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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인과 교부

성 라우렌시오 - 불타는 사랑으로 영원이 된 위대한 부제

by 기쁜소식 알리기 2025.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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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들의 수호자, 사랑의 순교자

스페인에서 로마로, 하느님이 부르신 길

성 라우렌시오(Saint Lawrence)는 225년경 에스파냐(현재의 스페인) 우에스카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이베리아 반도는 로마 제국의 속주였지만, 이미 기독교가 뿌리내리기 시작한 지역이었어요. 라우렌시오는 어린 시절부터 신앙심 깊은 가정에서 자랐고, 특히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을 몸소 배웠습니다. 그의 이름 자체가 '월계관을 쓴 자'라는 뜻인데, 마치 훗날 그가 얻을 순교의 면류관을 예고하는 것 같아요.

젊은 시절 라우렌시오는 로마로 향했습니다. 당시 로마는 기독교 세계의 중심지였고, 많은 젊은 성직자들이 꿈꾸는 곳이었어요. 그곳에서 그는 훗날 교황이 될 식스토 2세를 만나게 됩니다. 두 사람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깊은 영적 유대감을 형성했어요. 식스토가 257년 교황으로 선출되자, 라우렌시오는 로마교회의 수석 부제로 임명되었습니다.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중요한 직책이었거든요.

부제로서 라우렌시오의 주된 임무는 교회의 재정 관리와 자선 사업이었습니다. 그는 이 일을 단순한 업무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섬기는 거룩한 봉사로 여겼어요. 로마교회의 넉넉한 재산을 가난한 이들, 과부들, 고아들, 병자들을 위해 아낌없이 사용했습니다. 그의 자선 활동은 로마 시민들 사이에서도 유명할 정도였어요. 기독교를 박해하던 로마인들조차 그의 선행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발레리아누스 박해, 시작된 시련

257년 발레리아누스 황제가 기독교에 대한 새로운 박해령을 내렸습니다. 이전의 박해들과 달리 이번에는 특히 성직자들을 집중 타격했어요. 주교들과 사제들, 부제들은 체포되어 로마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죽음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이는 교회의 지도부를 제거해서 기독교를 뿌리째 뽑아버리려는 전략이었죠. 박해의 칼날이 로마교회에도 드리워지기 시작했어요.

258년 8월 6일, 식스토 2세 교황이 체포되어 즉석에서 순교했습니다. 라우렌시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어요. 스승이자 아버지 같았던 교황을 잃은 슬픔도 컸지만, 이제 자신의 차례가 되었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라우렌시오는 교황의 순교 소식을 듣고 "저도 곧 따라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해요.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던 거죠.

로마 당국은 라우렌시오를 체포하기 전에 한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교회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이었어요. 당시 로마교회는 상당한 재산을 가지고 있었고, 박해를 빌미로 이를 압수하려 했습니다. 그들은 재산 관리 책임자였던 라우렌시오에게 교회의 모든 보물을 내놓으라고 명령했어요. 라우렌시오는 3일의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과연 그는 무엇을 계획하고 있었을까요?

참된 보물을 보여준 지혜로운 부제

라우렌시오는 주어진 3일 동안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그는 교회의 모든 금은보화와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었어요. 성배, 성구, 귀중한 장식품들까지 모두 말이죠. 그리고 약속한 날, 로마 총독 앞에 나타났습니다. 총독이 교회의 보물을 내놓으라고 하자, 라우렌시오는 자신과 함께 온 가난한 이들, 과부들, 고아들, 병자들을 가리키며 말했어요. "이들이 바로 교회의 참된 보물입니다."

이 말에 총독은 크게 분노했습니다. 자신을 조롱했다고 생각한 거죠. 하지만 라우렌시오의 말은 조롱이 아니라 진심이었어요. 그는 진정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하느님 나라의 보배라고 믿었습니다. 이는 당시 로마 사회의 가치관과는 정반대였어요. 로마인들은 부와 권력, 명예를 추구했지만, 라우렌시오는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귀하게 여겼거든요.

총독은 라우렌시오에게 잔혹한 형벌을 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단순히 목을 베는 것이 아니라, 철 격자 위에서 서서히 구워 죽이는 화형이었어요. 이는 당시 가장 끔찍한 처형 방법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라우렌시오는 전혀 굴복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고통 중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이쪽은 다 익었으니 뒤집어 주세요"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너무 유명하죠. 이는 그의 불굴의 신앙과 초월적 기쁨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부제직의 참된 의미를 보여준 모범

라우렌시오는 부제직의 진정한 의미를 몸소 실천한 성인이에요. 초대교회에서 부제는 단순히 사제를 돕는 역할이 아니라, 교회의 자선 사업과 사회봉사를 책임지는 중요한 직책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스테파노나 필립보 같은 첫 번째 부제들의 전통을 이어받은 거죠. 라우렌시오는 이런 부제의 소명을 완벽하게 수행했어요.

