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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세계사와 함께 보는 가톨릭

민중 신심 운동과 성체 거동— 시련을 이겨낸 신앙의 두 얼굴

by 기쁜소식 알리기 2026.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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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앙 역사

박해와 혼란의 세계사 속에서도 꺼지지 않았던 가톨릭 신자들의 살아있는 믿음

신앙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로마 제국의 박해, 중세의 흑사병, 종교개혁의 소용돌이, 근대 혁명기의 반교권 운동, 심지어 두 차례의 세계대전까지 — 가톨릭 신앙은 왜 무너지지 않았을까요? 그 답 중 하나가 바로 '민중 신심(Popular Piety)'과 '성체 거동(Corpus Christi Procession)'이라는 두 흐름에 있습니다.

민중 신심은 공식 전례 밖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난 신자들의 기도와 경신 행위입니다. 묵주 기도, 성인 공경, 성지 순례, 십자가의 길 같은 것들이 여기에 속하는데요. 이것들은 신학적으로 정교하게 다듬어진 예식이라기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이 하느님께 다가가기 위해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온 '살아있는 신앙의 언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성체 거동은, 그 민중 신심이 가장 웅장하게 표현되는 방식 중 하나입니다. 성체를 모시고 거리를 행진하는 이 전통은 단순한 종교 행사가 아니라, 수백 년에 걸쳐 세계사의 격랑 속에서 가톨릭 공동체가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온 방식이기도 합니다.

 

민중 신심은 어디서 왔을까?

민중 신심의 뿌리는 초대 교회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로마 제국의 박해(1~3세기)를 피해 카타콤(지하 묘지)에 숨어 예배를 드리던 그리스도인들은, 공식 전례 외에도 순교자들을 기리고 성인들의 전구를 청하는 다양한 경신 행위를 발전시켰어요. 이것이 훗날 민중 신심의 토대가 됩니다.

중세 시대(5~15세기)에는 민중 신심이 더욱 꽃을 피웠습니다. 글을 읽지 못하는 평민들에게 성경의 가르침을 전달하는 방법이 바로 성화(icon), 성극(mystery play), 성인 축일, 그리고 공동체가 함께 참여하는 행렬이었거든요. 유럽 전역의 대성당과 수도원을 순례하는 문화도 이때 정착됩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 로마 순례, 예루살렘 성지 순례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런데 14세기에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페스트)은 민중 신심의 성격을 크게 바꿔놓습니다. 인구의 3분의 1이 목숨을 잃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더욱 간절하게 성모님께 전구를 청하고 묵주 기도에 매달렸습니다. 이 시기에 묵주 기도와 십자가의 길 기도가 더욱 깊이 민중의 삶에 뿌리를 내립니다.

💡 가톨릭에서 '민중 신심(Pietas Popularis)'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공식적으로 재평가되었으며, 교황청은 2002년 「전례와 민중 신심에 관한 지침」을 통해 이를 공식 전례와 조화를 이루어야 할 소중한 신앙 유산으로 인정했습니다.
성체 거동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성체 거동, 즉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행렬(Corpus Christi Procession)'은 13세기 유럽에서 시작됩니다. 직접적인 계기는 1208년 벨기에 리에주의 수녀 성녀 율리아나(Juliana of Liège)가 받은 신비로운 체험이었습니다. 그녀는 환시 중에 보름달에 검은 반점이 보이는 것을 봤는데, 이는 전례력에 성체를 기리는 고유한 축일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후 율리아나의 노력과 당시 리에주 대교구의 지지를 통해 지역 차원의 성체 축일이 먼저 도입되었고, 1264년 교황 우르바노 4세가 교황 칙서 「트란시투루스(Transiturus)」를 통해 전 교회적인 '성체 축일(Corpus Christi)'을 제정합니다. 이 칙서의 전례문은 당대 최고의 신학자 성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가 직접 작성했다고 전해집니다.

14세기부터 이 축일에 성체를 모시고 마을을 돌아다니는 행렬, 즉 성체 거동이 유럽 전역으로 퍼졌습니다. 사제가 성광(모양스트란스)에 모신 성체를 높이 들고 거리를 걷고, 신자들이 그 뒤를 따르며 찬미가를 부르는 장면은 중세 가톨릭 공동체의 가장 상징적인 모습 중 하나가 됐습니다.

"성체 거동은 단순한 행렬이 아닙니다.
그것은 온 세상을 향한 교회의 고백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의 도전과 교회의 응답

16세기에 접어들어 마르틴 루터(1517년), 장 칼뱅 등이 주도한 종교개혁은 민중 신심과 성체 신학 모두에 정면으로 도전을 던집니다. 루터는 미사의 희생 제사적 성격을, 칼뱅은 성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현존하신다는 '실체 변화(Transsubstantiatio)' 교의를 부정했습니다. 이로 인해 성체 거동은 신교 지역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가톨릭 교회는 이에 맞서 1545년부터 1563년까지 이어진 트리엔트 공의회(Concilium Tridentinum)를 통해 신앙의 기둥을 재정비합니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실체 변화 교의를 명확히 재확인하고, 성체 성사의 진실된 현존(Real Presence)을 교회의 공식 교의로 공포합니다. 이를 계기로 성체 거동은 더욱 강화된 신학적 토대 위에서 가톨릭 정체성의 상징으로 자리를 굳혔습니다.

