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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인과 교부

성녀 마리아 레지나 – 수많은 시련을 이겨낸 신앙의 발자취

by 기쁜소식 알리기 2026.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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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명을 받을 때 '마리아 레지나'라는 이름을 선택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런데 이 이름이 어디에서 왔는지, 또 어떤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제대로 알고 계신 분은 많지 않으실 거예요. 오늘은 이 이름 속에 담긴 두 가지 신앙적 뿌리, 즉 '하늘의 모후이신 마리아'와 '순교자 성녀 레지나'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레지나(Regina)'라는 단어부터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요. 라틴어로 '여왕'이라는 뜻을 가진 이 말은 성모 마리아를 부르는 여러 호칭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성모승천대축일과 연결되는 '하늘의 모후'라는 의미로도 쓰이고, 동시에 3세기경 실제로 존재했던 순교 성녀의 이름이기도 하죠. 그래서 '마리아 레지나'라는 세례명은 성모님에 대한 신심과 순교 성녀의 굳센 믿음을 함께 품고 있는 이름이라고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역사 속 성녀 레지나는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 오늘날 알리즈생트렌으로 불리는 곳에서 태어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곳은 원래 '알레시아'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지역인데요, 기원전 52년 갈리아의 지도자 베르킨게토릭스가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 항복한 그 유명한 전투가 벌어진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성녀 레지나가 살았던 땅은 이미 오래전부터 정복과 저항, 그리고 문명의 충돌이 겹겹이 새겨진 역사적인 곳이었던 셈이에요.

 

전승에 따르면 레지나는 이교도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지만,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그리스도교 신자였던 유모의 손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딸이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알고 몹시 분노했고, 결국 레지나는 집에서 쫓겨나 양치는 일을 하며 어려운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다 로마 제국의 지방 관리였던 올리브리우스라는 인물이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해 청혼을 하게 되는데, 이는 곧 신앙을 버리라는 강요와 다름없었습니다.

 

레지나는 세속의 권력과 부귀영화를 약속받았음에도 끝내 신앙을 지키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당시는 로마 제국이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시기였고, 신앙을 고백하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건 결단이었던 시절이었어요. 결국 그녀는 오탱 지방에서 참수형을 당하며 순교했다고 전해지는데, 이 순간 흰 비둘기가 그녀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는 이야기가 함께 전해 내려옵니다. 순결과 하느님의 은총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죠.

 

순교 이후에도 성녀 레지나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갈리아 지역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그녀에 대한 공경이 빠르게 퍼져나갔고, 처음에는 오탱에서 유해가 모셔지다가 서기 864년에는 플라비니 수도원으로 유해가 옮겨지면서 순례의 중심지로 자리 잡게 됩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그녀의 축일을 9월 7일로 정했고, 독일 파더보른 대교구에서는 6월 20일에 기념하는 등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그녀를 기억해왔습니다.

특히 인상 깊은 것은 866년부터 이어져 온 '성녀 레지나의 신비극'이라는 전통입니다. 알리즈생트렌 지역에서는 매년 여름 그녀의 생애와 순교 장면을 재현하는 공연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데요, 무려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끊이지 않고 전승되어 온 셈입니다. 이는 단순한 종교 행사를 넘어서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인정받고 있기도 합니다.

순교지 인근에는 성녀 레지나 대성당이 세워졌고, 오늘날까지도 많은 순례객들이 이곳을 찾아 그녀의 전구를 청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흐르면서 성녀 레지나는 목자와 양치기들의 수호성인으로, 또한 억압받고 고통받는 이들의 보호자로 공경받게 되었습니다. 부당한 일을 겪는 이들이 그녀에게 의탁하는 전통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죠. 이는 그녀 자신이 겪었던 부당한 박해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굳건한 신앙의 전통은 이후 시대를 거치며 교육 현장에서도 이어져 왔습니다. 많은 학교와 수도 공동체들이 '레지나'라는 이름을 교명이나 수호성인으로 삼아온 것도 이런 맥락과 닿아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신념을 저버리지 않았던 그녀의 삶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이들에게 인내와 헌신이라는 덕목의 본보기로 여겨져 왔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다음 세대를 바르게 이끌고자 하는 교육자들의 마음과, 성녀가 보여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서로 닮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리아 레지나'라는 이름을 되새겨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겁니다. 세상은 늘 크고 작은 시련을 안겨주지만, 그 시련 앞에서 무엇을 지킬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세계사의 큰 흐름 속에서, 로마 제국의 박해라는 거대한 압력 앞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놓지 않았던 한 사람의 이야기는, 시대를 뛰어넘어 여전히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전해줍니다.

 

가톨릭 신앙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렇게 개인의 삶과 시대의 큰 사건들이 서로 맞물려 있는 경우를 자주 만나게 됩니다. 성녀 레지나의 삶 역시 로마 제국의 정치적 상황, 갈리아 지역의 문화적 배경, 그리고 그리스도교 박해라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이해할 때 비로소 온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아래 표로 주요 사건들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 보았으니 함께 살펴보시면 좋겠습니다.

시대순 역사 사건 정리

시기 사건 내용
기원전 52년 갈리아 지도자 베르킨게토릭스가 로마 카이사르에게 항복한 알레시아 전투 발생
3세기 중반 (약 250~260년경) 부르고뉴 알리즈 지역에서 레지나 출생, 그리스도교 신자인 유모 밑에서 신앙을 접함
3세기 중후반 아버지에게 쫓겨나 목자 생활을 하며 신앙을 지켜나감
251년 또는 286년경 (자료마다 상이) 로마 관리 올리브리우스의 청혼과 배교 강요를 거부하고 오탱에서 참수 순교
순교 직후 갈리아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공경 문화 확산, 오탱에서 유해 공경 시작
864년 유해가 플라비니 수도원으로 이전되며 순례지로 발전
866년 성녀 레지나의 생애를 재현하는 신비극 전통 시작, 오늘날까지 이어짐
중세 시대 순교지 인근에 성녀 레지나 대성당 건립, 부르고뉴 지역 대표 순례지로 성장
현재 매년 여름 축제와 순례 행사가 계속되며 목자와 고통받는 이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음

참고자료: 가톨릭굿뉴스(maria.catholic.or.kr) 성인 정보란, 바오로딸 콘텐츠(contents.pauline.or.kr), 마리아사랑넷(mariasarang.net) 성인 자료실, 위키백과 'Alise-Sainte-Reine' 및 관련 성인전 문헌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보다 정확한 전례력과 교리적 해설은 소속 교구나 본당,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자료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성녀 마리아 레지나 – 수많은 시련을 이겨낸 신앙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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