그의 자선 활동은 정말 체계적이고 광범위했습니다. 단순히 돈을 나누어주는 수준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실질적인 필요를 파악하고 맞춤형 도움을 제공했어요. 과부들에게는 생활비를, 고아들에게는 교육 기회를, 병자들에게는 치료비를 지원했습니다. 심지어 감옥에 갇힌 신자들을 돌보기 위해 간수들에게 뇌물을 주기도 했다고 해요. 이는 오늘날 사회복지 시스템의 선구적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라우렌시오의 사목 방식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그의 겸손함이에요.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항상 섬기는 자세를 잃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이들과 만날 때도 그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대화했고, 그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었어요. 이런 태도는 당시 신분제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살아있는 복음이었던 거죠.

순교의 불꽃 속에서 피어난 영원한 사랑

258년 8월 10일, 라우렌시오는 로마의 총독 앞에 끌려갔습니다. 마지막 심문에서 그는 다시 한 번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했어요. 로마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오직 참 하느님만을 섬기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때 그의 표정은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으로 가득했다고 전해져요. 드디어 스승인 식스토 교황을 따라갈 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감이었을 거예요.

화형대에 오르면서도 라우렌시오는 평정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어요. 고통 중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 했고, 자신을 죽이는 이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쪽은 다 익었으니 뒤집어 주세요"라는 그의 마지막 말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죽음조차 초월한 신앙의 승리를 보여주는 것이었어요. 불길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영혼의 자유로움이었죠.

라우렌시오의 순교는 로마 시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의 죽음을 지켜본 많은 이들이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해요. 그의 용기와 사랑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거죠. 심지어 그를 처형한 관리들 중에서도 회심하는 이들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죽음으로써 더 큰 생명을 낳은 것이에요. 이것이야말로 순교의 참된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영원한 친구

라우렌시오가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이유는 그의 사회적 실천 때문이에요. 그는 교회의 재산을 개인적 영광을 위해 쓰지 않고, 오직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이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일이었어요. 로마 제국에서 가난한 자들은 거의 인간 취급을 받지 못했거든요. 노예들, 과부들, 고아들은 사회의 짐이라고 여겨졌는데, 라우렌시오는 이들을 "교회의 보물"이라고 선언한 거죠.

그의 이런 사상은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었어요. "너희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는 말씀을 그는 문자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것이 곧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라고 믿었거든요. 이런 정신은 훗날 가톨릭교회의 사회 교리로 발전하게 됩니다. 19세기 레오 13세 교황의 "새로운 사태" 회칙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사회정의 정신의 뿌리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라우렌시오의 자선 철학에서 주목할 점은 단순한 시혜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가난한 이들의 존엄성을 존중했고, 그들을 사회의 주변인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주인공으로 대했어요. 이는 오늘날 사회복지나 NGO 활동에서 강조되는 "임파워먼트(empowerment)" 개념의 선구적 실천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2000년 전에 이미 진정한 사회정의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것이에요.

로마제국을 움직인 한 부제의 죽음

라우렌시오의 순교는 단순히 개인적인 신앙 증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의 죽음은 로마 제국 전체에 파장을 일으켰어요. 황제 발레리아누스조차 이 사건에 대해 보고 받고 놀랐다고 합니다. 한 부제의 죽음이 이렇게 큰 반향을 일으킬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거죠. 이는 라우렌시오가 단순히 종교인이 아니라 로마 사회에서 인정받는 인물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의 순교 이후 로마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어요. 갑작스런 자연재해들이 연이어 발생했고, 황제의 군대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참패를 당했습니다. 260년 발레리아누스 황제는 샤푸르 1세에게 포로로 잡혀 비참한 최후를 맞았어요. 로마인들은 이를 라우렌시오의 순교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박해는 급속히 약화되었고, 기독교는 오히려 더욱 확산되었어요.

라우렌시오의 무덤은 곧 순례지가 되었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그의 무덤을 찾아와 기도했고,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전해져요. 특히 불과 관련된 기적들이 많았는데, 이는 그의 순교 방식과 관련이 있겠죠. 4세기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그의 무덤 위에 웅장한 성당을 건립했습니다. 이 성당은 지금도 로마의 주요 순례지 중 하나예요.

현대 교회가 되새겨야 할 라우렌시오의 정신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성 라우렌시오가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우선 진정한 부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합니다. 그는 물질적 재산보다 인간의 존엄성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어요. 오늘날처럼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시대에, 그의 가르침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교회가 가진 것을 나누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거든요.

