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혹시 가톨릭 교회에서 사용하는 라틴어 성경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하셨나요? 오늘은 무려 1600년 전, 온갖 시련과 고난을 딛고 일어나 가톨릭 교회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세운 한 성인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해요. 바로 성 제롬(Saint Jerome, 성 제롤모)의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격동의 시대, 한 학자의 탄생
서기 347년경, 로마 제국의 달마티아 지방(현재의 크로아티아)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어요. 이 아이가 바로 훗날 가톨릭 교회의 4대 서방 교부 중 한 명이 되는 에우세비우스 소프로니우스 히에로니무스, 우리가 부르는 성 제롬이었죠. 당시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지 얼마 안 되는 시기였고, 로마 제국 곳곳에서는 아직도 이교도들과의 갈등이 끊이지 않던 때였어요.
부유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제롬은 어려서부터 뛰어난 학습 능력을 보였어요. 그의 부모는 아들을 로마로 보내 최고의 교육을 받게 했는데, 여기서 제롬은 그리스어, 라틴어, 수사학을 완벽하게 마스터하게 되죠. 하지만 젊은 시절의 제롬은 학문에만 빠져있던 것은 아니었어요. 로마의 화려한 문화에 매료되어 때로는 방탕한 생활을 하기도 했답니다.
회심과 고행, 그리고 깨달음
하지만 하느님은 제롬을 그냥 두지 않으셨어요. 20대 중반, 제롬은 깊은 영적 위기를 겪게 되는데요. 이때 그는 꿈에서 그리스도께서 나타나 "너는 키케로의 제자이지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다"라는 꾸지람을 들었다고 해요. 이 경험은 제롬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죠.
회심한 제롬은 시리아 사막으로 들어가 극도의 고행 생활을 시작했어요. 5년 동안 동굴에서 지내며 기도와 성경 연구에만 몰두했죠. 이 시기에 그는 히브리어를 익혔는데, 이는 나중에 성경 번역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어요. 사막에서의 생활은 정말 혹독했지만, 제롬은 이 시련을 통해 진정한 학자이자 성직자로 거듭날 수 있었답니다.
교황청의 부름과 번역 사업의 시작
382년, 제롬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어요. 교황 다마소 1세가 그를 로마로 불러들인 거예요. 당시 가톨릭 교회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는데, 바로 성경 번역본들이 너무 많고 부정확해서 교리 혼란이 일어나고 있었던 거죠. 교황은 라틴어에 능통하면서 히브리어와 그리스어까지 마스터한 제롬이야말로 이 문제를 해결할 적임자라고 판단했어요.
제롬은 교황의 명령을 받고 성경 번역 작업에 착수했어요. 하지만 이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죠. 기존의 라틴어 역본들을 수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결국 히브리어 원전에서 직접 번역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어요.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이면서도 위험한 시도였답니다.
베들레헴에서의 대업 완성
교황 다마소가 세상을 떠난 후, 제롬은 로마에서의 입지가 좁아졌어요. 그의 날카로운 비판 정신과 개혁적 성향 때문에 많은 적들이 생겼거든요. 결국 386년, 제롬은 성지 베들레헴으로 떠나게 되었죠. 하지만 이 좌절은 오히려 그의 인생 최대의 업적으로 이어졌어요.
베들레헴에서 제롬은 수도원을 세우고 본격적인 번역 작업에 몰두했어요. 무려 23년 동안, 그는 구약성경 전체를 히브리어 원전에서 직접 라틴어로 번역했답니다. 이 과정에서 그가 겪은 고난은 상상을 초월했어요. 눈이 나빠져 거의 실명 직전까지 갔고, 건강도 크게 악화되었죠. 하지만 제롬은 포기하지 않았어요.
특히 인상적인 것은 제롬의 학문적 완벽주의였어요. 그는 단순히 번역만 한 것이 아니라, 각종 주석과 해설서도 함께 썼거든요. 히브리어 어원을 연구하고, 당시 유대교 랍비들과도 토론하며 정확성을 기했어요. 이런 노력 덕분에 탄생한 것이 바로 '불가타(Vulgata)' 성경이에요.
