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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인과 교부

성 엘리사벳 안 세튼 – 시련을 이겨낸 미국 가톨릭학교의 어머니

by 기쁜소식 알리기 2026.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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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성인 열전 · 미국 교회사

개신교 가정에서 태어나 다섯 자녀를 둔 과부로, 그리고 미국 최초의 성인으로 – 세튼의 삶은 고통이 어떻게 은총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고통이 없으면 사랑도 없습니다." 엘리사벳 안 세튼이 남긴 이 말은 단순한 격언이 아니라, 그녀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증언이었다. 남편의 죽음, 자녀들의 병사, 사회의 냉대, 경제적 빈곤 – 그 모든 것을 통과한 끝에 그녀는 미국 가톨릭 교육의 어머니가 되었다.

 

1. 혁명의 시대에 태어난 아이 – 18세기 뉴욕의 시대적 배경

엘리사벳 안 베일리(Elizabeth Ann Bayley)는 1774년 8월 28일,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열망으로 들끓던 뉴욕에서 태어났다. 불과 두 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고, 아버지 리처드 베일리 박사는 저명한 의사였지만 재혼한 새어머니와의 관계는 냉랭했다. 어린 엘리사벳은 성공회(Episcopal) 신앙 안에서 성장했고, 시편을 읽고 묵상하는 습관을 통해 일찍이 하느님을 개인적인 위로자로 만나게 되었다.

그녀가 살았던 18세기 말~19세기 초 미국은 격변의 한복판에 있었다. 1776년 독립선언, 1783년 파리조약으로 미합중국이 공식 출범했고, 새로운 나라는 종교적·사회적 정체성을 한창 형성해가는 중이었다. 가톨릭은 당시 미국 주류 사회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 아일랜드·이탈리아 이민자들의 종교라는 편견이 강했고, 반가톨릭 정서는 사회 곳곳에 퍼져 있었다. 이런 시대에 상류층 출신의 성공회 여성이 가톨릭으로 개종한다는 것은 사회적 자살에 가까운 선택이었다.

1794년, 스무 살의 엘리사벳은 부유한 상인 윌리엄 마기 세튼(William Magee Seton)과 결혼했다. 두 사람은 뉴욕 상류사회의 촉망받는 부부였고, 엘리사벳은 자선사업에 헌신하며 '뉴욕의 가난한 과부들을 위한 협회' 공동 창설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2. 연속된 상실 – 믿음으로 버틴 고통의 시간

결혼 후 9년이 채 지나지 않아 세튼 가문의 사업은 완전히 파산했다. 윌리엄은 결핵을 앓기 시작했고, 의사들은 따뜻한 이탈리아 기후가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권했다. 1803년, 엘리사벳은 남편과 큰딸 애나 마리아를 데리고 이탈리아 리보르노(Livorno)로 향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당국은 황열병을 우려해 세튼 일행을 항구의 검역소(라자레토, Lazaretto)에 격리시켰다. 차갑고 습한 돌방에서 30일 가까이 갇혀 있는 동안 윌리엄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졌다.

리보르노의 상인 필리치(Filicchi) 가문이 이들을 거두어 주었고, 윌리엄은 1803년 12월 27일, 이탈리아 피사에서 숨을 거두었다. 엘리사벳의 나이 스물아홉. 다섯 아이를 둔 그녀는 이국땅에서 단숨에 과부가 되었다.

그런데 이 비극적인 이탈리아 체류는 그녀의 삶을 뒤바꾼 전환점이 되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필리치 가문 – 특히 안토니오 필리치(Antonio Filicchi)와 그의 아내 – 은 미사와 성체 앞에서 보여주는 경건함으로 엘리사벳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성체성사(성만찬)에 대한 가톨릭의 실재적 현존(Real Presence) 교리는 그녀의 영혼을 뒤흔들었다. "만약 그분이 정말로 거기 계신다면..." 엘리사벳은 그 질문과 씨름하며 뉴욕으로 돌아왔다.

