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성인 열전 · 선교회 창립자
비스마르크의 철권에 맞서 국경을 넘고,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꿈을 현실로 만든 한 사제의 이야기. 오늘날 전 세계 70개국 6,000여 명 선교사들이 그의 유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01왜 지금 아르놀드 얀센인가
'선교'라는 단어를 들으면 우리는 흔히 먼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한국 천주교 신자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말씀의 선교 수도회(SVD)'는 바로 이 아르놀드 얀센 신부가 149년 전에 세운 수도회입니다. 한국에도 1984년 지부가 설립되었고, 지금도 전국 여러 교구에서 사목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수도회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그 배경에 얼마나 드라마틱한 역사가 있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19세기 후반 독일은 '문화 투쟁(Kulturkampf)'이라는 반(反)가톨릭 폭풍 속에 있었습니다. 교회는 탄압받고, 성직자들은 투옥되었으며, 수도원은 강제 폐쇄되었습니다. 바로 그 한가운데서 아르놀드 얀센 신부는 국경을 넘어 선교사 양성소를 세웠고, 결국 세계 역사를 바꾸는 선교 수도회를 창립합니다. 그의 삶은 단순한 신앙의 이야기가 아니라, 시대와 맞서 싸운 한 인간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02라인강변의 소년 – 출생과 성장(1837~1861)
아르놀드 얀센은 1837년 11월 5일, 독일 라인강 서쪽 기슭의 작은 도시 고흐(Goch)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게르하르트 얀센은 경건한 가톨릭 신자로, 국경을 넘어 네덜란드 나이메헨까지 물건을 운반하는 상인이었습니다. 어머니 카타리나는 11명의 자녀를 키우면서도 매일 아침 미사를 빠지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런 가정 환경이 어린 아르놀드의 신앙적 토대를 만들었습니다.
총명했던 아르놀드는 뮌스터 교구의 게스돈크(Gaesdonck) 기숙학교에서 탁월한 성적을 보였습니다. 수학과 자연과학에 특히 뛰어났는데, 이는 훗날 그가 교사로 재직하면서 물리학을 가르치는 배경이 됩니다. 1861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뮌스터 교구에서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이날을 축일에 맞춰 서품된 것이 그에게 얼마나 깊은 의미였는지는 훗날 수도회 창립일을 역시 성모 마리아 탄생 축일(9월 8일)로 정한 데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03교사 사제의 12년 – 선교의 불꽃이 피어나다(1861~1873)
서품 후 얀센 신부는 독일 북서부 보홀트(Bocholt)의 중학교에서 물리학과 교리교육을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12년이라는 긴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는 세계 선교의 필요성을 점점 더 깊이 느꼈습니다. 당시 유럽의 가톨릭 교회는 중국·아프리카·아시아에 선교사를 보내려 했지만, 독일에는 해외 선교를 전담하는 수도회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얀센 신부는 1873년부터 선교 잡지 『성심의 작은 사자(Kleiner Herz-Jesu-Bote)』를 발행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소식지가 아니라, 선교의 필요성을 독일 가톨릭 신자들에게 알리는 홍보 수단이자 선교 의식을 깨우는 매체였습니다. 신학자다운 발상이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바꾸려면 먼저 그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잡지는 나중에 SVD의 중요한 선교 홍보 수단으로 발전합니다.
시대 배경 – 문화 투쟁(Kulturkampf)이란?
1871년 독일 제국을 통일한 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가톨릭 교회를 국가 권력에 복속시키려는 일련의 반교회 정책을 펼쳤습니다. 1872년에는 교회의 교육 활동을 금지했고, 1873년에는 성직자 임명권을 국가가 통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수도원이 강제 해산되고, 주교들이 체포·투옥되었으며, 수백 개의 본당이 사제 없이 방치되었습니다. 얀센 신부가 독일을 떠나 네덜란드에 선교사 양성소를 세운 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이 폭풍을 피해 신앙의 씨앗을 지키기 위한 전략적 결단이었습니다.
