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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아 공의회와 삼위일체 교리 –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 확립

by 기쁜소식 알리기 2025.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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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우스 논쟁의 시작과 교회의 분열

4세기 초 알렉산드리아 교회에서 심각한 신학적 논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제 아리우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해 문제적인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는 성자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느님과 동등하지 않으며 시간 안에서 창조된 피조물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아리우스의 핵심 주장은 한때 성자가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가장 높은 피조물로 여기지만 참 하느님으로는 인정하지 않는 입장이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주교 알렉산드로는 이러한 가르침이 사도 전승에 어긋난다며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주교의 부제였던 젊은 아타나시우스도 논쟁에 적극 참여하며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옹호했습니다. 그러나 아리우스는 뛰어난 웅변가이자 작곡가였으며 자신의 주장을 대중적인 찬송가로 만들어 퍼뜨렸습니다. 많은 평신도들과 일부 주교들이 그의 주장에 동조했고 동방 교회 전체가 양분되었습니다. 논쟁은 단순한 신학적 토론을 넘어 교회의 일치를 위협하는 심각한 분열로 발전했습니다. 갓 평화를 얻은 교회가 내부 분쟁으로 다시 흔들리는 상황이었습니다.

니케아 공의회와 삼위일체 교리 –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 확립

콘스탄티누스의 소집과 공의회 준비

324년 리키니우스를 격파하고 제국 전체의 단독 황제가 된 콘스탄티누스는 교회의 분열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제국의 평화와 일치를 위해 종교적 통합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처음에는 주교들에게 서신을 보내 화해를 권고했지만 논쟁은 더욱 격화되었습니다. 결국 황제는 전 세계 주교들을 한자리에 모아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325년 봄 소아시아의 니케아에 공의회를 소집한다는 칙령이 발표되었습니다. 니케아는 콘스탄티누스의 여름 궁전이 있던 곳으로 교통이 편리하고 기후가 좋은 도시였습니다. 황제는 참석하는 주교들에게 제국의 교통 수단을 무료로 제공했고 숙식비도 모두 부담했습니다. 이는 교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박해 시대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광경이었습니다. 과거 숨어서 모이던 주교들이 이제 황제의 초청을 받아 공개적으로 회의를 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동방에서 서방까지 제국 전역은 물론 페르시아에서도 주교들이 참석했습니다. 참석자 수에 대해서는 기록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략 250명에서 318명 정도로 추정됩니다. 이들 중 다수는 최근까지 박해를 받았던 증거자들이었고 일부는 고문으로 인한 상처를 몸에 지니고 있었습니다.

공의회의 진행과 격렬한 논쟁

325년 5월 20일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참석한 가운데 니케아 공의회가 공식 개막되었습니다. 황제는 자주색 예복을 입고 입장했지만 주교들에게 먼저 자리에 앉도록 권한 후 자신도 앉았다고 전해집니다. 개회 연설에서 콘스탄티누스는 교회의 분열이 전쟁보다 더 두렵다고 말하며 일치를 간곡히 호소했습니다. 논쟁의 중심에는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한 근본적 질문이 있었습니다. 성자는 성부와 어떤 관계인가 그리스도는 참 하느님인가 아니면 가장 높은 피조물인가 하는 물음이었습니다. 아리우스파는 성자가 성부에게서 나왔지만 본질이 다르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성자를 중간적 존재로 보았으며 하느님과 피조물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신적 존재로 이해했습니다. 반면 정통파는 성자가 성부와 동일한 본질을 가진다고 주장했습니다. 핵심 쟁점은 호모우시오스라는 그리스어 단어였습니다. 이는 동일본질이라는 뜻으로 성자가 성부와 같은 본질을 공유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아리우스파는 이 용어를 거부했고 대신 호모이우시오스 즉 유사본질이라는 표현을 선호했습니다. 단 한 글자 차이였지만 신학적 의미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논쟁은 때로 격렬해져서 일부 주교들은 아리우스의 발언을 듣고 귀를 막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니케아 신경의 탄생과 핵심 내용

