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63 가톨릭 윤리 신학 - 양심과 선택의 길 윤리 신학의 기초와 역사적 발전가톨릭 윤리 신학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입니다. 초대 교회 시대부터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의 빛 안에서 구체적인 삶의 문제들에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 고민해왔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서간에서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삶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중세 시대에 들어서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그리스도교 신학을 종합하여 체계적인 윤리 신학을 정립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모든 행위가 궁극적으로 하느님이라는 최고선을 향해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16세기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윤리 신학은 고해성사를 위한 실천적 지침서로 발전했으며, 죄의 분류와 양심의 판단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20세기 제2차 바티.. 2025. 11. 7. 성녀 펠리치타스 순교자 - 어머니의 사랑과 신앙의 용기 3세기 초 북아프리카의 박해 상황3세기 초 로마 제국은 그리스도교에 대한 조직적인 박해를 강화하고 있었습니다. 193년부터 211년까지 통치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는 로마 제국의 안정을 위해 전통 종교를 강조했고, 202년에는 제국 전역에 칙령을 내려 그리스도교와 유대교로의 개종을 엄격히 금지했습니다. 이 칙령은 특히 새롭게 신자가 되려는 예비 신자들과 그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교사들을 표적으로 삼았습니다.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는 당시 로마 제국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였으며, 그리스도교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던 지역이었습니다. 카르타고 교회는 이미 견고한 조직을 갖추고 있었고, 순교자들의 피로 신앙이 더욱 견고해지고 있었습니다. 황제의 칙령이 반포되자 카르타고의 총독은 적극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을 .. 2025. 11. 7. 성녀 모니카 - 기도의 힘을 증명한 어머니의 신앙 4세기 북아프리카의 역사적 배경4세기 북아프리카는 로마 제국의 중요한 속주로서 문화적으로 매우 융성한 지역이었습니다. 특히 누미디아 지방은 카르타고를 중심으로 한 교역과 학문의 중심지였으며, 그리스도교가 이미 깊이 뿌리내린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전통적인 로마 이교 신앙과 새롭게 유입된 마니교 등 다양한 종교적 사상들이 혼재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누미디아의 타가스테는 작은 도시였지만 로마 문화의 영향을 받아 라틴어 교육이 이루어지고 수사학과 철학이 가르쳐지던 곳이었습니다. 이러한 지적 환경은 뛰어난 인재들을 배출하는 토양이 되었지만, 동시에 젊은이들이 세속적 욕망과 이교적 사상에 빠지기 쉬운 환경이기도 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이후, 교회는 급속.. 2025. 11. 6. 가톨릭 교리서 쉽게 풀어보기 - 신앙의 핵심 가르침 가톨릭 교리서란 무엇인가199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공포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가톨릭 신앙의 모든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입니다. 이 교리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현대 세계에 맞게 교회의 가르침을 새롭게 제시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이 같은 신앙을 고백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신앙의 안내서인 것입니다. 교리서는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부분은 신앙 고백으로 우리가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룹니다. 두 번째 부분은 그리스도 신비의 기념으로 성사와 전례를 설명합니다. 세 번째 부분은 그리스도 안의 생활으로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삶을 가르칩니다. 네 번째 부분은 그리스도인의 기도로 기도의 의미와 방법을 다룹니다. 이렇게 믿음, 성사, 삶, 기도.. 2025. 11. 5. 성녀 테클라 순교자 - 초대 교회 여성 신앙의 빛 1세기 초대 교회와 여성의 역할1세기는 그리스도교가 탄생하고 로마 제국 전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역사적 시기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사도들과 제자들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팔레스티나를 넘어 소아시아, 그리스, 로마로 향했습니다. 특히 사도 바오로는 이방인 선교의 선구자로서 여러 차례 선교 여행을 통해 수많은 도시에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이 시기 로마 제국의 사회는 가부장적 질서가 지배적이었고, 여성들은 공적 영역에서 제한된 역할만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는 이러한 사회적 관습과는 다른 혁명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갈라티아서 3장 28절에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서는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다고 선포했습니다. 이러.. 2025. 11. 5. 성 아드리안 순교자 - 박해자에서 순교자가 된 로마 군인 디오클레티아누스 대박해의 시대적 배경4세기 초 로마 제국은 그리스도교에 대한 가장 조직적이고 잔혹한 박해를 시행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제국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303년부터 시작된 대박해를 명령했고, 이는 로마 제국 전역에서 수많은 순교자를 낳았습니다. 니코메디아는 당시 로마 제국 동부의 수도였으며, 비티니아 지방의 중심 도시로서 황제가 직접 거주하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에서는 박해가 특히 혹독하게 진행되었고, 황제의 직접적인 감시 아래 그리스도교인들에 대한 체포와 고문이 일상적으로 벌어졌습니다. 황제는 그리스도교를 제국의 전통 종교와 황제 숭배를 위협하는 요소로 간주했으며, 신자들을 색출하여 배교를 강요하거나 처형했습니다. 이러한 극한 상황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려는 이들의 용기는 오히려 많.. 2025. 11. 4. 이전 1 2 3 4 5 6 7 8 ··· 44 다음 반응형