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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세계사와 함께 보는 가톨릭

기사단과 자선 활동 - 칼과 사랑을 함께 든 수도자들

by 기쁜소식 알리기 2026.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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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고통받는 순례자들

11세기 말, 성지 예루살렘에는 유럽 각지에서 온 순례자들로 붐볐어요. 그리스도의 무덤을 참배하려는 신심 깊은 신자들이었죠. 하지만 먼 길을 떠나온 순례자들은 질병과 도적의 위협에 시달렸습니다. 낯선 땅에서 병에 걸려도 돌봐줄 사람이 없었고, 강도들의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기도 했어요. 1048년경, 이탈리아 아말피 출신의 상인들이 예루살�lem에 병원을 세웠습니다. 세례자 성 요한에게 봉헌된 이 병원은 아픈 순례자들을 무료로 치료했어요. 처음에는 소수의 수사들이 운영하는 작은 병원이었지만, 점차 명성을 얻어갔습니다. 1099년 제1차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 이 병원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어요. 전쟁으로 다친 십자군 병사들과 계속 늘어나는 순례자들을 돌봐야 했으니까요. 당시 병원장이었던 복자 제라르두스는 병원을 크게 확장하고 조직을 체계화했습니다. 그는 병자를 우리의 주인이라고 불렀어요. 병자를 섬기는 것이 곧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라는 정신이었죠. 이것이 훗날 성 요한 기사단으로 발전하게 되는 시작이었습니다.

기사단과 자선 활동 - 칼과 사랑을 함께 든 수도자들

병원에서 기사단으로의 변화

12세기 초, 예루살렘 왕국은 계속되는 무슬림의 공격으로 위태로운 상황이었어요. 순례자들을 보호하고 병원을 지키기 위해서는 군사력이 필요했습니다. 1113년 교황 파스칼리스 2세는 성 요한 병원회를 공식 수도회로 인정했어요. 112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 수도회는 점차 군사적 성격을 띠게 되었습니다. 회원들은 수도자의 서원을 하면서 동시에 무술 훈련을 받았죠. 한 손에는 검을, 다른 손에는 십자가를 든 독특한 수도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이들은 검은 수도복 위에 흰 십자가를 달았어요. 전쟁터에서는 용맹한 기사로 싸우고, 병원에서는 헌신적인 간호사로 봉사했습니다. 이런 이중적 역할은 중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어요. 수도자가 칼을 든다는 것이 처음에는 논란이 되었지만, 교회는 이를 정당방위와 약자 보호의 차원에서 인정했습니다. 성 요한 기사단은 빠르게 성장했어요. 유럽 각지에서 귀족들의 아들들이 입회를 지원했고, 많은 기부금과 영지가 기사단에 기증되었습니다. 기사단은 예루살렘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 병원과 숙소를 세웠죠.

몰타의 수호자, 지중해의 병원

1291년 아크레가 함락되면서 십자군 국가들은 완전히 무너졌어요. 성 요한 기사단은 성지를 떠나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키프로스로, 그다음에는 1310년 로도스 섬으로 이동했죠. 로도스에서 기사단은 독립적인 국가를 건설했어요. 해군력을 키워 지중해에서 무슬림 해적으로부터 그리스도교 상선들을 보호했습니다. 동시에 병원 운영도 계속했어요. 로도스의 대병원은 당시 유럽에서 가장 발전된 의료 시설 중 하나였습니다. 침대가 100개가 넘었고, 전문 의사들이 상주했으며, 약국도 갖추고 있었죠. 1522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 술레이만이 대군을 이끌고 로도스를 공격했어요. 기사단은 6개월 동안 영웅적으로 저항했지만 결국 항복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술탄은 기사단의 용기에 감복해 명예로운 철수를 허락했어요. 기사단은 다시 본거지를 찾아야 했습니다. 1530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가 몰타 섬을 기사단에 양도했어요. 이때부터 성 요한 기사단은 몰타 기사단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몰타에서 기사단은 다시 한번 찬란한 역사를 써내려갔죠.