"저는 제 눈물을 먹으며 울었습니다 – 하지만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오히려 평화로운 눈물이었습니다. 그분께서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확신 때문이었지요."
— 엘리사벳 안 세튼, 이탈리아에서 보낸 편지 중

 

3. 개종 – 사회적 추방을 각오한 신앙의 도약

뉴욕으로 돌아온 엘리사벳은 약 2년에 걸쳐 깊은 내적 투쟁을 겪었다. 성공회 사제들은 그녀를 붙잡으려 했고, 가족들은 개종하면 사회적·경제적 지원을 끊겠다고 압박했다. 처제이자 친구였던 세실리아 세튼도 개종 문제로 집안과 갈등을 빚었다. 반가톨릭 정서가 팽배한 당시 사회에서 개종은 단순히 교단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계급과 인맥 전체를 잃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1805년 3월 14일, 엘리사벳은 뉴욕 성 베드로 성당(St. Peter's Church)에서 가톨릭 신앙을 공식적으로 고백했다. 이듬해에는 첫영성체를 받았다. 예상대로 친척들은 등을 돌렸고, 학교 운영을 시도했으나 반가톨릭 편견으로 학부모들이 자녀를 빼갔으며, 생계는 극도로 궁핍해졌다.

이 시기 미국 가톨릭 교회는 초대 주교 존 캐럴(John Carroll, S.J.)의 지도 아래 정체성을 형성해가고 있었다. 존 캐럴 주교는 미국 최초의 가톨릭 대학인 조지타운 대학교(Georgetown University, 1789년)를 설립한 인물이기도 하다. 당시 미국 내 가톨릭 신자는 전체 인구의 1% 미만이었고, 공식적인 가톨릭 교육 기관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척박한 토양 위에 세튼이 뿌린 씨앗이 얼마나 혁명적인 것이었는지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4. 에미츠버그로의 부름 – 수도 공동체의 탄생

볼티모어의 술피시오회(Sulpician) 신부들은 엘리사벳의 신앙과 교육 역량을 알아보고 메릴랜드 볼티모어에 학교를 세울 것을 제안했다. 1808년 볼티모어에서 소녀들을 위한 학교를 열었고, 이듬해인 1809년에는 메릴랜드 주 에미츠버그(Emmitsburg)로 이전하며 '성 요셉 아카데미(St. Joseph's Academy)'를 설립했다. 이것이 미국 역사상 최초의 가톨릭 학교로 기록된다.

같은 해, 엘리사벳은 뜻을 함께하는 여성들과 함께 성 요셉 자선수녀회(Sisters of Charity of St. Joseph's)를 창설했다. 이 수녀회는 프랑스의 빈센트 드 폴(St. Vincent de Paul) 성인의 자선수녀회 규칙을 바탕으로 하되, 미국 현실에 맞게 재구성되었다. 세튼은 수녀회 창설 수녀장(Superior)으로 선출되어 '어머니 세튼(Mother Seton)'으로 불리게 되었다.

수녀회는 교육만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위한 무상 교육, 고아원 운영, 병자 방문 등 광범위한 사회복지 활동을 전개했다. 에미츠버그의 공동체는 이후 미국 전역으로 확산된 가톨릭 학교 시스템의 씨앗이 되었다. 오늘날 미국 내 수천 개의 가톨릭 학교, 병원, 사회복지 기관들의 정신적 기원을 이 에미츠버그의 작은 공동체에서 찾는다.

 

5. 어머니로서의 고통 – 자녀들의 죽음 앞에서

수도 공동체를 이끌면서도 엘리사벳은 끊임없이 어머니로서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큰딸 애나 마리아가 1812년, 겨우 열여섯 살의 나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딸의 임종을 지키면서 엘리사벳은 깊은 비탄에 빠졌지만,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내맡기는 완전한 포기(abandonment)의 영성으로 그것을 수용했다.

