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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유다 타대오 - 절망 속에서 피어난 희망의 사도

by 기쁜소식 알리기 2025.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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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유다 타대오 - 절망 속에서 피어난 희망의 사도

가장 어려운 순간에 빛나는 절망 속의 중보자

이름의 혼동 속에 감춰진 숨은 사도

성 유다 타대오는 참으로 특별한 사도예요. 왜냐하면 그의 이름 자체가 하나의 시련이었거든요. '유다'라는 이름 때문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신한 가리옷 유다와 혼동할까 봐, 초기 교회에서는 그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는 '잊혀진 사도', '숨겨진 사도'라고 불리기도 했죠.

복음서에서도 그의 존재감은 미미해요.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서에서는 '타대오'라고 불리고, 루가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는 '야고보의 아들 유다'라고 기록되어 있어요. 요한 복음서에서는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께 단 한 번 질문하는 모습이 나올 뿐이죠. 이런 낮은 프로필 때문에 오히려 그는 '절망적인 상황'에 있는 사람들의 수호성인이 되었어요.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유다'라는 이름은 꽤 흔했어요. 유대 민족의 조상인 유다 지파에서 따온 이름이니까요. 하지만 가리옷 유다의 배신 이후 이 이름은 저주받은 이름이 되어버렸죠. 유다 타대오는 이런 편견과 오해를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했던 거예요.

 

예수님의 친족이자 충실한 제자

흥미롭게도 유다 타대오는 예수님의 친척이었을 가능성이 높아요. 마르코 복음서 6장 3절에서 나사렛 사람들이 "이 사람은 마리아의 아들이고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의 형제가 아닌가?"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여기서 언급된 '유다'가 바로 사도 유다 타대오일 것으로 여겨져요.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유다 타대오의 상황은 더욱 복잡해져요. 예수님의 형제 또는 사촌으로서 가족 안에서도 미묘한 위치에 있었을 거예요. 요한 복음서 7장 5절에 "형제들조차 예수를 믿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유다 타대오는 가족 중에서도 일찍부터 예수님을 믿고 따른 특별한 존재였던 것 같아요.

유다라는 서신서를 보면 저자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라고 소개하고 있어요. 여기서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던 주님의 형제 야고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여요. 이렇게 보면 유다 타대오는 예수님의 가족이면서도 사도로 선택받은 정말 특별한 위치에 있었던 거죠.

최후의 만찬에서 던진 의미 깊은 질문

요한 복음서 14장 22절에 유다 타대오가 예수님께 던진 질문이 나와요. "주님, 저희에게는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시면서, 세상에는 그렇게 하지 않으시려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이 질문은 정말 깊이가 있어요. 당시 제자들은 예수님이 정치적 메시아로서 온 세상에 자신의 권능을 드러낼 것이라고 기대했거든요.

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예상과 달랐어요.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도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예수님은 외적이고 정치적인 현현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내재적으로 현존하시겠다는 뜻이었죠.

유다 타대오의 이 질문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던져줘요. 왜 하느님은 명백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실까요? 왜 불의와 고통이 세상에 존재할까요? 이런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해 유다 타대오는 이미 2000년 전에 고민했던 거예요.

동방 선교와 시몬과의 동반

초기 교회 전승에 따르면 유다 타대오는 시몬과 함께 동방으로 선교 여행을 떠났어요.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아르메니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했다고 전해지죠. 당시 이 지역들은 파르티아 제국의 영향권 아래 있었고, 조로아스터교와 각종 이교 문화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었어요.

특히 에데사(현재 터키 남동부)에서의 선교 활동이 유명해요. 전설에 따르면 에데사의 왕 아브가르 5세가 병에 걸렸을 때, 유다 타대오가 가서 왕을 치유해주었다고 해요. 이 기적을 통해 왕과 많은 백성들이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요. 물론 이런 전설들의 역사적 사실성은 확실하지 않지만, 적어도 유다 타대오가 그 지역에서 활발하게 선교했다는 것은 분명해 보여요.

동방 선교는 정말 위험천만한 일이었어요. 언어와 문화가 완전히 다른 곳에서, 기존 종교 지도자들의 강한 반발을 무릅쓰고 새로운 종교를 전파한다는 것은 목숨을 건 모험이었거든요. 하지만 유다 타대오는 이런 시련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절망적인 상황일수록 더욱 간절히 복음을 전했던 것 같아요.

순교와 영광스러운 증거

유다 타대오의 순교에 대해서는 여러 전승이 전해져요.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아르메니아에서 순교했다는 것이에요. 현지 이교도 제사장들과 마술사들이 유다 타대오의 복음 전파를 방해하려 했고, 결국 그들의 선동으로 군중들이 돌을 던져 그를 죽였다고 해요. 어떤 전승에서는 도끼로 목이 잘렸다고도 전하고 있어요.

