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아프리카 대륙, 왕의 광기 앞에서도 끝내 신앙을 놓지 않았던
22명의 젊은이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배경과 시대
19세기 아프리카, 격동의 시대 속으로
19세기 후반의 아프리카는 그야말로 격변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었어요. 유럽 열강들이 앞다투어 아프리카 대륙을 분할하던 이른바 '아프리카 쟁탈전(Scramble for Africa)' 시대였고, 그 혼란 속에서 크고 작은 왕국들은 저마다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우간다 지역, 빅토리아 호수 북쪽 연안에 자리 잡은 부간다(Buganda) 왕국도 그 예외가 아니었어요.
부간다 왕국은 당시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강력한 왕국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잘 정비된 행정 체계와 막강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었고, 아랍 상인들과의 교역을 통해 이슬람 문화가 이미 일부 흘러들어온 상태였어요. 거기에 1860년대부터 영국 선교사들이 들어오면서 기독교, 특히 가톨릭과 성공회 선교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복잡한 종교적·정치적 지형 위에서, 가톨릭을 받아들인 젊은 궁정 신하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 중심에 바로 성 샤를 르왕가(St. Charles Lwanga)가 있었습니다.
인물 소개
샤를 르왕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샤를 르왕가는 1860년대 초, 부간다 왕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뛰어난 인품과 용모, 그리고 탁월한 능력으로 왕궁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되었어요. 당시 부간다 왕실에는 '왕의 시동(page)'이라 불리는 젊은 귀족 출신 신하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왕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며 장차 왕국의 지도자로 성장할 인재들이었습니다. 샤를은 이 시동들을 관리하는 수석 시동장(chief of the pages) 자리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그가 가톨릭 신앙을 접하게 된 것은 1880년대, 부간다 왕국에서 활동하던 백인신부회(White Fathers, 정식 명칭: 아프리카 선교 사제회) 선교사들을 통해서였어요. 그는 세례를 받기 전부터 이미 신앙에 깊이 매료되어 있었고, 왕실의 젊은 시동들에게 가톨릭 교리를 직접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자기 혼자 신앙을 지키는 것을 넘어서, 주변의 젊은 동료들에게 복음을 전한 적극적인 신앙인이었죠.
샤를 르왕가는 박해의 시작과 함께 아직 세례를 받지 못한 동료 시동들에게 즉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그의 첫 번째 관심은 동료들의 영혼이었어요.
박해의 시작
왕 무왕가 2세의 광기 — 박해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1884년, 온건한 성격의 무테사(Mutesa) 1세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들 무왕가(Mwanga) 2세가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무왕가는 즉위 초기부터 외세의 영향력이 자신의 왕권을 침식하고 있다는 불안감을 품고 있었어요. 특히 도덕적 가르침을 전하는 가톨릭 선교사들과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궁정 신하들이 자신의 방종한 생활을 비판하는 것에 강한 반감을 가졌습니다.
갈등이 본격적으로 터진 것은 1886년이에요. 무왕가 왕은 젊은 시동들에게 도덕적으로 타락한 행위를 강요했고, 신앙을 가진 시동들은 이를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왕은 이것을 단순한 불복종이 아니라 왕권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받아들였어요. 결국 1886년 5월, 왕은 가톨릭과 성공회 신앙을 가진 시동들을 모두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체포 당일 밤, 샤를 르왕가는 아직 세례를 받지 못한 동료 시동들에게 서둘러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죽음이 목전에 다가왔음을 알면서도 그는 두려움에 떨기보다 동료들의 영적 준비를 먼저 챙긴 것입니다. 이 행동 하나만으로도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지 않나요?
순교의 여정
무레 언덕까지, 죽음을 향한 행진
체포된 시동들은 부간다의 수도 음메나고(Munyonyo)에서 약 60km 떨어진 무레(Munyonyo → Mulagala → Munyagala → Mulagala → Mulagali → Mulagala → Mulagala → Mulagali → Mulagali → Mula) 무레(Mule) — 오늘날의 나무고고(Namugongo)로 끌려가는 긴 행진을 강요받았습니다.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이 행군 과정에서 일부 순교자들은 이미 도중에 처형되거나 목숨을 잃었어요.
1886년 6월 3일, 마침내 나무고고(Namugongo)에 도착한 시동들은 갈대 묶음 위에 묶인 채 산 채로 불태워지는 화형(火刑)을 선고받습니다. 실제 처형은 단 하루 만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며칠에 걸쳐 진행되었어요. 샤를 르왕가를 비롯한 대다수 순교자들은 6월 3일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그 나이는 가장 어린 이가 14세, 가장 나이 많은 이가 30세 초반에 불과했어요.
