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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경과 번역의 역사/라틴어 불가타, 70인역, 초기 성경 전승

동방 교회의 성경 전승과 70인역의 지속성

by 기쁜소식 알리기 2025.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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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교회의 성경 전승은 서방 천주교회와는 구별되는 독특한 역사적 맥락과 신학적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70인역(세프투아진타, Septuagint)으로 알려진 그리스어 구약성경의 지속적 사용은 동방 교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전승의 연속성은 단순한 언어적 선택을 넘어서, 동방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신학적 사고와 전례적 실천에 깊은 영향을 미쳐왔습니다.

70인역 성경의 기원은 기원전 3세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으로 그리스어를 사용하던 디아스포라 유대인 공동체를 위해 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이 바로 70인역의 시작이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72명의 유대 학자들이 72일 동안 독립적으로 번역 작업을 진행했음에도 완전히 동일한 번역문을 완성했다고 전해지며, 이는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에 의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동방 교회의 성경 전승과 70인역의 지속성

초기 그리스도교와 70인역의 수용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70인역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습니다. 사도 바오로를 비롯한 신약성경 저자들이 구약성경을 인용할 때 주로 70인역을 사용했다는 사실은 이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특히 동방 교회 지역인 소아시아, 시리아, 이집트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에게 70인역은 자연스러운 성경 텍스트였으며, 이들의 신학적 발전과 전례적 전통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4세기 콘스탄티노플의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과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로 성인 같은 동방 교부들은 70인역을 기반으로 한 성경 주석과 설교를 통해 동방 교회의 신학적 토대를 확립했습니다. 이들의 작업은 단순한 텍스트 해석을 넘어서, 70인역의 특정 표현들이 그리스도론과 삼위일체론의 발전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동방 교회에서 70인역의 중요성은 특히 이사야 7장 14절의 번역에서 명확히 드러납니다. 히브리어 원문의 '알마'(젊은 여인)를 70인역에서는 '파르테노스'(동정녀)로 번역했는데, 이는 마태오 복음서의 동정 탄생 예언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동방 교회의 마리아론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비잔티움 제국과 70인역 전승의 제도화

비잔티움 제국의 성립과 함께 동방 교회의 70인역 전승은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527-565) 시대에는 제국 전역에 걸친 교회 조직의 표준화 과정에서 70인역이 공식적인 구약성경 텍스트로 확립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전례서와 성무일도서에는 70인역의 시편과 구약 독서가 체계적으로 편입되어, 동방 교회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깊숙이 스며들었습니다.

8-9세기 성상파괴론 논쟁 시기에도 70인역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성상옹호론자들은 70인역의 특정 구절들을 인용하여 성화와 성상 공경의 정당성을 변호했으며, 이는 동방 교회의 전례 예술과 영성 전통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특히 다마스쿠스의 요한 성인의 신학적 작업에서 70인역의 영향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세 시대 동방 교회의 70인역 보존

십자군 전쟁과 1054년 대분열 이후에도 동방 교회는 70인역 전승을 꾸준히 보존해왔습니다. 12-13세기 비잔티움의 신학자들인 에우티미오스 지가베노스와 니케타스 세이데스 같은 인물들은 70인역을 기반으로 한 성경 주석 작업을 계속했으며, 이는 서방의 불가타 성경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해석 전통을 형성했습니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 오스만 제국 하에서도 그리스 정교회와 기타 동방 정교회들은 70인역 전승을 유지했습니다. 특히 아토스 산의 수도원들과 시나이 반도의 성 카타리나 수도원 같은 곳에서는 고대 70인역 사본들이 보존되어, 현대 성경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현대 동방 교회와 70인역의 지속성

현대에 이르러서도 동방 정교회를 비롯한 동방 교회들은 70인역을 공식 구약성경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정교회, 세르비아 정교회, 루마니아 정교회 등 각국의 정교회들이 자국어로 성경을 번역할 때도 70인역을 저본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히브리어 마소라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는 서방 천주교회의 접근과는 명확한 차이를 보여줍니다.

20세기와 21세기에 진행된 성경학 연구는 70인역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쿰란 사해 문서의 발견으로 70인역 번역자들이 사용했던 히브리어 원문이 마소라 텍스트와 다른 계열일 가능성이 제기되었으며, 이는 70인역의 역사적 신뢰성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특히 동방 교회의 전례 전통에서 70인역의 영향은 여전히 강력합니다. 그리스 정교회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전례나 성 바실리오 전례에서 사용되는 시편과 구약 독서는 모두 70인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이는 신자들의 신앙 의식과 영성 체험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신학적 함의와 에큐메니컬 대화

동방 교회의 70인역 전승은 현대 에큐메니컬 대화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천주교회와 동방 정교회 간의 신학 대화에서 성경 전승의 차이는 중요한 논의 주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양 교회는 서로의 성경 전승을 존중하면서도, 공통된 신앙의 근거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 성경학계에서는 70인역이 단순한 번역본이 아니라 독립적인 신학적 증언이라는 관점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는 동방 교회의 70인역 전승이 지닌 고유한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며, 동시에 그리스도교 전체의 성경 이해를 풍부하게 하는 요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동방 교회의 70인역 전승은 2천여 년의 역사를 통해 지속되어온 살아있는 전통입니다. 이는 단순한 텍스트의 보존을 넘어서, 동방 그리스도교의 신학적 정체성과 영성 전통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해왔습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전승의 지속성은 동방 교회의 독특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이며, 전체 그리스도교 전통의 풍요로움을 드러내는 소중한 유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및 참고자료

  • 카렌 요베스, 『70인역 성경 입문』, 한국성서학연구소, 2018
  • 존 브라이트, 『이스라엘 역사』,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17
  • 야로슬라프 펠리칸, 『그리스도교 전통사 2권: 동방의 그리스도교 정신』, 한국장로교출판사, 2019
  • 팀 헤그, 『구약성경 개론』, IVP, 2020
  • 동방정교회 신학연구소, 『비잔티움 교회사』, 분도출판사, 2016
  • Orthodox Wiki - Septuagint (https://orthodoxwiki.org)
  • 가톨릭백과사전 온라인판 - 70인역 항목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홈페이지 교회사 자료실
  • 바티칸 공식 홈페이지 - 동방교회 관련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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