이 시기는 세계사적으로도 격변의 시대였습니다. 신대륙 발견(1492년), 오스만 제국의 유럽 위협, 30년 전쟁(1618~1648년)으로 이어지는 혼란 속에서, 성체 거동은 가톨릭 국가와 지역 공동체가 자신들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정치적·종교적 행위이기도 했습니다.

근대 혁명과 반교권주의의 물결

17~18세기를 거쳐 계몽주의 사상이 퍼지고,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가톨릭 교회는 또 한 번 거센 풍파를 맞습니다. 혁명 정부는 교회 재산을 몰수하고, 성직자들을 추방하거나 처형했으며, 공개적인 종교 행사를 금지했습니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한때 '이성의 신전'으로 개조되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에 성체 거동은 사실상 불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농촌과 지방 공동체에서는 비밀리에, 혹은 박해가 잠잠해진 틈을 타 성체 행렬을 이어갔습니다. 민중 신심의 끈질긴 생명력이 발휘된 순간이었습니다. 19세기 초 나폴레옹이 교황 비오 7세와 정교 협약(Concordat, 1801년)을 체결하면서 종교의 자유가 어느 정도 회복되었고, 성체 거동도 다시 공개적으로 거행될 수 있었습니다.

한편 19세기 후반 이탈리아 통일(리소르지멘토) 과정에서 교황령이 상실되고, 교황 비오 9세가 바티칸에 '자발적 유폐'를 선언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이 혼란 속에서도 교회는 1870년 제1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교황 수위권과 무류성을 선포하며 신앙의 중심을 지켰습니다.

20세기 — 전쟁과 쇄신 사이에서

20세기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라는 전대미문의 재앙을 가져왔습니다. 나치 독일의 전체주의, 소련의 공산주의, 스페인 내전, 멕시코의 크리스테로 전쟁(1926~1929년) — 세계 곳곳에서 가톨릭 신자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습니다. 특히 멕시코에서는 반교권 정부에 맞서 "¡Viva Cristo Rey!(그리스도 왕 만세!)"를 외치며 순교한 신자들의 이야기가 지금도 전해집니다.

이러한 시련을 거친 뒤 교회는 1962년부터 1965년까지 제2차 바티칸 공의회(Concilium Vaticanum Secundum)를 열었습니다. 이 공의회는 교회를 현대 세계에 맞게 쇄신하면서도, 민중 신심의 가치를 재발견했습니다. 공의회 문헌은 민중 신심을 "전례의 대체재가 아니라, 전례 정신으로 이끄는 보완적 신심 행위"로 명확히 정의했습니다.

그리고 현재도 성체 거동은 세계 각지에서 매년 성체 성혈 대축일(매년 삼위일체 대축일 다음 목요일 또는 일요일)에 거행됩니다. 필리핀의 카리뇨사 행렬, 포르투갈 파티마의 성체 거동, 이탈리아의 지역별 전통 행렬은 물론, 한국의 각 교구에서도 이 전통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 가톨릭과 민중 신심

한국 가톨릭의 역사도 시련의 역사입니다. 1784년 이승훈이 베이징에서 영세를 받고 귀국하면서 시작된 조선 교회는, 신유박해(1801년), 기해박해(1839년), 병오박해(1846년), 병인박해(1866년)에 이르는 수십 년간의 잔혹한 박해를 겪었습니다. 이 시기에 약 1만 명에 달하는 신자가 순교했고,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103위 성인이 탄생했습니다.

이 박해의 시간 동안 한국의 신자들은 공식 전례를 거행할 사제도, 성당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문으로 된 기도서를 필사해 돌려 읽고, 묵주 기도를 바치며,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민중 신심의 힘으로 신앙을 지켰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 교회의 탄생 자체가 민중 신심의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날 한국의 각 교구는 성체 대축일에 성체 거동을 거행하며, 묵주 기도 운동, 순교자 성지 순례, 성체 조배(聖體 朝拜) 등의 민중 신심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과거의 신앙이 현재와 이렇게 연결되고 있다는 사실이 참 놀랍지 않나요?

시련을 이겨낸 신앙의 힘

민중 신심과 성체 거동의 역사를 돌아보면, 신앙이 단순히 제도와 조직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박해와 혁명과 전쟁 앞에서 교회의 건물은 무너질 수 있고 성직자는 추방될 수 있지만, 신자들의 마음속에 뿌리내린 기도와 신심의 언어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성체 거동은 그 상징입니다. 빵의 형상 안에 그리스도가 현존한다는 믿음을 공개적으로, 길거리에서, 온 세상 앞에서 고백하는 행위 — 그것은 어떤 시대에도 신앙 공동체에 필요한 용기의 몸짓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길고 강인한 신앙의 서사 중 하나로 기록될 만합니다.

