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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의 균열, 동서 교회의 최종 분열: 1054년 대분열의 역사와 신앙적 의미

by 기쁜소식 알리기 2026.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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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회사 · 세계사

로마와 콘스탄티노폴리스 — 하나였던 그리스도의 교회가 갈라선 날의 기록

📅 주요 시기: 1054년 📖 분류: 교회사 · 세계사 🕊 관점: 가톨릭 신앙 중심 🎯 대상: 세계사·가톨릭에 관심 있는 20~50대
1054년 7월 16일,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 제단 위에 파문 교서 한 장이 놓였습니다. 이 단 한 장의 문서가 수백 년에 걸쳐 쌓여온 신학적·정치적 긴장을 폭발시켰고, 그리스도교 세계는 로마 가톨릭교회동방 정교회라는 두 줄기로 영구히 분리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역사는 '동서 대분열(Great Schism)'이라 부릅니다. 오늘날 세계 20억 그리스도인의 신앙 지형을 규정하는 이 분열은 단순한 종교적 사건이 아니라, 중세 문명 전체를 뒤흔든 세계사적 대사건이었습니다.

1. 분열 이전의 교회: 하나의 뿌리, 두 개의 폐부

그리스도교는 본래 하나의 교회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탄생한 초대 교회는 로마,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예루살렘이라는 다섯 총대주교좌(펜타르키, Pentarchy)를 중심으로 성장했습니다. 이 다섯 총대주교좌는 신앙의 본질을 공유하면서도 각 지역의 문화적·언어적 전통을 반영한 예전(禮典) 양식을 발전시켰습니다.

서방 교회는 라틴어를 공용어로 삼고 로마 교황의 수위권(首位權)을 신학적으로 정립해 나갔습니다. 동방 교회는 그리스어와 함께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며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를 중심으로 한 공동의사결정 구조인 공의회주의(Conciliarism)를 강조했습니다. 두 세계는 각자의 방식으로 신앙을 꽃피웠으나, 그 차이는 세기를 거듭할수록 좁혀지지 않고 오히려 깊어졌습니다.

특히 로마 제국의 동서 분열(395년)과 서로마 제국의 멸망(476년)은 두 교회의 정치적 운명을 갈라놓았습니다. 서방의 로마 교황청은 게르만 왕국들 사이에서 독자적인 정치적 역할을 키워갔고, 동방의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는 비잔티움 제국 황제의 권위와 긴밀하게 결합된 '황제교황주의(Caesaropapism)'적 구조 속에 자리잡았습니다.

2. 균열을 키운 신학적 논쟁: 필리오케(Filioque)와 교황 수위권

동서 교회를 갈라놓은 신학적 쟁점 중 가장 뜨거운 것은 필리오케(Filioque) 논쟁이었습니다. 381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에서 확정된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信經)은 성령이 "성부에게서 발하신다"고 규정했습니다. 그런데 서방 교회는 6~7세기 무렵 스페인과 프랑크 왕국을 중심으로 이 구절에 "그리고 성자에게서도(and the Son, Filioque)"라는 표현을 삽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동방 교회는 이를 공의회의 결정을 일방적으로 변경한 신학적 월권 행위로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성부와 성자의 관계, 삼위일체 교리의 본질을 건드리는 이 문제는 단순한 어휘 논쟁이 아니었습니다. 동방 교회 신학의 입장에서는 성자가 성령의 발출 원천 중 하나가 된다는 것이 성부의 단일성을 훼손하고, 결과적으로 삼위 하느님의 관계 구조 자체를 뒤흔드는 심각한 이단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또 다른 핵심 쟁점은 교황의 수위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로마 교황청은 마태오 복음 16장 18절("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에 근거하여 로마 교황이 전체 교회 위에 수위(首位)를 갖는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동방 교회는 로마 교황을 '명예적 수위'는 인정할 수 있어도 직접적 통치권의 수위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조직 서열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본질과 통치 구조에 관한 근본적인 이견이었습니다.

3. 포티오스 분열: 대분열을 예고한 전주곡(858~879년)

1054년의 대분열은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9세기에 이미 분열의 전주곡이 울렸습니다. 858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이그나티오스가 황제 미하일 3세와의 갈등으로 폐위되고, 재속 평신도였던 포티오스(Photios)가 총대주교로 급속 서임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교황 니콜라오 1세(재위 858~867년)는 이그나티오스의 폐위가 불법이라며 포티오스의 서임을 인정하지 않았고, 두 교회 사이에 날카로운 긴장이 형성되었습니다.

