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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경과 번역의 역사/라틴어 불가타, 70인역, 초기 성경 전승

70인역이 신약성경에 끼친 영향– 사도들이 인용한 구약 구절

by 기쁜소식 알리기 2025.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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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인역(셉투아긴타, LXX)은 기원전 3-2세기에 걸쳐 완성된 히브리어 구약성경의 그리스어 번역본으로, 초기 천주교회와 신약성경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신약성경 저자들이 구약을 인용할 때 대부분 70인역을 사용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언어적 편의를 넘어서, 초기 기독교 신학의 토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이러한 영향은 오늘날 천주교 교리와 성경 해석에까지 이어지고 있어 그 신학적 의미가 매우 큽니다.

신약성경에는 구약의 직접 인용이 약 300회, 암시와 언급을 포함하면 4,000회 이상 나타나는데, 이 중 대부분이 70인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1세기 지중해 세계에서 그리스어가 공통 언어였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 이방인 개종자들이 주로 70인역을 통해 구약을 접했기 때문입니다. 사도들과 초기 교회 지도자들이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자연스럽게 70인역을 활용했던 것입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70인역의 번역 특성이 신약 저자들의 신학적 해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다. 70인역 번역자들은 단순한 언어 전환자가 아니라 신학적 해석자 역할을 했으며, 그들의 번역 선택들이 후에 기독론과 구원론 발전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이는 번역이 단순한 기술적 작업이 아니라 신학적 전승의 형성 과정임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70인역이 신약성경에 끼친 영향– 사도들이 인용한 구약 구절

마태오 복음서의 70인역 활용

마태오 복음서는 신약성경 중에서 구약을 가장 많이 인용하는 책으로, 특히 "이는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는 성취 공식을 통해 예수님의 생애를 구약 예언의 성취로 제시합니다. 이 과정에서 마태오는 70인역의 번역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가장 유명한 예는 이사야 7장 14절의 인용으로, 히브리어 원문의 '알마'(젊은 여성)가 70인역에서 '파르테노스'(처녀)로 번역된 것을 마태오 1장 23절에서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태 1:23, 70인역 이사 7:14 인용)

이러한 인용 방식은 마태오가 단순히 구약을 증명 텍스트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70인역의 신학적 해석 전통 안에서 예수님의 의미를 드러내려 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마태오 2장 15절에서 호세아 11장 1절을 인용할 때도 70인역의 표현을 따라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고 하면서,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 대한 예언을 예수님 개인에게 적용하는 해석학적 전환을 보여줍니다.

마태오의 이러한 70인역 활용은 초기 천주교회의 성경 해석 방법론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교부들은 마태오의 선례를 따라 구약의 예언들을 그리스도론적으로 해석하는 전통을 발전시켰으며, 이는 오늘날 천주교 성경 해석의 영성적 의미(sensus spiritualis)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동정녀 탄생 교리는 70인역의 번역 선택과 마태오의 인용이 결합되어 형성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신학과 70인역

사도 바오로는 70인역을 가장 체계적으로 활용한 신약 저자 중 하나로, 그의 신학적 논증에서 70인역의 특정 표현들이 핵심적 역할을 했습니다. 로마서와 갈라티아서에서 전개되는 칭의론은 70인역의 번역 특성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특히 창세기 15장 6절의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믿으매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구절에서 70인역의 '로기제타이'(여기다, 계산하다) 번역이 바오로의 칭의 신학 발전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바오로의 주요 구약 인용과 70인역의 영향
구약 본문 70인역 특징 바오로의 활용 신학적 의미
창세 15:6 로기제타이 (계산하다) 롬 4:3, 갈 3:6 칭의론의 토대
합 2:4 믿음으로 살리라 롬 1:17, 갈 3:11 이신칭의 원리
시 68:18 선물을 받으셨다 에페 4:8 그리스도의 승천

바오로가 로마서 10장 18절에서 시편 19편을 인용할 때도 70인역의 표현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져 나가고 그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렀도다"라는 70인역의 번역을 통해 바오로는 자연 계시가 아닌 복음 선포의 보편성을 논증했습니다. 이는 히브리어 원문과는 다른 의미 전개로, 70인역의 해석적 번역이 바오로의 신학적 논증에 직접 활용된 사례입니다.

또한 바오로는 고린토전서 15장 55절에서 호세아 13장 14절과 이사야 25장 8절을 결합하여 인용할 때도 70인역을 기반으로 했습니다.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라는 표현은 70인역의 번역 선택에 의존한 것으로, 부활 신학의 중요한 성경적 근거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바오로의 핵심 신학들은 70인역의 특정 표현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와 요한 문헌의 70인역 수용

