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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인과 교부

성 바르톨로 롱고 – 묵주기도의 사도, 시련을 이겨낸 신앙의 증인

by 기쁜소식 알리기 2026.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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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유럽을 휩쓸던 세속화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한 사람의 회심이 백만 명의 순례자들이 찾는 성지를 만들어냈다. 1841년 이탈리아 남부의 작은 마을 라티아노에서 태어난 바르톨로 롱고는 그 시대 가장 극적인 신앙의 증거이자, 개인의 영혼 구원이 어떻게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사례이다. 그의 삶은 단순한 종교적 개인사를 넘어, 19세기 가톨릭이 현대화의 물결 속에서 어떻게 그 영향력을 재구성했는지를 보여주는 세계사적 사건이기도 하다.

성 바르톨로 롱고 – 묵주기도의 사도, 시련을 이겨낸 신앙의 증인

바르톨로 롱고의 시대는 이탈리아 역사에서 가장 격변했던 시기 중 하나였다. 1860년대 이탈리아 통일 운동, 즉 리소르지멘토가 절정에 달할 때,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려는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은 종종 천년의 교회 전통을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간주했다. 나폴리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던 젊은 롱고는 이러한 반종교적 기류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읜 슬픔은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영적 무언가를 갈구하게 했지만, 그것이 진정한 신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대신 당시 유럽의 상류층 사이에서 유행하던 강신술, 심령주의, 그리고 극단적으로는 사탄 숭배와 같은 신비주의에 그는 빨려들어갔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이렇게 작동한다. 세속화의 진행, 과학적 이성주의의 승리, 교회 권력의 약화 속에서 역설적으로 정신적 공허감은 더욱 깊어졌다. 롱고는 법학 학위를 얻었지만, 그의 영혼은 극심한 우울증, 불안, 그리고 영혼이 구원받을 수 없다는 절망감에 짓눌려 있었다. 현대 심리학적 용어로는 아마도 심각한 정신 건강의 위기라고 불렸을 그 상태는, 당시에는 "영적 착란"이라고 불렸다. 약 25세의 젊은 나이에 완전히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도달한 그 순간, 바르톨로 롱고는 진정한 변화의 시점에 서게 된다.

 

회심의 순간은 극적이었다. 도미니코회 신부 알베르토 라덴테와 친구 빈첸초 페페는 절망에 빠진 젊은이에게 한 가지 권고를 했다. 바로 성모 마리아께 자신의 영혼을 맡기고 묵주기도를 바치라는 것이었다. 묵주기도는 중세 이래로 가톨릭의 가장 대표적인 기도 전통 중 하나였지만, 종교 개혁 이후 특히 17세기 폴란드의 승리와 교황 요한 바오로 1세의 권장 이래 마리아 신심의 핵심이 되었다. 롱고는 이 단순하지만 신비로운 기도에 자신을 내맡겼고, 그 과정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그는 나중에 "하느님의 은총이 내 영혼을 움켜잡았다"고 회고했다. 내면의 평화, 그리고 살아갈 이유를 찾은 것이다. 이것이 1864년의 일이었다.

 

회심은 단지 개인의 영혼 구원에 그치지 않았다. 1871년 롱고는 도미니코 제3회 평신도 회원이 되었고, 같은 해 부유한 귀족 여성 마리안나 파르나라로 백작 부인과 혼인을 맺었다. 그들의 결혼은 세상의 기준으로는 이례적이었다. 교회의 허락 아래 두 사람은 부부로서의 정절을 서약했고, 부를 축적하는 대신 버려진 땅을 일구는 데 모든 자원을 쏟아붓기로 결심했다. 그들이 선택한 장소는 폼페이 계곡이었다. 2000년 전 비수비우스 화산의 폭발로 매몰된 고대 로마 도시 폼페이 근처의 이 계곡은, 19세기 중반에는 극도로 궁핍하고 말라리아가 횡행하는 황폐한 땅이었다. 학교도 없고, 인프라도 거의 없으며, 미신과 범죄가 만연한 그 지역에서 롱고는 마리아 신심의 중심지를 세우기로 결심했다.