세계사의 굵직한 사건들 사이사이에서도 묵묵히 묵주를 쥐고 기도했던 수많은 이름 없는 신자들의 신심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교회의 토대입니다. 그 사실을 기억할 때, 민중 신심과 성체 거동은 단순한 종교적 전통을 넘어 깊은 역사적 의미를 지닌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다가옵니다.

📜 민중 신심 · 성체 거동 관련 세계사 연표
연도/시기 사건명 주요 내용 및 역사적 의미
1~3세기 로마 제국의 박해 네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등의 박해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카타콤에서 신앙을 지킴. 순교자 공경과 초기 민중 신심의 토대 형성.
313년 밀라노 칙령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자유를 공인. 공개 전례와 행렬 문화의 법적 기반 마련.
1208년 성녀 율리아나의 환시 벨기에 리에주의 수녀 율리아나가 성체 축일 제정을 위한 환시를 체험. 성체 거동의 신학적 출발점.
1264년 성체 대축일 제정 교황 우르바노 4세가 칙서 「트란시투루스」를 통해 전 교회적 성체 축일 공포.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전례문 작성.
1347~1351년 흑사병(페스트) 대유행 유럽 인구의 약 1/3 사망. 절망 속에서 묵주 기도, 성모 신심, 십자가의 길이 폭발적으로 확산. 민중 신심이 깊이 뿌리내리는 계기.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 시작 마르틴 루터의 95개조 논제 발표. 성체 신학 논쟁이 촉발되고 신교 지역에서 성체 거동 폐지.
1545~1563년 트리엔트 공의회 가톨릭 교회가 종교개혁에 맞서 신앙 교의를 재확인. 실체 변화(성체 안의 그리스도 현존) 교의 공포. 성체 거동의 신학적 기반 강화.
1618~1648년 30년 전쟁 유럽 전역의 구교·신교 충돌.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종교적 공존 원칙 확립. 성체 거동은 가톨릭 정체성의 공개 선포 역할.
1784년 한국 천주교 창설 이승훈이 북경에서 영세 후 귀국. 사제 없이 신자들만으로 교회 형성 — 민중 신심이 신앙 유지의 핵심 역할.
1789년 프랑스 혁명 반교권 혁명 정부가 성체 거동 금지, 교회 재산 몰수. 신자들이 비밀리에 신심 행위 유지. 민중 신심의 저항적 생명력 확인.
1801년 나폴레옹 정교 협약 나폴레옹과 교황 비오 7세 간 협약 체결. 프랑스 내 가톨릭 신앙 자유 부분 회복, 성체 거동 재개.
1801·1839·1866년 조선 천주교 박해 신유·기해·병인 박해로 수천~수만 명 순교. 성체 성사 없이도 묵주 기도와 민중 신심으로 신앙 보존.
1870년 제1차 바티칸 공의회 교황 무류성 교의 선포. 이탈리아 통일로 교황령 상실 위기 속 교회 권위 재확립.
1926~1929년 멕시코 크리스테로 전쟁 반교권 정부에 맞선 가톨릭 신자 무장 봉기. 성체 거동 등 공개 신심 행위 금지에 대한 저항.
1939~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나치 독일, 소련 공산주의 등 전체주의 체제의 가톨릭 탄압. 수용소 안에서도 묵주 기도와 비밀 전례 거행.
1962~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의 현대적 쇄신. 민중 신심을 전례와 조화 이루는 소중한 신앙 표현으로 공식 재평가.
1984년 한국 103위 성인 시성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서울 방문 시 103위 순교자 시성. 박해 속 민중 신심의 결실이 세계 교회에 공인됨.
2002년 성청 민중 신심 지침 발표 교황청 경신성사부가 「전례와 민중 신심에 관한 지침」 발표. 성체 거동 등 민중 신심 행위에 대한 현대적 신학 기준 제시.
현재 전 세계 성체 거동 거행 매년 성체 성혈 대축일에 필리핀, 이탈리아, 포르투갈, 한국 등 전 세계 가톨릭 교회에서 성체 거동 거행. 민중 신심의 살아있는 전통 계속.
참고 문헌 및 참고 사이트
  • 교황청 경신성사부, 「전례와 민중 신심에 관한 지침」, 2002 — Vatican 공식 문서 (영문)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한국 가톨릭 교회 역사 — www.cbck.or.kr
  • 가톨릭 대사전 (한국교회사연구소, 1985~2006) — 민중 신심, 성체 거동 항목 참조
  • Enchiridion Indulgentiarum(교황청 사면록), 제4판, 1999
  • New Catholic Encyclopedia (2nd ed.), Gale /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Press, 2003 — 「Corpus Christi Procession」, 「Popular Piety」 항목
  • Rubin, Miri, Corpus Christi: The Eucharist in Late Medieval Cultur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1
  • 성체 대축일 및 성체 거동 개요 —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 (USCCB)
  • 한국 천주교 순교자 현양위원회 — 순교자 관련 공식 정보

※ 본 글은 위 공식 문헌 및 학술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된 교육·정보 목적의 콘텐츠입니다. 직접 인용 없이 내용을 재구성하였으며, 저작권 침해 의도가 없습니다.

 

민중 신심 운동과 성체 거동— 시련을 이겨낸 신앙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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