04국경을 넘다 – 슈타일의 선교사 양성소(1875)
1873년, 교직을 그만둔 얀센 신부는 본격적으로 선교사 양성소 설립에 나섭니다. 독일의 여러 주교들을 찾아다녔지만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문화 투쟁 아래서 새로운 교회 기관을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대부분의 반응이었습니다. 동료 사제들도 "아르놀드, 자네는 그런 일에 맞는 사람이 아니야"라고 고개를 저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얀센 신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독일 국경을 넘어 네덜란드 림부르흐(Limburg)주의 작은 마을 슈타일(Steyl)에 낡은 여관 건물 하나를 구입합니다. 그리고 1875년 9월 8일, 성모 마리아 탄생 축일에 '성 미카엘 대천사 선교사 양성 신학원'을 공식 개원합니다. 처음 입학생은 두 명이었고, 재정은 거의 없었습니다. 보잘것없는 시작이었지만, 그 날이 바로 오늘날 전 세계 70개국에 퍼진 '말씀의 선교 수도회(SVD)'의 생일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동하며, 어떤 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 말씀을 온 세상에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 성 아르놀드 얀센, 창립 정신에서05세 수도 가족의 탄생 – 평생의 창립 사업
아르놀드 얀센이 이룬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단순히 수도회 하나를 세운 것이 아니라, 서로 협력하는 세 개의 수도 가족을 창립했다는 점입니다. 남성 수도회(SVD)로 시작해, 이후 여성 선교 수녀회와 관상 수녀회를 차례로 설립하며 선교의 영역을 넓혔습니다.
1875 · 창립
말씀의 선교 수도회
(Societas Verbi Divini)
SVD · 신언회 · 성언회로도 불림. 사제와 수사로 구성된 선교 수도회. 1901년 교황 레오 13세 공식 인준.
1889 · 창립
성령 선교 수녀회
(Missionary Sisters SSpS)
SSpS · 여성 선교 수녀회. 1895년 첫 선교사들이 아르헨티나로 파견. 현재 약 3,800명 활동.
1896 · 창립
성체조배 성령 선교 수녀회
(SSpSAP)
관상 수녀회. 기도로 선교에 참여하는 봉쇄 수녀원. 현재 400여 명이 전 세계에서 활동.
1879년에는 중국으로 첫 선교사 두 명을 파견합니다. 그 중 한 명이 훗날 함께 시성되는 성 요셉 프라이나데메츠(Joseph Freinademetz)였습니다. 그는 평생을 중국에서 보내며 복음을 전하다 선종했습니다. 1892년에는 아프리카 토고(Togo)에, 1895년에는 미국에도 선교사를 보냅니다. 얀센 신부가 선종한 1909년에는 이미 중국·이탈리아·아르헨티나·오스트리아·브라질·미국·필리핀·칠레·일본·파푸아뉴기니 등지에 1,500여 명의 사제·수사·수녀가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06신학자로서의 아르놀드 얀센 – 삼위일체 신심
아르놀드 얀센은 단순한 조직 창립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영성의 핵심에는 깊은 삼위일체 신심이 있었습니다. 그는 선교를 단순히 '종교 전파'가 아니라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이 세상으로 흘러나오는 행위로 이해했습니다. 요한 복음 1장 1절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에서 수도회 이름 'Verbum Divinum(거룩한 말씀)'을 따온 것도 이 신학적 확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는 또한 선교사 양성에 있어 지성과 영성의 균형을 강조했습니다. 세계 각국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현지 문화를 존중하며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문화 적응(inculturation) 정신은 당시로서는 매우 선진적인 선교 신학이었습니다. 실제로 SVD는 창립 초기부터 중국어·일본어·포르투갈어 등 현지 언어 교육을 선교사 양성의 핵심 과정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또 "15분마다 마음을 하느님께 들어올려라"는 권고로도 유명합니다. 바쁜 선교 현장에서도 내적 기도의 삶을 놓치지 말라는 이 가르침은 지금도 SVD와 성령 선교 수녀회의 영성 안에 살아있습니다.
07시대적 맥락 – 19세기 말의 세계와 교회
얀센 신부가 활동하던 1860~1900년대는 세계사적으로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유럽에서는 민족주의와 국가주의가 교회를 압박했고, 1870년 교황청 국가가 이탈리아 왕국에 합병되면서 교황은 스스로를 '바티칸의 포로'라고 선언하는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독일의 문화 투쟁은 그 연장선에 있었습니다.
한편 이 시기는 서구 열강의 식민지 확장이 본격화하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아프리카·아시아·태평양에 대한 유럽 열강의 분할이 가속화되면서, 가톨릭 선교도 이 흐름 속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나 얀센 신부와 SVD는 식민지 지배의 논리가 아닌, 현지 문화를 존중하는 선교 방식을 추구했습니다. 실제로 SVD 출신인 중국인 탕경신(田耕莘) 토마스 추기경이 1946년 동아시아인 최초의 추기경으로 임명된 것은, 창립자의 현지화 정신이 결실을 맺은 사건이었습니다.
