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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도미니코 사비오 - 청소년 신심의 빛나는 모범

by 기쁜소식 알리기 2026.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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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이탈리아의 가난한 소년

1842년 4월 2일,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지방의 작은 마을 리바에서 도미니코 사비오가 태어났어요. 그의 아버지는 대장장이였고, 어머니는 재봉사였는데, 가족은 무척 가난했지만 신앙심이 깊었죠. 당시 이탈리아는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어요.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통일을 향한 열망이 곳곳에서 일어나던 때였답니다. 도미니코는 열 명의 형제자매 중 둘째로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남달랐어요. 다섯 살 때 이미 라틴어로 된 기도문을 외웠고, 일곱 살에는 첫영성체를 받았죠. 당시에는 보통 열두 살 정도에 첫영성체를 받았는데, 도미니코는 너무나 신앙이 깊고 준비가 잘 되어 있어서 특별히 허락을 받았답니다. 첫영성체를 받던 날 아침, 그는 네 가지 결심을 적었어요. "자주 고해성사를 보겠습니다. 주일을 거룩히 지내겠습니다. 예수님과 성모님을 제 친구로 삼겠습니다. 죽음을 맞이할지언정 죄는 짓지 않겠습니다." 이 결심은 그의 짧은 생애 내내 지켜졌답니다.

성 도미니코 사비오 - 청소년 신심의 빛나는 모범

돈 보스코 신부님과의 만남

1854년 10월, 열두 살의 도미니코에게 인생을 바꿀 만남이 찾아왔어요. 바로 성 요한 보스코 신부님과의 만남이었죠. 돈 보스코 신부님은 토리노에서 가난하고 버려진 소년들을 위해 '오라또리오'라는 청소년 센터를 운영하고 계셨어요. 도미니코의 본당 신부님이 이 소년을 돈 보스코 신부님께 소개했는데, 두 사람은 첫눈에 서로를 알아봤다고 해요. 돈 보스코 신부님은 도미니코를 보자마자 "이 소년 안에서 성인의 씨앗을 본다"고 말씀하셨죠. 도미니코도 신부님께 "저는 성인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세요"라고 솔직하게 말했어요. 그렇게 도미니코는 토리노의 오라또리오로 가게 되었고, 돈 보스코 신부님의 가장 사랑하는 제자가 되었답니다. 오라또리오에는 수백 명의 소년들이 있었는데, 도미니코는 그들 중에서도 특별히 빛났어요.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무엇보다 기도하고 희생하는 모습이 남달랐거든요.

일상 속의 거룩함

도미니코는 특별한 기적을 행하거나 대단한 일을 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의 성덕은 바로 일상 속에서 빛났답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미사에 참례했고, 공부 시간에는 최선을 다했어요. 친구들과 놀 때도 항상 즐겁고 밝았는데, 절대 나쁜 말이나 불평을 하지 않았죠. 누군가 힘든 일을 할 때면 먼저 나서서 도왔고, 외로워 보이는 친구가 있으면 다가가 말을 걸어주었어요. 돈 보스코 신부님은 도미니코에게 "네가 해야 할 일은 항상 기쁘게 지내는 것이다"라고 가르치셨는데, 도미니코는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살았답니다. 그는 "거룩함은 항상 기쁘게 사는 데 있다"고 믿었어요. 하지만 그의 기쁨은 피상적인 것이 아니었어요. 깊은 기도와 희생에서 나오는 진정한 기쁨이었죠. 밤에는 다른 친구들이 자고 난 후에도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기도했고, 좋아하는 음식을 포기하며 보속을 실천했답니다.

