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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경과 번역의 역사/라틴어 불가타, 70인역, 초기 성경 전승

가톨릭 정경 논쟁과 번역 성경의 역사적 위치와 의미

by 기쁜소식 알리기 2025.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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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교회의 성경 정경 형성 과정

가톨릭교회의 성경 정경은 오랜 역사적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습니다. 1세기부터 4세기에 걸쳐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은 사도들의 가르침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은 문서들을 점진적으로 수집하고 선별해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교부들과 교회 지도자들은 각 문서의 사도성, 정통성, 그리고 교회 공동체 내에서의 광범위한 수용 여부를 기준으로 정경을 구분하였습니다.

특히 4세기 히포 공의회(393년)와 카르타고 공의회(397년, 419년)에서는 구약 46권과 신약 27권으로 구성된 성경 목록이 공식적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이때 제2경전(듀테로카노니컬)이라 불리는 토빗서, 유딧서,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마카베오상하서 등이 정경에 포함되었으며, 이는 당시 헬레니즘 세계에서 널리 사용되던 칠십인역 성경의 전통을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결정은 단순한 행정적 조치가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교회의 교도권이 행사된 중대한 신학적 판단이었습니다.

가톨릭 정경 논쟁과 번역 성경

성 히에로니무스와 불가타 성경의 등장

4세기 말과 5세기 초, 달마티아 출신의 위대한 교부 성 히에로니무스(347-420년)는 교황 다마소 1세의 요청으로 라틴어 불가타(Vulgata) 성경 번역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당시 서방교회에서는 여러 라틴어 번역본들이 혼재하여 사용되고 있어 통일된 번역본의 필요성이 절실했습니다. 히에로니무스는 베들레헴에서 약 15년간 헬레니즘의 정수인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전을 바탕으로 정확하고 우아한 라틴어 번역을 완성했습니다.

불가타 성경은 단순한 번역서를 넘어서 서방 그리스도교 문화의 기초석이 되었습니다. 중세 시대 내내 대학과 수도원에서 신학 연구와 전례의 기본 텍스트로 사용되었으며, 스콜라 신학의 발전과 중세 문학,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단테의 신곡, 수많은 미사 전례문과 성가들이 모두 불가타 성경의 언어와 사상에 기반하여 창작되었습니다.

종교개혁 시대의 정경 논쟁

16세기 종교개혁은 성경 정경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촉발시켰습니다. 마르틴 루터(1483-1546)는 1517년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한 후,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의 원리를 제시하며 가톨릭교회의 성전(聖傳)과 교도권의 권위에 도전했습니다. 루터는 특히 제2경전의 정경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이들 책들이 히브리어 정경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경(Apocrypha)으로 분류했습니다.

루터의 도전은 단순히 학술적 논쟁을 넘어서 교회의 권위와 성경 해석권에 대한 교회론적 근본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성경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형성되었으며, 따라서 성경의 올바른 해석 역시 교회의 교도권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프로테스탄트는 성경 자체가 스스로를 해석한다는 "성경의 자기 해석성" 원리를 내세웠습니다.

트리덴틴 공의회의 결정적 응답

1545년부터 1563년까지 18년간 개최된 트리덴틴 공의회는 종교개혁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공식적이고 체계적인 응답이었습니다. 공의회는 첫 번째 회기인 1546년 4월 8일, 성경과 성전에 관한 교령을 통해 구약 46권, 신약 27권의 정경 목록을 재확인하고, 제2경전의 정경성을 명확히 선언했습니다. 이는 1200년 가까이 지속되어온 교회의 전통을 공의회의 권위로 재천명한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또한 공의회는 불가타 성경을 "공적 독서, 논쟁, 설교, 해설에서 진정한(authentic) 번역본"으로 선언했습니다. 이는 불가타의 신학적 정확성을 보장하는 동시에, 서방교회의 통일성을 유지하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동시에 공의회는 성경의 해석권이 교회에 속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하며, 개인의 자의적 해석을 경계할 것을 명시했습니다.