몰타 대포위전과 자선의 정신

1565년, 오스만 제국은 4만 대군으로 몰타를 공격했어요. 기사단의 병력은 겨우 700명, 몰타 민병대를 합쳐도 9천 명 정도였습니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죠. 하지만 기사단장 장 드 라 발레트의 지휘 아래 기사단은 4개월 동안 치열하게 싸웠어요. 이 전투에서 주목할 점은 기사단이 전투 중에도 부상자 치료를 멈추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적군 부상병도 치료해주었어요. 이는 기사단의 근본 정신이 자선과 박애에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결국 기사단은 승리했고, 몰타는 그리스도교 유럽의 방패가 되었어요. 전투가 끝난 후 라 발레트는 새로운 수도 발레타를 건설했는데, 그곳에도 대규모 병원을 세웠습니다. 성 요한 대병원이라 불린 이곳은 16세기 기준으로 혁명적인 의료 시설이었어요. 개인 침대가 있었고, 은 식기로 식사를 제공했으며, 환자들을 귀족처럼 대접했습니다. 전염병 환자는 격리 병동에 수용했고, 수술실도 따로 있었죠. 유럽 각지에서 의사들이 이곳에서 연수를 받으러 왔을 정도였어요.

다른 기사단들의 자선 활동

성 요한 기사단 외에도 여러 기사단이 자선 활동에 헌신했어요. 성전기사단은 원래 순례자 보호를 목적으로 1119년 창설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솔로몬 성전 터에 본부를 두어 성전기사단이라 불렸죠. 이들도 처음에는 순례자들에게 무료 숙소와 음식을 제공하며 자선 활동을 했어요. 나중에는 은행업까지 발전시켜 순례자들이 안전하게 돈을 맡기고 찾을 수 있게 했습니다. 비록 1307년 프랑스 왕 필리프 4세에 의해 억울하게 해산되었지만, 그들의 자선 정신은 역사에 기록되었어요. 튜턴 기사단은 1190년 아크레 공성전 중에 설립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독일어권 순례자와 병사들을 위한 야전 병원으로 시작했어요. 튜턴 기사단도 병자 돌봄을 핵심 사명으로 삼았습니다. 나중에 동유럽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 후에도 병원 운영을 계속했죠. 스페인의 산티아고 기사단, 칼라트라바 기사단 등도 각각 순례자 보호와 병자 돌봄에 힘썼어요. 이들 기사단은 모두 수도회의 서원을 지켰습니다. 청빈, 정결, 순명의 서원과 함께 병자를 섬기겠다는 서원을 했어요.

나폴레옹의 공격과 기사단의 위기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의 여파가 유럽을 휩쓸었어요. 수도회와 귀족 조직에 대한 적대감이 커졌습니다. 1798년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 도중 몰타를 점령했어요. 기사단은 거의 싸우지 않고 항복했습니다. 같은 가톨릭 신자들과 전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죠. 나폴레옹은 기사단의 모든 재산을 몰수하고 수도원을 폐쇄했어요. 수백 년간 이어온 몰타 기사단의 역사가 끊길 위기에 처했습니다. 기사단원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기사단장은 러시아로 망명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기사단의 종말을 예견했죠. 하지만 기사단은 살아남았습니다. 비록 영토는 잃었지만 정신은 계속 이어졌어요. 19세기 내내 기사단은 유럽 각지에서 병원과 구호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이탈리아 통일 과정에서도 시련을 겪었지만, 교황청의 지원 아래 명맥을 유지했어요. 1834년 로마에 본부를 정착시킨 기사단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자선 활동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현대의 몰타 기사단, 국경 없는 자선

오늘날 몰타 기사단의 정식 명칭은 예루살렘, 로도스, 몰타의 성 요한 병원 주권 군사 기사단이에요. 영토는 없지만 국제법상 주권 실체로 인정받는 독특한 지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110개 이상의 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고 있고, 유엔 옵서버 자격도 갖고 있어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여전히 자선 활동입니다. 전 세계 120개국에서 의료, 사회복지, 긴급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어요. 나환자촌 운영, 난민 지원, 재난 구호, 의료 봉사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합니다. 매년 4천만 명 이상이 기사단의 도움을 받고 있어요. 한국에도 몰타 기사단 한국지부가 있습니다. 1963년 설립되어 의료 봉사, 장애인 지원, 나환자 돕기 등의 활동을 하고 있죠. 특히 소록도 나환자촌 지원은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어요. 기사단원이 되기 위해서는 가톨릭 신자여야 하고, 고결한 품성과 봉사 정신을 갖춰야 합니다. 귀족 출신이어야 한다는 과거의 규정은 많이 완화되었어요. 중요한 것은 혈통이 아니라 봉사하려는 마음이니까요.

