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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의 기독교 인식 변화 – 박해에서 국교까지의 여정

by 기쁜소식 알리기 2025.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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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로마의 시선 – 유대교의 한 분파로 인식

1세기 중반 로마 제국은 그리스도교를 유대교의 한 분파 정도로 이해했습니다. 로마는 전통적으로 정복한 지역의 종교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유대교 역시 합법적인 종교로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유대교 회당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로마 당국은 이들을 유대인의 일부로 간주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와 명확히 구분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예루살렘 함락 이후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인들과 거리를 두면서 양자의 차이가 분명해졌습니다. 로마 당국의 눈에 그리스도인들은 이상한 집단으로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신전에 가지 않았고, 황제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았으며, 비밀스러운 모임을 가졌습니다. 당시 로마 사회는 종교와 정치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기에 황제 숭배를 거부하는 것은 단순한 종교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불충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러한 오해와 의심이 쌓이면서 그리스도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로마 제국의 기독교 인식 변화 – 박해에서 국교까지의 여정

네로부터 시작된 조직적 박해

64년 로마 대화재는 그리스도교 박해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화재의 원인에 대한 민심이 악화되자 네로 황제는 그리스도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았습니다. 역사가 타키투스는 그리스도인들이 인류에 대한 증오로 고발받았다고 기록했습니다. 이때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가 순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네로의 박해는 로마 시내에 국한되었지만 그리스도인들을 범죄자 집단으로 낙인찍는 선례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황제들은 그리스도교에 대해 각기 다른 태도를 보였습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황제 숭배를 강요하며 거부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처벌했고, 트라야누스 황제 시대에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처벌하지는 않되 고발되면 처벌한다는 애매한 정책이 시행되었습니다. 소(小)플리니우스가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보낸 서신에는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문의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는 당시 로마 당국이 그리스도교를 어떻게 취급해야 할지 명확한 방침이 없었음을 보여줍니다.

2세기 지식인들의 편견과 오해

2세기 들어 그리스도교는 로마 제국 전역으로 확산되었지만 동시에 사회적 편견도 심화되었습니다. 로마의 지식인들은 그리스도교를 미신이자 무지한 자들의 종교로 치부했습니다. 의사이자 철학자였던 갈레노스는 그리스도인들이 이성적 논증 없이 믿기만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철학자 켈수스는 그리스도교를 체계적으로 공격하는 저술을 남겼으며, 그리스도인들이 사회 질서를 위협하고 로마의 전통을 파괴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민중들 사이에서는 더욱 황당한 소문들이 퍼졌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친다거나 근친상간을 한다는 터무니없는 비방이 돌았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서로를 형제자매라 부르고 사랑의 잔치라 불리는 모임을 가진 것에 대한 왜곡된 이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러한 편견에 맞서 성 유스티노와 같은 변증가들이 나타나 그리스도교의 진실을 알리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들은 황제들에게 직접 변론서를 제출하며 그리스도인들이 선량한 시민이며 도덕적으로 고결한 삶을 산다고 설명했습니다.

3세기 제국의 위기와 대규모 박해

3세기는 로마 제국에 위기의 시대였습니다. 외부로부터는 게르만족과 페르시아의 침입이 있었고 내부적으로는 황제들이 빠르게 교체되며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었습니다. 경제는 악화되었고 전염병이 제국을 휩쓸었습니다. 이러한 혼란기에 일부 황제들은 전통 종교로의 회귀를 통해 제국을 안정시키려 했습니다. 250년 데치우스 황제는 모든 시민에게 로마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고 증명서를 받도록 명령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을 직접 겨냥한 조치였으며 제국 전역에 걸친 최초의 조직적 박해였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했지만 동시에 배교자들도 많이 발생했습니다. 발레리아누스 황제 역시 그리스도교 성직자들과 재산을 가진 평신도들을 집중적으로 탄압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박해 속에서도 그리스도교는 계속 성장했습니다. 순교자들의 용기 있는 증언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새로운 개종자들을 불러왔습니다. 교부 테르툴리아누스가 순교자들의 피가 교회의 씨앗이라고 한 말은 이 시기를 잘 표현합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대박해와 그 한계

303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그리스도교를 완전히 근절하기 위한 대대적인 박해를 시작했습니다. 교회 건물을 파괴하고 성경을 소각하며 성직자들을 체포하라는 칙령이 연이어 발표되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전통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도록 강요했으며 거부하는 자들은 고문과 처형을 당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교 역사상 가장 혹독한 박해로 기록됩니다. 그러나 이 박해는 예상과 다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이미 로마 제국 사회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었습니다. 귀족과 군인 심지어 황제의 궁정에도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습니다. 지역마다 박해의 강도가 달랐으며 서방에서는 상대적으로 약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갈레리우스 황제는 311년 임종을 앞두고 박해를 중단하고 그리스도인들에게 관용을 베푸는 칙령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사실상 박해 정책의 실패를 인정한 것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은 그리스도교를 제거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콘스탄티누스의 개종과 밀라노 칙령