또한 그의 순교 정신은 현대의 "순교"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요. 지금은 과거와 같은 물리적 박해는 드물지만, 다른 형태의 시련들이 있잖아요. 직장에서의 양심적 거부, 불의한 시스템에 대한 저항, 약자를 위한 목소리 등이 현대적 순교의 모습일 수 있어요. 라우렌시오처럼 자신의 이익보다 원칙을 지키는 용기, 그것이 우리 시대의 순교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라우렌시오의 유머러스한 면도 빼놓을 수 없어요. 죽음 앞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입니다. 이는 신앙인의 궁극적 자유로움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세상의 그 어떤 위협도 하느님 안에 있는 기쁨을 빼앗을 수 없다는 확신 말이에요. 오늘날 스트레스와 불안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그의 평안함은 큰 위로와 희망을 줍니다.

요리사들의 수호성인, 불의 성인

재미있게도 라우렌시오는 요리사들과 소방관들의 수호성인이 되었어요. 그의 순교 방식 때문이죠. 전 세계 많은 요리사들이 그에게 기도하며, 화재로부터 보호해 달라고 청합니다. 이는 그의 순교가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사랑의 완성이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줘요. 불은 파괴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화와 변화의 상징이기도 하거든요.

스페인에서는 라우렌시오에 대한 공경이 특히 깊어요. 그의 고향인 우에스카는 물론이고, 전국 곳곳에 그의 이름을 딴 성당들이 있습니다. 매년 8월 10일 축일에는 성대한 축제가 열려요. 특히 마드리드 근교의 산 로렌소 델 에스코리알 수도원은 펠리페 2세가 라우렌시오에 대한 신심으로 건립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처럼 그의 영향은 시공간을 초월해서 계속되고 있어요.

현대 가톨릭교회에서 라우렌시오는 부제들의 모범으로 특별히 공경받고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부제직이 부활하면서, 그의 정신이 다시 조명받고 있어요. 많은 부제들이 그를 따라 사회의 소외된 이들을 위한 봉사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이는 교회가 세상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라고 할 수 있어요.

불타는 사랑으로 이어지는 영원한 유산

성 라우렌시오의 삶을 돌아보면서 가장 감동적인 것은 그의 일관성이에요. 처음 부제가 되었을 때부터 순교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한결같이 가난한 이들을 사랑했습니다. 지위가 높아져도, 위험이 닥쳐도, 심지어 죽음 앞에서도 그 사랑은 변하지 않았어요. 이런 일관성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매일매일의 작은 선택들이 쌓여서 이루어지는 것이겠죠.

그의 순교는 교회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발레리아누스 박해 이후 로마제국의 기독교 정책이 점차 완화되기 시작했고, 결국 313년 콘스탄티누스의 밀라노 칙령으로 이어졌거든요. 물론 여러 요인이 있었겠지만, 라우렌시오 같은 순교자들의 증거가 로마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도 분명해요. 그들의 죽음이 결국 기독교의 승리로 이어진 거죠.

오늘날 우리가 라우렌시오에게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불타는 사랑'입니다. 그의 사랑은 감정적인 동정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현되는 실천적 사랑이었어요.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과 재산, 심지어 생명까지 내어주는 진정한 사랑이었습니다. 이런 사랑이야말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라우렌시오의 불타는 사랑은 18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 마음을 뜨겁게 만들고 있으니까요.

성 라우렌시오 시대 주요 역사적 사건 연표

연도 사건 관련 인물/지역
225년경 라우렌시오 출생 우에스카, 에스파냐
235-284년 로마제국 3세기 위기 시대 로마제국 전역
244-249년 필립 아랍인 황제 재위 로마제국, 기독교 관용
249년경 라우렌시오, 로마 이주 로마교회
249-251년 데키우스 황제 박해 데키우스 황제, 전 제국
257년 식스토 2세 교황 즉위 로마교회
257년 라우렌시오, 수석 부제 임명 로마교회
257-258년 발레리아누스 박해 시작 발레리아누스 황제
258년 8월 6일 식스토 2세 교황 순교 로마
258년 8월 10일 라우렌시오 순교 로마
260년 발레리아누스 황제 포로 페르시아, 샤푸르 1세
313년 밀라노 관용령 콘스탄티누스 대제

참고 문헌 및 자료

  • 한국가톨릭대사전 (한국교회사연구소)
  • 성인전 (가톨릭출판사)
  • 초대교회 순교자들 (분도출판사)
  • 교부학 개론 (요하네스 크바스텐 저, 왜관성베네딕도수도원)
  • 로마 순교록 연구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 가톨릭 굿뉴스 (www.catholic.or.kr)
  • 바티칸 공식 웹사이트 (vatican.va)
  • New Advent Catholic Encyclopedia (newadvent.org)
  •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발행 논문집
  • 순교자 영성 연구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 본 글은 교회 공인 문헌과 검증된 학술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신앙적 묵상과 개인적 해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공식 가르침과 다를 수 있는 내용에 대해서는 관할 교구나 전문가의 지도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 라우렌시오 - 불타는 사랑으로 영원이 된 위대한 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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