교황 레오 13세는 1891년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를 반포해 노동자 권리와 사회 정의를 강조했으며, 같은 해 얀센의 수도회를 공식 승인하기 위한 절차도 진행 중이었습니다. 시대가 교회에 맞서는 동안, 교회 안에서는 새로운 선교의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08선종과 시성 – 가난한 도구의 거룩한 마침(1909~2003)
아르놀드 얀센 신부는 1909년 1월 15일, 슈타일 수도원에서 71세의 나이로 조용히 선종합니다. 임종 자리에는 그가 창립한 세 수도 가족의 수사들과 수녀들이 함께했습니다. 생전에 그는 자신을 "하느님의 가난한 도구"라고 불렀습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던 꿈을 현실로 만들었지만, 그 공을 철저히 하느님께 돌린 사람이었습니다.
시복·시성 절차는 그의 선종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1975년 10월 19일, 교황 바오로 6세는 그를 복자(福者)로 선포합니다. 그리고 2003년 10월 5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아르놀드 얀센을 성 다니엘 콤보니, 성 요셉 프라이나데메츠와 함께 성인(聖人)으로 선포합니다. 세 명 모두 '선교의 투사'라는 공통점을 가진 이들이었습니다.
시성의 기적은 필리핀 바기오(Baguio)에 사는 10대 소녀 파멜라 아벨라노사(Pamela Avellanosa)의 치유 사건이었습니다. 자전거에서 떨어져 두개골 골절로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은 소녀가 얀센 신부에 대한 기도 후 기적적으로 회복된 것입니다. 얀센 신부가 생전에 선교사를 파견했던 필리핀에서 시성의 기적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깊은 상징성을 갖습니다.
09오늘날의 SVD – 그 씨앗이 맺은 열매
2024년 기준, 말씀의 선교 수도회(SVD)에는 전 세계 76개국 출신의 5,754명 선교사가 79개국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성령 선교 수녀회(SSpS)는 약 3,800명, 성체조배 성령 선교 수녀회(SSpSAP)는 400여 명이 활동 중입니다. 합치면 1만 명이 넘는 수도자들이 아르놀드 얀센의 유산을 이어가고 있는 셈입니다.
한국에서는 1984년 말씀의 선교 수도회 한국지부가 설립되어 2024년에 설립 4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경기도 안산에 본부를, 서울 서대문구에 서울 사무소를, 경기도 포천에 성 아르놀드 얀센 영성센터를 두고 있습니다. 성령 선교 수녀회도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 지원, 가정폭력 상담, 아동 그룹홈 운영 등 다양한 사회 사목을 펼치고 있습니다.
낡은 여관 하나에서 시작한 꿈이 이제 다섯 대륙, 수십 개 언어를 아우르는 국제 선교 가족이 되었습니다. 슈타일의 그 작은 집에 불을 밝혔던 얀센 신부의 촛불 하나가 세계 곳곳에서 수만 개의 빛으로 번졌습니다.
연표성 아르놀드 얀센 생애 및 동시대 역사 연표
| 연도 | 분류 | 사건 내용 |
|---|---|---|
| 1837 | 얀센 | 11월 5일, 독일 라인강변 고흐(Goch)에서 출생. 11남매 중 둘째 |
| 1848 | 세계사 | 유럽 혁명의 해 – 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 등 전역에서 자유주의 혁명 발발. 교회와 왕정 체제에 대한 도전 심화 |
| 1855 | 얀센 | 뮌스터 교구 게스돈크(Gaesdonck) 기숙학교 입학. 수학·자연과학에서 탁월한 성적 |
| 1861 | 얀센 |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뮌스터 교구에서 사제 서품. 보홀트 중학교 물리학·교리 교사로 부임 |
| 1861 | 세계사 | 이탈리아 왕국 선포 – 리소르지멘토 완성. 교황청과 신생 이탈리아 왕국 간 긴장 고조 |
| 1870 | 교회사 | 교황청 국가 소멸 – 이탈리아 왕국이 로마 점령. 제1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중단. 교황 비오 9세 스스로 '바티칸의 포로' 선언 |
| 1871 | 세계사 | 독일 제국 선포 – 비스마르크 재상, 통일 독일 건설. 가톨릭 교회에 대한 문화 투쟁(Kulturkampf) 시작 |
| 1872 | 세계사 | 비스마르크, 교회의 교육 활동 금지법 제정. 수도회 해산령 시작. 가톨릭 학교 폐쇄 |
