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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의 성 마카리오 - 사막의 영광과 신앙의 승리

by 기쁜소식 알리기 2025.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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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알렉산드리아의 영적 유산

4세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는 헬레니즘 문화와 그리스도교 신학이 교차하는 지중해 세계의 중심지였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기원전 332년에 세운 이 도시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수도로서 백만 명에 달하는 인구를 자랑했으며,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손꼽히는 파로스 등대와 고대 최대의 도서관을 보유한 지식의 요람이었습니다. 이러한 찬란한 문명의 한가운데서 알렉산드리아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가장 중요한 신학적 거점으로 부상했습니다. 서기 69년경 성 마르코가 복음을 전한 이후, 이 도시는 로마, 콘스탄티노폴리스, 안티오키아, 예루살렘과 함께 초대 교회의 다섯 총대주교좌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안티오키아 학파와 더불어 초기 그리스도교 신학 발전의 양대 축을 형성했으며, 오리게네스와 아타나시우스 같은 위대한 신학자들을 배출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성 마카리오 - 사막의 영광과 신앙의 승리

초기 생애와 과자 상인에서 은수자로의 전환

성 마카리오는 서기 300년경 이집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별명인 알렉산드리아의 마카리오는 그가 이집트 최대의 상업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과자 가게를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했던 초기 삶을 반영합니다. 당시 알렉산드리아는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로서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공존하는 국제도시였습니다. 젊은 시절 마카리오는 가축을 돌보는 평범한 목동으로 살았으나, 하느님의 부르심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성소 여정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한 부인을 폭행했다는 억울한 누명이 그에게 씌워졌고, 그는 길거리로 끌려나가 공개적으로 매를 맞으며 온갖 수모를 당해야 했습니다. 이 시련의 기간 동안 마카리오는 인내와 침묵으로 일관했으며, 결국 그의 무죄가 입증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그의 영적 여정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사막으로의 은퇴와 수도생활의 시작

30세가 되었을 때, 마카리오는 세속을 완전히 등지고 스케트 사막으로 들어가 은수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스케트 사막은 나일강 서쪽에 위치한 광활한 불모지로, 세상과 단절된 채 오직 하느님과의 일치만을 추구하는 사막 교부들의 영적 안식처였습니다. 그는 조그마한 움막에서 홀로 살며 매트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했고, 매일 단식재를 지키며 기도생활에만 전념했습니다. 그의 금욕생활은 극도로 엄격하여 7년 동안 더운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으며, 일주일에 단 한 번만 식사를 했습니다. 밤에는 바닥에 깔 것도 없이 맨바닥에서 잠깐 눈을 붙일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언제나 쾌활하고 친절하게 찾아오는 이들을 맞이했으며, 일부러 갈증을 느끼기 위해 물도 마시지 않는 극한의 극기를 실천했습니다. 이러한 엄격한 생활 속에서도 마카리오는 결코 게으르지 않았으며, 기도하거나 가르치는 일 외에는 반드시 수족을 움직여 자신과 타인을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사제 서품과 영적 지도자로서의 역할

40세에 마카리오는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이는 그의 덕망과 영적 권위가 널리 인정받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사제가 된 후 그는 치유와 예언의 특은을 받았으며, 은수자 공동체 내에서 영적 아버지로서 큰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의 주변에는 점차 그의 지도를 받고자 하는 수많은 은수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매주 일요일에는 은수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며 영적으로 유익한 강론을 했습니다. 은수자들의 역사를 기록한 팔라디우스는 마카리오가 행한 수많은 기적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마법사에 의해 말로 변신된 여인을 본래의 모습으로 되찾아 주었다는 놀라운 일화가 전해집니다. 그는 항상 간단한 몇 마디로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침묵 속에서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를 강조했습니다.

니케아 공의회 이후의 아리우스 논쟁과 박해

4세기 교회는 아리우스 이단 논쟁으로 극심한 분열을 겪고 있었습니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아리우스의 주장이 단죄되었지만, 논쟁은 오히려 더욱 격화되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위대한 주교 아타나시우스는 니케아 신경을 수호하며 아리우스파와 맞서 다섯 차례나 추방당하는 박해를 받았습니다. 373년 성 아타나시우스가 선종한 후,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374년경 알렉산드리아의 아리우스파 주교 루치오는 정통 신앙을 지키는 수도자들을 심하게 박해했습니다. 마카리오는 니트리아의 젊은 마카리오 및 다른 수도자 지도자들과 함께 황제에게 고발당해 나일강의 한 섬으로 유배되었습니다. 이 유배는 그들의 신앙을 꺾으려는 시도였지만, 마카리오는 이 시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유배 기간은 오래 가지 않았으며, 그들은 다시 사막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니트리아 수도원 회헌과 영적 유산

