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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세계사와 함께 보는 가톨릭

하늘을 향한 기하학브루넬레스키의 피렌체 대성당 돔불가능을 건축하다

by 기쁜소식 알리기 2026.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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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회사 · 건축사 시리즈 ⑤
 

센터링 없이 쌓아올린 400만 개의 벽돌 — 1420~1436년, 16년에 걸친 기적.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이중 껍질 돔과 어골 패턴으로 완성한 르네상스 건축 혁명의 기록.

🏛 건축물: 피렌체 대성당 돔 (1420~1436) 📐 분류: 르네상스 건축 · 가톨릭 건축사 🎯 대상: 건축·역사·신앙에 관심 있는 모든 이
114년
미완성으로 남은 시간
45.5m
돔 내부 직경
400만
사용된 벽돌 개수
16년
건축 기간
1296년, 피렌체 공화국은 자신들의 부와 신앙을 상징할 거대한 대성당 건축을 시작했습니다.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Santa Maria del Fiore), 곧 "꽃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입니다. 거대한 팔각형 교차부(transept crossing)는 설계되었지만, 그 위를 덮을 돔을 어떻게 건축할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직경 45.5미터, 지면에서 55미터 높이에 무게 37,000톤의 돔을 올린다는 것은 당시 기술로는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렇게 114년 동안 대성당은 지붕 없이 하늘을 향해 뚫려 있었습니다. 그때 한 남자가 나타났습니다. 금세공사 출신의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 1377~1446)였습니다.

피렌체 대성당과 불가능한 도전 114년간 하늘로 열려 있던 팔각형 공간

1296년 아르놀포 디 캄비오(Arnolfo di Cambio)가 설계한 피렌체 대성당은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이 혼합된 거대한 구조였습니다. 길이 153미터, 너비 90미터에 달하는 이 성당은 피렌체 공화국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려는 명백한 정치적·종교적 선언이었습니다. 건축이 진행되면서 교차부 위에 거대한 팔각형 공간이 완성되었지만,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팔각형 드럼(drum, 돔을 받치는 원통형 구조)의 내부 직경은 45.5미터였습니다. 이것은 로마 판테온(직경 43.3m)보다도 컸습니다. 판테온은 콘크리트로 만든 반구형 돔이었고, 기초부터 돔까지 일체형으로 건축되었습니다. 그러나 피렌체 대성당은 이미 드럼이 완성된 상태였고, 그 위 55미터 높이에 돔을 올려야 했습니다. 더욱이 고딕 양식의 뾰족한 돔을 원했기 때문에 반구형이 아닌 첨두형(pointed dome)이어야 했습니다.

기술적 난제
당시 대형 돔 건축의 표준 방법은 센터링(centering)이었습니다. 센터링은 돔이 완성될 때까지 내부를 지탱하는 거대한 목재 비계(scaffolding)입니다. 그러나 피렌체 대성당의 경우 세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1) 45.5미터 직경의 센터링을 만들 목재가 피렌체에 충분하지 않았고, (2) 55미터 높이에 센터링을 세우고 해체하는 비용이 천문학적이었으며, (3) 무엇보다 그 무게를 드럼이 견딜 수 없었습니다. 브루넬레스키는 센터링 없이 돔을 건축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브루넬레스키의 천재성 — 금세공사에서 건축가로 로마 여행과 고대 건축의 재발견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는 1377년 피렌체의 유복한 공증인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그가 법률가가 되길 원했지만, 브루넬레스키는 금세공과 조각에 재능을 보였습니다. 1401년 그는 피렌체 세례당 청동문 제작 공모전에 참가했으나 로렌초 기베르티(Lorenzo Ghiberti)에게 패배했습니다. 이 패배는 그의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그는 조각 대신 건축으로 방향을 틀었고, 친구 도나텔로(Donatello)와 함께 로마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로마에서 브루넬레스키는 판테온, 콜로세움, 포로 로마노의 폐허를 철저히 연구했습니다. 그는 줄자를 들고 고대 건축물을 측정하고, 구조의 원리를 파악했습니다. 특히 판테온의 콘크리트 돔 구조와 무게 분산 방법을 깊이 탐구했습니다. 그는 고대 건축가들이 돔의 무게를 여러 층으로 나누고, 리브(rib, 갈비뼈처럼 돔을 지탱하는 구조)를 사용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지식이 훗날 피렌체 돔 설계의 핵심 아이디어가 되었습니다.

