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순교 열전 · 일본 편
수많은 시련을 이겨낸 일본 순교자의 삶, 세계사의 격랑 속에서 다시 읽어봐요.
들어가며
왜 지금 이 이름을 기억해야 할까요?
'바르톨로메오 로우(Bartholomew Roe)'라는 이름은 낯설게 들릴 수 있어요. 하지만 이 성인은 17세기 일본이라는 극한의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순교한 가톨릭 성인이에요. 오늘날 우리가 편안하게 미사에 참석하고, 성호를 긋고, 묵주를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이분들처럼 목숨으로 신앙을 증거한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해요.
이번 글에서는 성 바르톨로메오 로우의 생애를 중심으로, 당시 일본과 세계가 어떤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 있었는지도 함께 살펴볼게요. 가톨릭 신앙이 어떤 시대적 맥락에서 박해를 받았는지 알면, 순교자들의 이야기가 훨씬 더 깊이 다가올 거예요.
시대적 배경
16~17세기 일본, 신앙이 금지된 땅
성 바르톨로메오 로우가 일본에 발을 디디기 훨씬 전부터, 일본은 이미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목숨을 건 선택의 땅이었어요. 1549년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Francisco Javier)가 일본에 처음 선교의 씨앗을 뿌린 이후, 가톨릭 신앙은 규슈(九州) 지방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갔어요. 전국시대의 혼란 속에서 일부 다이묘(영주)들이 서양 무기와 무역을 위해 선교사들을 우대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선교사 추방령을 내린 것을 시작으로, 일본 통치자들은 가톨릭을 정치적 위협으로 간주하기 시작했어요. 외국 세력이 종교를 통해 일본 사회를 내부에서 무너뜨릴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컸죠. 결정적으로 1597년 나가사키에서 일어난 '일본 26성인의 순교'는 그 박해가 단순한 위협이 아닌 실제 처형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세상에 알렸어요.
1603년 에도 막부(江戸幕府)를 세운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와 그 후계자들은 박해를 더욱 조직적이고 잔혹하게 강화했어요. 1614년에는 전국적인 기리시탄(キリシタン, 그리스도인) 금지령이 선포되었고, 신자들은 '후미에(踏み絵)'라는 성화를 발로 밟도록 강요받았어요. 이를 거부하면 고문과 처형이 기다리고 있었죠. 이 시대를 '기리시탄 시대의 황혼'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성인의 생애
바르톨로메오 로우는 누구였을까요?
성 바르톨로메오 로우는 일본인 신자로, 세례명 바르톨로메오를 받았어요. 그는 프란치스코회(Franciscan Order) 소속의 평신도 수도자, 즉 재속 프란치스코회 회원이었어요. 당시 일본에서는 신부들이 모두 추방되거나 처형당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바르톨로메오처럼 평신도 신앙인들이 지하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어요.
에도 막부의 감시망이 촘촘해지면서 바르톨로메오는 결국 체포되었어요. 관헌들은 그에게 신앙을 포기하고 후미에를 밟을 것을 요구했지만, 그는 끝내 이를 거부했어요. 오랜 투옥과 고문 끝에, 그는 1628년경 나가사키에서 순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요.
그가 비밀리에 신앙 공동체를 돌보고, 성사를 이어가며, 두려움 속에서도 복음을 놓지 않았던 삶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어요. 교회는 이 증거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여 그를 순교자로 공경하고 있어요.
— 순교자들의 삶이 오늘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
세계사적 맥락
같은 시대, 세계 곳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까요?
바르톨로메오가 일본에서 박해를 받던 17세기 초는 세계사적으로도 격동의 시기였어요. 유럽에서는 1618년 30년 전쟁이 시작되었고,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종교 전쟁이 대륙 전체를 피로 물들이고 있었어요.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여전히 '가톨릭 왕국'을 표방하며 아시아 각지에 선교사를 파견하고 있었지만, 네덜란드와 영국이라는 신흥 개신교 해양 강국이 그 패권에 도전하고 있었어요.
일본 에도 막부는 이 국제 정세를 예리하게 읽고 있었어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선교사를 앞세워 식민지를 개척한 전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톨릭을 단순한 종교가 아닌 '정치적 침략의 전위대'로 봤던 거예요. 반면 네덜란드 상인들은 "우리는 무역만 한다"는 입장을 취하며 일본과의 교역을 계속 이어갔어요. 이것이 나가사키 데지마(出島)의 네덜란드 상관이 유일한 서양 창구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예요.