근현대 번역 성경의 발전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19세기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고고학적 발견과 언어학의 발전은 성경 연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1947년 쿰란에서 발견된 사해 사본들과 각종 고대 사본들의 연구를 통해 성경 텍스트에 대한 이해가 크게 deepened 되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1943년 비오 12세 교황의 회칙 "성령감도하"(Divino Afflante Spiritu)를 통해 원어 연구와 현대적 성경학 방법론을 적극 장려하기 시작했습니다.

1962-1965년 개최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헌장"(Dei Verbum)을 통해 성경에 대한 현대적 이해를 제시했습니다. 공의회는 성경을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담은 계시의 말씀으로 이해하되, 동시에 인간 저자들의 문학적, 역사적 상황을 고려한 해석이 필요함을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입장은 전통적인 교회의 가르침을 유지하면서도 현대 성경학의 성과를 수용하려는 균형잡힌 접근이었습니다.

현대 가톨릭 번역 성경의 특징과 의미

20세기 후반 이후 가톨릭교회는 각국 언어로 된 현대적 번역 성경들을 적극 발행해왔습니다. 한국 가톨릭교회의 경우 1967년 신약성경, 1977년 구약성경 번역을 완성하여 공동번역 성서 사업에 참여했으며, 이후 새번역 성경(2005년) 작업을 통해 더욱 정확하고 현대적인 번역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번역 사업들은 단순한 언어적 전환을 넘어서 복음의 토착화와 문화적 적응이라는 선교적 차원을 담고 있습니다.

현대 가톨릭 번역 성경의 특징은 원어에 대한 정확성과 전례적 사용성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점입니다. 히브리어, 아람어, 그리스어 원전에 대한 철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하되, 미사와 성무일도 등 전례에서 사용될 때의 음성적, 의미적 효과까지 고려합니다. 또한 교부들의 주석 전통과 교회의 교도권적 해석을 존중하면서도,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하느님의 말씀을 전달하려고 노력합니다.

에큐메니컬 시대의 성경 번역 협력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교회는 다른 그리스도교 교파들과의 에큐메니컬 대화에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이는 성경 번역 분야에서도 새로운 협력의 장을 열었습니다. 1968년 교황청 그리스도교일치촉진평의회가 발표한 지침서는 프로테스탄트 교회들과의 공동 성경 번역 사업을 허용하고 장려했습니다. 이러한 협력은 그리스도교 일치 운동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번역의 정확성과 학술적 수준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협력에도 불구하고 정경의 범위에 대한 차이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트리덴틴 공의회의 결정을 따라 제2경전을 포함한 73권을 정경으로 인정하는 반면, 대부분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은 66권만을 정경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한 책의 수를 넘어서 계시의 이해, 교회의 권위, 성전의 역할 등에 대한 근본적인 신학적 차이를 반영합니다.

디지털 시대의 성경과 미래 전망

21세기 디지털 혁명은 성경의 보급과 연구에 새로운 차원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온라인 성경 서비스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이 쉽게 성경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으며, 다양한 번역본들을 비교하고 주석을 참조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었습니다. 또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한 성경 연구 도구들이 개발되면서, 텍스트 분석과 비교 연구의 정확성과 효율성이 크게 향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적 발전과 함께 올바른 성경 해석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습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권위 있는 해석과 개인적 견해를 구분하는 능력, 교회의 전통과 교도권의 지침을 존중하는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앞으로도 성경의 정확한 번역과 올바른 해석을 통해 신자들이 하느님의 말씀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입니다.

참고문헌 및 참고사이트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가톨릭교회 교리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8
  • 제2차 바티칸공의회,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헌장』(Dei Verbum), 1965
  • 트리덴틴 공의회, 『성경과 성전에 관한 교령』, 1546
  • 교황청 성서위원회, 『교회 안에서 성경의 해석』, 1993
  • 이형우, 『성경 정경론 연구』, 가톨릭출판사, 2015
  • 정양모, 『성경의 역사와 번역』, 성바오로출판사, 2010
  • 바티칸 공식 홈페이지: www.vatican.va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www.cbck.or.kr
  • 가톨릭신문: www.catholictimes.org
  • 교황청 성서위원회: www.vatican.va/roman_curia/congregations/cfaith/pcb_index.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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