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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인과 교부

성 아르놀드 얀센 - 선교의 불꽃을 세계로 퍼뜨린 사제

by 기쁜소식 알리기 2026.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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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혹시 SVD라는 약자를 들어보셨나요? 성언회(Societas Verbi Divini), 즉 하느님의 말씀 선교회를 뜻하는 말입니다. 전 세계 80개국 이상에서 활동하는 이 거대한 선교 수도회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아시나요? 놀랍게도 그 시작은 19세기 독일의 작은 국경 마을, 그것도 교회의 박해와 냉대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오늘은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현실로 만든 한 사제의 이야기, 성 아르놀드 얀센 신부님의 삶을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성 아르놀드 얀센 - 선교의 불꽃을 세계로 퍼뜨린 사제

라인란트의 평범한 소년

1837년 11월 5일, 독일 북서부 라인란트 지방의 작은 마을 호흐에서 아르놀드 얀센이 태어났습니다. 당시 독일은 프로이센 왕국의 지배 아래 있었고, 가톨릭 교회는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었어요. 아르놀드의 아버지 게르하르트는 농부이자 마차 운송업자였고, 어머니 아나 카타리나는 독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열한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아르놀드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죠.

흥미로운 점은 아르놀드가 처음부터 사제가 되려고 했던 건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수학과 과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본 대학교에서 자연과학을 공부했어요. 1861년에는 교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보훔의 김나지움에서 수학과 과학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다 25세가 되던 해, 마음속 깊이 들려오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고, 뮌스터 신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사제 서품과 교사 생활

1861년 신학 공부를 시작한 아르놀드는 1864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하지만 본당 사목보다는 교육 사도직으로 파견되어 보훔의 성요한학교에서 12년 동안 교사로 일했어요. 수학, 물리, 화학, 자연과학을 가르치면서도 그의 마음속에는 더 큰 꿈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바로 세계 선교에 대한 열정이었죠.

당시 19세기 중반은 유럽의 선교 열정이 다시 불타오르던 시기였습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약화되었던 교회가 다시 힘을 얻으면서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로 선교사들이 파견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독일 가톨릭 교회는 문화투쟁(Kulturkampf)이라 불리는 비스마르크 정부의 탄압 때문에 자체적으로 선교사를 양성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독일어를 쓰는 선교사 지망자들은 프랑스나 벨기에로 가야 했고, 언어와 문화의 장벽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죠.

작은 기도 잡지에서 시작된 꿈

1873년, 아르놀드 얀센 신부는 작은 월간지를 창간합니다. 바로 '작은 선교의 마음'(Kleiner Herz-Jesu-Bote)이라는 잡지였어요. 겨우 16페이지짜리 소책자였지만, 여기에는 전 세계 선교지의 소식과 선교사들의 편지, 그리고 선교를 위한 기도와 헌금 안내가 담겨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어요. 독자들은 점점 늘어났고, 선교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잡지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얀센 신부의 마음속에는 더 큰 계획이 있었죠. 바로 독일어권을 위한 선교 신학교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1875년부터 그는 독일 전역을 돌아다니며 이 계획을 알리고 후원자를 모았어요. 하지만 반응은 차갑기만 했습니다. "독일에는 이미 신학교가 충분하다", "선교회를 만들 필요가 있느냐", "당신은 교사일 뿐인데 무슨 수도회를 만든다는 거냐" 같은 비판이 쏟아졌죠.

국경을 넘어 - 스타일의 기적

독일에서 문이 닫히자, 얀센 신부는 과감한 결정을 내립니다. 1875년, 독일 국경을 넘어 네덜란드로 간 거예요. 네덜란드 남부 림부르흐 지방의 작은 마을 스타일에 낡은 건물 하나를 구입했습니다. 당시 그곳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어요. 습지대였고, 제대로 된 도로도 없었으며, 가장 가까운 기차역까지 걸어서 한 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1875년 9월 8일 성모 탄신 축일, 얀센 신부는 그곳에서 첫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그리고 그해에 첫 두 명의 신학생이 입학했어요. 요한과 야코보였는데, 둘 다 독일 출신이었죠. 시작은 미약했지만 그의 비전은 원대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온 세상에 전하는 것", 그것이 새로 창립할 수도회의 사명이었습니다.

1876년, 교황 비오 9세께서 이 작은 공동체를 공식 인가해주셨고, 1877년에는 첫 서원자들이 나왔습니다. 수도회의 이름은 '성언회'(Societas Verbi Divini), 하느님의 말씀 선교회로 정해졌어요. 라틴어 약자로 SVD입니다. 얀센 신부의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죠.

첫 선교사들의 파견 - 중국으로

수도회가 설립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첫 선교 기회가 왔습니다. 1879년, 교황청으로부터 중국 산동성 남부 지역의 선교를 맡아달라는 요청이 온 거예요. 얀센 신부는 기뻐하며 준비에 들어갔고, 1879년 3월 2일, 요한 밥티스트 안처 신부와 요셉 프라인데마허 신부, 두 명의 선교사가 중국으로 파견되었습니다.