 

1875년 폼페이 계곡의 버려진 땅에 오래된 성모 마리아의 그림 한 점이 놓였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광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롱고는 헌신적으로 이 지역의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묵주기도를 가르쳤고, 작은 예배소부터 시작하여 점차 대성전을 건설해갔다. 재정은 주로 세계 각지의 신자들이 "매달 1펜스"씩 기부하는 방식으로 모였다. 이는 오늘날의 관점에서도 매우 영리한 대중 기금 모금 전략이었고, 결국 이 "펜스"들이 세 개의 건축물과 광활한 영토를 사들이게 했다. 1891년 5월 7일, 화려한 대성전이 봉헌되었다. 1901년 교황 레오 13세는 이를 소성당으로 승인했고,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이 성전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마리아 신심의 중심지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바르톨로 롱고의 업적은 종교 건축만에 그치지 않았다. 현대 폼페이 시의 대주교 토마소 카푸토는 이렇게 표현했다: "롱고는 단순히 성전의 건설자가 아니었다. 그는 한 도시의 건설자였다. 신앙으로부터 태어난 도시의 창시자였다." 실제로 폼페이는 롱고의 손에 의해 우편국, 전신국, 상수도, 철도역, 심지어 천문대까지 갖춘 현대적 도시로 변모했다. 그는 단순한 순례지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공동체의 기초를 다졌던 것이다. 나아가 그는 수감자의 자녀들을 위한 고아원을 설립하여,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이들에게 교육과 신앙의 기회를 제공했다. 이는 19세기의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가톨릭의 사회 정의 전통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것이었다.

 

롱고가 작성한 "폼페이의 간구"라는 기도문은 절망의 상황에서 묵주기도의 중보를 청하는 수백만 신자들의 표준 기도가 되었다. 그는 54일간의 묵주기도 기도회(로사리오 노베나)를 고안했고, 이는 오늘날에도 전 세계 가톨릭 공동체에서 실천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마리아 신심은 종교 개혁 이후 가톨릭의 정체성을 지키는 핵심적 전통이었는데, 롱고는 이를 19세기 근대적 상황 속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대중화한 인물이었다. 그의 노력으로 폼페이 성전은 매년 수백만 명의 순례자를 맞이하는 세계적 영성의 중심지가 되었고, 이는 세속화의 흐름 속에서 전통 신앙의 지속 가능성을 증명하는 사례가 되었다.

 

2025년 10월 19일 교황 레오 14세는 바르톨로 롱고를 공식적으로 성인으로 선포했다. 198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복자로 선포된 지 45년 만의 일이었다. 이 시성은 단순한 교회의 행사가 아니었다. 바티칸 광장에 모인 70만 명의 신자들은, 한 사람의 극적인 회심과 헌신이 어떻게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으며, 개인의 영혼의 깊이가 얼마나 광대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지를 증거하는 것이었다. 특히 21세기 초반의 세속화된 서방 사회 속에서, 성 바르톨로 롱고의 삶은 현대인들에게 절망 속에서도 신앙의 회복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의 시성은 가톨릭이 단순히 과거의 전통을 지키는 종교가 아니라, 시대의 도전 속에서 끊임없이 영혼의 구원을 추구하는 살아 있는 신앙 공동체임을 보여주는 현대적 증거이다.

 

역사는 종종 위대한 지도자나 군인의 이야기로만 기록된다. 하지만 성 바르톨로 롱고의 삶은 우리에게 다른 진리를 일깨워준다. 개인의 영혼이 회복되고 변화될 때, 그것이 전하는 파장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오래가는지를 말이다. 사탄 숭배에서 벗어나 묵주기도의 전도자가 된 그의 여정은, 19세기 이탈리아의 정치적 격변 속에서도 신앙의 끈을 잃지 않은 가톨릭 전통의 생명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오늘날 21세기의 우리들에게, 시련과 절망의 한복판에서도 신앙과 소망이 얼마나 강력한 변화의 힘을 가질 수 있는지를 계속해서 증거하고 있다.