동아시아 전체를 보면, 중국에서는 명나라가 기울고 청나라가 세력을 키우던 시기였어요. 조선에서는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 후금(後金)의 침략을 받았고요. 이처럼 동아시아 전역이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는 혼란기에, 일본의 기리시탄들은 그 파도를 정면으로 맞고 있었어요.
박해의 실상
시마바라의 난과 신앙의 씨가 지하로 숨어든 역사
1637년에서 1638년 사이 일어난 '시마바라의 난(島原の乱)'은 일본 기리시탄 박해의 절정이었어요. 규슈 아리마 지방의 농민과 기리시탄 신자들이 합쳐 봉기를 일으켰고, 에도 막부는 이를 진압하기 위해 12만 명이 넘는 병력을 동원했어요. 하라성(原城)에 농성한 약 3만 7천 명의 봉기군은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어요.
이 사건 이후 막부는 기리시탄 탄압을 더욱 강화했어요. 해외 선교사의 입국은 사실상 완전 봉쇄되었고, 신자들은 사찰에 소속되어 불교 신자임을 증명해야 하는 '데라우케 제도(寺請制度)'에 묶였어요. 그럼에도 나가사키의 우라카미(浦上) 지역에는 약 200여 년간 신부도 없이 신앙을 지켜온 '카쿠레 기리시탄(隠れキリシタン, 숨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어요. 이들의 신앙 공동체는 1865년 프랑스 선교사 베르나르 프티장(Bernard Petitjean) 신부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신앙의 기적'이라 불리게 되었어요.
성 바르톨로메오 로우와 같은 순교자들의 피는 헛되지 않았어요. 그들이 목숨으로 지킨 씨앗이 지하에서 싹을 틔우고, 마침내 200년 후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니까요. 교회가 '순교자들의 피는 신자들의 씨앗(Semen est sanguis Christianorum)'이라고 말해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시성과 공경
교회가 이 이름을 기억하는 방식
성 바르톨로메오 로우는 일본 순교자 복자 및 성인 시성 과정에서 공식적으로 이름이 오른 인물이에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1981년 나가사키를 직접 방문하시어 일본 순교자들을 기억하고 경의를 표하셨어요. 당시 교황께서 나가사키에서 하신 말씀은 많은 신자들의 마음에 깊이 남아 있어요.
교회는 이분들의 축일을 통해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에요.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에서 신앙을 이유로 차별받고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어요. 국제 가톨릭 박해 지원 단체 ACN(Aid to the Church in Need)의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도 약 3억 6천만 명의 그리스도인이 다양한 형태의 박해를 받고 있다고 해요. 순교자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에요.
우리가 성 바르톨로메오 로우를 기억하는 것은, 바로 오늘 이 순간에도 신앙 때문에 고통받는 형제자매들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일과 이어져 있어요. 성인들의 전구는 우리 안에 살아 숨 쉬는 신앙의 힘을 새롭게 일깨워 줘요.
마치며
시련은 신앙을 꺾지 못했어요
역사는 강한 자가 아니라, 옳은 것을 끝까지 붙든 자들의 이야기를 기억해요. 성 바르톨로메오 로우는 에도 막부라는 거대한 권력 앞에 한낱 평신도였지만, 그의 신앙은 그 어떤 권력보다 오래 남았어요.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가 이 이름을 부르고 있잖아요.
세계사 속 수많은 박해와 전쟁, 권력의 흥망 속에서도 가톨릭 신앙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이런 이름 모를 순교자들의 증거에서 왔어요. 거창한 신학 논쟁보다도, 후미에 앞에서 "No"라고 말한 한 사람의 용기가 더 강력한 복음 선포였던 거예요.
오늘 우리에게도 시련은 찾아와요. 형태는 달라도, '네 신앙을 내려놓아라'는 유혹과 압력은 여전히 있어요. 성 바르톨로메오 로우의 삶은 그럴 때마다 우리에게 묻고 있어요 — 당신은 무엇을 위해, 무엇을 붙들고 있느냐고요.
