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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인과 교부

성녀 테클라 순교자 - 초대 교회 여성 신앙의 빛

by 기쁜소식 알리기 2025.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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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 초대 교회와 여성의 역할

1세기는 그리스도교가 탄생하고 로마 제국 전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역사적 시기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사도들과 제자들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팔레스티나를 넘어 소아시아, 그리스, 로마로 향했습니다. 특히 사도 바오로는 이방인 선교의 선구자로서 여러 차례 선교 여행을 통해 수많은 도시에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이 시기 로마 제국의 사회는 가부장적 질서가 지배적이었고, 여성들은 공적 영역에서 제한된 역할만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는 이러한 사회적 관습과는 다른 혁명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갈라티아서 3장 28절에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서는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다고 선포했습니다. 이러한 복음의 평등 정신은 많은 여성들이 초대 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만들었습니다. 여성 부제, 예언자, 전교사들이 등장했고, 그들 중 일부는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순교의 길을 걸었습니다. 성녀 테클라는 이러한 초대 교회 여성 신앙인들의 대표적 인물로서, 전승에 따르면 최초의 여성 순교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녀 테클라 순교자 - 초대 교회 여성 신앙의 빛

이코니움에서의 개종과 약혼 파기

성녀 테클라는 소아시아 지방의 이코니움이라는 도시에서 부유한 가문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이코니움은 현재 터키 중부에 위치한 고대 도시로, 로마 제국 시대에는 리카오니아 지방의 중요한 상업 도시였습니다. 바오로와 테클라 행전에 따르면, 18세의 젊고 아름다운 테클라는 당시 타미리스라는 귀족 청년과 약혼한 상태였습니다. 어느 날 사도 바오로가 이코니움을 방문하여 이웃집인 오네시포로스의 집에 머물며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테클라는 자신의 집 창가에 앉아 바오로의 설교를 듣게 되었는데, 그는 하느님의 사랑과 순결한 삶의 중요성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바오로의 말씀은 테클라의 마음 깊이 울려 퍼졌고, 그녀는 3일 동안 밤낮으로 창가에 앉아 그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음식도 잊고 잠도 자지 않은 채 복음에 매료된 테클라의 모습은 어머니 테오클리아를 걱정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테클라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기로 결심하고, 하느님께 자신의 동정을 봉헌하겠다고 서원했습니다. 이는 약혼자 타미리스와의 결혼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분노한 어머니와 약혼자는 바오로를 총독에게 고발했고, 그는 처녀들이 결혼을 거부하도록 만든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습니다. 테클라는 밤에 몰래 감옥으로 가서 바오로를 찾아가 그의 발치에 입맞추며 더 많은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이 사건이 발각되자 테클라도 체포되었고, 총독은 바오로를 추방하고 테클라에게는 화형 판결을 내렸습니다.

화형에서의 기적적 구원

테클라는 공개 처형장으로 끌려갔고, 많은 군중들이 그녀의 화형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조차 딸이 화형당하는 것을 보기 원했다고 전해집니다. 장작더미가 준비되고 불이 붙여졌지만, 테클라는 십자성호를 그으며 하느님께 기도했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폭풍우가 몰아쳤고, 천둥과 번개가 치며 비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불은 완전히 꺼졌고 많은 사람들이 번개에 맞아 죽었습니다. 군중들은 두려움에 떨며 흩어졌고, 테클라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이 사건은 하느님께서 테클라를 보호하신다는 명백한 표징이었습니다. 테클라는 이코니움을 떠나 추방당한 바오로를 찾아 나섰고, 도시 밖에서 그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바오로에게 자신의 머리를 자르고 어디든 그를 따라가겠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여성이 머리를 자르는 것은 세상에 대한 죽음과 하느님께 대한 헌신을 상징하는 행위였습니다. 바오로는 테클라의 신앙과 용기를 인정하면서도, 앞으로 더 큰 시련이 올 것을 예고했습니다. 테클라는 남자의 옷을 입고 바오로와 함께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향했습니다.