놀라운 것은 이들이 보여준 태도였습니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은 울부짖거나 왕에게 애원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평온하게, 어떤 이는 찬미가를 부르며 불꽃 속으로 걸어들어갔다고 전해집니다. 샤를 르왕가 역시 "하느님을 믿지 않는 아이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개종하게 해 주소서"라는 기도를 마지막으로 남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2명의 순교자
함께 죽어간 동료들 — 우간다의 22순교자
가톨릭 교회가 공식적으로 시복하고 이후 시성한 우간다 순교자는 모두 22명입니다. 이들 가운데 가톨릭 신자가 22명이며, 성공회 신자들도 이 박해 과정에서 함께 순교했어요. 가톨릭 교회는 이 22명을 1964년 10월 18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시성(諡聖)했습니다. 이는 아프리카 흑인 순교자들이 단체로 시성된 최초의 사례로, 세계 교회사에서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22명의 순교자들은 모두 왕실의 시동 또는 관리들이었으며, 대부분이 10대 후반에서 20대의 젊은이들이었어요. 이 중에는 조셉 무카사 바나바(Joseph Mukasa Balikuddembe)처럼 이미 1885년 먼저 순교한 이도 있고, 어린 나이에도 신앙을 부인하지 않은 시동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서로 다른 부족 출신이었고,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인 기간도 제각각이었지만, 끝까지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한 가지 공통점으로 묶여 있었습니다.
이들의 순교는 단순한 종교적 사건이 아니었어요. 당시 유럽 열강의 식민지 확장, 아랍 이슬람 상인들의 영향력, 그리고 전통적인 왕권 사이에서 정체성을 찾아가던 아프리카 가톨릭 신자들의 신앙 성숙을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입니다.
역사적 의의
왜 지금도 우간다 순교자들을 기억해야 할까요?
성 샤를 르왕가와 우간다 순교자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역사 기록에 머물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간다는 가톨릭 인구 비율이 전체의 약 40%에 달하는, 아프리카에서도 손꼽히는 가톨릭 국가입니다. 그 뿌리에 바로 이 순교자들의 피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순교자들이 처형된 나무고고(Namugongo)는 현재 아프리카 최대의 가톨릭 성지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매년 6월 3일 순교자 축일에는 수십만 명의 순례자들이 우간다 안팎에서 몰려들어, 심지어 맨발로 수백 킬로미터를 걸어 나무고고에 도착하는 분들도 있을 정도예요. 그 경건함과 열기는 지금도 세계 각지의 가톨릭 신자들에게 감동을 전합니다.
또한 이 사건은 '토착 순교자(indigenous martyrs)'의 신앙이 선교사들에게서 단순히 전달받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내면화하고 목숨으로 증언할 만큼 깊고 진실한 것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가톨릭 교회의 보편성과 아프리카 신앙의 위대함을 동시에 증언하는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성과 공경
교회의 공식 선언 — 시복과 시성의 여정
우간다 순교자들에 대한 교회의 공식 심사는 순교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뒤에야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1920년 교황 베네딕토 15세에 의해 22명 전원이 시복(諡福, Beatification)되었고, 이것만으로도 당시 아프리카 가톨릭 공동체에 큰 기쁨이었어요. 이후 40여 년이 더 흐른 1964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던 역사적인 시기에 교황 바오로 6세가 이들을 시성(諡聖, Canonization)하였습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시성식에서 이들을 "아프리카 교회의 불꽃"이라고 표현했어요. 이 시성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 즉 교회의 보편성과 지역 문화의 존중, 그리고 토착 신앙 공동체의 성숙이라는 흐름과 맥을 같이합니다. 훗날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도 1993년 우간다를 방문하여 나무고고 성지에서 미사를 봉헌하며 이들의 신앙을 기렸습니다.
성 샤를 르왕가의 축일은 6월 3일로, 전례력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는 아프리카 청소년과 가톨릭 청년 운동의 수호성인으로 특별히 공경받고 있으며, 특히 20세기 말부터 아프리카 전역의 청소년 단체들이 그의 이름을 따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요.
마무리하며
불꽃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1886년 6월의 나무고고 언덕에서 피어오른 불꽃은 22명의 젊은 목숨을 삼켰지만, 동시에 아프리카 가톨릭 신앙의 불씨를 활활 살려냈습니다. 어쩌면 무왕가 왕은 신앙을 불태워 없애려 했겠지만, 역사는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주었어요. 순교자들의 죽음은 오히려 더 많은 부간다 사람들, 더 나아가 아프리카 전역의 사람들이 가톨릭 신앙에 눈을 뜨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니까요.
세계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식민지 시대의 혼란 속에서, 그리고 왕권의 폭력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이 젊은이들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믿음이란 편안한 시절에 갖는 것이 아니라,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그 진면목이 드러난다는 것을요.
