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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특집 기획시리즈/가톨릭 문화유산 해설(미술,음악,건축)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 이야기, 낯선 땅에서 신자들의 목자가 된 두 선교사

by 기쁜소식 알리기 2026.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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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앵베르 주교님과 함께 조선 교회를 위해 일하다 순교한 두 분의 신부님, 모방 신부님과 샤스탕 신부님 이야기를 해 볼게요. 두 분 모두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였고, 한국 이름은 각각 나백다록(베드로)과 정아각백(야고보)입니다. 사제 없이 오랜 세월을 견딘 조선 신자들에게 두 분은 정말 오래 기다린 선물 같은 분들이었어요.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 이야기, 낯선 땅에서 신자들의 목자가 된 두 선교사

 

1. 사제를 기다리던 조선 교회와 선교사들의 도착

 

주문모 신부님이 1801년 신유박해로 순교한 뒤, 조선 교회는 사제 없이 30년 넘게 신앙을 이어 가야 했습니다. 신자들은 베이징 교구와 로마 교황청에 거듭 편지를 보내 사제를 보내 달라고 청했어요. 그 간청이 받아들여져 1831년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께서 조선을 독립된 교구로 세우시고, 선교를 파리외방전교회에 맡기셨습니다.

 

가장 먼저 조선 땅을 밟은 사람은 모방 신부님이에요. 1836년 초 국경을 넘어 한양에 들어왔습니다. 이어 같은 해 말 샤스탕 신부님이 합류했고, 1837년 초에는 앵베르 주교님이 입국하면서 세 분의 선교사가 함께 사목하게 됩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프랑스 혁명 이후 가톨릭 선교 열기가 다시 살아나던 때였고, 이런 세계 교회의 흐름이 조선 선교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어요.

 

2. 모방 신부의 사목과 신학생 선발

 

모방 신부님은 1803년 프랑스 출신으로, 조선에 들어오기 전 중국 변방에서 준비 기간을 보냈어요. 입국 후에는 한양에 머물며 조선 말을 배우고 신자 공동체를 방문했습니다. 특히 중요한 일은 신학생 후보를 뽑은 것인데, 최양업, 김대건, 최방제 세 소년을 선발해 마카오로 유학을 보냅니다. 이 가운데 김대건 안드레아와 최양업 토마스가 훗날 한국인 사제가 되었어요.

 

현지인 사제를 키우는 일은 선교의 핵심 과제였습니다. 외국인 사제는 박해가 오면 쉽게 눈에 띄지만, 현지인 사제는 오래 머물며 공동체를 돌볼 수 있기 때문이에요. 모방 신부님의 이 결정은 한국 교회가 스스로 설 수 있는 토대를 놓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3. 샤스탕 신부의 지방 사목

 

샤스탕 신부님은 1803년 프랑스 남동부 출신으로, 입국 후 주로 지방 신자촌을 돌며 사목했습니다. 조선말에 서툴렀지만 신자들과 어울리려 노력했고, 교우촌을 방문해 미사를 봉헌하고 고해성사와 세례를 주었어요. 당시 외국인 사제는 밤에 이동하고 낮에는 숨어 지내야 했기 때문에, 한 마을에 오래 머물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신자들이 마련해 준 작은 방에서 정성껏 미사를 드렸다고 전해집니다.

 

두 신부님의 활동 덕분에 신자 수는 약 9천 명 수준으로 늘었다고 알려져 있어요. 한 해에 수천 명에게 성사를 베풀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물론 자료마다 숫자가 조금씩 다르지만, 사제의 존재가 교회에 얼마나 큰 활력을 주었는지는 분명히 보여 줍니다.

 

4. 기해박해와 새남터의 순교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상황이 급변합니다. 정치 세력 간의 다툼이 얽히며 천주교 신자에 대한 탄압이 거세졌고, 한 배교자의 밀고로 선교사들의 거처가 알려지게 돼요. 앵베르 주교님은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해 스스로 관아에 나아갔고, 두 신부님에게도 자수를 권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모방 신부님과 샤스탕 신부님은 그 뜻을 따라 관아에 출두했어요.

 

세 분은 서울로 압송되어 신문을 받았고, 1839년 9월 21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하셨습니다. 모방 신부님은 36세, 샤스탕 신부님은 36세 무렵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세 분은 1925년 복자품에 오르셨고, 1984년 서울에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집전한 시성식에서 한국 순교 성인 103위에 포함되었습니다.

 

세계사적으로 보면 서구 열강이 동아시아로 진출하던 시기에 종교가 외교와 정치 문제로 오해받아 충돌한 사례이기도 해요. 하지만 신앙의 눈으로 보면, 낯선 땅의 신자들과 끝까지 함께한 목자들의 이야기입니다. 가까운 새남터 순교성지나 절두산 순교성지를 찾아가 보시면 책으로 읽은 이름들이 훨씬 가깝게 느껴질 거예요.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 연표

 

연도 주요 사건
1801년 신유박해, 주문모 신부 순교 이후 조선 교회가 사제 없이 지내는 시기 시작
1803년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 프랑스에서 각각 출생
1831년 교황 그레고리오 16세, 조선교구 설정 및 파리외방전교회에 선교 위임
1836년 모방 신부 입국, 이어 샤스탕 신부 입국, 신학생 후보 3명 선발 후 마카오로 유학
1837년 앵베르 주교 입국, 세 선교사가 함께 사목
1839년 기해박해 발생, 앵베르 주교의 권유에 따라 두 신부 자수
1839년 9월 21일 앵베르 주교와 모방·샤스탕 신부, 새남터에서 순교
1925년 세 분 복자품에 오름
1984년 서울에서 한국 순교 성인 103위 시성, 모방·샤스탕 신부 포함

 

참고문헌 및 참고 사이트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cbck.or.kr), 한국 순교자 관련 자료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모방·샤스탕·기해박해 항목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contents.history.go.kr), 천주교 박해 관련 항목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편, 『한국 가톨릭 대사전』
  • 샤를르 달레 저, 『한국천주교회사』

 

※ 본 글은 위 자료를 참고하여 직접 재구성한 글이며, 연도와 세부 내용은 자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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