안디옥에서의 두 번째 박해

비시디아 안디옥에 도착한 테클라는 또 다른 시련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알렉산더라는 부유하고 권력있는 귀족이 테클라의 아름다움에 반해 그녀를 탐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바오로에게 많은 돈과 선물을 제안하며 테클라를 달라고 요구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알렉산더는 거리에서 테클라를 강제로 끌어안으려 했고, 테클라는 격렬하게 저항하며 그의 옷을 찢고 머리에서 관을 떨어뜨렸습니다.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한 알렉산더는 테클라를 폭행죄로 고발했고, 총독은 그녀에게 맹수들과 싸우는 형벌을 선고했습니다. 테클라는 감옥에 갇혔고, 한 부유한 여인 트리파이나가 그녀를 보호하며 돌보았습니다. 처형일이 되자 테클라는 원형 경기장으로 끌려갔고, 굶주린 사자들이 풀려났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암사자가 테클라를 보호하며 다른 맹수들을 공격했습니다. 이어서 곰과 표범이 풀려났지만, 암사자는 계속 테클라를 지켰고 결국 죽었습니다. 총독은 더 많은 맹수들을 풀어놓았지만, 테클라는 경기장에 있던 물웅덩이로 뛰어들어 스스로 세례를 받으며 하느님께 기도했습니다. 그 순간 물속의 물고기들이 모두 죽었고, 경기장에 있던 여성들이 향수를 뿌려 맹수들을 진정시켰습니다. 심지어 코끼리들도 테클라를 해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연속적인 기적을 목격한 총독과 군중들은 두려움에 떨었고, 트리파이나와 많은 여성들은 테클라의 석방을 요구했습니다. 결국 총독은 테클라를 석방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섬기는 하느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셀레우키아에서의 은둔 생활과 전교

석방된 테클라는 바오로를 다시 찾아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보고했고, 바오로는 그녀를 축복하며 가서 말씀을 가르치라고 파견했습니다. 테클라는 먼저 이코니움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찾았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테클라는 타미리스가 이미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결국 킬리키아의 셀레우키아로 향했습니다. 셀레우키아는 지중해 연안의 항구 도시로, 그곳에서 테클라는 산속 동굴에서 은둔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그녀는 그곳에서 72년 동안 살았다고 합니다. 테클라는 은둔자로 살았지만 고립된 삶을 산 것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찾아와 가르침을 청했고, 그녀는 복음을 전하며 특히 여성들에게 순결한 삶과 신앙의 중요성을 가르쳤습니다. 또한 그녀는 많은 치유의 기적을 행했다고 전해집니다. 병든 자들이 그녀를 찾아왔고, 그녀의 기도를 통해 치유되었습니다. 이러한 명성은 지역 의사들의 시기를 불러일으켰고, 그들은 테클라가 자신들의 생계를 위협한다며 총독에게 고발했습니다. 당시 테클라는 이미 90세의 고령이었습니다. 그녀를 해치려는 자들이 동굴로 접근했을 때, 테클라는 하느님께 기도했고 바위가 저절로 열렸습니다. 테클라가 바위 속으로 들어가자 바위는 다시 닫혔고, 그것이 그녀의 무덤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러한 기적적인 죽음은 하느님께서 그녀의 평생 헌신을 받으신 표징으로 여겨졌습니다.

성녀 테클라 공경과 역사적 의의

성녀 테클라는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 모두에서 깊이 공경받는 성인입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9월 23일을 그녀의 축일로 기념하며, 동방 정교회에서는 9월 24일에 그녀를 기념합니다. 정교회에서는 그녀를 사도대등자로 부르며, 바오로 사도와 같은 수준의 존경을 표합니다. 테클라의 이야기는 바오로와 테클라 행전이라는 2세기 문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문헌은 정경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초대 교회에서 널리 읽히고 존중받았습니다. 터키의 셀레우키아 지역에는 테클라 성지가 있으며, 고대부터 많은 순례자들이 방문했습니다. 5세기에는 이곳에 대성당이 세워졌고, 비잔틴 제국 시대에는 중요한 순례지로 발전했습니다. 시리아의 마알룰라에도 테클라 수도원이 있으며, 그곳의 동굴은 그녀가 기적적으로 들어갔다는 전승이 있는 곳입니다. 성녀 테클라는 초대 교회에서 여성이 복음 전파와 신앙 증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여성 동정 봉헌자들과 수도자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으며, 중세 시대에는 많은 여성들이 그녀의 이름으로 수도원을 세웠습니다. 가톨릭 전통에서 테클라는 최초의 여성 순교자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신앙을 위한 증거가 성별을 초월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또한 여성 전교사, 처녀 순교자, 은둔자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습니다.