포티오스는 필리오케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며 서방 교회를 이단으로 선언하는 강수를 두었습니다. 이 사건은 훗날 '포티오스 분열(Photian Schism)'로 불리며 일단 봉합되었으나, 동서 교회 사이에 새겨진 상처는 결코 완전히 아물지 않았습니다. 포티오스 분열은 1054년의 완전한 결렬이 단일한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구조적 갈등의 결과임을 보여줍니다.

4. 1054년, 결정적 파국의 순간

1054년의 분열을 이끈 핵심 인물들은 서방 측의 험베르투스 추기경(Cardinal Humbert of Silva Candida)과 동방 측의 미하일 케룰라리오스(Michael Keroularios)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였습니다. 험베르투스는 교황 레오 9세의 특사로 콘스탄티노폴리스에 파견되었는데, 당시 교황 레오 9세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즉, 교황이 부재한 상황에서 특사는 자신의 권한으로 전례 없는 행동을 감행하게 됩니다.

케룰라리오스 총대주교는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서방 예전 방식을 따르는 라틴 교회들을 폐쇄하고 라틴 전례를 비판하는 글을 발표하며 서방 측을 자극했습니다. 험베르투스 역시 화해를 위한 외교적 유연성을 갖추지 못한 인물로, 양측의 충돌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1054년 7월 16일, 험베르투스와 교황 특사단은 케룰라리오스를 파문하는 교서를 하기아 소피아 성당의 대제단 위에 놓고 퇴장했습니다. 케룰라리오스 또한 수 일 후 교황 특사단을 파문하는 것으로 응수했습니다.

가톨릭 역사학자들은 이 사건을 '완전한 결렬의 상징적 순간'으로 평가하면서도, 이 파문 교서 자체의 법적 유효성에 대해 당시에도 논란이 있었음을 인정합니다. 교황이 이미 사망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징으로서의 파국은 현실이었고, 동서 교회는 이후 수십 년, 수백 년의 시간 속에서 화해의 기회를 번번이 놓쳤습니다.

5. 분열의 세계사적 파장: 십자군, 제국의 붕괴, 그리고 문명의 분단

동서 분열은 단순히 종교 조직의 내부 갈등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는 유럽과 중동, 지중해 세계 전체의 정치·문화 지형을 재편하는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1095년 교황 우르바노 2세가 선포한 제1차 십자군 원정은 표면적으로는 성지 탈환을 목표로 했으나, 그 이면에는 동방 교회에 대한 서방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 의도도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비극적인 전환점은 1204년 제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약탈이었습니다. 십자군 전사들은 이슬람 세력을 공격하는 대신 같은 그리스도인인 동방 교회의 수도를 무참히 약탈하고 '라틴 제국'을 세웠습니다. 하기아 소피아 성당에서 라틴 예전으로 미사를 드리는 장면을 목격한 동방 그리스도인들의 충격과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 사건은 동서 교회 사이의 화해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 결정타였습니다.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함락으로 비잔티움 제국이 멸망하면서 동방 교회는 오스만 제국의 치하에 놓이게 되었고, 서방 교회와의 관계를 재정립할 정치적 기반 자체를 상실했습니다. 동방 정교회의 신앙 공동체는 러시아, 그리스, 세르비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슬라브 및 발칸 세계로 중심축을 이동하며 독자적인 발전 경로를 걸었습니다.

6. 가톨릭 교회의 시련과 인내: 분열 속에서도 지속된 보편 교회의 사명

동서 분열 이후 로마 가톨릭 교회는 자신의 내부에서도 거대한 시련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11~12세기의 성직자 서임권 투쟁(Investiture Controversy)에서 교황 그레고리오 7세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의 충돌은 교회의 독립성과 정치적 권위의 경계를 시험했습니다. 1076년 황제를 파문하고 카노사에서 황제가 맨발로 용서를 구하는 장면은 중세 유럽 교회의 정신적 권위가 정점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14세기에는 아비뇽 유수(1309~1377년)와 서방 교회 자체의 대분열(1378~1417년)이라는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교황청이 프랑스 군주의 영향 아래 아비뇽으로 이전되고, 급기야 두 명 혹은 세 명의 교황이 동시에 선출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보편 교회의 권위가 심대하게 흔들리는 위기였습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1417년 콘스탄츠 공의회(Council of Constance)를 통해 이 분열을 수습하고, 마르티노 5세를 선출하여 교회의 일치를 되찾았습니다.