1816년에는 셋째 딸 레베카마저 열다섯 살로 세상을 떠났다. 이미 남편과 두 딸을 잃은 엘리사벳은 자신 역시 결핵으로 건강이 극도로 나빠져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공동체를 떠나지 않았고, 수녀들과 아이들을 가르치며 남은 힘을 다 쏟아부었다.

가톨릭 영성의 관점에서 보면, 세튼의 삶은 '십자가의 영성'이 어떻게 살아있는 증언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스도의 수난에 참여함으로써 오히려 더 깊은 사랑과 봉사가 가능해진다는 이 신학은, 세튼에게 있어 추상적 교리가 아닌 일상의 현실이었다. 빈첸시오 드 폴 성인의 영성을 계승한 그녀의 수녀회는 "가난한 이 안에서 그리스도를 섬긴다"는 원칙을 철저히 실천했다.

 

6. 선종과 시성 – 미국 교회의 역사적 이정표

엘리사벳 안 세튼은 1821년 1월 4일, 에미츠버그에서 사십육 세의 나이로 조용히 선종했다. 결핵으로 인한 긴 투병 끝의 죽음이었다. 그녀가 떠난 후에도 성 요셉 자선수녀회는 성장을 거듭하여 미국 전역에 가톨릭 병원과 학교를 세워나갔다. 세튼 홀 대학교(Seton Hall University, 1856년 설립, 뉴저지)는 그녀의 이름을 딴 대표적인 가톨릭 교육기관이다.

시복·시성 과정은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되었다. 1959년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복자로 선포되었고, 1975년 9월 14일 교황 바오로 6세가 성 베드로 광장에서 그녀를 성인으로 선포했다. 이로써 엘리사벳 안 세튼은 미국 태생 최초의 성인이 되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시성 강론에서 그녀를 "위대하고 고귀한 미국 여성"이라고 부르며, 미국의 가톨릭 전통이 세계 교회에 기여한 바를 높이 평가했다.

오늘날 그녀의 축일은 1월 4일로 미국 가톨릭 전례력에 기념되며, 에미츠버그의 성지는 매년 수만 명의 순례자를 맞이한다. 그녀의 유해가 안치된 경당은 미국 가톨릭의 성지 가운데 하나로, 신앙의 여정을 걷는 이들에게 깊은 위로를 건넨다.

 

7. 세튼이 우리에게 남긴 것 – 교육과 신앙의 유산

성 엘리사벳 안 세튼의 생애는 단순한 종교적 위인전을 넘어선다. 그녀의 삶은 18~19세기 미국이라는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 속에서, 가톨릭 신앙이 어떻게 살아있는 문화와 교육의 힘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증언이다. 상류층 출신의 성공회 여성이 반가톨릭 편견의 벽을 뚫고 수녀회를 창설하고 학교를 세운 것은, 당시로서는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었다.

그녀가 시작한 가톨릭 학교 교육의 전통은 오늘날 미국 내 6,000여 개의 가톨릭 학교로 이어지고 있으며, 약 200만 명 이상의 학생들이 이 교육 시스템 안에서 배우고 있다. 병원과 사회복지 기관들도 마찬가지다. 세튼이 에미츠버그의 작은 오두막집에서 시작한 씨앗은, 200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 사회 곳곳에서 열매를 맺고 있다.

가톨릭 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 세튼의 생애는 성화(聖化)가 특별한 환경이 아닌 일상의 고통과 봉사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증명한다. 어머니로, 과부로, 수녀회 창설자로 살아간 그녀의 삶은, 복음의 가르침이 어떻게 역사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지를 오늘날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해준다.