마카리오는 니트리아 사막의 수도원을 위해 회헌을 집필했습니다. 이 회칙은 수도생활의 원칙과 규율을 체계화한 중요한 문헌으로, 성 예로니모가 이를 인용하고 자신의 회칙에 삽입하여 그 정신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의 영적 가르침은 깊은 겸손과 자기비하에 기초했습니다. 그는 다른 은수자 모두를 자기보다 훌륭한 사람으로 여겼으며, 이러한 태도는 많은 일화로 전해집니다. 어느 수사가 더욱 덕행을 닦기 위해 그를 찾아갔을 때, 마카리오는 오히려 그 수사에게서 배울 점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의 기도에 대한 가르침은 단순하면서도 심오했습니다. 기도할 때에는 많은 말을 하지 말고, 다만 주님께 자비를 구하고 인도를 청하는 말만 마음으로 되풀이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마카리오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영적 서간들과 수덕생활에 관한 논문들은 그리스도교 영성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생애 말년과 사막 교부로서의 유산

마카리오는 스케트 사막에서만 60년을 살았습니다. 그는 390년경 91세의 나이로 평화롭게 선종했으며, 사막에 살았던 최초의 은수자로서 깊은 공경을 받았습니다. 그의 생애는 초기 수도생활의 이상을 완벽하게 구현한 모범이었습니다. 사막의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그는 기쁨과 평화를 잃지 않았으며, 수많은 제자들에게 영적 지혜를 전수했습니다. 그가 남긴 금언들은 사부들의 금언집에 수록되어 후대 수도자들의 영적 양식이 되었습니다. 마카리오의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초자연적인 일을 행하시는 구원의 신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성 아우구스티노의 신학과도 맥을 같이 하며, 기독교 신비주의 전통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오늘날 그의 시신은 이집트 스케테스에 있는 성 대 마카리오 수도원에 안치되어 있으며, 가톨릭교회는 매년 1월 15일을 그의 축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결론: 시련을 이겨낸 신앙의 증인

성 마카리오의 생애는 수많은 시련을 이겨낸 세계사적 신앙의 증거입니다. 억울한 누명과 공개적 수모, 아리우스 논쟁의 소용돌이 속에서의 유배와 박해에도 불구하고 그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하느님께 헌신했습니다. 4세기는 교회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으로 박해에서 벗어났지만, 동시에 교리 논쟁으로 내적 분열을 겪던 격동의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마카리오와 같은 사막 교부들은 세속을 떠나 순수한 신앙을 지켰으며, 수도생활이라는 새로운 영적 전통을 확립했습니다. 그들의 유산은 베네딕토, 바실리오, 안토니오로 이어지는 수도원 운동의 토대가 되었으며, 오늘날까지 가톨릭교회의 영적 보물로 남아 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성 마카리오는 평범한 과자 상인에서 위대한 영적 지도자로 변모한 삶을 통해,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용기와 시련 속에서도 굳건히 서 있는 신앙의 힘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성 마카리오 시대의 주요 역사적 사건 연표
연도 사건 역사적 의의
300년경 성 마카리오 출생 이집트에서 태어나 과자 상인으로 생활
313년 밀라노 칙령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리스도교 박해 중단 선포
325년 니케아 공의회 아리우스 이단 단죄, 니케아 신경 확립
330년경 스케트 사막 입문 마카리오, 30세에 은수생활 시작
340년경 사제 서품 40세에 사제로 서품되어 영적 지도자 역할 시작
356년 아타나시우스 박해 콘스탄티우스 2세, 알렉산드리아 성당 급습
373년 아타나시우스 선종 알렉산드리아 대주교 아타나시우스 사망
374년경 나일강 유배 아리우스파 주교 루치오에 의해 유배당함
380년 테살로니카 칙령 테오도시우스 대제, 니케아 신앙을 국교로 선포
390년경 성 마카리오 선종 91세로 스케트 사막에서 평화롭게 서거

참고문헌 및 참고 사이트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상), 서울: 가톨릭출판사, 2004
  • 가톨릭굿뉴스 성인정보 - https://maria.catholic.or.kr
  • 한국가톨릭대사전 - 가톨릭평화방송
  • 초기 그리스도교 교부 문헌 연구, 가톨릭 신학논총
  • 알렉산드리아 교회사 자료, 콥트 정교회 문헌
  • 사부들의 금언집, 분도출판사
  • 팔라디우스, 라우시아코스 역사
  • 성 예로니모 서간집 및 수도 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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