312년 밀비우스 다리 전투는 로마 제국과 그리스도교 관계의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전투 전날 하늘에서 십자가 표시를 보고 승리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그는 그리스도교에 우호적인 정책을 펼쳤습니다. 313년 리키니우스와 함께 발표한 밀라노 칙령은 그리스도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의 자유를 보장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관용을 넘어 그리스도교를 제국 내에서 완전히 합법화한 것이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교회에 재산을 돌려주고 성직자들에게 특권을 부여했으며 교회 건축을 적극 지원했습니다. 그는 325년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하여 교리 논쟁을 해결하고자 했으며 이는 황제가 교회 문제에 직접 개입한 첫 사례였습니다. 콘스탄티누스의 개종이 순전히 종교적 확신에서 비롯되었는지 아니면 정치적 계산이 포함되었는지는 논쟁거리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의 결정이 서양 문명의 역사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는 점입니다. 박해받던 종교가 제국의 보호를 받는 종교로 탈바꿈했습니다.

테오도시우스와 그리스도교 국교화

380년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테살로니카 칙령을 통해 그리스도교를 로마 제국의 공식 종교로 선포했습니다. 모든 로마 시민은 니케아 신경을 따르는 그리스도교를 믿어야 한다고 명령했습니다. 이는 콘스탄티누스의 종교적 관용 정책을 넘어서 그리스도교를 국가 종교로 확립한 것이었습니다. 392년에는 이교 숭배를 금지하는 칙령이 발표되어 전통적인 로마 신전들이 폐쇄되었습니다. 천년 이상 지속되어 온 로마의 전통 종교가 공식적으로 종말을 맞이한 것입니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로마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일부 귀족들과 지식인들은 제국의 쇠퇴가 전통 신들을 버린 데 따른 징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을 저술하여 그리스도교적 역사관을 제시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국교화는 교회에 막강한 권력과 영향력을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도전도 안겨주었습니다. 순교 시대의 순수한 신앙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세속 권력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하는 질문들이 제기되었습니다.

역사적 변화가 남긴 유산

로마 제국의 그리스도교 인식 변화는 단순히 종교사의 한 장이 아니라 서양 문명 전체의 방향을 결정지은 사건이었습니다. 박해받던 소수 종교가 제국의 국교가 되기까지는 약 300년이 걸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순교자들의 희생이 있었고 변증가들의 지적 노력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신자들의 일상적 증언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교가 승리한 것은 단순히 콘스탄티누스 한 사람의 결정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로마 사회의 도덕적 공백을 채웠고 개인의 존엄성과 평등 사랑과 용서라는 새로운 가치를 제시했습니다. 가난한 자와 병든 자를 돌보는 실천적 사랑은 로마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오늘날 유럽의 문화와 가치관 법률과 제도의 많은 부분이 이 시기에 형성된 그리스도교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동시에 이 변화는 교회에 영원한 질문을 남겼습니다.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복음의 순수성을 지킬 수 있는가 사회적 책임과 영적 사명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물음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로마 제국의 그리스도교 인식 변화 주요 사건 연표

연도 역사적 사건 인식 변화의 의미
30년경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형 로마 총독의 사형 집행, 정치적 위협으로 간주
49년 클라우디우스 황제 유대인 추방 그리스도인과 유대인 구분 없이 취급
64년 네로의 로마 대화재와 박해 최초의 조직적 박해, 범죄 집단으로 낙인
112년 플리니우스의 트라야누스 서신 그리스도인 처리 방침의 모호함 드러남
177년 리옹의 순교자들 지방 차원의 대규모 박해 발생
202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개종 금지령 그리스도교 확산을 막으려는 시도
250년 데치우스 제국 전역 박해 최초의 전국적 체계적 박해 정책
257-260년 발레리아누스 박해 성직자와 부유한 평신도 집중 탄압
303-311년 디오클레티아누스 대박해 그리스도교 근절 시도, 그러나 실패
311년 갈레리우스 관용 칙령 박해 정책의 실패 인정, 관용으로 전환
312년 밀비우스 다리 전투 콘스탄티누스의 개종 계기
313년 밀라노 칙령 그리스도교 합법화, 종교 자유 보장
325년 니케아 공의회 황제의 교회 문제 개입, 공식 인정
380년 테살로니카 칙령 그리스도교 로마 제국 국교로 선포
392년 이교 숭배 금지령 전통 로마 종교 공식 종말

참고 문헌 및 참고 사이트

  • 유세비우스, 교회사, 은성출판사
  • 타키투스, 연대기, 범우사
  • 에드워드 기번, 로마제국쇠망사 관련 문헌
  • W.H.C. 프렌드, 초기 그리스도교 순교와 박해 연구
  •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홈페이지 (www.cbck.or.kr)
  • 바티칸 공식 웹사이트 (www.vatican.va)
  • 가톨릭 굿뉴스 (www.catholic.or.kr)
  • 교부 문헌 연구소 자료
  • 분도출판사 초기 교회사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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