가톨릭 역사는 이처럼 크고 작은 시련 속에서도 끊임없이 쇄신과 개혁을 통해 앞으로 나아갔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바로 가톨릭 신앙이 강조하는 '교회의 거룩함은 그 구성원의 거룩함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에서 비롯된다'는 고백의 역사적 실증입니다.

7. 화해를 향한 여정: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1965년의 상호 파문 철회

분열 이후 90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와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아테나고라스 1세가 예루살렘에서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습니다. 이듬해인 1965년 12월 7일, 두 지도자는 동시에 1054년의 상호 파문을 공식 철회하는 공동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이것은 분열을 원상회복한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기억의 공동체' 안에서 함께 치유하기로 약속한 신앙적 제스처였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는 교회 일치 운동(에큐메니즘)을 교회의 공식 사명으로 선언하며 동방 교회에 대한 새로운 자세를 촉구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토 16세, 프란치스코 교황으로 이어지는 현대 교황들도 동방 정교회와의 대화를 지속적으로 이어오고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동방 교회를 단순한 '분리된 공동체'가 아니라 '비록 완전한 친교(Full Communion)에는 이르지 못했으나 교회적 요소들을 보존하고 있는 형제 교회'로 인정합니다.

이 화해의 여정은 아직 완결되지 않았습니다. 필리오케 문제, 교황 수위권, 그리고 수 세기에 걸쳐 쌓인 역사적 불신이라는 장벽은 여전히 높습니다. 그러나 가톨릭 신앙의 관점에서 이 화해의 노력 자체가 '하느님 나라를 향한 교회의 끊임없는 순례'임을 증언합니다.

8. 오늘날의 의미: 분열에서 배우는 일치의 가치

1054년의 대분열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칩니까? 신학적 견해의 차이, 언어와 문화의 장벽, 정치권력과 종교의 결탁, 그리고 지도자들의 오만과 단기적 판단이 어떻게 하나의 공동체를 갈라놓을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동시에, 오랜 상처도 진정성 있는 대화와 회개를 통해 치유될 수 있음을 1965년의 파문 철회가 증명합니다.

가톨릭 신앙의 핵심 언어 중 하나인 '보편(Catholicos, 카톨리코스)'이라는 단어는 '전체를 향한', '모든 것을 아우르는'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분열된 그리스도교 세계를 응시하며 가톨릭 교회는 이 보편성의 이상을 끊임없이 새롭게 실천하도록 부름받고 있습니다. 역사의 균열이 깊을수록, 화해의 노력은 더욱 빛납니다.

세계사적 맥락에서 동서 대분열은 단지 종교사의 한 사건이 아닙니다. 이것은 유럽 문명이 라틴 서방과 그리스-슬라브 동방이라는 두 궤적으로 나뉘는 분수령이었고, 그 분기(分岐)는 오늘날의 정치·문화 지형에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과거를 아는 것을 넘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선택하는 지혜를 얻는 일입니다.

