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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의 박해와 초대 교회 순교자들의 신앙

by 기쁜소식 알리기 2025.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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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검과 십자가의 대결

서기 1세기부터 4세기 초까지 약 300년간 로마 제국은 그리스도교에 대한 조직적인 박해를 자행했습니다. 당시 로마는 지중해 전역을 지배하는 절대 강자였지만, 이 거대한 제국도 하나의 새로운 신앙 앞에서는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황제 숭배를 거부하고 오직 한 분 하느님만을 섬기는 그리스도인들은 제국의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로 간주되었습니다. 로마 당국은 그리스도교를 불법 종교로 규정하고 신자들을 색출하여 사형에 처했으며, 재산을 몰수하고 가족들마저 박해했습니다. 하지만 순교자들의 피는 결코 헛되지 않았고, 오히려 교회의 씨앗이 되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신앙으로 개종하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로마 제국의 박해와 초대 교회 순교자들의 신앙

네로 황제의 광기와 첫 번째 대박해

서기 64년 로마 대화재가 발생했을 때, 황제 네로는 자신에게 쏠린 의심의 눈초리를 돌리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았습니다. 역사가 타키투스의 기록에 따르면 네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방화 혐의를 씌우고 잔혹한 방법으로 처형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맹수의 가죽을 뒤집어쓴 채 개들에게 물어뜯겨 죽었고, 어떤 이들은 십자가에 못 박혀 산 채로 불태워져 밤의 조명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박해로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가 순교했다고 전승되며, 베드로는 자신이 스승인 예수님과 같은 방식으로 죽을 자격이 없다며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히기를 청했다고 합니다. 네로의 박해는 비록 로마 시내에 국한되었지만 초대 교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이후 황제들의 박해 정책에 선례가 되었습니다.

도미티아누스와 트라야누스 시대의 시련

서기 81년부터 96년까지 통치한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스스로를 신으로 칭하며 황제 숭배를 강요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주이자 신이라 부르도록 명령했고, 이를 거부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습니다. 이 시기 사도 요한은 파트모스 섬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요한묵시록을 집필했습니다. 뒤를 이은 트라야누스 황제 시대에는 비록 그리스도인을 적극적으로 색출하지는 않았지만, 고발당한 자들은 반드시 처벌하는 정책을 폈습니다. 소아시아 총독이었던 플리니우스가 황제에게 보낸 서신에는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묻는 내용이 담겨 있으며, 트라야누스는 고발된 자들에게 황제에게 제사를 드리도록 강요하고 거부하면 처형하라고 답했습니다. 안티오키아의 주교 이냐시오는 이 시기에 로마로 압송되어 콜로세움에서 맹수에게 찢겨 순교했으며, 그가 압송되는 도중 여러 교회에 보낸 편지들은 초대 교회의 귀중한 신학적 유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데키우스와 발레리아누스의 전제국적 박해

서기 250년 데키우스 황제는 로마 역사상 처음으로 제국 전역에 걸친 조직적 박해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제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통 신들에게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믿었고, 모든 시민에게 황제와 로마 신들에게 제사를 드렸다는 증명서를 발급받도록 강요했습니다. 이를 거부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투옥되거나 재산을 몰수당했으며, 많은 이들이 고문과 사형을 당했습니다. 로마의 주교 파비아누스를 비롯한 수많은 성직자와 평신도들이 이 박해로 순교했습니다. 258년에는 발레리아누스 황제가 특히 교회의 지도자들을 겨냥한 박해를 단행했습니다. 로마의 주교 식스투스 2세와 부제 라우렌시오, 카르타고의 주교 치프리아누스 등 교회의 핵심 인물들이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부제 라우렌시오는 쇠 석쇠에 구워지는 순교를 당하면서도 "이쪽은 다 구워졌으니 뒤집어서 드시오"라며 박해자들을 향한 용기와 유머를 잃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대박해와 교회의 승리