약 두 달에 걸친 토론 끝에 공의회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압도적 다수의 주교들이 아리우스의 주장을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선언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러한 신앙을 공식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신경이 작성되었습니다. 니케아 신경은 그리스도께서 참 하느님에게서 나신 참 하느님이시며 창조되지 않으시고 성부와 동일본질이시라고 명확히 선언했습니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창조되었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그리스도의 창조주로서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신경의 마지막 부분에는 아리우스의 주장들을 명시적으로 단죄하는 저주 조항이 붙었습니다. 성자가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거나 다른 본질에서 나왔다고 말하는 자들을 가톨릭 교회가 단죄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참석한 주교들 중 거의 대부분이 이 신경에 서명했습니다. 아리우스와 그를 끝까지 지지한 두 명의 주교만이 서명을 거부했고 이들은 추방되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공의회의 결정을 제국법으로 뒷받침했습니다. 니케아 신경을 거부하는 자는 이단으로 간주되어 처벌받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국가 권력이 교회의 교리 문제에 개입하는 선례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훗날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서 복잡한 문제를 야기하게 됩니다.

아타나시우스의 평생에 걸친 투쟁

니케아 공의회에서 정통 신앙이 승리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논쟁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아리우스파는 강력한 세력을 유지했고 황제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328년 알렉산드로 주교가 사망하자 아타나시우스가 후임 주교로 선출되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0세 정도로 매우 젊었지만 이미 니케아 공의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신학자였습니다. 아타나시우스는 평생 동안 니케아 신앙을 수호하는 투쟁을 벌였습니다. 그는 성자의 신성이 인간 구원의 핵심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만약 그리스도가 참 하느님이 아니라면 인간을 죄와 죽음에서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논리였습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인간을 신화할 수 있으며 따라서 그리스도는 반드시 참 하느님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리우스파는 아타나시우스를 제거하기 위해 온갖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를 살인자와 마술사로 고발했고 정치적 반역자로 모함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말년에 아리우스파에 우호적으로 변했고 아타나시우스를 추방했습니다. 이후 아타나시우스는 46년간의 주교 재임 기간 중 다섯 차례나 추방당하며 총 17년을 망명 생활로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니케아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고 많은 저술을 통해 정통 교리를 변호했습니다. 온 세상이 아리우스파가 되어도 아타나시우스는 홀로 맞서 싸웠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습니다.

카파도키아 교부들과 삼위일체 신학의 완성

4세기 후반 카파도키아 지방 출신의 세 교부가 삼위일체 신학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켰습니다. 대 바실리우스 그의 동생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그리고 친구인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가 그들입니다. 이들은 니케아 신앙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신학적 언어를 개발했습니다. 카파도키아 교부들은 본질과 위격의 구분을 명확히 했습니다. 하느님은 하나의 본질을 가지지만 세 위격으로 존재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단일성과 삼위성을 동시에 표현하는 정교한 신학이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성령의 신성도 명확히 가르쳤습니다. 니케아 공의회는 주로 성자의 신성에 초점을 맞췄지만 성령에 대해서는 충분히 다루지 못했습니다. 일부 신학자들은 성령을 피조물로 여겼고 이를 프네우마토마키 즉 성령 반대파라고 불렀습니다. 대 바실리우스는 성령론을 저술하여 성령께서도 성부 성자와 함께 경배와 영광을 받으실 하느님이심을 논증했습니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는 삼위일체 신학을 탁월한 수사학으로 표현했고 신학자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는 철학적이고 사변적인 접근으로 삼위일체의 신비를 탐구했습니다. 이들의 노력으로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신학은 완성도 높은 체계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와 니케아 신경의 확정

