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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과 초기 그리스도인 공동체 – 신앙의 시작과 도전

by 기쁜소식 알리기 2025.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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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 로마 제국의 심장부에서 한 유대인 청년의 십자가 처형은 역사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은 두려움을 딛고 일어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으며, 예루살렘의 작은 공동체는 순식간에 지중해 전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로마 제국이라는 거대한 정치 체제 안에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황제 숭배 거부, 검투사 경기 반대, 사회적 차별 철폐 등으로 인해 국가의 적으로 낙인찍혔습니다. 이 글은 서기 30년경부터 313년 밀라노 칙령까지 약 280여 년간 로마 제국 안에서 성장한 초기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신앙과 삶, 그리고 그들이 직면한 역사적 도전을 가톨릭 교회의 관점에서 탐구합니다.

 

로마 제국과 초기 그리스도인 공동체 – 신앙의 시작과 도전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새로운 공동체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후 열흘째 되는 날, 오순절에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면서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루살렘 성전 앞에서 첫 설교를 통해 삼천 명의 회심자를 얻었으며, 이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빵을 나누며 기도하는 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초대 교회 신자들은 재산을 공유하고 가난한 이들을 돌보았으며, 매일 성전에 모여 기도하고 가정에서 성찬례를 거행했습니다. 그들의 삶은 사랑과 나눔으로 가득했고, 이러한 모습은 유대교와 이방인들에게 강력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운동은 곧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반발을 샀으며, 스테파노가 최초의 순교자가 되면서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박해로 인해 신자들이 흩어지면서 복음은 사마리아와 시리아, 소아시아로 전파되었고, 안티오키아에서 처음으로 신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야고보 사도의 지도 아래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중심지로 남았지만, 70년 로마군에 의한 예루살렘 성전 파괴로 인해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와 완전히 분리된 독립적 종교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오로와 이방인 선교의 확장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사울은 바오로로 개명하고 이방인의 사도로 거듭났습니다. 그는 세 차례에 걸친 선교 여행을 통해 소아시아, 그리스, 마케도니아 지역에 수많은 교회를 설립했으며, 안티오키아, 에페소, 코린토, 테살로니카, 필리피 등 주요 도시에 신앙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바오로는 서신을 통해 신학적 가르침을 전했고, 구원은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얻는다는 진리를 강조했습니다. 그의 신학은 그리스도교가 유대교의 율법주의를 넘어 보편 종교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50년경 예루살렘에서 열린 사도 회의에서는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할례를 강요하지 않기로 결정했으며, 이는 교회가 문화와 민족을 초월한 보편적 공동체임을 선언한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바오로는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매 맞고 투옥되고 난파를 당하는 등 수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결코 복음 전파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침내 로마에 도착하여 가택 연금 상태에서도 방문자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전했고, 네로 황제의 박해 시기에 참수형으로 순교의 면류관을 받았습니다.

로마 제국의 정치 구조와 종교 정책

1세기 로마 제국은 지중해 전역을 아우르는 초강대국으로서 팍스 로마나라 불리는 평화와 번영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이후 황제 숭배가 제도화되면서 황제는 단순한 통치자를 넘어 신적 존재로 숭배되었고, 제국 전역의 시민들은 황제에게 제사를 드림으로써 충성을 표현해야 했습니다. 로마는 기본적으로 종교적 관용 정책을 펼쳤으며, 정복한 민족들의 신을 로마 판테온에 흡수하여 다신교적 체계를 유지했습니다. 유대교는 고대 종교로서 특별한 지위를 인정받아 황제 숭배 면제 특권을 누렸지만,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에서 분리된 새로운 종교로 간주되어 이러한 특권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황제를 신으로 인정할 수 없었고,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만을 섬긴다는 신앙 고백으로 인해 국가에 대한 불충으로 몰렸습니다. 또한 그들은 검투사 경기와 연극 공연을 거부했고, 노예와 자유인, 남성과 여성을 평등하게 대했으며, 영아 살해와 낙태를 반대하는 등 로마 사회의 관습과 충돌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비밀스러운 모임과 형제자매라는 호칭, 그리스도의 몸을 먹는다는 성찬례 표현은 근친상간과 식인 풍습이라는 악의적 소문을 낳았고, 이는 대중의 적개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네로의 박해와 초기 순교자들