시대적 맥락과 세튼의 생애 – 역사 연표

연도 세튼 관련 사건 동시대 세계·미국·가톨릭 역사
1774 뉴욕에서 출생 (엘리사벳 안 베일리) 미국 제1차 대륙회의 개최 (필라델피아); 영국의 식민지 압박 최고조
1776 두 살에 어머니 사망 미국 독립선언 (7월 4일); 아담 스미스 『국부론』 출간
1783 유년기, 성공회 신앙 안에서 성장 파리조약 체결; 미합중국 공식 독립 인정
1789 청소년기 미국 헌법 발효;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 취임; 프랑스 혁명 발발; 존 캐럴 주교, 미국 최초 가톨릭 주교 임명; 조지타운 대학교 설립
1794 윌리엄 마기 세튼과 결혼; 뉴욕 상류사회에서 자선 활동 시작 미국 중립 선언(제이 조약); 유럽에서 나폴레옹 전쟁 전조
1797 '뉴욕 가난한 과부 협회' 공동 창설 존 애덤스 2대 미국 대통령 취임
1800 세튼 가문 사업 파산 위기 시작 워싱턴 D.C. 새 수도로 지정; 나폴레옹 제1통령 취임
1803 남편 치료 위해 이탈리아 리보르노 항해; 검역소 격리; 남편 피사에서 사망 (12월 27일) 루이지애나 매입(미국 영토 두 배 확장); 나폴레옹, 프랑스 황제 즉위 준비
1804 이탈리아 필리치 가문과 교류; 가톨릭 신앙에 눈뜸; 뉴욕 귀환, 개종 내적 갈등 시작 나폴레옹 황제 즉위; 아이티 독립 선언 (첫 흑인 공화국)
1805 뉴욕 성 베드로 성당에서 가톨릭 공식 개종 (3월 14일) 트라팔가르 해전 (넬슨 제독 전사); 베토벤 『피델리오』 초연
1808 볼티모어로 이주; 소녀들을 위한 가톨릭 학교 개교 미국 노예 수입 공식 금지; 나폴레옹 스페인 침공
1809 메릴랜드 에미츠버그로 이전; 미국 최초 가톨릭 학교 '성 요셉 아카데미' 설립; 성 요셉 자선수녀회 창설; 수녀장 '어머니 세튼'으로 취임 에이브러햄 링컨 출생; 찰스 다윈 출생; 나폴레옹 절정기
1812 큰딸 애나 마리아 결핵으로 사망 (16세) 미영 전쟁(1812년 전쟁) 발발; 나폴레옹 러시아 원정 참패
1815 건강 급격히 악화, 결핵 진행 워털루 전투; 나폴레옹 몰락; 빈 회의로 유럽 재편
1816 셋째 딸 레베카 사망 (15세) 인디애나 주 미합중국 편입; 유럽 가톨릭 교회 재건 시작
1821 에미츠버그에서 선종 (1월 4일, 46세) 미주리 타협; 그리스 독립전쟁 시작; 멕시코 독립
1856 세튼 홀 대학교 설립 (뉴저지, 세튼의 이름을 딤) 크림 전쟁 종전; 미국 남북전쟁 전야
1959 교황 요한 23세, 엘리사벳 안 세튼 복자 선포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준비; 쿠바 혁명
1975 교황 바오로 6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시성 (9월 14일); 미국 태생 최초 성인 베트남 전쟁 종전; 헬싱키 협정 체결; 성년(聖年) 선포

참고문헌 및 참고 사이트

  • Dirvin, Joseph I. (1962). Mrs. Seton: Foundress of the American Sisters of Charity. Farrar, Straus and Cudahy.
  • Melville, Annabelle M. (1951). Elizabeth Bayley Seton, 1774–1821. Scribner.
  • Kelly, Ellin & Melville, Annabelle (eds., 1987). Elizabeth Seton: Selected Writings. Paulist Press.
  • 교황청 시성성 (Dicastery for the Causes of Saints): www.vatican.va
  • National Shrine of Saint Elizabeth Ann Seton, Emmitsburg: www.setonshrine.org
  • United States Conference of Catholic Bishops (USCCB): www.usccb.org
  • Catholic Encyclopedia (New Advent): www.newadvent.org
  • Sisters of Charity Federation: scfederation.org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CBCK): www.cbck.or.kr

※ 본 글은 위 자료들을 바탕으로 저자가 재구성·집필한 원고입니다. 직접 인용이 아닌 내용 요약 및 분석으로 저작권법에 저촉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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