381년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제2차 세계 공의회를 소집했습니다. 이 공의회의 주요 목적은 아리우스 논쟁을 최종적으로 해결하고 성령의 신성을 명확히 하는 것이었습니다. 약 150명의 동방 주교들이 참석했고 콘스탄티노폴리스 주교 그레고리우스가 의장을 맡았습니다. 공의회는 니케아 신앙을 재확인하고 모든 형태의 아리우스주의를 단죄했습니다. 또한 성령에 관한 조항을 확대하여 성령께서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고 성부에게서 발하시어 성부와 성자와 함께 경배와 영광을 받으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렇게 완성된 신경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입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이를 간단히 니케아 신경이라고 부르며 매주 미사에서 고백합니다. 이 신경은 동방 정교회와 대부분의 개신교에서도 공통으로 사용하는 신앙 고백입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이후 삼위일체 교리는 그리스도교 정통 신앙의 핵심으로 확고히 자리잡았습니다. 물론 이후에도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이단들이 나타났지만 교회는 일관되게 니케아 신앙을 수호했습니다. 서방 교회에서는 필리오퀘 즉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한다는 표현을 추가했는데 이는 훗날 동서 교회 분열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삼위일체 교리의 신학적 의미와 현대적 적용

삼위일체 교리는 단순히 추상적인 신학 이론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을 표현합니다. 이 교리는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를 알려줍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고립된 단일자가 아니라 사랑의 친교 안에 계신 분입니다. 성부는 영원히 성자를 낳으시고 성부와 성자는 영원히 성령을 발하십니다. 이는 하느님의 본질이 사랑의 관계임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이러한 삼위일체의 친교에 초대받았습니다. 세례를 통해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게 됩니다. 구원이란 바로 이 삼위일체적 친교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또한 삼위일체 교리는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을 설명합니다. 만약 그리스도가 참 하느님이 아니라면 우리를 하느님과 화해시킬 수 없습니다. 성육신은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신 사건이며 이를 통해 인간은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구원을 우리에게 적용하시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현대 신학은 삼위일체 교리를 사회적 차원으로도 확장합니다. 삼위일체가 평등하면서도 다양한 위격들의 친교라는 점에서 인간 공동체의 모델이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삼위일체를 닮은 친교의 공동체로 부름받았습니다. 각자의 고유성을 존중하면서도 사랑 안에서 하나 되는 것이 교회의 이상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또한 겸손을 가르칩니다. 하느님의 신비는 인간 이성으로 완전히 파악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고백하고 평생 더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결코 다 알 수 없습니다. 이는 신앙이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니라 신비 앞에서의 경외와 사랑임을 보여줍니다.

니케아 공의회와 삼위일체 교리 확립 주요 사건 연표

연도 역사적 사건 의미와 영향
250-256년경 아타나시우스 출생 니케아 신앙의 위대한 수호자 탄생
318년경 아리우스 논쟁 시작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도 신성 논쟁 발발
321년 아리우스 파문 알렉산드로 주교가 아리우스를 이단으로 단죄
325년 5월 20일 니케아 공의회 개막 최초의 보편 공의회, 318명 주교 참석
325년 6월 19일 니케아 신경 선포 그리스도의 동일본질 선언, 아리우스 단죄
328년 아타나시우스 알렉산드리아 주교 선출 정통 신앙 수호의 평생 투쟁 시작
335년 아타나시우스 첫 추방 아리우스파의 음모로 트리어로 유배
336년 아리우스 사망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급사
337년 콘스탄티누스 황제 서거 아리우스파 주교에게 세례받고 사망
356-362년 아타나시우스 제3차 추방 이집트 사막 수도자들 사이에 은신
360년경 카파도키아 교부들 활동 바실리우스, 그레고리우스들의 신학 발전
373년 아타나시우스 선종 정통 신앙의 수호자 평화롭게 서거
379년 대 바실리우스 선종 카파도키아 교부 중 한 명 사망
381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니케아 신앙 재확인, 성령 신성 선언
381년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완성 현재 미사에서 사용하는 신경의 최종 형태

참고 문헌 및 참고 사이트

  • 아타나시우스, 니케아 신앙 옹호 저작집, 분도출판사
  • 바실리우스, 성령론, 은성출판사
  •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 신학 강론
  • 유세비우스, 콘스탄티누스의 생애
  •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편 신앙고백,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홈페이지 (www.cbck.or.kr)
  • 바티칸 공식 웹사이트 (www.vatican.va)
  • 가톨릭 굿뉴스 (www.catholic.or.kr)
  • 분도출판사 교부 문헌 시리즈
  • 은성출판사 초기 교회사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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