. 오늘날 우간다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가톨릭 신자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이며, 나무곤고 순교 성지는 매년 6월 3일 아프리카 각지에서 수십만 명의 순례자가 모이는 아프리카 최대 가톨릭 성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또한 이 순교는 아프리카 토착 교회의 자립이라는 관점에서도 중요합니다. 순교자들은 유럽 선교사들이 아니라 아프리카 현지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외부에서 강요된 신앙이 아니라, 스스로 받아들이고 목숨으로 증언한 신앙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우간다 순교자들이 아프리카 가톨릭 역사에서 갖는 특별한 의미입니다.

 

제국주의 시대의 아이러니 – 식민지와 복음

우간다 순교자들의 이야기는 19세기 제국주의라는 역사적 맥락을 빼놓고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가톨릭 선교사들이 부간다에 들어온 것 자체가 유럽 식민지 팽창의 물결과 함께였고, 므왕가 왕의 그리스도인 박해는 단순한 종교 탄압이 아니라 유럽 세력에 대한 정치적 저항의 성격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순교자들 자신은 유럽 제국주의의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부간다의 아들들이었고, 그들이 택한 신앙은 어떤 외세의 명령이 아니라 자신의 양심과 확신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이 순교는 복음이 유럽 문화의 옷을 벗고 아프리카의 땅과 피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는 신호였습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1969년 우간다를 방문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프리카인들이여, 여러분은 이제 선교사를 받는 사람들이 아니라, 선교사를 보내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우간다 순교자들의 신앙이 맺은 열매였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

성 샤를 르왕가와 우간다 순교자들의 이야기는 신앙의 자유, 양심의 용기, 그리고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확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들은 대부분 10대에서 20대의 청년들이었습니다. 화려한 궁정 생활을 포기하고 죽음을 택한 그 선택은, 어떤 논리나 이익 계산으로도 설명되지 않습니다. 오직 신앙 안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결단이었습니다.

세계사와 가톨릭 역사의 관점에서 볼 때, 우간다 순교자들은 가톨릭 순교의 역사가 유럽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1세기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순교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처럼, 19세기 아프리카의 젊은이들도 같은 신앙으로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 피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아프리카 가톨릭 교회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시간순 역사 도표 – 우간다 순교자들과 동시대 세계·가톨릭 역사

연도 우간다 순교자 관련 사건 동시대 세계·가톨릭 역사 사건
1840년대 유럽 열강의 아프리카 탐험 본격화. 영국, 프랑스, 독일의 아프리카 진출 경쟁 시작.
1858 영국 탐험가 스피크, 빅토리아 호수 '발견'. 동아프리카 내륙 유럽에 알려짐.
약 1860 샤를 르왕가, 부간다 왕국에서 출생. 부간다 왕 무테사 1세 치하. 왕국 전성기. 이슬람 상인 세력 확대.
1869 수에즈 운하 개통. 유럽-아프리카-아시아 교역로 재편. 아프리카 식민지화 가속.
1875 영국 성공회 선교사(CMS), 부간다 도착. 왕 무테사 1세의 초청으로 선교 개시.
1879 르왕가 등 궁정 청년들, 화이트 파더스로부터 교리 교육 받기 시작. 프랑스 가톨릭 아프리카 선교회(화이트 파더스), 부간다 도착. 가톨릭 선교 개시.
1884 부간다 왕 무테사 1세 사망. 아들 므왕가 2세 즉위. 베를린 회의(1884~1885). 유럽 14개국, 아프리카 분할 합의. 아프리카인 배제된 채 결정.
1885 11월, 르왕가의 전임자 요제프 무카사(Joseph Mukasa Balikuddembe), 므왕가에게 처형됨. 르왕가 시종 책임자직 승계. 성공회 주교 한닝턴, 므왕가 명령으로 살해. 유럽 각국, 동아프리카 영향력 다툼 심화.
1886년 5월 므왕가 2세, 궁정 그리스도인 시종들에게 신앙 포기 명령. 체포령 발동. 독일령 동아프리카, 영국령 우간다 보호령 경계 협상 중. 제국주의 분쟁 절정.
1886년 6월 3일 샤를 르왕가 등 가톨릭 신자들, 나무곤고에서 화형으로 순교. 성공회 신자 일부도 같은 기간 처형. 아프리카 분할 마무리 단계. 유럽 선교사들과 식민지 행정 뒤엉키는 시기.
1887 마지막 우간다 순교자 처형. 총 가톨릭 22명, 성공회 23명 순교. 영국, 우간다 보호령 체제 강화 시작. 부간다 왕국 자치권 점차 축소.
1894 우간다, 공식 영국 보호령으로 편입. 식민 지배 체제 확립.
1920 교황 베네딕토 15세, 우간다 가톨릭 순교자 22인 복자품에 올림. 제1차 세계대전 종결 후 아프리카 식민지 재편. 국제연맹 위임통치 체제.
1962 우간다, 영국으로부터 독립. 오보테 초대 총리 취임.
1964 10월 18일, 교황 바오로 6세, 우간다 가톨릭 순교자 22인 성인품에 올림. 축일 6월 3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진행 중. 아프리카 토착 교회 자립 강조.
1969 교황 바오로 6세, 우간다 방문. 나무곤고 성지 순례. 아프리카 최초 교황 방문. "아프리카인들이여, 이제 선교사를 보내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 교황 바오로 6세 선언.
현재 나무곤고 성지, 매년 6월 3일 수십만 명 순례. 아프리카 최대 가톨릭 순례지 중 하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전 세계에서 가톨릭 신자 수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지역.
 

참고 문헌 및 참고 사이트

  • Vatican News – 우간다 순교자 공식 자료: www.vatican.va
  • 가톨릭 굿뉴스 성인 자료: www.catholic.or.kr
  • 나무곤고 우간다 순교자 성지 공식 홈페이지: www.ugandamartyrs.org
  • 한국 가톨릭 대사전 (한국교회사연구소, 1985~2006)
  •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선교 역사 아카이브: www.evangelization.va
  • John F. Faupel, African Holocaust: The Story of the Uganda Martyrs, St. Paul Publications (참고용, 저작권 만료 부분 활용)
  • Adrian Hastings, The Church in Africa 1450–1950, Oxford University Press (아프리카 교회 역사 배경 참조)
  • Wikipedia (영문) – "Uganda Martyrs": en.wikipedia.org (기초 사실 확인용)

※ 본 글은 공개된 가톨릭 교회 공식 자료 및 학술 문헌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인용문은 원문의 의미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의역되었습니다. 저작권이 있는 자료의 직접 인용은 삼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