순교 연대는 대략 기원후 65년경으로 추정돼요. 이 시기는 네로 황제의 기독교 박해가 본격화되던 때였죠. 로마 본토뿐만 아니라 동방 지역에서도 기독교도들에 대한 탄압이 심해졌어요. 유다 타대오는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순교의 월계관을 얻었던 거예요.

흥미롭게도 유다 타대오의 순교 방식은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화려한 방식이 아니라 조용하고 은밀하게, 하지만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순교했다는 점이 그의 평생 모습과 일치해요. 그는 살아생전에도 화려하게 드러나는 것보다는 묵묵히 자신의 사명을 다하는 타입이었거든요.

절망적 상황의 수호성인이 된 배경

시간이 지나면서 유다 타대오는 '절망적인 상황'에 있는 사람들의 수호성인이 되었어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아마도 그의 이름 때문에 사람들이 그에게 기도하는 것을 꺼렸던 역사가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다른 성인들에게 기도해도 응답이 없을 때, 마지막 수단으로 유다 타대오에게 의지하게 된 거죠.

중세 시대부터 이런 신심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어요. 특히 14세기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었을 때,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유다 타대오에게 간절히 기도했다고 해요. 또한 백년 전쟁, 십자군 전쟁 등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의 이름이 자주 불렸죠.

이런 배경에는 깊은 신학적 의미가 있어요. 유다 타대오 자신이 평생 오해와 편견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을 견뎌냈기 때문에,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가장 어려운 순간에 그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었어요.

현대적 의미와 희망의 메시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유다 타대오의 메시지는 여전히 강력해요. 현대 사회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절망적인 상황에 부딪히고 있거든요. 경제적 어려움, 건강 문제, 인간관계의 갈등, 진로에 대한 고민 등등 말이에요. 이럴 때 유다 타대오의 이야기는 큰 위로가 돼요.

그의 삶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인내'예요. 평생 오해받고 무시당했지만, 그는 원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더욱 겸손하게 자신의 사명을 다했죠. 이런 모습은 오늘날 SNS 시대에 즉각적인 인정과 관심을 갈구하는 우리에게 깊은 성찰을 주어요.

또한 유다 타대오는 '진정한 희망'이 무엇인지 보여줘요. 그의 희망은 세상적인 성공이나 인정에 있지 않았어요.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 그리고 복음에 대한 확신에서 나오는 희망이었죠. 이런 희망은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을 가지고 있어요.

오늘날의 유다 타대오 신심

현재 전 세계 가톨릭 교회에서는 매년 10월 28일을 성 시몬과 성 유다의 공동 축일로 지내고 있어요. 이날이 되면 특별히 어려운 상황에 처한 신자들이 유다 타대오에게 간절한 기도를 올려요. 미국, 멕시코, 페루 등지에서는 그의 신심이 특히 뜨거워서 전용 성당들도 많이 세워졌어요.

유다 타대오의 상징은 보통 도끼나 곤봉이에요. 이는 그의 순교 방식을 나타내는 것이죠. 또한 그는 종종 가슴에 예수님의 얼굴이 그려진 메달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요. 이는 앞서 언급한 에데사 왕 아브가르와 관련된 전설에서 나온 거예요.

재미있는 점은 현대에 와서 유다 타대오가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는 성인'으로도 불린다는 거예요. 이는 그가 '잊혀진 사도'였다가 다시 발견되었다는 상징적 의미에서 나온 것 같아요. 작은 일상의 문제부터 인생의 큰 위기까지, 사람들은 여전히 그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어요.

성 유다 타대오 - 절망 속에서 피어난 희망의 사도

성 유다 타대오 시대 주요 역사적 사건 연표

연도 사건 역사적 배경
기원전 53년 카르헤 전투 로마군 파르티아에 대패, 동방 정세 불안
기원전 4년경 예수님 탄생 헤로데 대왕 말기, 메시아 대망 사상 확산
기원후 27-30년 예수님의 공생활 유다 타대오를 포함한 12제자 선택
기원후 30년 최후의 만찬 유다 타대오, 예수님께 현현에 대한 질문
기원후 33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유다 타대오, 부활의 증인이 되어 복음 전파 시작
기원후 50-65년 동방 선교 활동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아르메니아에서 복음 전파
기원후 60년경 에데사 선교 아브가르 왕 치유 전설, 기독교 공인 국가 출현
기원후 64년 로마 대화재와 기독교 박해 네로 황제, 기독교도들을 희생양으로 박해
기원후 65년경 성 유다 타대오 순교 아르메니아에서 복음 전파 중 순교 추정
기원후 70년 예루살렘 성전 파괴 제1차 유대 전쟁 종료, 디아스포라 본격화
기원후 80-90년경 유다서 저술 추정 이단 사상 경계, 신앙 보존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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