| 1873 | 얀센 | 교직 사임. 선교 잡지 『성심의 작은 사자(Kleiner Herz-Jesu-Bote)』 창간. 선교사 양성소 설립 준비 착수 |
| 1873 | 세계사 | 독일, 가톨릭 성직자 임명권을 국가가 통제하는 '5월 법령' 통과. 주교·사제 대거 투옥 |
| 1875 | 얀센 | 9월 8일 성모 마리아 탄생 축일, 네덜란드 슈타일(Steyl)에 '성 미카엘 대천사 선교사 양성 신학원' 설립 – SVD(말씀의 선교 수도회)의 모태 |
| 1879 | 얀센 | 중국에 첫 선교사 두 명 파견 – 그 중 한 명이 성 요셉 프라이나데메츠(Joseph Freinademetz) |
| 1884 | 세계사 | 베를린 회의 – 유럽 열강의 아프리카 분할. 식민지 선교 환경 재편 |
| 1885 | 얀센 | 슈타일 신학원, 정식 선교 수도회(SVD)로 공식 구성 |
| 1889 | 얀센 |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대축일, 성령 선교 수녀회(SSpS) 창립 |
| 1891 | 교회사 | 교황 레오 13세,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반포 – 노동자 권리·사회 정의 강조. SVD 인준 절차 진행 |
| 1892 | 얀센 | 아프리카 토고(Togo)에 SVD 선교사 파견 |
| 1895 | 얀센 | 미국에 첫 SVD 선교사 파견. 성령 선교 수녀회 첫 수녀들, 아르헨티나 선교 출발 |
| 1896 | 얀센 | 12월 8일, 성체조배 성령 선교 수녀회(SSpSAP) 창립 – 기도로 선교에 참여하는 관상 수녀회 |
| 1901 | 얀센 | 1월 25일, 교황 레오 13세, 말씀의 선교 수도회(SVD)를 가톨릭 교회 내 공식 수도회로 최종 인준 |
| 1909 | 얀센 | 1월 15일, 슈타일 수도원에서 71세로 선종. 이미 10개국 이상에서 1,500여 명의 선교사가 활동 중이었음 |
| 1914 | 세계사 | 제1차 세계대전 발발(~1918) – SVD 활동 지역 전반에 전쟁 여파 |
| 1946 | 교회사 | SVD 출신 탕경신(田耕莘) 토마스, 동아시아인 최초 추기경 임명 – 얀센의 현지화 선교 정신 결실 |
| 1975 | 얀센 | 10월 19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복자(福者)로 선포 – 선종 66주년 |
| 1984 | 한국 | 말씀의 선교 수도회(SVD) 한국지부 설립 |
| 2003 | 얀센 | 10월 5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성인(聖人)으로 선포. 성 다니엘 콤보니·성 요셉 프라이나데메츠와 함께 시성 |
| 2024 | 현재 | SVD 76개국 출신 5,754명이 79개국에서 활동. SSpS 약 3,800명·SSpSAP 400여 명 포함 1만 명 이상의 아르놀드 가족 활동 중 |
참고 문헌 및 참고 사이트
- Vatican News – 성 아르놀드 얀센 시성 관련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연설 (2003. 10. 6) vatican.va
- 말씀의 선교 수도회 공식 사이트 – 창립자 소개 svdvocations.org
- 가톨릭 굿뉴스 – 성인 자료실 · 성 아르놀드 얀센 mariasarang.net
- 말씀의 선교 수도회 한국지부 공식 사이트 svd.or.kr
- 성령선교수녀회 한국 – 창립자 아르놀드 얀센 소개 성령선교수녀회
- 가톨릭 평화방송 –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94) 19세기 선교 열정 cpbc.co.kr
- 위키백과 – 말씀의 선교수도회 ko.wikipedia.org
- Radio Veritas Asia – "St. Arnold Janssen: The father of missionary congregations" (2024. 1. 13) rvasia.org
- Encyclopedia Britannica – "Arnold Janssen" britannica.com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공식 사이트 cbck.or.kr
'1. 성인과 교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복자 미카엘 루아 - 돈 보스코의 첫 제자, 살레시오회의 두 번째 심장 (0) | 2026.06.23 |
|---|---|
| 성 루이지 스카로피오– 고아와 노인을 품은 사제 (0) | 2026.06.22 |
| 성 프란치스카 사베리 카브리니 - 미국 이민자들의 사도 (0) | 2026.06.21 |
| 성 베르나르디노– 시련을 이겨낸 사제이자 사회개혁가 (0) | 2026.06.20 |
| 성 엘리사벳 안 세튼 – 시련을 이겨낸 미국 가톨릭학교의 어머니 (1) | 2026.06.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