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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시의 평화 정신 - 작은 이의 큰 꿈이 세상을 바꾸다

by 기쁜소식 알리기 2026.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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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브리아 언덕의 작은 도시에서 시작된 평화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 지방, 언덕 위에 자리한 작은 도시 아시시는 세계 평화 운동의 성지가 되었어요. 이곳은 성 프란치스코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며, 그가 평생 추구했던 평화와 화해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곳입니다. 1182년경 부유한 직물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프란치스코는 처음에는 화려한 기사를 꿈꾸며 전쟁터로 나갔어요. 하지만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목격하고 포로 생활까지 겪으면서 그의 마음속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무력과 폭력으로는 진정한 승리를 얻을 수 없다는 깨달음이었죠. 1206년 스물네 살의 프란치스코는 아버지의 모든 재산을 포기하고 맨발의 탁발 수도자가 되었어요. 그는 아시시 근처 작은 성당들을 자신의 손으로 수리하며 복음적 가난과 평화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모든 피조물을 형제자매로 여겼어요. 태양을 형제라 부르고, 달을 자매라 불렀으며, 새들에게도 설교했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런 우주적 형제애는 평화의 근본이 되었죠.

아시시의 평화 정신 - 작은 이의 큰 꿈이 세상을 바꾸다

십자군 시대에 외친 평화의 복음

프란치스코가 살았던 13세기는 십자군 전쟁이 한창이던 시대였어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세계는 칼로 맞서고 있었고, 증오와 적대감이 깊었습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는 전혀 다른 길을 택했어요. 1219년, 그는 제5차 십자군이 이집트를 공격하고 있을 때 무슬림 진영으로 직접 찾아갔습니다. 목숨을 걸고 술탄 알카밀을 만나러 간 거예요. 당시 그리스도교 수도자가 적진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한 일이었죠. 프란치스코는 술탄 앞에서 복음을 전했고, 놀랍게도 술탄은 그를 존중하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비록 술탄이 개종하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깊은 상호 존중이 생겨났어요. 프란치스코는 무기가 아닌 대화로, 증오가 아닌 사랑으로 평화를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것입니다. 이 만남은 오늘날까지도 종교 간 대화의 모범으로 회자되고 있어요. 프란치스코는 십자군 전쟁을 반대했고, 무슬림들을 적이 아닌 하느님의 자녀로 보았습니다.

평화를 비는 기도의 탄생

아시시의 평화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바로 평화를 비는 기도예요. 이 기도는 프란치스코가 직접 쓴 것은 아니지만, 그의 정신을 완벽하게 담아낸 작품입니다. 1912년 프랑스의 한 가톨릭 잡지에 처음 실린 이 기도는 점차 프란치스코의 기도로 알려지게 되었죠. 주님, 저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라는 첫 구절로 시작하는 이 기도는 증오가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심게 해달라고 청합니다. 단순히 평화를 받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평화의 도구가 되겠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담겨 있어요. 이 기도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개신교, 정교회는 물론 다른 종교인들, 심지어 종교가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사랑받고 있습니다. 마하트마 간디도 이 기도를 즐겨 읽었다고 전해지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연합군 병사들이 이 기도문을 지니고 다니기도 했어요. 아시시의 평화 정신이 시공을 넘어 울려퍼진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평화의 재발견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아시시의 평화 정신은 새로운 주목을 받기 시작했어요. 특히 1962년부터 1965년까지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화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크게 발전시켰습니다. 공의회는 현대 세계의 사목 헌장에서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정의의 열매이며, 사랑의 결과라고 선언했어요. 이는 바로 프란치스코가 800년 전에 살았던 정신이었죠. 교황 요한 23세는 1962년 아시시를 방문하여 프란치스코의 무덤 앞에서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교황 바오로 6세도 프란치스코를 깊이 존경했어요. 그는 교황으로 선출된 후 처음으로 로마를 떠나 방문한 곳이 아시시였습니다. 공의회 이후 가톨릭 교회는 평화를 단순히 개인 영성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정치적 책임으로 보기 시작했어요. 전쟁 반대, 핵무기 폐기, 정의로운 경제 질서 수립 등 구체적인 평화 운동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아시시 세계기도일, 종교의 벽을 넘다

1986년 10월 27일, 아시시에서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어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초청으로 세계 각 종교 지도자들이 아시시에 모인 것입니다. 가톨릭, 정교회, 개신교는 물론 유대교,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신토, 시크교 등 다양한 종교의 대표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평화를 위해 기도했어요. 이는 종교사에서 전례 없는 일이었습니다. 각 종교는 자신의 방식대로 평화를 기원했고, 서로의 기도를 존중했죠. 교황은 이 자리에서 평화는 모든 종교가 함께 추구해야 할 가치라고 선언했습니다. 왜 하필 아시시였을까요? 프란치스코의 평화 정신이 모든 종교를 아우를 수 있는 보편성을 지녔기 때문이에요. 이후 2002년, 2011년, 2016년에도 아시시 세계기도일이 열렸습니다. 특히 2016년 행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을 단호히 거부하고, 진정한 종교인이라면 평화의 사도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어요. 아시시는 이제 종교 간 대화와 평화의 상징적 장소가 되었습니다.

