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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인과 교부

성 암브로시오: 황제조차 무릎 꿇린 신앙의 거인

by 기쁜소식 알리기 2025.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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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한 사람의 용기가 역사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오늘 소개할 성인은 바로 그런 분이에요. 4세기 후반,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받아들이던 격변의 시대에 한 주교가 있었어요. 그는 황제 앞에서도 굽히지 않는 용기로 교회를 지켰고, 무엇보다 훗날 가톨릭 교회 최고의 신학자가 될 아우구스티노를 회심시킨 장본인이기도 하죠. 바로 밀라노의 주교, 성 암브로시오(Saint Ambrose)의 이야기입니다.




로마 귀족에서 평신도 주교로

서기 340년경, 갈리아 지방의 트리어(현재 독일)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어요. 이 아이가 바로 아우렐리우스 암브로시우스, 우리가 부르는 성 암브로시오였죠. 그의 아버지는 로마 제국의 고위 관리였고, 어머니 역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어요. 특히 그의 누나 마르켈리나는 수녀로 살면서 암브로시오의 영성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답니다.




암브로시오는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였어요. 로마에서 법학을 공부한 후 변호사가 되었고, 곧 정치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죠. 30대 초반에는 이미 북부 이탈리아의 에밀리아-리구리아 주 총독이 되어 밀라노에 부임했어요. 당시 밀라노는 서로마 제국의 수도 역할을 하던 중요한 도시였답니다.




예상치 못한 부르심, 극적인 주교 선출

374년, 암브로시오의 인생에 극적인 전환점이 찾아왔어요. 밀라노의 아리우스파 주교 아욱센티우스가 세상을 떠나면서, 새로운 주교를 선출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거예요. 당시 교회는 아리우스파와 정통 가톨릭 사이의 갈등으로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었어요.




주교 선출 모임에서 양측이 격렬하게 대립하자, 총독인 암브로시오가 질서 유지를 위해 현장에 나타났어요.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죠. 한 어린이가 갑자기 "암브로시오를 주교로!"라고 외쳤고, 순식간에 모든 사람들이 이에 동조하기 시작했어요. 아직 세례도 받지 않은 평신도였던 암브로시오가 밀라노의 주교로 만장일치 선출된 거였어요.




처음에 암브로시오는 이 부르심을 거부하려 했어요. 심지어 도망치려고까지 했죠. 하지만 결국 이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깨닫고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1주일 만에 세례를 받고, 연이어 서품을 받아 12월 7일 주교로 착좌했답니다. 정말 드라마틱한 순간이었죠.




황제와 맞선 용기 있는 목자

주교가 된 암브로시오는 즉시 자신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어요. 그리고 본격적인 사목 활동에 전념하기 시작했죠. 하지만 그 앞에는 수많은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특히 황실과의 갈등은 정말 험난했답니다.




가장 유명한 사건은 385년 발렌티니아누스 2세 황제의 어머니 유스티나와의 갈등이에요. 아리우스파였던 유스티나는 밀라노의 한 성당을 아리우스파에게 내주라고 요구했어요. 하지만 암브로시오는 단호히 거절했죠. "황제는 교회 안에 있지, 교회 위에 있지 않다"는 그의 유명한 말이 바로 이때 나온 거예요.




결국 황실에서는 무력을 동원해 성당을 빼앗으려 했지만, 암브로시오와 신자들은 성당에서 나가지 않고 밤낮으로 찬송을 부르며 버텼어요. 이때 암브로시오가 도입한 것이 바로 '암브로시오 성가'인데, 이는 서방 교회 전례 음악의 출발점이 되었답니다. 결국 황실이 포기하면서 암브로시오의 승리로 끝났어요.




테오도시우스 황제와의 대결

암브로시오의 용기는 390년 테오도시우스 대제와의 사건에서 절정에 달했어요. 테살로니카에서 폭동이 일어나자, 분노한 황제가 무차별 학살을 명령해 7천 명의 무고한 시민이 죽임을 당했거든요. 이 소식을 들은 암브로시오는 즉시 황제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폐하, 당신은 하느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성찬례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이는 로마 황제에게 파문을 선언한 것과 다름없는 엄청난 일이었어요. 하지만 놀랍게도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암브로시오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했답니다. 이 사건은 교회가 세속 권력보다 위에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순간이었어요.




아우구스티노의 회심, 역사를 바꾼 만남

그런데 암브로시오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따로 있어요. 바로 성 아우구스티노의 회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거였죠. 384년, 수사학 교사였던 아우구스티노가 밀라노에 왔을 때, 그는 아직 마니교도였고 기독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어요.




하지만 아우구스티노는 암브로시오의 설교에 깊이 매료되기 시작했어요. 암브로시오는 성경을 단순히 문자 그대로 해석하지 않고 영적 의미를 찾아 설명했거든요. 이는 지성인이었던 아우구스티노에게 큰 인상을 주었죠. "나는 처음으로 기독교가 지적으로도 설득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아우구스티노는 후에 고백했어요.




특히 암브로시오의 인격적 매력도 아우구스티노를 감동시켰어요. 바쁜 중에도 아우구스티노의 질문에 성심껏 답해주고, 진정한 목자의 모습을 보여준 거죠. 결국 387년 부활절, 아우구스티노는 암브로시오로부터 세례를 받게 되었어요. 이는 가톨릭 교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였답니다.