성 바르톨로 롱고와 그 시대 – 역사적 사건 연표

연도 역사적 사건 및 바르톨로 롱고의 생애 역사적 맥락
1841년 2월 10일 바르톨로 롱고 출생 (라티아노, 남부 이탈리아) 이탈리아 통일 직전의 분열 시대
1851년 어머니 사망 (롱고 10세), 영적 공허감 시작 교황청 잃음 (제1차 이탈리아 독립전쟁)
1859-1871년 나폴리 대학교에서 법학 공부, 강신술·심령주의·사탄주의에 심취 이탈리아 리소르지멘토, 반종교 지식인 운동 확산
1860-1861년 이탈리아 통일 달성, 교황령 상실 본격화 교황 비오 9세와 신이탈리아 정부 간 갈등 심화
1864년 도미니코회 신부 라덴테와 친구 페페의 권고로 회심, 묵주기도 시작 세속화의 물결 속에서 신앙의 전통 재발견
1871년 도미니코 제3회 평신도 회원 서원, 마리안나 파르나라로 백작 부인과 혼인 이탈리아 통일 완성, 교황의 "로마 문제" 발생
1872년 폼페이 계곡의 황폐한 토지 관리 시작 고대 폼페이 고고학 발굴 본격화 (영향력 증가)
1875년 폼페이 지역에서 묵주기도 신심 운동 공식 시작, 성모상 봉헌 마리아 신심의 대중화 시기 (가톨릭의 현대적 재구성)
1884년 "로사리오와 새로운 폼페이" 월간지 창간 가톨릭 미디어의 발전 시기
1891년 5월 7일 폼페이 성모 로사리오 성전 봉헌식 거행 가톨릭 세계 차원의 주목
1901년 교황 레오 13세, 폼페이 성전을 소성당으로 승인 교회의 공식적 인정 및 권위 부여
1903-1914년 폼페이 도시 인프라 건설 (우편국, 전신국, 수도, 철도, 학교, 고아원) 20세기 초 가톨릭의 사회 사업 확대
1926년 10월 5일 바르톨로 롱고 선종 (폼페이, 85세) 교회의 사회 활동 유산 영속화
1980년 10월 2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복자품에 오름 20세기 후반 마리아 신심 재조명
2025년 10월 19일 교황 레오 14세에 의해 정식 성인품에 오름 (성 바르톨로 롱고) 21세기 가톨릭의 회심과 사회 정의의 증거로 인정

참고 자료 및 출처

본 원고는 다음의 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바티칸 뉴스 (Vatican News, vaticannews.va) – 교황청 공식 발표 및 시성 관련 기사
• 성좌 시성성 관련 발표 자료 – 교황 레오 14세의 2025년 시성 선언문
• 예루살렘 성묘 기사단 공식 홈페이지 (oessh.va) – 바르톨로 롱고의 기사단 경력 기록
• 폼페이 성전 공식 자료 (Santuario di Pompeii) – 성전 역사 및 설립 경과
• 가톨릭 백과사전 (Catholic Encyclopedia) – 19세기 이탈리아 역사 및 교회 관련 항목
• Aleteia – 가톨릭 뉴스 플랫폼의 성인 관련 기사
• Catholic World Report – 바르톨로 롱고의 회심 및 시성 관련 심층 보도
• National Catholic Reporter – "Satanist to Saint" 기사 및 폼페이 성전 역사
• EWTN Vatican News – 폼페이 순례 및 신심 관련 영상 및 기사
• The Catholic Travel Guide – 폼페이 성전 역사 및 건축 정보

본 원고의 내용은 위 자료들의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저자가 재구성한 것으로, 특정 출처의 문장을 직접 인용하지 않고 의미를 번역·해석하여 작성했습니다. 가톨릭 신앙의 관점을 유지하면서도 역사적 정확성을 위해 노력했으며, 혹시 오류가 있을 시 상기 원전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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