"고대인들은 우리보다 더 많이 알았다. 우리는 그들의 지혜를 재발견할 뿐이다." —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로마 여행 중

브루넬레스키는 단순히 모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대의 원리를 이해한 뒤, 자신만의 혁신을 더했습니다. 판테온은 콘크리트 돔이었지만, 피렌체에서는 벽돌과 석재를 사용해야 했습니다. 판테온은 반구형이었지만, 피렌체는 첨두형이어야 했습니다. 브루넬레스키는 이 두 가지 제약을 오히려 창의성의 원천으로 만들었습니다.

1418년 공모전 — 달걀로 설득한 남자 센터링 없는 돔 건축 선언

1418년, 피렌체 대성당 건축 위원회(Opera del Duomo)는 돔 설계 공모전을 열었습니다. 유럽 전역에서 건축가와 기술자들이 모여들었지만, 아무도 센터링 없이 돔을 건축할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브루넬레스키만이 센터링 없는 돔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조롱했고, 구체적인 설계도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브루넬레스키는 경쟁자들에게 아이디어를 빼앗길까 두려워 자세한 도면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브루넬레스키는 위원회에 이렇게 제안했습니다. "달걀을 책상 위에 세울 수 있는 사람에게 돔 건축을 맡기십시오." 여러 건축가가 시도했지만 달걀은 계속 넘어졌습니다. 브루넬레스키는 달걀 끝을 살짝 깨서 평평하게 만든 뒤 세웠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하면 우리도 할 수 있다"고 항의하자, 브루넬레스키는 대답했습니다. "내 설계도를 보여주면 여러분도 돔을 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디어는 이미 내 것입니다."

결국 1420년, 브루넬레스키는 로렌초 기베르티와 공동으로 돔 건축 책임자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좋지 않았고, 브루넬레스키는 실질적인 주도권을 쥐기 위해 계속 싸워야 했습니다. 결국 기베르티는 1425년경 프로젝트에서 물러났고, 브루넬레스키가 단독 책임자가 되었습니다.

이중 껍질 돔 — 브루넬레스키의 핵심 혁신 두 개의 돔이 하나를 지탱하다

브루넬레스키의 가장 중요한 혁신은 이중 껍질 돔(double-shell dome) 구조였습니다. 그는 돔을 두 층으로 나누었습니다. 안쪽의 내부 돔(inner dome)과 바깥쪽의 외부 돔(outer dome)이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서로를 지탱하는 구조였습니다.

 
이중 껍질 돔 구조
Two concentric domes with interlocking support

내부 돔의 두께는 약 2.3미터, 외부 돔은 약 90센티미터로 상대적으로 얇았습니다. 두 돔 사이 공간(약 1.2미터)에는 계단과 통로가 설치되어 유지보수가 가능했습니다. 이 구조의 핵심은 무게 분산이었습니다. 외부 돔은 비와 눈으로부터 내부를 보호하면서도 가벼운 무게로 내부 돔에 과도한 하중을 주지 않았습니다. 내부 돔은 실제 구조적 하중을 견디는 역할을 했습니다. 두 돔은 수평 링(horizontal rings)과 수직 리브(vertical ribs)로 연결되어 일체형처럼 작동했습니다.

이 구조 덕분에 브루넬레스키는 센터링 없이도 돔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내부 돔이 먼저 쌓이면서 자체적으로 지탱하는 구조가 되었고, 외부 돔은 그 위에 '기대어' 쌓였습니다. 이것은 당시로서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었습니다.

어골 패턴 — 벽돌이 스스로 서다 Herringbone pattern, spina pesce

센터링 없이 돔을 쌓는다는 것은 벽돌이 완전히 건조되기 전까지 스스로 제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브루넬레스키는 이를 위해 어골 패턴(herringbone pattern, 이탈리아어로 spina pesce)을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벽돌을 비스듬히 교차시켜 쌓는 방법으로, 마치 물고기 가시(herring bone)처럼 보입니다.

 
어골 패턴 쌓기 (Spina Pesce)
Self-supporting brickwork without centering

브루넬레스키는 수평으로 여러 층의 벽돌을 쌓은 뒤, 일정 간격으로 수직에 가까운 벽돌(herringbone bricks)을 비스듬히 끼워 넣었습니다. 이 수직 벽돌들이 일종의 '미니 리브' 역할을 하며 아래 벽돌들이 미끄러지지 않게 고정했습니다. 이 방법으로 쌓은 벽돌은 회반죽이 마르기 전에도 자체 마찰력으로 제자리를 유지했습니다. 약 400만 개의 벽돌이 이 방식으로 쌓였으며, 이것이 센터링 없는 건축을 가능하게 한 핵심 기술이었습니다.