순결을 지키기 위한 투쟁

도미니코가 살던 19세기 중반, 청소년들을 둘러싼 환경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나쁜 친구들의 유혹, 부적절한 대화, 불순한 생각들이 도처에 있었죠. 오라또리오에도 모든 소년들이 성실한 것은 아니었고, 때로는 나쁜 책을 돌려보거나 외설적인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도미니코는 이런 상황에서 단호했답니다. 어느 날 몇몇 친구들이 나쁜 그림이 있는 책을 보고 있었는데, 도미니코가 달려가서 그 책을 빼앗아 찢어버렸어요. 친구들이 화를 냈지만, 도미니코는 "이런 건 우리 영혼을 더럽힌다"고 말했죠. 또 어느 날은 친구들이 부적절한 농담을 하자, 조용히 자리를 떠나버렸어요. 그는 "차라리 죽을지언정 죄는 짓지 않겠다"는 첫영성체 때의 결심을 평생 지켰답니다. 현대 청소년들에게도 큰 귀감이 되는 모습이에요.

무염시태 신심

도미니코는 특별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사랑했어요. 1854년 12월 8일, 비오 9세 교황님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교리를 공식 선포하셨는데, 이 소식을 들은 도미니코는 너무나 기뻐했죠. 그는 곧바로 친구들을 모아 '무염시태회'라는 작은 단체를 만들었어요. 이 모임의 회원들은 매일 성모님께 기도하고, 순결을 지키며, 서로를 도울 것을 약속했답니다. 도미니코는 성모님을 "하늘의 어머니"라고 부르며 깊이 신뢰했어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성모님께 기도했고, 성모님의 도움으로 유혹을 이겨냈죠. 매일 저녁 잠들기 전에는 반드시 묵주기도를 바쳤고, 성모님의 축일에는 특별한 신심 행위를 했답니다. 이런 마리아 신심은 살레시오 영성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어요. 돈 보스코 신부님도 도미니코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성모 신심을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으셨죠.

친구들을 위한 사도직

도미니코는 자기만 거룩해지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어요. 친구들도 함께 성인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죠. 오라또리오에 새로 온 소년들을 특별히 챙겼는데, 외롭고 힘들어하는 친구들에게 다가가 위로해주었어요. 어느 소년이 도둑질을 하다가 들켰을 때, 다른 친구들은 그를 비난했지만 도미니코는 그 친구 편에 서서 변호해주었답니다. 또 어떤 친구가 신앙을 잃어가고 있을 때는 밤새 그를 위해 기도하고, 다음 날 조용히 대화를 나누며 다시 하느님께 돌아오도록 도왔어요. 도미니코의 영향력은 정말 놀라웠는데, 그가 있는 곳에는 항상 평화와 기쁨이 있었거든요. 싸우던 친구들도 도미니코가 오면 화해했고, 슬퍼하던 친구들도 그의 미소를 보면 위로를 받았죠. 이것이 바로 진정한 청소년 사도직의 모범이에요. 거창한 말이 아니라 작은 실천과 진심 어린 사랑으로 친구들을 변화시킨 거죠.

초자연적 은사들

도미니코의 삶에는 몇 가지 신비로운 일들이 있었어요. 어느 날 미사를 드리던 중 갑자기 황홀경에 빠져 30분 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는데, 깨어난 후 "천국의 아름다움을 보았다"고 말했죠. 또 어떤 때는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맞히기도 했어요. 1858년 어느 날, 도미니코는 갑자기 "지금 교황님께서 위험에 처해 계시니 기도해야 한다"고 외치며 친구들을 모아 기도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정확히 그 시각에 로마에서 교황님을 암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해요. 친구들 사이의 싸움을 미리 알고 막은 적도 있었답니다. 두 친구가 결투를 하려고 했는데, 도미니코가 어떻게 알았는지 그 장소에 미리 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십자가를 들고 나타나 "이 십자가를 넘어서 싸우려거든 싸워라"고 말했죠. 두 소년은 깜짝 놀라 즉시 화해했답니다. 하지만 도미니코는 이런 특별한 은사들을 자랑하지 않았고, 오히려 숨기려고 했어요.