성 샤를 르왕가와 동료 우간다 순교자들,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 연도 | 구분 | 사건 | 의의 및 맥락 |
|---|---|---|---|
| 1844년 | 가톨릭 | 백인신부회(White Fathers) 창립 준비기 — 아프리카 선교 기반 형성 시작 | 훗날 우간다 선교를 담당할 선교 수도회의 씨앗이 뿌려짐 |
| 1858년 | 세계사 | 영국 탐험가 존 스피크(John Speke), 빅토리아 호수 도달 | 유럽인들의 동아프리카 내륙 탐험이 본격화되며 선교와 식민지화의 길이 열림 |
| 1868년 | 가톨릭 | 백인신부회(아프리카 선교 사제회) 공식 설립 — 샤를 라비즈리(Cardinal Lavigerie) 추기경 주도 | 아프리카 전역 가톨릭 선교의 핵심 조직 탄생 |
| 1875년 | 아프리카 | 부간다 왕 무테사 1세, 영국 탐험가 스탠리(Stanley)를 통해 유럽에 선교사 파견 요청 | 동아프리카 가톨릭·성공회 선교의 공식적 시작점 |
| 1879년 | 가톨릭 | 백인신부회 선교사들, 부간다 왕국 도착 — 가톨릭 선교 공식 개시 | 샤를 르왕가를 비롯한 궁정 시동들이 가톨릭 신앙을 처음 접하게 되는 계기 |
| 1884년 | 세계사 | 베를린 회의(Berlin Conference) — 유럽 열강의 아프리카 분할 공식화 |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유럽 식민지로 분할되기 시작, 부간다 왕국도 영향권에 들어감 |
| 1884년 | 아프리카 | 무테사 1세 사망, 무왕가 2세(Mwanga II) 왕위 계승 | 반기독교 정책의 시작, 박해의 서막이 열림 |
| 1885년 10월 | 가톨릭 | 조셉 무카사 바나바(첫 번째 순교자) 처형 | 성공회 선교사 한닝턴 주교 암살에 항의하다 처형된 첫 가톨릭 순교자 |
| 1886년 5월 | 가톨릭 | 무왕가 왕의 명령으로 가톨릭·성공회 시동 전원 체포 | 샤를 르왕가가 체포 전날 밤 동료들에게 세례를 베품 — 역사적 장면 |
| 1886년 6월 3일 | 가톨릭 | 나무고고(Namugongo)에서 샤를 르왕가 등 다수 순교자 화형 | 우간다 22순교자의 핵심 순교일, 현재 가톨릭 전례력 축일로 지정 |
| 1890년 | 세계사 | 영국-독일 협정으로 우간다 지역이 영국 세력권으로 편입 | 부간다 왕국이 영국 보호령 체제에 편입되기 시작 |
| 1894년 | 아프리카 | 우간다 보호령(Uganda Protectorate) 공식 선포 — 영국 식민 지배 시작 | 부간다 왕국은 자치를 유지하면서도 영국의 간접 지배 아래 놓임 |
| 1920년 | 가톨릭 | 교황 베네딕토 15세, 우간다 22순교자 시복(諡福) 선언 | 순교 34년 만에 교회의 공식 인정, 아프리카 가톨릭 역사의 이정표 |
| 1962년 | 아프리카 | 우간다 공화국 독립 | 영국으로부터 독립 — 가톨릭은 이미 국민 신앙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음 |
| 1964년 10월 18일 | 가톨릭 | 교황 바오로 6세, 우간다 22순교자 시성(諡聖) 선언 | 아프리카 흑인 순교자 단체 시성 최초 사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기간 중 거행 |
| 1993년 | 가톨릭 |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 우간다 방문 — 나무고고 성지 미사 봉헌 | 전 세계적으로 우간다 순교자 공경 재조명, 나무고고 성지 국제적 위상 강화 |
| 매년 6월 3일 | 아프리카 | 나무고고 성지 순례 — 수십만 명 참가 | 아프리카 최대 가톨릭 순례지 중 하나로 자리매김, 우간다 전역에서 도보 순례 이어짐 |
참고 문헌 및 참고 사이트
- Vatican News — www.vaticannews.va (성인 전기 및 시성 관련 공식 자료)
- Catholic Online — catholic.org — St. Charles Lwanga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 www.cbck.or.kr
- Encyclopaedia Britannica — "Uganda Martyrs" 항목 (www.britannica.com)
- Namugongo Martyrs Shrine Official — www.namugongomartyrsshrine.org
- John F. Faupel, African Holocaust: The Story of the Uganda Martyrs, St. Paul Publications, 1962
- 교황 바오로 6세 시성 강론 (1964.10.18) — 바티칸 공식 기록 보관소
- J. P. Thoonen, Black Martyrs, Sheed and Ward,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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