어골 패턴은 브루넬레스키의 독창적 발명이 아니었습니다. 고대 로마 건축에서도 사용된 기법이었고, 중세 이탈리아의 일부 지역 건축에서도 발견됩니다. 그러나 이것을 거대한 돔 건축에 체계적으로 적용하고, 이중 껍질 구조와 결합시킨 것은 브루넬레스키가 최초였습니다. 그는 고대의 지혜를 재발견하되, 자신의 문제에 맞게 재창조했습니다.

8개의 주요 리브와 16개의 보조 리브 팔각형 돔의 골격

피렌체 대성당 돔은 팔각형입니다. 브루넬레스키는 팔각형의 각 모서리를 따라 8개의 주요 리브(primary ribs)를 세웠습니다. 이 리브들은 백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외부에서도 뚜렷이 보입니다. 각 주요 리브 사이에는 다시 2개의 보조 리브(secondary ribs)가 있어 총 16개의 보조 리브가 돔 전체를 지탱합니다. 주요 리브와 보조 리브는 모두 기초(드럼)에서 시작해 정점(랜턴 기초)까지 뻗어 올라갑니다.

이 리브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돔의 구조적 골격입니다. 리브는 돔의 수직 하중을 드럼으로 전달하는 동시에, 수평 방향의 팽창력(outward thrust)을 억제합니다. 돔은 자체 무게 때문에 바깥쪽으로 벌어지려는 힘을 받는데, 리브와 수평 링(horizontal chains)이 이를 막아줍니다. 브루넬레스키는 내부 돔에 목재와 철로 된 수평 링을 여러 층에 걸쳐 설치하여 돔이 벌어지는 것을 방지했습니다.

랜턴 — 돔의 왕관 빛과 무게의 역설

돔 정상에는 랜턴(lantern)이라 불리는 작은 탑이 올라갑니다. 랜턴은 돔 내부로 빛을 끌어들이는 채광창이자, 동시에 돔 전체의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구조물입니다. 브루넬레스키는 돔이 완성되기 전에 이미 랜턴 설계를 마쳤으나, 실제 건축은 그의 사후인 1461년에야 시작되어 1471년 완공되었습니다.

랜턴의 무게는 약 750톤입니다. 이 엄청난 무게가 돔 정점에 실리면 오히려 돔이 안정화됩니다. 마치 텐트의 중앙 기둥이 천을 팽팽하게 잡아주듯, 랜턴은 돔의 여덟 방향 리브를 아래로 당겨 구조 전체를 고정시킵니다. 무게가 구조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강화하는 역설. 이것이 브루넬레스키 설계의 놀라운 점입니다.

브루넬레스키의 또 다른 혁신 — 원근법의 발명 건축가이자 수학자, 예술 혁명가

브루넬레스키는 돔 건축 외에도 서양 미술사를 바꾼 또 하나의 업적을 남겼습니다. 바로 선형 원근법(linear perspective)의 발명입니다. 1415년경 그는 피렌체 세례당을 그린 두 개의 실험적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는 소실점(vanishing point)과 지평선(horizon line) 개념을 처음으로 수학적으로 정립했고, 이것을 이용해 3차원 공간을 2차원 평면에 정확하게 재현하는 방법을 증명했습니다.

브루넬레스키의 원근법은 마사초(Masaccio), 파올로 우첼로(Paolo Uccello),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에게 전수되었고, 르네상스 회화 전체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라파엘로의 완벽한 공간 표현은 브루넬레스키의 수학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건축가가 화가들에게 보는 방법을 가르친 것입니다.

"브루넬레스키는 건축가일 뿐 아니라 수학자였다. 그는 공간을 계산하는 방법을 알았고, 그 지식을 돌과 그림 모두에 적용했다." —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 「예술가 열전」(1550)

1436년 3월 25일 — 봉헌식과 역사적 순간 교황 에우제니오 4세의 축성 미사

1436년 3월 25일, 성모 영보 대축일에 피렌체 대성당의 봉헌식이 거행되었습니다. 교황 에우제니오 4세(Eugenius IV)가 직접 집전한 이 미사는 피렌체 역사상 가장 성대한 행사 중 하나였습니다. 돔은 완전히 완성되지 않았지만(랜턴은 아직 없었음), 구조적으로 안정되었고 내부 장식도 상당 부분 완료되어 봉헌이 가능했습니다.