64년 7월 로마에 대화재가 발생하여 도시의 상당 부분이 잿더미로 변했고, 백성들은 네로 황제가 새 궁전을 짓기 위해 불을 질렀다는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네로는 자신에게 쏠린 의심을 돌리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을 방화범으로 지목했고, 로마 역사상 최초의 조직적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역사가 타키투스는 그리스도인들이 짐승 가죽을 뒤집어쓴 채 개들에게 물려 죽거나, 십자가에 매달려 밤의 횃불로 사용되었다고 기록했습니다. 콜로세움에서는 신자들이 사자와 맹수들 앞에 던져졌고, 관중들은 이를 구경거리로 즐겼습니다. 이 시기에 베드로 사도는 자신이 그리스도와 같은 방식으로 죽을 자격이 없다며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했고, 바오로 사도는 로마 시민권자로서 참수형으로 생을 마쳤습니다. 순교자들의 피는 새로운 그리스도인들을 낳는 씨앗이 되었다는 테르툴리아누스의 말처럼, 박해는 오히려 교회를 성장시키는 역설적 결과를 낳았습니다. 순교자들의 유해는 신자들에게 소중히 보존되었고, 그들의 무덤은 순례지가 되었으며, 순교자 공경은 성인 공경 전통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바오로가 묻힌 로마는 사도들의 피로 축성된 거룩한 도시가 되었고, 이후 로마 주교의 수위권이 확립되는 신학적 근거가 되었습니다.

2세기 박해와 변증가들의 활동

트라야누스 황제 시기 소아시아 총독 플리니우스는 황제에게 보낸 서한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문의했고, 트라야누스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색출할 필요는 없으나 고발되면 처벌하라고 답했습니다. 이 원칙은 이후 여러 황제들에게 계승되었으며,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든 고발당할 위험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안티오키아의 주교 이냐시오는 로마로 압송되는 동안 여러 교회에 서신을 보냈고, 맹수들의 이빨이 그리스도의 밀알을 빻는다는 표현으로 순교에 대한 열망을 표현했습니다. 스미르나의 주교 폴리카르포는 86세의 나이에 화형당하면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의 순교 기록은 초대 교회 문헌 중 중요한 자료로 남았습니다. 2세기 중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시기에는 리옹과 비엔나에서 대규모 박해가 발생했고, 노예 소녀 블란디나는 온갖 고문을 받으면서도 신앙을 증거하여 순교자들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 변증가들이 등장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성적으로 변호했으며, 순교자 유스티노는 황제에게 탄원서를 제출하여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오해를 해명하고자 했습니다. 변증가들은 그리스 철학과 그리스도교 진리를 연결시키며 신앙의 합리성을 제시했고, 이는 이후 교부 신학 발전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카타콤과 지하 교회 생활

박해 시기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도시 외곽의 지하 묘지인 카타콤에서 비밀리에 모여 미사를 드리고 신앙을 지켰습니다. 카타콤은 단순한 피난처가 아니라 순교자들이 묻힌 거룩한 장소였고, 신자들은 순교자들의 무덤 위에서 성찬례를 거행하며 영적 힘을 얻었습니다. 벽면에는 착한 목자, 물고기, 닻, 포도나무 등 초기 그리스도교 상징들이 그려져 있었고, 이는 박해 시대 신자들의 신앙과 희망을 보여주는 귀중한 증거입니다. 물고기는 그리스어로 익투스인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라는 신앙 고백의 첫 글자들을 조합한 것으로 신자들 간의 암호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일마다 모여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를 거행했으며,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여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받아 모셨습니다. 세례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쓴 신앙 고백이었고, 견진성사를 통해 성령의 은사를 받았으며, 회개와 고해를 통해 공동체 안에서 용서와 화해를 실천했습니다. 초대 교회는 주교를 중심으로 사제와 부제가 협력하는 위계적 구조를 형성했고, 주교는 사도들의 후계자로서 교회를 이끌고 교리를 수호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교회는 과부와 고아를 돌보고 가난한 이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었으며, 이러한 사회적 돌봄은 그리스도교가 급속히 확산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3세기 대박해와 신앙의 시험