작은 형제회의 평화 사도직

프란치스코가 세운 작은 형제회, 즉 프란치스코회는 창립자의 평화 정신을 계승해왔어요. 전 세계 곳곳에서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은 평화와 화해를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분쟁 지역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고, 가난한 이들의 인권을 옹호하며, 환경 보호 운동에도 앞장서고 있죠. 프란치스코의 우주적 형제애 정신은 오늘날 생태 평화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어요. 교황 프란치스코가 2015년 발표한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바로 프란치스코 성인의 태양의 노래에서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환경 파괴는 결국 평화를 위협하고, 생태계와의 조화로운 관계가 진정한 평화의 기초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한국의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도 평화 통일 운동, 생명 운동, 빈민 사목 등을 통해 아시시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특히 남북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한국에서 프란치스코의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는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죠.

현대 세계가 다시 찾는 아시시의 지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시시의 평화 정신은 왜 여전히 중요할까요? 오늘날 세계는 여전히 전쟁과 분쟁으로 고통받고 있어요. 중동의 끝없는 갈등, 우크라이나 전쟁, 아프리카 각지의 내전, 테러와 증오 범죄 등 평화는 여전히 먼 꿈처럼 보입니다. 경제적 불평등은 심화되고, 기후 위기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며, 종교와 이념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도 계속되고 있죠. 이런 시대에 프란치스코가 보여준 평화의 길은 새로운 희망을 줍니다. 그는 무력이 아닌 대화로, 지배가 아닌 섬김으로, 소유가 아닌 나눔으로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가르쳤어요. 적을 만들지 말고 모두를 형제자매로 대하라는 그의 메시지는 지금도 유효합니다. 특히 종교 간 갈등이 심각한 오늘날, 프란치스코가 보여준 종교 간 대화의 모범은 귀중한 유산이에요.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함께 평화를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800년 전에 이미 보여주었으니까요.

평화의 도구가 되는 우리의 선택

아시시의 평화 정신은 추상적인 이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이에요. 프란치스코 성인은 거창한 평화 이론을 세운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평화를 살았습니다. 나병 환자를 껴안고, 새들과 대화하며, 적진에 찾아가 대화하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먹고 자는 작은 실천들이 모여 큰 평화를 이루었어요. 우리도 일상에서 평화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용서하고, 직장에서 화해하며, 이웃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어요.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적이 아닌 대화의 상대로 보고, 자연을 착취의 대상이 아닌 공동의 집으로 여기는 것도 평화의 실천이죠. 아시시의 정신은 특별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에요. 프란치스코 자신이 평범한 상인의 아들에서 시작했듯이, 우리 각자가 있는 자리에서 평화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작은 평화가 모여 가정의 평화를, 공동체의 평화를, 그리고 세계의 평화를 이룰 수 있어요. 아시시의 언덕에서 시작된 평화의 불씨는 여전히 타오르고 있습니다.

아시시 평화 정신 역사 연표

연도 주요 사건 의미와 영향
1182년경 프란치스코 아시시에서 출생 평화의 성인 탄생
1206년 회심, 복음적 가난의 삶 시작 평화와 청빈 정신의 기초
1209년 작은 형제회 창립 프란치스코회 수도회 시작
1219년 술탄 알카밀 만남 종교 간 대화의 모범 제시
1224년 태양의 노래 작성 우주적 평화와 형제애 표현
1226년 10월 3일 프란치스코 선종 평화의 유산 계승 시작
1228년 교황 그레고리오 9세에 의해 시성 공식적 성인 인정
1912년 평화를 비는 기도 발표 프란치스코 정신의 대중화
1939년 교황 비오 12세, 이탈리아의 수호성인 선포 국가적 평화 수호자 인정
1962년 교황 요한 23세 아시시 순례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
1962-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평화 신학의 발전
1979년 생태와 환경의 수호성인 선포 생태 평화 운동의 성인
1986년 10월 27일 제1차 아시시 세계기도일 종교 간 평화 대화의 시작
2002년 제2차 아시시 세계기도일 911 테러 이후 평화 호소
2011년 제3차 아시시 세계기도일 무신론자들도 참여한 평화 모임
2015년 교황 프란치스코 회칙 찬미받으소서 발표 생태 평화의 현대적 계승
2016년 제4차 아시시 세계기도일 종교적 폭력 반대 선언

참고자료

  • 한국가톨릭대사전 - 한국교회사연구소
  • 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www.ofmkorea.org)
  • 바티칸 공식 웹사이트 성인 자료 (www.vatican.va)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평화위원회 (www.cbck.or.kr)
  • 가톨릭 평화신문 (www.cpbc.co.kr)
  •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www.causewa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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