서기 303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로마 역사상 가장 잔혹하고 조직적인 대박해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네 차례에 걸친 칙령을 통해 교회 건물을 파괴하고, 성경을 불태우며, 성직자들을 투옥하고,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배교를 강요했습니다. 제국 전역에서 수천 명의 순교자가 발생했으며, 특히 동방 지역에서 박해가 극심했습니다. 니코메디아에서는 주교와 신자들이 교회 건물 안에서 산 채로 불태워졌고, 이집트에서는 한 번에 수백 명이 집단 처형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극한의 박해도 교회를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순교자들의 용기와 신앙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교회는 지하에서 더욱 단단하게 조직화되었습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리키니우스가 밀라노 칙령을 통해 그리스도교를 공인하면서 마침내 박해의 시대는 막을 내렸습니다. 300년간의 피의 시련을 견뎌낸 교회는 이제 로마 제국의 공식 종교로 성장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순교 신학과 교회의 정체성 확립

박해의 시대는 초대 교회에 깊은 신학적 유산을 남겼습니다. 순교는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최고의 증거이자 신앙의 완성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교부 테르툴리아누스는 순교자들의 피가 교회의 씨앗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으며, 이는 역사적 사실로 입증되었습니다. 박해를 통해 교회는 성사 신학과 교회론을 발전시켰고, 배교자들을 어떻게 다시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논쟁을 통해 고해성사의 신학적 기초를 마련했습니다. 또한 순교자들의 유해와 유물에 대한 공경이 시작되었고, 이는 후대 가톨릭 성인 공경의 전통으로 이어졌습니다. 순교자들이 처형당한 장소 위에 성당이 건립되었으며, 그들의 기념일은 전례력에 포함되어 오늘날까지 기념되고 있습니다. 로마의 카타콤에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희망이 벽화와 비문으로 생생하게 남아 있으며, 이는 현대 신자들에게도 신앙의 본보기가 되고 있습니다.

역사적 교훈과 현대적 의미

초대 교회의 박해 역사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순교자들은 세속 권력 앞에서도 신앙의 진리를 타협하지 않았으며, 물질적 안락함보다 영적 가치를 우선시했습니다. 그들은 죽음 앞에서도 평화와 기쁨을 잃지 않았고, 박해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용서했습니다. 이러한 신앙의 증거는 로마 제국이라는 거대한 권력 구조를 변화시켰고, 결국 그리스도교가 서양 문명의 근간이 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 그리스도인들도 여전히 여러 형태의 박해와 유혹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물리적 박해는 줄어들었지만 세속주의, 물질만능주의, 상대주의라는 새로운 도전이 신앙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 순교자들의 용기와 신념은 현대 신자들에게 어떻게 신앙을 지키고 증거해야 하는지에 대한 영원한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매년 순교자들을 기념하며 그들의 신앙 유산을 계승하고 있으며, 이는 교회가 박해의 역사를 결코 잊지 않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주요 박해 시기와 역사적 사건 연표

연도 황제/시기 주요 사건 순교자
64년 네로 로마 대화재 후 첫 번째 대박해 시작 사도 베드로, 바오로
81-96년 도미티아누스 황제 숭배 강요 및 박해 사도 요한 유배
98-117년 트라야누스 고발된 그리스도인 처벌 정책 이냐시오 주교
161-180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방 총독들의 산발적 박해 리옹의 순교자들
250-251년 데키우스 제국 전역 조직적 박해, 제사 증명서 강요 파비아누스 교황
257-260년 발레리아누스 성직자 중심 박해 식스투스 2세, 라우렌시오, 치프리아누스
303-313년 디오클레티아누스 대박해, 교회 건물 파괴 및 성경 소각 수천 명의 순교자
313년 콘스탄티누스 밀라노 칙령 공포, 그리스도교 공인 박해 종식
325년 콘스탄티누스 니케아 공의회 개최 교회의 공식 신학 체계 확립
380년 테오도시우스 그리스도교를 로마 제국 국교로 선포 교회의 완전한 승리

참고 문헌 및 자료

  • 에우세비오스, 『교회사』, 분도출판사, 2008
  • 타키투스, 『연대기』, 숲출판사, 2019
  • 플리니우스, 『서간집』, 한길사, 2011
  • 루이 드 보, 『초대 교회사』, 가톨릭출판사, 2015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홈페이지 (www.cbck.or.kr)
  • 바티칸 공식 홈페이지 (www.vatican.va)
  • 가톨릭 백과사전 (www.catholic.or.kr)
  • 교황청 문화유산 평의회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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