병고와 죽음

1857년 겨울부터 도미니코의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어요. 계속된 기도와 보속, 그리고 약한 체질이 겹쳐서 폐렴에 걸린 거예요. 돈 보스코 신부님은 깜짝 놀라 도미니코를 집으로 보내 쉬게 하셨죠. 처음에는 곧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병은 점점 깊어졌어요. 의사들도 손을 쓸 수 없었답니다. 도미니코는 자신이 곧 죽을 것을 알았지만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드디어 하느님을 뵐 수 있겠구나"라며 기뻐했죠. 부모님과 가족들은 슬퍼했지만, 도미니코는 그들을 위로하며 "천국에서 기도하겠다"고 약속했어요. 1857년 3월 9일 저녁, 도미니코는 "신부님, 뭔가 놀라운 것이 보여요!"라는 말을 남기고 조용히 숨을 거두었답니다. 겨우 열다섯 살의 나이였어요. 너무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짧은 생애는 완전히 하느님께 봉헌된 아름다운 삶이었죠.

돈 보스코 신부님의 슬픔과 기록

도미니코의 죽음은 돈 보스코 신부님께 엄청난 슬픔이었어요. 신부님은 도미니코를 마치 친아들처럼 사랑하셨거든요. 장례식에 참석한 돈 보스코 신부님은 눈물을 흘리시며 "나는 성인을 잃었다"고 말씀하셨죠. 하지만 신부님은 도미니코의 이야기가 잊혀지는 것을 원치 않으셨어요. 그래서 도미니코가 죽은 지 2년 후인 1859년, 《도미니코 사비오의 생애》라는 책을 직접 쓰셨답니다. 이 책은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어요. 많은 청소년들이 도미니코의 이야기를 읽고 감동받았고, "나도 성인이 되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되었죠. 돈 보스코 신부님은 이 책을 통해 "성덕은 나이나 환경과 상관없이 누구나 이룰 수 있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셨어요. 특히 "청소년기에도 얼마든지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거죠. 실제로 이 책은 수많은 청소년들의 영적 생활에 변화를 가져왔답니다.

시복과 시성의 과정

도미니코 사비오의 시성 과정은 꽤 오래 걸렸어요. 돈 보스코 신부님께서 1888년에 선종하신 후, 살레시오회는 도미니코의 시복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답니다. 1914년, 성 비오 10세 교황님께서 도미니코를 '가경자'로 선포하셨어요. 이것은 시복의 첫 단계였죠. 하지만 당시 교회법에서는 어린이를 성인으로 선포하는 것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었어요. "과연 그렇게 어린 나이에 영웅적 덕행을 실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더 많은 시간과 조사가 필요했답니다. 1950년, 교황청은 도미니코와 관련된 기적을 인정했어요. 한 수녀가 도미니코의 전구로 불치병에서 치유된 사건이었죠. 드디어 1954년 3월 12일, 비오 12세 교황님께서 도미니코 사비오를 시복하셨고, 같은 해 6월 12일에 시성하셨답니다. 이로써 도미니코는 교회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비순교자로 시성된 성인이 되었어요. 청소년들의 수호성인이자 모범이 된 거죠.

현대 청소년들에게 주는 메시지

어떤 사람들은 "도미니코 사비오는 19세기 사람이니까 지금과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의 메시지는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있답니다. 현대 청소년들은 SNS, 인터넷, 스마트폰 등 수많은 유혹에 둘러싸여 있어요. 불순한 콘텐츠는 클릭 한 번으로 접할 수 있고, 또래 압력도 무척 강하죠. 이런 환경 속에서 순결과 신앙을 지킨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하지만 도미니코는 우리에게 "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요. 그도 평범한 청소년이었고, 유혹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겨냈거든요. 도미니코의 비결은 세 가지였어요. 첫째, 매일 기도하는 것. 둘째, 자주 성사에 참여하는 것. 셋째, 좋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 이 간단한 원칙들은 지금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어요. 교황님들도 여러 차례 도미니코를 언급하시며 청소년들에게 그를 본받으라고 권고하셨답니다.

