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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블뤼 주교와 조선 선교,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후대에 남긴 목자

by 기쁜소식 알리기 2026.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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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앵베르 주교님과 모방, 샤스탕 신부님 이후 조선 교회를 이끈 마리 니콜라 앙투안 다블뤼 주교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한국 이름은 안돈이이고, 세례명은 안토니오입니다. 다블뤼 주교님은 사목만 한 것이 아니라, 박해로 스러져 간 신자들의 증언을 모아 기록으로 남긴 분이기도 해요. 오늘날 우리가 순교자들의 이름을 알 수 있는 것은 이분 덕이 큽니다.

다블뤼 주교와 조선 선교,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후대에 남긴 목자

1. 기해박해 이후, 다시 문을 연 조선 교회

 

1839년 기해박해로 세 분의 선교사가 순교한 뒤 조선 교회는 다시 사제 없는 시기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마카오에서 공부하던 김대건 안드레아가 상하이에서 사제품을 받으면서 새로운 길이 열려요. 1845년 김대건 신부님은 페레올 주교님, 다블뤼 신부님과 함께 작은 배 라파엘호를 타고 서해를 건너 충청도 쪽 해안으로 들어옵니다. 조선 땅에 한국인 사제가 처음 발을 디딘 순간이었어요.

 

당시 세계사의 큰 흐름을 보면, 중국은 아편전쟁에서 패배해 1842년 난징조약으로 항구를 열고 있었습니다. 서양 열강의 아시아 진출이 빨라지던 시기였고, 선교사들이 중국 연안을 거쳐 조선으로 향하는 길도 이런 국제 질서 속에서 만들어졌어요.




2. 다블뤼의 사목과 한국어 공부

 

다블뤼 주교님은 1818년 프랑스 아미앵 출신이에요. 사제품을 받은 뒤 파리외방전교회에 들어가 아시아 선교를 준비했고, 조선에 들어온 뒤에는 주로 충청도 내포 지방을 중심으로 사목했습니다. 이곳은 예부터 신앙이 깊은 교우촌이 많던 지역이에요. 다블뤼 신부님은 조선말을 빠르게 익혀 신자들과 편하게 대화했고, 훗날 조선어와 프랑스어를 대조하는 자료까지 정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페레올 주교님이 선종한 뒤에는 베르뇌 주교님이 교구장이 되었고, 다블뤼 신부님은 1857년 주교품을 받아 보좌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 시기 교회는 조금씩 회복되어 신자 수가 2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전해져요. 배론 신학교 같은 교육 기관도 세워 한국인 사제를 키우려는 노력이 이어졌습니다.

3. 순교자들의 기록을 모으다

 

다블뤼 주교님의 가장 큰 업적 가운데 하나는 순교자 기록입니다. 기해박해와 병오박해 등을 겪은 신자들을 직접 만나 증언을 듣고, 기록을 정리해 본국 교회에 보냈어요. 이 자료는 훗날 달레 신부가 『한국천주교회사』를 쓰는 중요한 바탕이 되었습니다. 만약 이런 기록이 없었다면 많은 순교자의 이름은 역사 속에 묻혔을지도 몰라요.

 

4. 병인박해와 갈매못의 순교

 

1866년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집권한 가운데 병인박해가 시작됩니다. 러시아 선박이 동해안에 나타나 통상을 요구한 일이 계기가 되었고, 천주교가 외세와 연결되어 있다는 의심이 퍼졌어요. 베르뇌 주교님이 먼저 체포되어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했고, 다블뤼 주교님도 충청도에서 붙잡혀 서울로 압송됩니다.


다블뤼 주교님은 1866년 3월 30일 충청도 보령의 갈매못에서 오메트르 신부, 위앵 신부, 그리고 평신도 황석두 루카, 장주기 요셉과 함께 순교하셨습니다. 그의 나이 48세였어요. 병인박해는 이후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공격한 병인양요로 이어지며 국제 문제로 번졌고, 조선은 쇄국 정책을 더욱 강화하게 됩니다.

 

다블뤼 주교님은 1968년 복자품에 오르셨고, 1984년 서울에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집전한 시성식에서 한국 순교 성인 103위에 포함되셨습니다. 혹시 충남 보령 쪽으로 여행을 가신다면 갈매못 순교성지에 들러 보세요. 바다를 바라보며 책에서 읽은 이야기를 곱씹어 보기에 참 좋은 곳입니다.

다블뤼 주교와 조선 선교 연표

 

연도 주요 사건
1818년 다블뤼, 프랑스 아미앵에서 출생
1839년 기해박해, 앵베르 주교와 모방·샤스탕 신부 순교
1842년 아편전쟁 끝에 난징조약 체결, 중국 항구 개방
1845년 김대건 신부,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가 라파엘호를 타고 조선에 입국
1853년 페레올 주교 선종
1857년 다블뤼 신부, 주교품을 받고 베르뇌 주교를 보좌
1866년 초 병인박해 시작, 베르뇌 주교 새남터에서 순교
1866년 3월 30일 다블뤼 주교와 오메트르·위앵 신부 등, 갈매못에서 순교
1866년 가을 프랑스 함대의 강화도 공격, 병인양요 발생
1968년 다블뤼 주교 복자품에 오름
1984년 서울에서 한국 순교 성인 103위 시성, 다블뤼 주교 포함




참고문헌 및 참고 사이트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cbck.or.kr), 한국 순교자 관련 자료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다블뤼·병인박해 항목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contents.history.go.kr), 병인박해·병인양요 항목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편, 『한국 가톨릭 대사전』
  • 샤를르 달레 저, 『한국천주교회사』

 

※ 본 글은 위 자료를 참고하여 직접 재구성한 글이며, 연도와 세부 내용은 자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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