당대 인문주의자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는 이 순간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 구조물은 너무나 거대하여 모든 토스카나 사람들을 그 그늘 아래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대성당 내부는 약 30,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고, 피렌체 인구의 상당 부분이 이 공간 안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돔은 단순한 종교 건축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피렌체 공화국의 정치적·문화적 정체성 그 자체였습니다.

브루넬레스키는 봉헌식에 참석했지만, 1446년 4월 15일, 69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그는 대성당 지하에 묻혔으며, 그의 묘비에는 간단한 글귀가 새겨졌습니다.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위대한 재능의 건축가". 그의 돔은 오늘날까지 600년 가까이 피렌체 하늘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피렌체 돔의 유산 — 르네상스 건축의 출발점 미켈란젤로, 크리스토퍼 렌, 그리고 모든 돔

브루넬레스키의 돔은 르네상스 건축의 원형(archetype)이 되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성 베드로 대성전 돔(1547~1590)을 설계할 때, 그는 브루넬레스키의 이중 껍질 구조를 참고했습니다. 크리스토퍼 렌(Christopher Wren)이 런던 세인트 폴 대성당(1675~1710)을 설계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미국 국회의사당 돔(1855~1866), 파리 앵발리드 돔(1677~1706) 등 이후 수백 년간 지어진 거의 모든 대형 돔 건축물이 브루넬레스키의 원리를 계승했습니다.

가톨릭 교회 건축사에서 브루넬레스키 돔의 의미는 특별합니다. 중세 고딕 성당이 수직성과 빛을 강조했다면, 르네상스 돔은 기하학적 완전성인간 이성의 승리를 상징했습니다. 하느님의 창조 질서는 수학으로 표현될 수 있고, 인간의 이성은 그 질서를 이해하고 재현할 수 있다는 확신. 이것이 르네상스 가톨릭 건축의 핵심 정신이었고, 브루넬레스키가 그 길을 열었습니다.

오늘날 피렌체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 돔을 올려다봅니다. 붉은 벽돌로 덮인 거대한 팔각형이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모습은 6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경외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한 남자의 천재성. 그것이 돌과 벽돌로 영원히 새겨진 증언입니다.