살레시오 영성의 꽃

도미니코 사비오는 살레시오 영성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한 청소년이에요. 살레시오 영성의 핵심은 '사랑의 교육학'인데, 이는 사랑과 이성과 종교를 바탕으로 청소년을 교육하는 거예요. 돈 보스코 신부님은 처벌이나 강요가 아니라 사랑으로 청소년들을 이끌어야 한다고 믿으셨죠. 도미니코는 이런 교육을 받고 자란 첫 번째 열매였답니다. 그는 억지로 강요받아서가 아니라 스스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그 사랑 안에서 자유롭게 거룩함을 추구했어요. 오늘날 전 세계의 살레시오회 학교와 청소년 센터에서는 도미니코 사비오를 특별한 수호자로 모시고 있어요. 매년 3월 9일 도미니코의 축일에는 특별한 행사를 열어 그를 기억하고, 청소년들에게 그의 삶을 알려주고 있답니다. 도미니코의 유해는 이탈리아 토리노 근처의 몬도니오 성당에 모셔져 있는데, 지금도 많은 청소년들이 순례를 와서 기도하고 있어요.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것들

도미니코 사비오처럼 살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거창한 것은 필요 없어요. 도미니코도 평범한 일상 속에서 거룩함을 추구했거든요. 첫째, 매일 아침 기도로 하루를 시작해보세요. "오늘 하루를 주님께 봉헌합니다"라고 짧게라도 기도하는 거예요. 둘째, 미사에 자주 참례하고,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고해성사를 받으세요. 성사는 우리에게 힘을 주는 하느님의 선물이랍니다. 셋째, 순결을 지키세요. 불순한 콘텐츠를 피하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지키는 거예요. 넷째, 좋은 친구들과 어울리세요. 신앙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정말 큰 힘이 돼요. 다섯째, 항상 기쁘게 지내세요. 도미니코의 모토처럼 "거룩함은 기쁨 안에" 있으니까요. 여섯째, 작은 희생을 실천해보세요. 좋아하는 간식을 포기한다거나, 게임 시간을 줄이고 그 시간에 기도하는 것처럼요. 이런 작은 실천들이 모여서 우리를 성인으로 만들어준답니다.

역사적 사건 연표

연도 사건
1842년 4월 2일 이탈리아 리바에서 도미니코 사비오 출생
1849년 4월 7세의 나이에 첫영성체 (당시로서는 매우 이른 나이)
1854년 10월 12세, 돈 보스코 신부를 만나 토리노 오라또리오 입학
1854년 12월 8일 비오 9세 교황,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교리 선포 / 도미니코, 무염시태회 창립
1856년 친구들 사이의 결투를 십자가로 막아 화해시킴
1857년 초 건강 악화로 고향 몬도니오로 돌아감
1857년 3월 9일 15세의 나이로 선종
1859년 돈 보스코 신부, 《도미니코 사비오의 생애》 출간
1888년 돈 보스코 신부 선종
1914년 성 비오 10세 교황, 도미니코를 가경자로 선포
1950년 도미니코의 전구로 인한 기적 공식 인정
1954년 3월 12일 비오 12세 교황에 의해 시복
1954년 6월 12일 비오 12세 교황에 의해 시성 (비순교자 중 최연소 성인)
현재 청소년과 합창단원, 살레시오 학생들의 수호성인

참고문헌 및 참고 사이트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홈페이지 - 성인 자료실
  • 한국살레시오회 공식 홈페이지
  • 돈보스코청소년센터 자료실
  • 성 요한 보스코, 《도미니코 사비오의 생애》 (돈보스코미디어)
  • 가톨릭 성인 전기 (가톨릭출판사)
  • 바티칸 공식 웹사이트 - 성인 전기 섹션
  • 살레시오 영성 자료집 (살레시오출판사)
  • 가톨릭 평화신문 - 청소년 성인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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