역사 연표
일본 가톨릭 박해 관련 세계사적 사건 연표
| 연도 | 사건명 | 내용 |
|---|---|---|
| 1549년 | 하비에르 일본 선교 시작 | 예수회 선교사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가고시마(鹿児島)에 상륙. 일본 최초의 가톨릭 선교가 시작되며 규슈 지방을 중심으로 신자가 빠르게 늘어남 |
| 1587년 | 도요토미 히데요시 추방령 | 히데요시가 가톨릭 선교사 전원에게 일본 추방을 명령. 실질적 집행은 유보되었으나 박해의 서막이 됨 |
| 1597년 | 일본 26성인 나가사키 순교 | 프란치스코회와 예수회 신부·평신도 26명이 나가사키 니시자카 언덕에서 십자가형으로 순교. 교황 비오 9세가 1862년 시성 |
| 1600년 | 세키가하라 전투 |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천하를 통일. 에도 막부 수립의 발판이 마련되고 가톨릭 금압 정책이 본격화될 정치 기반이 형성됨 |
| 1603년 | 에도 막부 성립 |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이대장군에 취임, 에도 막부 260여 년 통치 시작. 중앙집권 강화와 함께 기리시탄 탄압이 시작됨 |
| 1614년 | 기리시탄 전국 금지령 | 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가 전국 가톨릭 금지령 선포. 선교사 추방, 교회 파괴, 신자 개종 강요가 전국적으로 시행됨 |
| 1618년 | 유럽 30년 전쟁 발발 | 가톨릭과 개신교 세력 간 유럽 대륙 전쟁 시작. 포르투갈·스페인의 힘이 약해지면서 일본 선교 지원도 급격히 약화됨 |
| 1620년대 | 성 바르톨로메오 로우 순교 | 나가사키 일대에서 지하 신앙 공동체를 돌보다 체포. 후미에를 거부하고 고문과 투옥 끝에 1628년경 순교한 것으로 전해짐 |
| 1627년 | 조선 정묘호란 | 후금(後金)이 조선을 침략. 동아시아 전체가 새로운 패권 질서로 재편되는 시기로, 일본 막부의 대외 경계심이 더욱 고조됨 |
| 1637~1638년 | 시마바라의 난 | 규슈 아리마 지역 농민·기리시탄 약 3만 7천 명이 봉기. 막부군 12만여 명에 의해 진압. 이후 기리시탄 탄압이 극도로 강화됨 |
| 1639년 | 포르투갈 선박 입항 금지 | 막부가 포르투갈 선박의 일본 입항을 완전 금지. 사실상 일본의 쇄국 체제가 완성됨. 네덜란드만 데지마에서 교역 허용 |
| 1865년 | 우라카미 신자 발견 | 나가사키 오우라 천주당에서 프랑스 선교사 프티장 신부가 약 200년간 신앙을 지켜온 카쿠레 기리시탄과 만남. 전 세계 가톨릭계에 '신앙의 기적'으로 알려짐 |
| 1873년 | 기리시탄 금지령 철폐 | 메이지 정부가 외국의 압력과 국제 정세를 고려해 기리시탄 금지령을 공식 철폐. 일본 내 종교의 자유가 제한적으로 허용되기 시작함 |
| 1981년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나가사키 방문 | 나가사키를 방문하여 순교자들을 기리고 평화와 생명 존중을 강조. 일본 가톨릭 역사에 큰 의미를 남긴 역사적 방문 |
| 2008년 | 일본 순교자 188위 복자 선포 | 에도 막부 시대에 순교한 일본인 신자 188명이 나가사키에서 복자로 선포됨. 성 바르톨로메오 로우와 같은 시대 순교자들의 증거가 공식 인정됨 |
참고문헌 및 참고 사이트
- 한국가톨릭대사전 편찬위원회, 한국가톨릭대사전, 한국교회사연구소, 1995.
- George Elison, Deus Destroyed: The Image of Christianity in Early Modern Japan, Harvard University Press, 1973.
- C.R. Boxer, The Christian Century in Japan 1549-1650,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51.
- 교황청 시성성: https://www.vatican.va
- 가톨릭 굿뉴스 성인 정보: https://www.catholic.or.kr
- ACN 박해 보고서: https://www.acnkorea.org
- 일본 26성인 기념관(나가사키): https://www.26martyrs.com
- Catholic Online Saints: https://www.catholic.org/saints/
※ 본 글은 공개된 학술 자료 및 가톨릭 공식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저작권법을 준수합니다. 인용 시 출처를 명시해 주세요.

'1. 성인과 교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성 요한 드 브리토-수많은 시련을 이겨낸 인도의 순교 선교사 (1) | 2026.07.06 |
|---|---|
| 성 마티아스 물룸바 – 아프리카 평신도 순교자 (0) | 2026.07.05 |
| 성 마들렌 소피 바라– 성심 수녀회 창립자 (0) | 2026.07.04 |
| 성 빈첸시오 스트람비– 피아리스트회 개혁자 (1) | 2026.07.03 |
| 성 폴로 믈라키— 시련을 이겨낸 폴란드의 순교자 (0) | 2026.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