히브리서는 신약성경 중에서 가장 정교한 구약 해석학을 보여주는 책으로, 저자는 70인역을 통해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과 새 언약의 우월성을 논증했습니다. 특히 히브리서 1장에서 시편들을 연속적으로 인용하면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증명하는 과정은 70인역의 번역 특성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시편 45편 6-7절의 "하느님이여, 당신의 보좌는 영원무궁하며"라는 70인역 번역을 통해 메시아를 하느님으로 호칭하는 신학적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히브리서 8장 8-12절에서 인용된 예레미야 31장 31-34절의 새 언약 예언은 70인역의 '디아테케'(언약) 번역을 통해 그리스-로마 법률 체계의 유언장 개념과 연결되어,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새 언약의 발효라는 독특한 신학적 해석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들에서도 70인역의 영향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의 "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계시니"에서 '스케노오'(장막을 치다)라는 동사 선택은 70인역 출애굽기의 하느님 현존 신학과 연결됩니다. 또한 요한복음 12장 40절에서 이사야 6장 10절을 인용할 때도 70인역의 표현을 따라 하느님의 주권적 예정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제시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직접적인 인용보다는 70인역의 상징과 이미지들을 광범위하게 활용했습니다. 에제키엘서와 다니엘서, 스가리야서 등의 묵시문학적 요소들이 70인역의 번역을 통해 재해석되어 그리스도론적 비전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이는 70인역이 단순한 번역본을 넘어서 초기 기독교의 신학적 상상력을 형성하는 원천 텍스트 역할을 했음을 보여줍니다.

초기 교부들과 70인역 전통

신약성경 저자들의 70인역 활용은 2-5세기 교부들의 성경 해석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클레멘스와 오리게네스는 70인역을 기반으로 알레고리적 해석법을 발전시켰으며, 이는 중세까지 이어지는 천주교 성경 해석의 중요한 전통이 되었습니다. 특히 오리게네스의 「헥사플라」는 70인역을 다른 그리스어 번역들과 비교 연구한 최초의 체계적 작업으로, 성경 본문 비평학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안티오키아 학파의 교부들도 70인역을 중시했지만, 히브리어 원문과의 차이를 인식하고 보다 역사적-문법적 해석을 추구했습니다. 크리소스토모스와 테오도레토스는 70인역을 사용하면서도 히브리어 원문의 의미를 참조하여 균형 잡힌 해석을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접근법은 오늘날 천주교 성경 해석학의 역사적-비평적 방법론의 선구가 되었습니다.

서방 교회에서는 성 히에로니무스가 히브리어 원전으로 돌아가 라틴어 불가타를 번역했지만, 그럼에도 70인역의 전통적 해석들을 상당 부분 수용했습니다. 특히 신약 인용구들에 대해서는 70인역의 전통을 유지했으며, 이는 교회 전승의 연속성을 중시하는 천주교적 관점을 반영한 것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에서 70인역의 영감성을 강조하며, 번역 과정에서도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주목할 점: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에서는 불가타를 교회의 공식 성경으로 선언했지만, 동시에 70인역의 전통적 권위도 인정했습니다. 이는 번역 성경도 하느님 말씀의 진정한 전달자가 될 수 있다는 천주교적 성경관을 보여주는 중요한 결정이었습니다.

현대 천주교 성경 해석에서의 의미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헌장」(데이 베르붐)은 성경 해석에서 역사적 맥락과 문학적 장르를 고려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70인역의 역할은 새롭게 조명받고 있습니다. 70인역은 단순한 번역본이 아니라 헬레니즘 유대교의 신학적 해석이 담긴 독립적인 증언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이는 구약의 다층적 의미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현재 사용되는 「새번역 성경」을 비롯한 현대 가톨릭 성경들도 70인역의 전통을 적절히 고려하고 있습니다. 특히 신약에서 인용된 구약 구절들의 경우, 히브리어 원문과 70인역의 차이를 각주로 설명하여 독자들이 신약 저자들의 해석학적 방법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이는 성경의 정경적 해석, 즉 성경 전체를 통일된 구원사의 관점에서 읽는 천주교적 접근법을 반영합니다.

교황청 성서위원회의 문헌들은 70인역의 역사적 중요성과 신학적 가치를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들: 성경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2001)에서는 70인역이 초기 기독교와 유대교의 공통 유산임을 확인하며, 이를 통해 양 종교 간의 대화와 이해를 증진시킬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70인역 연구가 단순한 고대사 탐구를 넘어 현대적 종교간 대화의 중요한 자원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참고문헌

  • 교황청 성서위원회, 『성경의 해석』,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4
  • 교황청 성서위원회,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2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헌장』,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65
  • 카렌 요네스, 『70인역 개론』, 대한기독교서회, 2018
  • 마틴 헨겔, 『헬레니즘과 유대교』, 새물결플러스, 2015
  • 크리스토퍼 스미스, 『신약성경의 구약 사용』, 성서유니온선교회, 2020
  • 레이몬드 브라운, 『신약성서 개론』, 분도출판사, 2009
  • 에마뉘엘 토프, 『70인역의 본문사와 번역 기법』, 비블리카 아카데미아, 2016
  • 스티브 모이어, 『구약에서 신약으로』,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12
  • 로버트 핸하트, 『70인역과 신약의 연결고리』, CLC, 2019
  • Vatican.va - 교황청 공식 웹사이트 성서위원회 문헌 (https://www.vatican.va)
  • Catholic Biblical Association (https://www.catholicbiblical.org)
  • 한국가톨릭성서학회 (http://www.kcbskorea.org)
  • 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eptuagint and Cognate Studies (http://ccat.sas.upenn.edu/ios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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