현대 신자들에게 주는 메시지

성녀 테클라의 삶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러 중요한 교훈을 전합니다. 첫째, 그녀는 세상의 기대와 압력에 맞서 자신의 신앙적 확신을 지켰습니다. 18세의 젊은 나이에 유리한 결혼과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선택한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결단이었습니다. 오늘날 젊은이들도 또래 집단의 압력, 사회적 성공의 기준, 물질적 가치 등 다양한 세속적 유혹에 직면합니다. 테클라의 모범은 진정으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분별하고 그것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용기를 주합니다. 둘째, 테클라는 말씀을 듣고 즉시 행동으로 옮긴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바오로의 설교를 듣고 단순히 감동만 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를 변화시켰습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수많은 미사와 교리 교육을 받지만, 실제 삶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테클라는 신앙이 지적 동의를 넘어 실존적 결단과 행동을 요구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셋째, 그녀는 반복되는 박해와 시련 속에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화형, 맹수들과의 대결, 지속적인 위협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하느님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았습니다. 현대인들은 직접적인 박해는 받지 않지만, 신앙생활을 지속하기 어렵게 만드는 여러 장애물을 마주합니다. 무관심, 세속화, 영적 나태함 등이 현대의 순교 형태일 수 있습니다. 넷째, 테클라는 자신이 받은 은총을 다른 이들과 나누었습니다. 셀레우키아에서의 은둔 생활도 이기적인 고립이 아니라, 사람들을 가르치고 치유하는 봉사의 삶이었습니다. 가톨릭 신앙은 개인의 구원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은총을 공동체와 나누는 것을 요구합니다. 성녀 테클라는 모든 시대 여성 신앙인들에게,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용기, 헌신, 인내, 그리고 나눔의 삶을 살도록 초대합니다.

역사적 시간표

연도 역사적 사건 의미
30년경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그리스도교의 탄생, 사도들의 선교 시작
34-36년경 사도 바오로의 회심 다마스쿠스 도상에서의 극적인 개종
45-49년경 바오로의 제1차 선교 여행 안디옥, 이코니움, 리스트라, 더베 등 소아시아 지방 전교
48년경 성녀 테클라가 바오로의 설교를 듣고 개종 이코니움에서의 극적인 개종과 약혼 파기
48-49년경 테클라의 첫 번째 박해와 화형 시도 이코니움에서 기적적으로 화형에서 구출됨
49년경 안디옥에서의 두 번째 박해 맹수들과의 대결에서 기적적으로 생존
50-120년경 셀레우키아에서의 은둔 생활과 전교 72년간 동굴에서 살며 복음 전파와 치유 사역
64년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교 대박해 로마에서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순교
180년경 바오로와 테클라 행전 기록 테클라의 생애가 문서로 정리되어 널리 유포됨
5세기 셀레우키아에 테클라 대성당 건립 주요 순례지로 발전, 비잔틴 제국의 공경

참고문헌 및 추가 정보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 가톨릭 성인 자료실 (www.cbck.or.kr)
  • 바오로와 테클라 행전 - 신약 외경 문헌
  • Butler's Lives of the Saints - 9월 23일 성녀 테클라 항목
  • 가톨릭 백과사전 - 초대 교회 여성 순교자 항목
  • 로마 순교록(Martyrologium Romanum) - 공식 가톨릭 순교자 기록
  • 한국 가톨릭 대사전 - 성녀 테클라 관련 항목
  • Orthodox Church in America - Saint Thecla Equal-to-the-Apostles
  • Catholic Encyclopedia - Saint Thecla of Icon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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