탁월한 설교가이자 신학자

암브로시오는 뛰어난 설교가로도 유명했어요. 그의 설교는 성경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일반 신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죠. 특히 구약성경의 영적 해석에서 그의 재능이 빛났어요. 창세기, 시편, 루카 복음에 대한 그의 주석들은 후대 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답니다.




또한 그는 윤리신학 분야에서도 중요한 기여를 했어요. 키케로의 『의무론』을 기독교적으로 재해석한 『성직자의 의무』는 가톨릭 사제들의 필독서가 되었죠. 여기서 그는 기독교인의 덕목과 사제의 역할에 대해 체계적으로 설명했어요.




동정성모 공경과 전례 개혁

암브로시오는 성모 마리아 공경에도 중요한 발전을 가져왔어요. 그는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로 부르며,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을 강조했죠. 이는 후에 가톨릭 교회의 마리아론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전례 분야에서도 암브로시오의 업적은 대단해요. 앞서 언급한 암브로시오 성가는 동방 교회의 찬송을 서방으로 도입한 것인데, 이는 가톨릭 전례 음악의 출발점이 되었어요. 또한 그는 여러 전례 예식을 정비하고 개선했죠.




생애 마지막까지 충실한 목자

397년 4월 4일 성 금요일, 암브로시오는 57세의 나이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어요. 임종을 앞두고도 그는 신자들을 걱정하며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고 해요. 그의 마지막 말은 "나는 너희 가운데서 부끄러움 없이 살았다"였다고 전해져요.




암브로시오의 죽음은 밀라노뿐만 아니라 전 기독교 세계에 큰 슬픔을 안겨줬어요. 특히 아우구스티노는 스승의 죽음을 애도하며 이렇게 말했죠. "그분은 나에게 단순히 지식만 주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만나게 해주셨다." 정말 감동적인 고백이죠.




현대에 이르는 암브로시오의 유산

성 암브로시오는 성 제롬, 성 아우구스티노, 교황 성 그레고리오 1세와 함께 서방 교회의 4대 교부로 존경받고 있어요. 그의 용기 있는 신앙과 목자적 사랑은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죠.




특히 밀라노에서는 암브로시오를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있어요. 밀라노 대성당 지하에 있는 그의 무덤은 여전히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죠. 또한 세계 각지에 그의 이름을 딴 성당들이 세워져 있어요.




우리가 배워야 할 암브로시오의 정신

성 암브로시오의 삶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첫째는 예상치 못한 하느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자세예요. 그는 평신도에서 갑자기 주교가 되었지만, 겸손하게 이를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했거든요.




둘째는 진리 앞에서 굽히지 않는 용기예요. 황제 앞에서도 당당하게 신앙을 지켰던 그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큰 교훈을 줘요. 때로는 어려움이 있어도 옳은 일을 위해서는 용감해야 한다는 거죠.




셋째는 개인의 회심을 도와주는 사랑이에요. 아우구스티노 같은 구도자들을 따뜻하게 맞아주고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준 그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워요. 우리도 주변의 누군가가 신앙으로 나아올 수 있도록 도와야겠어요.




마지막으로 끊임없는 자기계발 정신도 본받을 만해요. 원래 법관이었던 그가 단기간에 훌륭한 신학자가 될 수 있었던 건 끝없는 공부와 노력 때문이었어요.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겠죠.




역사적 사건 연표

연도 성 암브로시오 관련 사건 동시대 세계사적 사건
340년경 갈리아 트리어에서 암브로시오 출생 콘스탄티누스 대제 통치 말기
354년 로마에서 법학 공부 아우구스티노 북아프리카에서 출생
370년경 에밀리아-리구리아 주 총독 임명 발렌티니아누스 1세와 발렌스 공동 통치
374년 12월 7일 밀라노 주교로 착좌 아리우스 논쟁 서방으로 확산
378년 『신앙에 관하여』 저술 아드리아노플 전투, 발렌스 황제 전사
379년 테오도시우스와 우호관계 형성 테오도시우스 1세 동로마 황제 즉위
384년 아우구스티노 밀라노 도착, 만남 시작 승리의 여신상 철거 논쟁
385년 유스티나와 성당 인도 거부 투쟁 막시무스의 서로마 찬탈 시도
387년 부활절 아우구스티노에게 세례 집전 테오도시우스, 막시무스 격파
390년 테살로니카 학살 후 황제 회개 요구 테살로니카 시민 학살 사건
391년 『성직자의 의무』 집필 이교 숭배 완전 금지령
397년 4월 4일 밀라노에서 선종 서로마 제국 분열 심화



참고문헌 및 참고사이트

  • 『가톨릭 대사전』,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성바오로출판사
  • 『서방 교부들』, 요한네스 퀘스텐 저, 왜관 분도출판사
  • 『성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성 아우구스티누스 저, 분도출판사
  • 『초대교회사』, 이형우 저, 대한기독교서회
  • Vatican.va - 바티칸 공식 웹사이트 교부 섹션
  • NewAdvent.org - Catholic Encyclopedia 성 암브로시오 항목
  • Catholic.org - Saints & Angels 성 암브로시오 페이지
  • 『성인전』, 알반 버틀러 저, 성바오로출판사
  • 『교부학 개론』, 베르톨트 알트너 저, 왜관 분도출판사
  • 『밀라노 칙령과 초기 기독교』, 교회사학회 편, 한들출판사



성 암브로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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