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 이탈리아 중부의 작은 도시 아시시에서, 부유한 귀족 가문의 딸로 태어난 한 여성이 스스로 모든 재산과 신분을 내려놓고 가난한 삶을 선택했다. 바로 성녀 클라라(라틴어 Clara, 이탈리아어 키아라 오르페두초, 1194년~1253년)이다. 그녀는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적 동반자로만 기억되기 쉽지만, 실제로는 여성이 직접 작성한 최초의 수도회 회칙을 남기고 '가난한 자매회'(성 클라라 수도회)를 세운 여성 수도운동의 선구자였다. 남성 중심적이었던 중세 교회 구조 안에서 여성이 독자적인 영성 공동체를 세우고 그 생활 방식을 스스로 결정한 사례는 매우 드물었기에, 그녀의 삶은 오늘날까지도 큰 의미를 지닌다.
클라라는 1194년 아시시에서 사소로소 백작 파보리노 스키피와 그의 아내 오르톨라나 사이에서 맏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기도 생활에 매우 열심이었던 그녀는 12세가 되었을 때 부모가 부유한 남성과의 혼인을 준비하려 하자 이를 거부했다. 이 무렵 아시시에서는 성 프란치스코가 이끄는 회개와 청빈의 개혁운동이 한창 일어나고 있었다. 프란치스코의 설교에 깊이 감화된 클라라는 1212년 성지 주일 밤, 몰래 집을 빠져나와 프란치스코와 그의 형제들을 찾아갔고, 그 자리에서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화려한 옷을 벗어 던지며 청빈한 삶을 서약했다.
가족들은 클라라를 다시 데려가기 위해 무력을 동원하기까지 했지만, 그녀는 끝내 자신의 결심을 지켜냈다. 이후 클라라는 아시시의 산 다미아노 성당에 자리를 잡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여동생 성녀 아녜스를 비롯한 여러 여성이 뒤를 따르면서 자연스럽게 여성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이들은 '성 다미아노의 가난한 자매들'로 불렸으며, 처음에는 베네딕토회 규칙을 따르며 생활했다. 클라라는 공동체의 원장으로서 극단적인 청빈과 침묵, 관상 기도를 중심으로 한 생활 규범을 세워나갔는데, 그 엄격함이 지나쳐 아시시의 주교와 프란치스코가 직접 그녀의 건강을 염려하며 절제를 명한 일도 있었다.
클라라가 이끈 공동체가 특별했던 이유는 무엇보다 '청빈의 특권'을 끝까지 지켜냈다는 점에 있다. 당시 교황청은 여성 수도 공동체에 일정한 재산과 토지를 소유하도록 권고했지만, 클라라는 그리스도의 가난을 온전히 따르고자 어떠한 고정 재산도 소유하지 않는 절대적 청빈을 고집했다. 결국 그녀는 선종을 앞둔 시기에 이르러서야 교황 인노첸시오 4세로부터 자신이 직접 작성한 회칙을 승인받았는데, 이는 역사상 여성이 저술한 최초의 수도회 회칙으로 알려져 있다. 이 회칙 승인은 그녀가 선종하기 불과 며칠 전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평생을 건 신념의 결실이었다고 할 수 있다.
클라라의 생애에서 널리 알려진 또 하나의 사건은 아시시가 외부의 침략 위협에 놓였을 때 벌어진 일이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용병들이 아시시를 공격해 왔을 당시, 병약해진 클라라는 사제에게 부탁해 성체를 들어 보이도록 하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신앙의 힘 앞에서 침략군이 물러났다고 하며, 이 일화로 인해 클라라는 오늘날에도 성광(聖光, 성체를 담는 그릇)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자주 그려진다. 이 사건은 그녀가 단지 관상 기도에만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와 도시 전체를 지켜내는 정신적 지주 역할까지 감당했음을 보여준다.
1253년 8월 11일 클라라는 선종했으며, 그로부터 불과 2년 뒤인 1255년 교황 알렉산드로 4세에 의해 성녀로 선포되었다. 이는 당시 기준으로 매우 신속한 시성이었는데, 그녀의 삶과 영성이 이미 생전에 널리 존경받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후 그녀가 세운 공동체는 그녀의 이름을 따 '성 클라라 수도회'로 불리게 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 여러 나라에 봉쇄 관상 수녀원의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클라라 수도회는 '가난한 자매회' 또는 '프란치스코 제2회'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성녀 클라라는 성 프란치스코의 남성 중심적 개혁운동과 나란히, 여성이 주도하는 독자적인 영성 운동을 세상에 펼쳐 보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클라라 탄생 800주년을 기념하는 서한에서 프란치스코와 클라라가 서로를 보완하며 복음적 이상을 증언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남성과 여성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리스도교 영성을 완성해 나갈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평가다. 봉쇄된 삶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여성 스스로 규율을 정하고 지켜낸 클라라의 삶은, 중세 교회사에서 여성 수도운동의 이정표로 오늘날까지 평가받고 있다.
성녀 클라라 관련 주요 역사적 사건 연표
| 연도 | 사건 |
|---|---|
| 1194년 7월 16일 |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귀족 가문의 맏딸로 출생 |
| 1206년경 | 성 프란치스코의 회개 및 청빈 운동이 아시시에서 확산 |
| 1212년 | 성지 주일 밤, 집을 나와 프란치스코를 찾아가 청빈 서약 |
| 1212년 이후 | 산 다미아노 성당에 정착, '가난한 자매들' 공동체 형성 |
| 1220년대 | 공동체 원장으로서 청빈과 관상 중심의 생활 규범 확립 |
| 1240년 | 프리드리히 2세의 용병들이 아시시 침공, 성체 앞 기도로 위기 극복 |
| 1253년 8월 9일 | 교황 인노첸시오 4세, 클라라가 직접 작성한 수도회 회칙 승인 |
| 1253년 8월 11일 | 아시시에서 선종 |
| 1255년 | 교황 알렉산드로 4세에 의해 성녀품에 오름 |
| 1255년~1256년 | 토마스 첼라노, 클라라의 전기 저술 |
| 1260년 10월 3일 | 클라라의 유해, 새로 지어진 성 클라라 대성당에 안치 |
참고자료
편집부 편, 「교회사를 빛낸 10인의 성녀 - 성녀 클라라」, 가톨릭출판사, 2000년, 143~164쪽.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2권 - 글라라, 아시시의」, 한국교회사연구소, 1995년, 1057~1058쪽.
요셉 봐이스마이어 외 저, 전헌호 역, 「교회 영성을 빛낸 수도회 창설자: 중세교회 - 아시시의 클라라와 클라라 수도회」, 가톨릭출판사, 2001년, 137~163쪽.
가톨릭굿뉴스 가톨릭정보 성인 목록, 클라라(8.11) 항목, https://maria.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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