시련 속에서 피어난 불멸의 업적
제롬의 번역 작업은 처음에는 많은 비판을 받았어요. 기존의 익숙한 번역을 바꾸는 것에 대한 반발이 컸거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번역이 얼마나 정확하고 아름다운지 사람들이 깨닫기 시작했죠. 불가타는 결국 가톨릭 교회의 공식 성경이 되었고, 무려 1000년 넘게 서방 교회의 표준 성경으로 사용되었답니다.
420년 9월 30일, 제롬은 베들레헴에서 73세의 나이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어요. 그의 무덤 앞에는 "여기 달마티아 출신의 제롬이 잠들어 있다"는 비문이 새겨져 있어요. 그의 죽음은 곧 가톨릭 교회사상 가장 위대한 성경학자의 업적이 완성되는 순간이었죠.
현대에 이르는 제롬의 유산
성 제롬의 업적은 단순히 성경 번역에만 그치지 않아요. 그는 수많은 서신과 저작을 남겨 초기 교회 신학 발전에 큰 기여를 했죠. 특히 그의 서신들은 당시 교회와 사회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가 되었어요.
트렌트 공의회(1545-1563)에서 불가타가 공식적으로 가톨릭 교회의 정본으로 선포되면서, 제롬의 업적은 더욱 빛을 발하게 되었어요. 비록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현지어 번역이 장려되고 있지만, 여전히 불가타는 가톨릭 신학과 전례의 기초가 되고 있답니다.
1920년 교황 베네딕토 15세는 제롬을 '성경 연구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어요. 그의 축일인 9월 30일이 되면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은 이 위대한 성인을 기억하며 기도를 올리죠. 특히 번역가들과 학자들에게 제롬은 영원한 모범이 되고 있어요.
우리가 배워야 할 제롬의 정신
성 제롬의 일생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먼저는 그의 끝없는 학습 정신이에요. 70대가 될 때까지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연구하는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죠. 또한 비판과 반대에도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소명을 완수한 굳건한 의지력도 본받을 만해요.
무엇보다 제롬은 하느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전달하겠다는 사명감으로 평생을 바친 참된 교회의 일꾼이었어요. 개인적인 영광이나 안락함보다는 교회의 발전과 신자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모습은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제롬처럼 끝없는 열정과 헌신으로 맡은 바 소임을 다해야겠어요. 비록 성경 번역 같은 거창한 일은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의 작은 일부터 정성과 사랑으로 해나간다면 그것도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될 거예요.
역사적 사건 연표
연도 | 성 제롬 관련 사건 | 동시대 세계사적 사건 |
---|---|---|
347년경 | 달마티아에서 제롬 출생 | 콘스탄티우스 2세 로마 황제 재위 |
360년대 | 로마에서 고등교육 수학 | 율리아누스 황제의 기독교 박해 |
375-380년 | 시리아 사막에서 수도생활 | 서로마-동로마 제국 분리 심화 |
382년 | 교황 다마소 1세에 의해 로마 소환 | 테오도시우스 1세 즉위 |
384-385년 | 신약성경 라틴어 번역 시작 | 밀라노 칙령 이후 기독교 확산 |
386년 | 베들레헴으로 이주, 수도원 건립 | 성 아우구스티누스 회심 |
390-405년 | 구약성경 히브리어 원전 번역 | 로마 제국의 기독교 국교화 완성 |
410년 | 불가타 성경 완성 | 서고트족의 로마 점령(알라리크) |
420년 | 제롬 선종 (9월 30일) | 서로마 제국 멸망 임박 |
참고문헌 및 참고사이트
- 『가톨릭 대사전』,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성바오로출판사
- 『교부학 개론』, 베르톨트 알트너 저, 왜관 분도출판사
- 『라틴교부들』, 요한네스 퀘스텐 저, 왜관 분도출판사
- Vatican.va - 바티칸 공식 웹사이트 성인 전기 섹션
- NewAdvent.org - Catholic Encyclopedia 성 제롬 항목
- 바티칸 공식 사이트 www.vatican.va
- Catholic.org - Saints & Angels 성 제롬 페이지
- 『성인전』, 알반 버틀러 저, 성바오로출판사
- 『불가타 성경사』, 성서학연구소 편, 가톨릭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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