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 성인과 교부

성 베드로 칼룽소드, 필리핀이 낳은 젊은 순교자의 발자취

by 기쁜소식 알리기 2026. 7. 26.
반응형

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사와 가톨릭 신앙사에서 꼭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인물, 성 베드로 칼룽소드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이름이 다소 생소하실 수도 있는데요, 그는 17세기 필리핀 출신의 평신도 교리교사로서 태평양 건너 머나먼 섬까지 신앙을 전하다가 결국 순교라는 가장 극적인 시련을 겪은 인물입니다.

성 베드로 칼룽소드, 필리핀이 낳은 젊은 순교자의 발자취


성 베드로 칼룽소드는 1654년 필리핀 세부 지역의 비사야 지방에서 태어난 것으로 전해집니다. 정확한 출생지와 가정환경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어린 시절부터 예수회 선교사들 아래에서 교리 교육을 받으며 신앙심을 키워갔다고 합니다. 그는 특히 스페인어와 교리문답에 능통했고, 성당의 제구를 관리하는 사목자 역할까지 수행할 정도로 신앙 공동체 안에서 신뢰받는 청년이었습니다.


1668년, 예수회 선교사 디에고 루이스 데 산 비토레스 신부가 마리아나 제도, 지금의 괌 지역으로 선교단을 이끌고 떠날 때 베드로 칼룽소드도 그 여정에 동행하게 됩니다. 당시 십대 후반의 어린 나이였지만, 그는 두려움 없이 낯선 태평양 섬으로 향했습니다. 이 시기는 스페인이 필리핀을 거점으로 태평양 항로를 확장하던 대항해시대의 연장선에 있었고, 유럽 가톨릭교회 역시 종교개혁 이후 신앙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려는 움직임이 활발했던 때였습니다. 베드로의 선교 여정은 바로 그러한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지요.


괌에 도착한 이후 베드로와 산 비토레스 신부는 원주민인 차모로족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베풀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원주민이 이들을 환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부 주술사와 지역 유력자들은 세례 의식에 사용되는 물을 의심하며 선교사들이 아이들을 해치려 한다는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렸고, 이는 곧 선교단에 대한 깊은 불신과 적대감으로 번져갔습니다. 낯선 문화와 언어의 장벽, 거센 반발과 위협 속에서도 베드로는 산 비토레스 신부 곁을 떠나지 않고 묵묵히 교리 교육과 세례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결정적인 사건은 1672년 4월 2일에 벌어졌습니다. 마을 촌장 마타팡의 부인이 갓 태어난 딸의 세례를 요청했고, 베드로와 산 비토레스 신부는 어머니의 동의 아래 아기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게 된 촌장 마타팡은 격분했고, 결국 동료를 끌어들여 두 사람을 무참히 살해하기에 이릅니다. 베드로는 창과 칼에 맞아 순교했고, 그의 시신은 산 비토레스 신부의 시신과 함께 툼온 앞바다에 던져졌습니다. 그의 나이 겨우 열일곱이었습니다. 낯선 땅에서, 신앙을 이유로, 그것도 자신을 도와준 이들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은 지금 들어도 참으로 마음 아픈 대목입니다.


이후 오랜 시간이 흘러 그의 신앙과 순교가 재조명되기 시작합니다. 1994년 세부대교구에서 시복 절차가 정식으로 시작되었고, 2000년 3월 5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복자로 선포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12년 10월 21일,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그를 성인의 반열에 올리며 정식으로 시성하였습니다. 그의 순교로부터 무려 340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그는 로렌조 루이스에 이어 필리핀에서 두 번째로 시성된 성인이자, 비사야 지역 출신으로는 최초의 성인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성 베드로 칼룽소드는 필리핀 청소년과 복사, 해외 필리핀 노동자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습니다. 그의 삶은 나이나 신분과 상관없이 누구든 신념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낯선 땅, 거센 반대, 그리고 결국 목숨을 잃는 극한의 시련 속에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던 그의 모습은 시대를 넘어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세계사의 큰 흐름 속에서 이름 없이 스러져 간 수많은 이들 가운데, 베드로 칼룽소드처럼 훗날 재조명되어 이야기로 남는 경우는 흔치 않기에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성 베드로 칼룽소드 관련 주요 사건 연표

시기 주요 사건
1654년 필리핀 세부 비사야 지역에서 출생
1668년 6월 15일 디에고 루이스 데 산 비토레스 신부와 함께 마리아나 제도(괌)로 출항
1668년 ~ 1672년 괌 차모로족을 대상으로 교리 교육 및 세례 활동 수행
1672년 4월 2일 촌장 마타팡 일행에 의해 산 비토레스 신부와 함께 순교, 시신은 툼온 앞바다에 유기됨
1994년 세부대교구, 정식 시복 절차 개시
2000년 3월 5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복자로 선포
2012년 10월 21일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


참고 문헌 및 참고 사이트

Wikipedia, "Pedro Calungsod"
Guampedia, "Pedro Calungsod"
The Society of Jesus, "Saint Pedro Calungsod"
Asian Catholic Initiative, "St. Pedro Calungsod (Filipino)"
Find a Grave, "Saint Pedro Calungsod (1654-1672)"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