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332 박해 속에서 빛난 신앙의 증인, 성 도나토 4세기 로마 제국은 기독교인들에게 가혹한 시련의 시대였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대박해가 끝난 후에도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신앙인들은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이러한 격변의 시대를 살아간 성 도나토는 굳건한 믿음과 기적의 능력으로 수많은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초대 교회의 위대한 증인입니다.초대 교회 시대의 역사적 배경성 도나토가 활동했던 4세기는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전환기였습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한 후, 교회는 박해의 어둠에서 벗어나 빛을 보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361년 율리아누스가 황제로 즉위하면서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고대 로마의 다신교로 회귀하려 했으며, 이로 인해 "배교자"라는 별명을 .. 2025. 11. 9. 불가타 성경과 중세 유럽 문학의 찬란한 만남: 단테와 토마스 아퀴나스 라틴어로 번역된 하느님의 말씀, 불가타 성경의 탄생서기 382년, 교황 다마소 1세의 요청으로 성 히에로니무스는 거대한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당시 라틴어권 교회에서는 수많은 라틴어 성경 번역본들이 난립하고 있었고, 그 정확성과 일관성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히에로니무스는 히브리어 원전과 그리스어 칠십인역을 기반으로 하여, 약 20년에 걸쳐 완성도 높은 라틴어 성경 번역을 완성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불가타 성경입니다. 불가타라는 이름은 '대중적인' 혹은 '통용되는'이라는 뜻의 라틴어 'vulgata'에서 유래했으며, 이후 천 년 이상 서방 가톨릭 교회의 공식 성경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에서는 불가타 성경을 교회의 공식 라틴어 성경으로 선포하여 그 권위를 확고히 했습니다... 2025. 11. 8. 성녀 페르페투아 순교자 - 귀족의 딸에서 그리스도의 신부로 3세기 초 카르타고의 사회적 배경3세기 초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는 로마 제국에서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에 버금가는 제3의 대도시였습니다. 페니키아인들이 세운 이 고대 도시는 기원전 146년 제3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에 패배한 후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 재건되어 번영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카르타고는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로서 엄청난 부를 축적했고, 로마 문화와 그리스 철학이 융성한 학문의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이곳에서는 라틴어가 공용어로 사용되었고, 로마식 교육 제도가 확립되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1세기 말부터 이 지역에 전파되기 시작했으며, 2세기에는 이미 견고한 교회 조직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카르타고 교회는 초대 교회 신학 발전에 큰 기여를 했는데, 위대한.. 2025. 11. 8. 가톨릭 윤리 신학 - 양심과 선택의 길 윤리 신학의 기초와 역사적 발전가톨릭 윤리 신학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입니다. 초대 교회 시대부터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의 빛 안에서 구체적인 삶의 문제들에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 고민해왔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서간에서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삶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중세 시대에 들어서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그리스도교 신학을 종합하여 체계적인 윤리 신학을 정립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모든 행위가 궁극적으로 하느님이라는 최고선을 향해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16세기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윤리 신학은 고해성사를 위한 실천적 지침서로 발전했으며, 죄의 분류와 양심의 판단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20세기 제2차 바티.. 2025. 11. 7. 성녀 펠리치타스 순교자 - 어머니의 사랑과 신앙의 용기 3세기 초 북아프리카의 박해 상황3세기 초 로마 제국은 그리스도교에 대한 조직적인 박해를 강화하고 있었습니다. 193년부터 211년까지 통치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는 로마 제국의 안정을 위해 전통 종교를 강조했고, 202년에는 제국 전역에 칙령을 내려 그리스도교와 유대교로의 개종을 엄격히 금지했습니다. 이 칙령은 특히 새롭게 신자가 되려는 예비 신자들과 그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교사들을 표적으로 삼았습니다.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는 당시 로마 제국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였으며, 그리스도교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던 지역이었습니다. 카르타고 교회는 이미 견고한 조직을 갖추고 있었고, 순교자들의 피로 신앙이 더욱 견고해지고 있었습니다. 황제의 칙령이 반포되자 카르타고의 총독은 적극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을 .. 2025. 11. 7. 성녀 모니카 - 기도의 힘을 증명한 어머니의 신앙 4세기 북아프리카의 역사적 배경4세기 북아프리카는 로마 제국의 중요한 속주로서 문화적으로 매우 융성한 지역이었습니다. 특히 누미디아 지방은 카르타고를 중심으로 한 교역과 학문의 중심지였으며, 그리스도교가 이미 깊이 뿌리내린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전통적인 로마 이교 신앙과 새롭게 유입된 마니교 등 다양한 종교적 사상들이 혼재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누미디아의 타가스테는 작은 도시였지만 로마 문화의 영향을 받아 라틴어 교육이 이루어지고 수사학과 철학이 가르쳐지던 곳이었습니다. 이러한 지적 환경은 뛰어난 인재들을 배출하는 토양이 되었지만, 동시에 젊은이들이 세속적 욕망과 이교적 사상에 빠지기 쉬운 환경이기도 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이후, 교회는 급속.. 2025. 11. 6. 이전 1 ··· 13 14 15 16 17 18 19 ··· 5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