중국 선교는 엄청난 도전이었습니다.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완전히 달랐으며, 무엇보다 반서구 정서가 강했던 시기였거든요. 하지만 성언회 선교사들은 포기하지 않았어요. 중국어를 배우고, 현지 문화를 존중하며, 교육과 의료 사업을 통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산동 남부는 중국 가톨릭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죠.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선교

중국에 이어 선교지는 계속 확대되었습니다. 1889년에는 토고(지금의 가나)로 첫 아프리카 선교사가 파견되었고, 1895년에는 파푸아뉴기니로 선교사들이 떠났어요. 1897년에는 아르헨티나, 1898년에는 미국으로도 진출했습니다. 놀라운 건 이 모든 것이 스타일의 작은 집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입니다.

얀센 신부의 비전은 단순히 선교사를 파견하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선교지에서 현지인 사제를 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어요. 그래서 각 선교지마다 신학교를 세우고, 현지 언어로 교리서를 만들고, 인쇄소를 운영했습니다. 이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적인 생각이었죠.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토착화' 개념을 100년 전에 이미 실천하고 있었던 겁니다.

성신봉사 선교 수녀회와 성신 선교 수녀회

얀센 신부의 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1889년, 그는 여성 수도회를 창립합니다. 바로 성신봉사 선교 수녀회(SSpS)예요. 처음에는 선교사들의 식사와 세탁, 성당 청소 등을 돕는 역할이었지만, 점차 교육과 의료 선교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초대 총장은 헬레나 슈톨렌베르크 수녀였고, 그녀 역시 2008년 시복되었어요.

그리고 1896년, 또 하나의 수녀회를 창립합니다. 성신 선교 수녀회(SSpSAP)인데, 이 수녀회는 특별히 관상 기도를 통해 선교를 지원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얀센 신부는 선교 활동 뒤에는 반드시 기도의 힘이 있어야 한다고 믿었거든요. "행동하는 마르타와 기도하는 마리아가 함께할 때 진정한 선교가 이루어진다"는 것이 그의 확신이었습니다.

시련과 반대 속에서

하지만 얀센 신부의 길이 순탄하기만 했던 건 아닙니다. 수도회 내부에서도 갈등이 있었어요. 일부 회원들은 그의 리더십에 불만을 품었고, 어떤 이들은 선교 방식을 두고 의견 대립을 보였습니다. 특히 1880년대 후반에는 심각한 내부 분열 위기가 있었어요. 몇몇 신부들이 얀센 신부의 방식이 너무 권위적이라며 로마에 고소장을 제출하기까지 했죠.

교구 주교들과의 갈등도 있었습니다. 일부 주교들은 새로운 수도회가 자기 교구의 사제 지망자들을 빼앗아간다며 비판했어요. 재정적 어려움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선교지를 확대할 때마다 막대한 비용이 들었고, 후원금만으로는 부족했죠. 얀센 신부는 빚을 지면서도 선교 사업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건강도 문제였어요. 과로와 스트레스로 얀센 신부는 자주 아팠고, 말년에는 거의 움직이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병상에서도 편지를 쓰고, 선교사들을 격려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웠어요. "내가 죽어도 이 일은 계속될 것이다. 이것은 내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합니다.

조용한 선종과 유산

1909년 1월 15일, 아르놀드 얀센 신부는 스타일에서 조용히 선종했습니다. 향년 71세였어요. 그가 세상을 떠날 때 성언회는 이미 전 세계 27개 선교지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회원 수는 1,000명이 넘었습니다. 작은 국경 마을에서 시작한 꿈이 30년 만에 세계적인 선교 수도회로 성장한 거죠.

얀센 신부가 남긴 유산은 단순히 숫자로 측정할 수 없습니다. 그가 보여준 것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하느님께 의탁하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믿음이었어요. 아무도 지지해주지 않을 때, 모든 문이 닫혔을 때, 그는 국경을 넘어 새로운 길을 개척했습니다.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고, 비판과 오해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소명에 충실했죠.

시성까지의 여정

얀센 신부가 선종한 후 그의 거룩함은 널리 알려졌습니다. 1975년 교황 바오로 6세께서 그를 시복하셨고, 2003년 10월 5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시성식을 거행하셨어요. 함께 시성된 분들은 얀센 신부가 창립한 두 여성 수도회의 공동 창립자인 성 요셉 프라인데마허 신부와 복자 헬레나 슈톨렌베르크 수녀를 포함해 총 네 분이었습니다.

시성식 미사에서 교황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르놀드 얀센은 선교에 대한 열정과 성령께 대한 신뢰로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려움 속에서도 하느님의 섭리를 믿었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평생을 선교를 위해 살았던 사제가 마침내 성인품에 오른 순간이었죠.