기사도 정신의 현대적 계승

중세 기사단들이 추구했던 이상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힘을 약자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었어요. 기사는 강한 자이지만 그 힘을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남을 돕는 데 써야 한다는 정신이었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몰타 기사단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900년 동안 병자와 가난한 이를 섬기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해왔다고요. 현대 사회에서 기사단의 정신은 여전히 중요해요. 경제력, 권력, 지식을 가진 이들이 그것을 자신만을 위해 쓰지 않고 사회를 위해 사용할 때 진정한 기사도가 실현됩니다. 의사가 가난한 환자를 무료로 치료하고, 변호사가 억울한 이를 위해 무료 변론을 하며, 기업가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모두 현대판 기사도예요. 몰타 기사단 외에도 가톨릭에는 여러 기사 단체가 있습니다. 콜럼버스 기사단은 북미 최대의 가톨릭 자선 단체로, 매년 수억 달러를 자선 사업에 쓰고 있어요. 성 라자로 기사단은 나환자 돕기에 특화되어 있죠. 이들 모두가 중세 기사단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칼을 내려놓고 사랑을 택하다

기사단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흥미로운 변화가 보여요. 처음에는 병원으로 시작했다가 군사 조직이 되었고, 다시 순수한 자선 단체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는 우연이 아니에요. 진정한 승리는 칼이 아니라 사랑으로 얻는 것임을 역사가 증명한 것이죠. 성 요한 기사단이 가장 빛났던 순간은 몰타 대포위전에서 승리했을 때가 아니라, 적군 부상병까지 치료해주었을 때였습니다. 오늘날 몰타 기사단이 존경받는 이유는 과거의 군사적 영광 때문이 아니라 현재의 자선 활동 때문이에요. 가톨릭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평화와 비폭력을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십자군은 역사적 오류였다고 반성하고 있죠. 하지만 기사단의 자선 정신만큼은 영원한 가치로 인정받고 있어요. 병자를 우리의 주인으로 섬긴다는 9백 년 전의 정신은 지금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기사가 될 수 있어요. 힘 있는 자가 약한 자를 돕고, 가진 자가 없는 자와 나누며, 건강한 자가 아픈 자를 돌볼 때 기사도 정신은 살아있는 것입니다.

주요 기사단 역사 연표

연도 주요 사건 자선 활동의 발전
1048년경 예루살렘에 성 요한 병원 설립 순례자 무료 치료 시작
1099년 제1차 십자군 예루살렘 점령 병원 확장, 부상병 치료
1113년 교황 파스칼리스 2세, 병원회 공식 인정 수도회로 승격
1119년 성전기사단 창설 순례자 보호 및 숙박 제공
1120년대 성 요한 병원회 군사화 병원 운영과 군사 활동 병행
1190년 튜턴 기사단 창설 야전 병원에서 시작
1291년 아크레 함락, 성지 상실 키프로스로 이동, 병원 재건
1307년 성전기사단 해산 자산 일부가 성 요한 기사단으로
1310년 로도스 섬 점령 로도스 대병원 건설
1522년 로도스 상실 유럽 각지에서 자선 활동 계속
1530년 몰타 섬 획득 몰타 기사단으로 개칭
1565년 몰타 대포위전 승리 전투 중에도 병원 운영
1575년 발레타 성 요한 대병원 완공 유럽 최고 수준 의료 시설
1798년 나폴레옹, 몰타 점령 영토 상실, 자선 활동은 계속
1834년 로마에 본부 정착 국제 자선 단체로 전환
1961년 유엔 옵서버 자격 획득 국제 인도주의 활동 확대
1963년 몰타 기사단 한국지부 설립 소록도 나환자 지원 시작
현재 120개국 활동 연 4천만 명 지원

참고자료

  • 한국가톨릭대사전 - 한국교회사연구소
  • 몰타 기사단 공식 웹사이트 (www.orderofmalta.int)
  • 몰타 기사단 한국지부 (www.orderofmalta.or.kr)
  • 바티칸 공식 웹사이트 (www.vatican.va)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www.cbck.or.kr)
  • 가톨릭평화신문 역사 자료실 (www.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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