피렌체 대성당과 브루넬레스키 연표

1296년 기공부터 현재까지, 돔이 걸어온 시간

연도 사건 주요 내용 및 역사적 의의
1296년 피렌체 대성당 기공 건축가 아르놀포 디 캄비오 설계. 이전 성당(산타 레파라타)을 철거하고 새 대성당 건축 시작. 피렌체 공화국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려는 야심찬 프로젝트.
1302년 아르놀포 디 캄비오 사망 초대 건축가 사망. 이후 프로젝트는 여러 건축가가 이어받으며 진행됨. 설계는 수차례 변경되며 건축 기간이 장기화됨.
1367년 팔각형 드럼 설계 확정 대성당 교차부 위에 올릴 팔각형 드럼(돔 기초) 설계가 확정됨. 내부 직경 45.5미터라는 거대한 규모로 인해 돔 건축 방법은 미정 상태로 남음.
1377년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출생 피렌체의 공증인 가문에서 출생. 어린 시절부터 수학과 기계에 관심을 보였으며, 금세공 수업을 받음.
1401년 세례당 청동문 공모전 참가 브루넬레스키가 로렌초 기베르티와 경쟁했으나 패배. 이 경험이 그를 조각에서 건축으로 방향을 틀게 만든 전환점이 됨.
1402~1418년 로마 여행과 고대 건축 연구 친구 도나텔로와 함께 로마 폐허를 연구. 판테온, 콜로세움 등 고대 건축물을 측정·분석하며 돔 건축 원리를 깨달음. 이 지식이 훗날 피렌체 돔 설계의 토대가 됨.
1410년 팔각형 드럼 완성 대성당 교차부 위 팔각형 드럼이 완성되었으나, 그 위에 올릴 돔 건축 방법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음. 대성당은 지붕 없이 114년간 하늘로 열려 있었음.
1415년경 브루넬레스키, 선형 원근법 발명 피렌체 세례당을 그린 실험 그림을 통해 소실점과 지평선 기반 원근법을 수학적으로 정립. 이후 르네상스 회화 전체의 토대가 되는 혁명적 발명.
1418년 돔 설계 공모전 피렌체 대성당 건축 위원회가 돔 설계 공모전 개최. 브루넬레스키만이 센터링 없는 돔 건축이 가능하다고 주장. '달걀 세우기' 일화가 전해짐.
1420년 8월 돔 건축 시작 브루넬레스키와 기베르티가 공동 책임자로 임명되어 돔 건축 착수. 브루넬레스키는 센터링 없이 이중 껍질 돔, 어골 패턴 벽돌 쌓기, 리브 구조로 혁신적 설계 실행.
1425년경 기베르티 프로젝트 이탈 공동 책임자였던 기베르티가 프로젝트에서 물러남. 브루넬레스키가 단독 책임자가 되어 자신의 설계를 온전히 실현할 수 있게 됨.
1434년 내부 돔 완성 이중 껍질 돔의 내부 돔 구조가 완성됨. 약 400만 개의 벽돌이 어골 패턴으로 쌓였으며, 센터링 없이 완성된 최초의 대형 돔.
1436년 3월 25일 대성당 봉헌식 교황 에우제니오 4세 집전으로 성모 영보 대축일에 봉헌식 거행. 랜턴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나 돔 구조는 안정되어 봉헌이 가능했음. 피렌체 역사상 가장 성대한 행사.
1446년 4월 15일 브루넬레스키 사망 69세로 피렌체에서 사망. 대성당 지하에 안장됨. 묘비에는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위대한 재능의 건축가"라고 새겨짐.
1461~1471년 랜턴 건축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랜턴(돔 정상 탑)이 그의 사후에 건축됨. 약 750톤 무게의 랜턴은 돔 구조를 안정화시키는 동시에 내부로 빛을 끌어들이는 역할.
1572~1579년 돔 내부 프레스코 제작 조르조 바사리와 페데리코 추카리가 돔 내부에 최후의 심판 프레스코화 제작. 약 3,600제곱미터 면적에 그려진 거대한 종교화.
1887년 파사드 완성 대성당 정면(파사드)이 591년 만에 완성됨. 네오고딕 양식의 대리석 파사드로, 초기 설계와는 다른 19세기 양식으로 완성됨.
198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피렌체 역사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됨. 대성당과 돔은 그 핵심 유산으로 인정받음.
2013~2015년 대규모 복원 작업 외부 벽돌과 대리석 리브 복원. 600년간 축적된 오염물질 제거와 구조적 점검. 돔은 여전히 구조적으로 안정된 상태로 확인됨.
현재 연간 400만 명 이상 방문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방문되는 성당 중 하나. 돔 정상까지 463개 계단을 올라갈 수 있으며, 피렌체 전경을 조망할 수 있음. 600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 최대 석조 돔으로 기록됨.

참고 문헌 및 참고 사이트

  • King, R. (2000). Brunelleschi's Dome: How a Renaissance Genius Reinvented Architecture. Walker & Company. (한국어판: 김홍래 역, 브루넬레스키의 돔, 을유문화사, 2004)
  • Manetti, A. (1480s). The Life of Brunelleschi. (브루넬레스키 제자가 쓴 최초의 전기, 영역본 1970)
  • Prager, F. D. & Scaglia, G. (1970). Brunelleschi: Studies of His Technology and Inventions. MIT Press.
  • Battisti, E. (1981). Filippo Brunelleschi: The Complete Work. Rizzoli.
  • Saalman, H. (1980). Filippo Brunelleschi: The Cupola of Santa Maria del Fiore. Zwemmer.
  • Vasari, G. (1568). Le vite de' più eccellenti pittori, scultori, e architettori. (브루넬레스키 편 포함)
  • Opera di Santa Maria del Fiore 공식 사이트: https://www.duomo.firenze.it
  • Vatican 공식 사이트 (교황청): https://www.vatican.va
  • Khan Academy — Brunelleschi's Dome: https://www.khanacademy.org/humanities
  • 한국 교회사 연구소: https://www.ikch.org

※ 본 글은 위 참고 문헌의 내용을 바탕으로 독창적으로 서술한 교육·정보 목적의 원고입니다. 직접 인용이 아닌 재해석·요약이며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 2025 가톨릭 세계사 연구 · 가톨릭 교회사 · 건축사 시리즈 ⑤

본 콘텐츠는 교육 및 정보 제공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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