한국과의 인연

여러분, 혹시 아세요? 성언회는 한국 가톨릭과도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1975년 성언회 선교사들이 한국에 첫발을 디뎠고, 현재는 서울, 전주, 광주 등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특히 이주민 사목, 빈민 사목, 선교 교육에 힘쓰고 있습니다. 성신봉사 선교 수녀회는 1967년 한국에 진출했고, 교육과 의료 선교에 헌신하고 계시죠.

흥미로운 건 얀센 신부가 100년 전에 꿈꿨던 '현지인 사제 양성'이 지금 현실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한국인 성언회 신부님들이 이제는 다른 나라로 선교사로 파견되고 있거든요. 선교를 받던 나라가 선교를 보내는 나라가 된 거예요. 이것이야말로 얀센 신부가 원했던 진정한 선교의 모습이 아닐까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성 아르놀드 얀센의 삶이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첫째, 꿈을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불가능하다고 할 때, 모든 문이 닫힐 때, 그는 새로운 길을 찾았어요. 국경을 넘고, 습지를 개간하고, 작은 집에서 세계적인 수도회를 만들어냈습니다.

둘째, 협력의 중요성입니다. 얀센 신부는 혼자 일하지 않았어요. 남성 수도회와 두 개의 여성 수도회를 창립하고, 평신도 후원자들과 긴밀히 협력했습니다. "함께할 때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죠.

셋째, 현지화의 지혜입니다. 서구의 것을 그대로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 각 문화를 존중하고 현지인 리더를 양성하는 것, 이것은 오늘날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원칙입니다.

넷째, 기도와 실천의 균형입니다. 관상 수녀회까지 창립한 것은 활동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깨달음이었어요. 기도 없는 활동은 공허하고, 실천 없는 기도는 위선입니다.

마치며 - 작은 씨앗이 큰 나무가 되다

오늘날 성언회는 전 세계 80개국 이상에서 6,000명이 넘는 회원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성신봉사 선교 수녀회는 43개국에 3,800명, 성신 선교 수녀회는 14개국에 400명의 수녀님들이 계시죠.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아시아의 산골에서, 남미의 빈민촌에서 복음을 전하고, 가난한 이들을 돌보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1875년 네덜란드 국경의 작은 습지에 세워진 낡은 집 한 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두 명의 신학생과 한 사제의 꿈에서 말이죠. 성 아르놀드 얀센이 보여준 것은 하느님의 계획이 우리의 계획보다 훨씬 크다는 것, 그리고 그 계획에 순명할 때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혹시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가지고 계신가요? 모든 사람이 안 된다고 말하는 일에 도전하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성 아르놀드 얀센을 기억하세요. 국경을 넘고, 습지를 개간하고, 비판과 오해를 견디며 한 걸음씩 나아갔던 그 사제를 말입니다. 그리고 기도하세요. "주님, 저를 당신 뜻을 이루는 도구로 써주소서."

성 아르놀드 얀센,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역사적 사건 연대표

연도 날짜 사건
1837년 11월 5일 아르놀드 얀센 독일 호흐에서 출생
1861년 - 본 대학교 자연과학 졸업, 교사 자격증 취득
1861년 - 뮌스터 신학교 입학
1864년 8월 15일 사제 서품
1873년 - 선교 잡지 '작은 선교의 마음' 창간
1875년 9월 8일 네덜란드 스타일에 선교 신학교 개설
1876년 - 교황 비오 9세로부터 공식 인가
1877년 - 성언회(SVD) 공식 창립, 첫 서원식
1879년 3월 2일 첫 선교사 중국 파견 (안처, 프라인데마허 신부)
1889년 12월 8일 성신봉사 선교 수녀회(SSpS) 창립
1889년 - 아프리카 토고 선교 시작
1895년 - 파푸아뉴기니 선교 시작
1896년 - 성신 선교 수녀회(SSpSAP) 창립
1897년 - 아르헨티나 선교 시작
1898년 - 미국 선교 시작
1909년 1월 15일 아르놀드 얀센 신부 선종 (향년 71세)
1967년 - 성신봉사 선교 수녀회 한국 진출
1975년 10월 19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시복
1975년 - 성언회 한국 진출
2003년 10월 5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




참고문헌 및 사이트

  • 가톨릭 굿뉴스 성인 자료실 - www.catholic.or.kr
  • 바티칸 공식 홈페이지 성인 목록 - www.vatican.va
  • 성언회(SVD) 공식 사이트 - www.svdcuria.org
  • 한국성언회 공식 홈페이지 - www.svdkorea.com
  • 성신봉사 선교 수녀회 공식 사이트 - www.ssps-korea.or.kr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매일미사』 성인 전기 자료
  • Bornemann, Fritz, "Arnold Janssen: Founder of Three Missionary Congregations", Steyler Verlag
  • 『가톨릭 성인전』, 분도출판사
  • 선교 역사 자료관 - Mission History 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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