📅 동서 교회 분열 관련 시대순 역사 도표

연도 사건명 주요 내용 및 역사적 의의
325년 니케아 공의회 아리우스 이단 정죄, 니케아 신경(Creed) 채택. 동서 교회가 하나의 신앙 기준을 공유하는 기초를 마련함.
381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제1차 공의회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확정. 성령 발출 관련 신경 원문이 확정되어 훗날 필리오케 논쟁의 기준점이 됨.
395년 로마 제국 동서 분열 테오도시우스 1세 사후 동서 로마로 최종 분리. 교회의 정치적 환경이 두 방향으로 갈라지기 시작함.
476년 서로마 제국 멸망 게르만 오도아케르에 의해 서로마 황제 폐위. 로마 교황청이 서방에서 독자적 정치 역할을 키우는 계기가 됨.
589년 톨레도 공의회, 필리오케 삽입 스페인 서고트 왕국 교회가 니케아 신경에 '필리오케'를 삽입. 서방 교회 전역으로 확산되어 동방과의 신학적 갈등 씨앗이 됨.
800년 카를 대제 서로마 황제 대관 교황 레오 3세가 카를 대제에게 황제관 수여. 로마 교황권이 정치적으로 강화되고 동방 황제(비잔티움)와의 긴장이 고조됨.
858년 포티오스 분열 시작 이그나티오스 폐위·포티오스 서임을 둘러싼 로마-콘스탄티노폴리스 갈등. 교황 니콜라오 1세가 인정 거부, 최초의 본격적 분열 시도.
867년 포티오스, 서방 교회 이단 선언 포티오스 총대주교가 필리오케 문제를 공식 이슈화하며 서방을 이단으로 규정. 동서 교회의 신학적 적대감이 최초로 공식화됨.
879년 포티오스 분열 봉합 제4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에서 포티오스 복권, 일시적 화해. 그러나 근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잠복함.
1054년 7월 16일 동서 대분열(Great Schism) 교황 특사 험베르투스 추기경이 케룰라리오스 총대주교를 파문. 케룰라리오스도 교황 특사단 파문으로 응수. 로마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의 공식 분리.
1076년 카노사의 굴욕 교황 그레고리오 7세가 하인리히 4세를 파문. 황제가 카노사에서 용서를 구하는 '카노사의 굴욕'으로 중세 교황 권위의 정점을 상징함.
1095년 제1차 십자군 원정 선포 교황 우르바노 2세가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십자군 선포. 성지 탈환 목적과 함께 동방 교회 지역에 서방 영향력 확대 의도가 내포됨.
1204년 제4차 십자군, 콘스탄티노폴리스 약탈 서방 십자군이 동방 그리스도교 수도를 약탈하고 '라틴 제국' 수립. 동방 교회의 서방에 대한 불신과 적개심이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깊어짐.
1274년 리옹 제2차 공의회, 교회 일치 시도 동서 교회의 일치를 협상했으나 동방 성직자들의 반발로 실질적 효과 없이 무산됨.
1309년 아비뇽 유수 시작 교황 클레멘스 5세가 프랑스 아비뇽으로 교황청 이전. 프랑스 왕권 아래 교황권이 예속되어 가톨릭 교회 내부의 새로운 위기 시작.
1378년 서방 교회 자체 대분열 시작 로마와 아비뇽에 각각 교황 선출, 이후 3명의 교황이 동시에 존재하는 사태. 서방 교회의 권위가 심각하게 훼손됨.
1417년 콘스탄츠 공의회, 서방 대분열 종식 마르티노 5세 선출로 서방 교회 분열 수습. 교회 공의회의 권위가 새롭게 확인됨.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오스만 제국 메흐메트 2세에 의해 비잔티움 제국 멸망. 동방 정교회는 오스만 치하로 들어가 서방과의 교류가 더욱 단절됨.
1962~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황 요한 23세가 소집, 바오로 6세가 마무리. 에큐메니즘(교회 일치 운동)을 공식 선언하고 동방 교회에 대한 화해 자세 천명.
1964년 바오로 6세·아테나고라스 1세 예루살렘 회동 로마 교황과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가 900년 만에 처음으로 역사적 만남. 화해의 물꼬를 트는 상징적 사건.
1965년 12월 7일 상호 파문 공식 철회 바오로 6세와 아테나고라스 1세가 1054년의 상호 파문을 동시에 공식 철회. 완전한 일치는 아니나 화해와 대화의 새 장을 여는 역사적 공동 선언.

참고 문헌 및 참고 사이트

  • Hussey, J. M. (1990). The Orthodox Church in the Byzantine Empire. Oxford University Press.
  • Runciman, S. (1955). The Eastern Schism: A Study of the Papacy and the Eastern Churches during the XIth and XIIth Centuries. Clarendon Press.
  • Meyendorff, J. (1979). Byzantine Theology: Historical Trends and Doctrinal Themes. Fordham University Press.
  • Ullmann, W. (1972). A Short History of the Papacy in the Middle Ages. Methuen.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Unitatis Redintegratio)」 (1964).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공식 번역.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CBCK): https://www.cbck.or.kr
  • Vatican 공식 사이트 (교황청): https://www.vatican.va
  • New Advent Catholic Encyclopedia: https://www.newadvent.org/cathen/
  • Britannica - East-West Schism: https://www.britannica.com/event/East-West-Schism
  • 한국 교회사 연구소: https://www.ikch.org

※ 본 글은 위 참고 문헌의 내용을 바탕으로 독창적으로 서술한 교육·정보 목적의 원고입니다. 직접 인용이 아닌 재해석·요약이므로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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