250년 데키우스 황제는 제국의 위기 상황에서 전통 종교로의 복귀를 명령하며 최초의 전국적이고 조직적인 박해를 시작했습니다. 모든 시민은 황제와 로마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고 이를 증명하는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했고, 거부하면 재산 몰수와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순교했지만, 고문과 위협에 못 이겨 배교한 이들도 적지 않았고, 돈을 주고 거짓 증명서를 구입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박해가 끝난 후 배교자들의 교회 복귀 문제가 심각한 논쟁을 일으켰고, 엄격파와 관용파 사이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로마 주교 코르넬리우스는 진심으로 회개한 배교자들을 받아들이는 관용 정책을 펼쳤고, 카르타고 주교 치프리아누스도 이를 지지하며 교회의 일치를 강조했습니다. 258년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치프리아누스는 순교했으며, 그의 저작들은 초대 교회의 교회론과 성사론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303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역사상 가장 잔혹하고 체계적인 박해를 시작했고, 교회 건물을 파괴하고 성경을 불태우며 성직자들을 체포하여 고문하고 처형했습니다. 갈레리우스 부제와 막시미누스 다이아 등이 박해를 주도했고,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했으나 교회는 결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311년 갈레리우스는 임종 직전 관용 칙령을 발표하여 그리스도인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부분적으로 허용했고, 이는 박해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콘스탄티누스와 교회의 해방

312년 막센티우스와의 권력 투쟁 중이던 콘스탄티누스는 밀비우스 다리 전투를 앞두고 하늘에 십자가 표지를 보았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승리하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군대의 방패에 그리스도의 상징을 새기게 했고, 승리 후 그리스도교에 호의적인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313년 그는 동방의 리키니우스와 함께 밀라노에서 만나 종교의 자유를 선포하는 칙령을 발표했고, 이로써 그리스도인들은 공개적으로 신앙을 실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몰수되었던 교회 재산이 반환되었고, 성직자들에게 세금 면제와 법적 특권이 부여되었으며, 주일이 공식 휴일로 지정되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로마의 라테라노 궁전을 교황에게 기증했고, 베드로 무덤 위에 대성당을 건립하기 시작했으며,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에도 성당들을 세웠습니다. 그의 어머니 헬레나는 성지를 순례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발견했다고 전해지며, 이는 성유물 공경 전통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324년 콘스탄티누스가 제국 전체의 유일한 황제가 된 후 그리스도교는 더욱 빠르게 성장했고, 330년 그는 비잔티움을 새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개칭하며 그리스도교 제국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337년 그는 임종을 앞두고 세례를 받았고, 이후 황제들은 대부분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며, 교회는 박해의 시대를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게 되었습니다.

역사적 사건 연대표

연도 주요 사건 역사적 의의
30년경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과 부활 그리스도교 신앙의 역사적 출발점
30년경 오순절 성령 강림과 교회 탄생 사도들의 선교 시작과 초대 공동체 형성
34년경 스테파노 부제의 순교 최초의 순교자, 박해로 인한 복음 확산
35년경 사울의 회심과 바오로로의 변화 이방인 선교의 시작
50년경 예루살렘 사도 회의 이방인 개종자 할례 면제, 보편 교회로 확장
64년 로마 대화재와 네로의 박해 최초의 조직적 박해, 베드로와 바오로 순교
70년 예루살렘 성전 파괴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완전한 분리
107년경 안티오키아 주교 이냐시오 순교 주교직과 성찬례에 대한 초기 증언
155년경 스미르나 주교 폴리카르포 순교 순교록 문학의 시작
165년경 변증가 유스티노 순교 그리스도교 변증 문학의 발전
177년 리옹과 비엔나의 박해 갈리아 지역 교회의 성장과 시련
250년 데키우스 황제의 전국적 박해 최초의 제국 차원 조직적 박해
258년 카르타고 주교 치프리아누스 순교 교회론과 일치에 대한 신학 발전
303-313년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대박해 역사상 가장 잔혹한 박해 시기
312년 밀비우스 다리 전투, 콘스탄티누스 승리 그리스도교 황제의 등장
313년 밀라노 칙령 그리스도교 공인과 종교 자유 선언

참고 문헌 및 사이트

  • 에우세비우스, 『교회사』 - 초대 교회의 가장 중요한 역사 기록
  • 타키투스, 『연대기』 - 네로의 박해에 대한 로마 역사가의 증언
  • 플리니우스, 『서간집』 - 2세기 그리스도인 처리에 관한 역사적 문헌
  • 『폴리카르포의 순교록』 - 초기 순교자 문학의 대표작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홈페이지 (www.cbck.or.kr) - 가톨릭 교회 공식 자료
  • 바티칸 공식 사이트 (www.vatican.va) - 교황청 역사 문서 및 자료
  • 가톨릭 백과사전 (Catholic Encyclopedia) - 초대 교회 역사 상세 정보
  • 『가톨릭 교회 교리서』 - 초대 교회 전통에 대한 공식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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